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오자키 2009. 6. 30. 03:58

지금 <한국의 글쟁이들> (구본주, 한겨레출판, 2008)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구본형 작가에 대한 기사에서 그의 독서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여기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읽은 다음에는 인용할 글귀를 메모한다. 그리고 가급적 읽은 책과 관련된 칼럼을 쓴다(85쪽)’라는 대목이다.


칼럼이라……. 좀 힘든 일이긴 하지만 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칼럼은 아니지만 최근에 장영희의 책 3권을 읽은 것에 대해 써볼까 한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는 서강대 영문과 교수이자 수필가로서 유명했던 사람이다. 나는 몇 년 전에 교보문고에서 발행하는 <사람과 책>에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 (샘터, 2005)를 발간해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때 나는 희미하게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문학 안내서겠거니 생각해서 서점에서 봤는데도 손에 들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5월 중순 쯤에 신문을 읽다가 우연히 장영희 교수가 타계했다는 기사를 읽고 그 책 생각이 났다. 며칠 후에 교보문고에 갔을 때 <문학의 숲을 거닐다>가 분야별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그 책을 손에 들어 보았고, 그 책이 결코 문학 안내서가 아니라, 문학작품을 둘러싼 수필집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또 그의 아름다운 문장에 놀랐다.


<내 생애 단 한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은 후 <내 생애 단 한번> (샘터, 2000)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의 신변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을 화제로 삼은 수필집이었다. 특히 학업과 수업 그리고 신체 장애에 대한 글이 많다. 역시 문장은 아름다웠는데, 다만 이 수필에는 자신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현주야”에서는 어린 시절에 목숨 걸고 자신을 구해 준 아이를 그가 왕따 당하는 아이라는 이유로 무시해 버렸던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 수필집은 곳곳에 이와 같은 자신의 추하고 죄스러운 행동과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 그때 나는 마치 저자가 수필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가 기적>
그런데, 그 뒤에 읽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샘터, 2009)을 읽을 때, 앞서 나온 <내 생애 단 한번>에 대해 ‘독자들은 나의 고해 사제였다’(66쪽)라고 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장영희는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처럼 솔직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마가복음서는 베드로가 아람어로 구술하고 마가라는 제자가 헬라어로 고쳐서 받아쓴 책이라는데, 이 복음서에서 유별나게 베드로의 추악한 언행이나 잘못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마치 베드로의 안티들이 쓴 복음서와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자신의 잘못을 숨김없이 보여 줄 수 있는 베드로라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보통 사람이면 자신의 아름답고 훌륭한 면만 보여 주려고 하는데, 장영희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일은 신앙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정말 겸손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앞서 나온 수필집과 비슷한 여러 가지 주제들에 대해 쓰고 있는데, 내용이 한층 깊어진 것 같았다. 책 디자인도 <내 생애 단 한번>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그는 수필가 치고는 인생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120쪽)라고 하고, 또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216쪽)라고도 하는데, 이런 생각은 수필집 전체에 깔려 있다.


사실 그는 1급 신체장애인이었고, 2001년에 암이 발견되면서부터는 계속 투병을 했었으며, 결국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올 5월 15일에 나오기 1주일 전인 5월 9일에 암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는 항상 죽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고, 그것이 그의 글을 더욱더 깊이 있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에게 선물 주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하면 아마 나는 장영희의 이 세 권의 수필집에서 한 권을 고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