한국 생활

오자키 2009. 5. 24. 02:53

 국립중앙박물관에 이집트 문명전을 보러 갔다. 기대했던 이상으로 얻은 것이 많았다.

 

 

 

그동안 번역 작업을 하면서 이집트의 신들 이름이 나올 때마다 해당하는 일본어 명칭만 찾는 데 급급했다. 그래서 이시스가 무엇이고 베스가 무엇인가 하는 것은 알지도 못했고, 비록 무슨 신인지 알게 되더라도 금새 잊어버렸다. 실감나지도 않은 데다 이미지도 떠오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지금 한국에 고대 이집트 문명의 유물들이나 미라까지 와 있다는 것을 알게 되어 한 번 가 봐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실제로 가서 보니 그 조각이나 신상들의 크기, 질감, 사람을 압도하는 강력한 느낌 같은 것들을 직접 경험할 수 있었다.

 

관람이 끝나고 출입구에서 도록을 샀다. 그런데 사진을 아무리 열심히 보아도 그때 느낀 압도당하는 기분은 일어나지 않았다. 이 도록은 제본에서 인쇄 기술까지 최고 수준인데도 불구하고 무엇인가가 빠져 버린 것이다.

 

전에도 전쟁기념관에서 사해문서와 구약성서에 관한 유물을 전시했을 때 가서 큰 이득을 얻은 적이 있었다. 그때는 처음으로 성서의 필사본을 보았는데, 뜻밖에도 꼼꼼한 글씨체로 촘촘하게 쓰인 양피지에서 필사한 사람의 숨결이 느껴져 황홀한 기분에 빠졌다. 그때 흥분이 며칠 동안 가시지 않았다.

 

이번에도 역시 석비 등에 새겨진 히에로글리프에 반했다. 나는 글자에 관심이 많은가 보다. 돌에 새겨진 글자들을 보다가 갑자기 한자가 새겨져 있는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그리고는 내가 알지 못하는 그 글자들을 조각도와 망치로 새기는 사람의 숨결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이것은 인쇄된 글자나 사진에 찍은 필사본 등으로는 느낄 수 없는 것이었다. 실물을 직접 접했을 때만 우리가 겸험하게 되는 특별한 반응이었다.

 

수업 중에도 이와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있다. 평소에는 컴퓨터로 음성데이타를 들려 주는데, 어느 날 컴퓨터가 고장이 나서 내가 직접 학생들 앞에 서서 모범 발음을 하게 됐다. 그때 맨손으로 현장감 있게 암기한 대화문을 말했더니 학생들이 평소보다 쉽게 암기하는 것 같았다. 컴퓨터로 들려 주는 것보다 사람과 사람이 직접 대면해서 육성으로 말을 주고 받는 것이 학생들에게 무엇인가 더 깊은 이해를 얻게 하는 것을 느꼈다.

 

그럼에도 나는 컴퓨터가 고쳐지자마자 다시 음성 데이타를 들려 주기 시작했다. 그 이유는 컴퓨터가 발음의 세부까지 관찰하는 데 편리하기 때문이다. 나는 음악 편집용 프로그램으로 음성 데이타를 워드처럼 자르고 붙이면서 학생들에게 소리를 보여 주는데, 그것만은 육성으로도 할 수 없고, 카셋테이프나 CD로도 할 수 없는 것이다.

 

그래도 가끔 학생들이 왠지 외우기 어려워할 때는 내가 학생들 가운데 나와서 함께 암송한다. 그러면 학생들의 목소리 표정이 달라진다. 그리고 비교적 쉽게 암기하게 된다.

 

지금 우리는 엣날에 비해 가상 세계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실물에도 옛날보다 접하기 쉽게 됐다. 가상의 세계와 실물을 동시에 많이 접할 수 있게 된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의 지식은 옛날에는 부유한 사람들만 가능했던 수준으로 풍부하게 늘릴 수 있게 됐다.

 

그래서 공부할 때도 이름만 알고 넘어가는 것이 아니라, 실물도 접하도록 한다면 우리는 지식의 넓이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를 더욱더 늘려 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