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공부

오자키 2009. 7. 12. 22:30

의외로 많은 사람들이 실력이라는 것을 도외시하고 외국어 공부에 덤벼 든다. 자기가 덤벼든 물이 풀장인지, 호수인지, 아니면 바다인지 생각하지 않는다. 이것은 좋은 일이 아니다. 자기가 덤벼든 물의 넓이에 따라 헤엄쳐서 갈지, 보트를 타고 갈지, 아니면 큰 배를 타고 갈지 생각해야 할 것이다.

 

외국어는 바다다. 이것을 풀장으로 착각하고 덤벼들면 헤엄치다가 지쳐서 빠져 죽을지도 모른다. (내가 어떤 외국어를 풀장으로 생각하고 배울 때는 처음의 몇 과만 배운 다음 여행 회화책에서 필요한 몇 가지 단어와 문장만 암기하고 끝낼 것이다.) 외국어 공부는 많은 시간을 학습자에게 요구한다. 그래서 어느 정도 자신의 생활 습관에 변경을 요구하기도 한다. 물론 그럴 만한 가치가 있는 것이 외국어 학습이지만, 어중간하게 끝난다면 시간을 허비하고 끝나고 마는 것도 외국어다.

 

그래서 무엇보다도 먼저 외국어 실력은 어떤 단계로 되어 있느지를 알고 목표를 세우는 게 좋을 것이다.


외국어 실력은 보통 초급, 중급, 고급 그리고 최상급으로 나누어진다. (아래는 ACTFL에서 공개하는 기준을 바탕으로 개인적 견해과 경험등을 가미하고 있다. 관심이 있는 사람은 ACTFL OPI에 대해 알아 보면 정확한 지식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초급
초급은 아무것도 못하는 수준이다. 해외 여행에서 몇 가지 필요한 표현만 외우고 가는 정도의 수준이라고 생각하면 될 것이다. 말하자면 풀장 수준이다. 이 단계에서 학습을 중단하면 어렵게 배운 지식도 금방 증발하고 만다. 아쉽게도 이 단계에서 외국어 학습을 포기하는 사람이 가장 많다.

 

중급
중급은 그것보다 조금 더 나아져서, 스스로 외국어를 사용함으로써 살아남을 수 있는 수준이다. 일상적으로 필요한 일은 다 할 수 있게 되는 것이 이 수준이다. 이 수준은 그 외국어를 못하는 것도 아니지만 그렇다고 잘 한다고 할 수도 없어서 매우 불안정한 시기다. 말하자면 호수에서 바다로 나가지 못해 답답해 하는 단계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외국어 학습자들은 이 수준에 머물러서 더 이상 나가지 못하는데, 이것은 외국어가 바다라는 인식이 없어서 호수에 머무는 것으로 만족해 하는 것이다. 이 정도 수준이라도 일상적인 일을 무리없이 해결할 수 있기 때문에 충분히 배웠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물론 그 외국어를 못하는 사람이 보면 도사처럼 보이니 우쭐댈 수도 있다.

 

어쩌면 이 수준이 대부분 외국어 공부를 하는 사람들의 목표 지점인지도 모른다. 절실하게 일본어 공부를 사모하는 사람에게 일본어로 무엇을 하고 싶은지 물어 보면 이 정도 수준의 일들을 하고 싶다고 대답하는 사람들이 많다. 그렇다면 일본어 공부에 그렇게 많은 돈을 쏟아 부을 필요가 있을까? 일본어과로 전과를 희망하는 학생들을 면접하면 혼자서 배웠는데 이 정도 실력이 되는 사람도 많다. 학원을 다닌 사람도 있지만 책값과 CD값만 들여서 중급 수준이 된 사람도 있다.

 

고급
고급 수준이 된 사람을 원어민의 입장에서 보면 언어의 벽이 사라져서 말로 서로 마음을 나눌 수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여러분이 외국 사람을 만나 한국어로 대화할 때 한국사람과 대화하는 듯한 편안함을 느꼈다면 그 사람의 한국어 실력은 적어도 고급 수준이다. 중급 수준이면 아직 많은 부분에서 서로 답답함을 느낄 것이다. 고급 준이 돼야 비로소 바다에 나온 것이다.

 

이 수준이 되는 학생들은 우리 일본어과 학생들 중에도 일부에 불과하다. 나의 바람은 대부분의 학생들이 적어도 고급 수준이 되어서 졸업해 주었으면 하는데, 전체의 10%~20% 정도일까? 그 만큼 고급까지 올라가는 사람이 적다.

 

고급 수준이 되려면 일본 책이나 잡지 등을 즐겨 읽을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문법도 정확하게 구사해야 한다. 비록 가끔 초보적 오류가 있다 하더라도 전체적으로는 정확한 편이어야 한다. 문법을 등한시하는 사람이 있는데, 고급 수준이 되려면 문법을 정확하게 익혀야 한다. 물론 직관적 감각으로 몸에 익히는 문법 뿐만 아니라 지식적 문법, 그러니까 명사와 동사라든가, 주어와 서술어, 단문과 복문, 어절이나 형태소 등과 같은 지식들도 논리적 구성을 다듬어서 명확하게 표현하는 데 도움된다.

 

고급 수준은 표현할 수 있는 범위도 다양한 만큼 잘 다듬어져 있어야 한다.

 

최상급
최상급은 그 언어를 가지고 다채로운 주제로 이야기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익숙하지 않은 상황에서도 대처할 수 있는 수준을 말한다. 전문적인 내용뿐만 아니라 추상적인 내용까지, 그러니까 역사나 문학, 예술, 철학, 자연과학에 관한 주제로 이야기를 즐길 수 있는 것이 이 수준이다.

 

물론 전문적인 이야기를 해야 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그 화제로 통속적인 이야기라도 할 수 있으면 되는데, 이 정도 수준이 되면 그 외국어를 사용하는 게 편하다는 느낌이 들 것이다. 또한 이 정도 수준이 되려면 그 언어로 책을 즐겨 읽을 수 있어야 한다.


최상급 수준은 다시 3 가지로 나누어진다. 내가 주로 이용하는 ACTFL의 기준과 하광호 교수가 소개한 ETS의 기준을 비교해 보면 중급은 Level 1과 대응되고 (그러니까 초급은 ETS 기준에서는 Level 0인 셈이다. ETS에서는 초급을 Level 취급도 안 해 준다.), 고급은 Level 2 그리고 최상급이 Level 3~5와 대응된다(<영어의 바다에 솟구쳐라> 하광호 지음, 에디터, 1997).

 

Level 3은 이렇다. ‘공식, 비공식 상황에서 대화를 나눌 수 있고 문제해결, 상황 설명, 잘 모르는 화제에 대한 대화, 설명, 세부모사, 지지에 대한 의견 표명, 가정(假定) 등이 가능하다.’ 이 정도 수준이 되려면 정말 오랫동안 꾸준하고 열심히 외국어 실력을 갈고 닦아야 할 것이다. 그 외국어로 책을 여러 권 읽어야 하는 것은 물론이다. 책은 많이 안 읽더라도, 신문이나 잡지를 계속 읽어야 할 것이다. 그리고 보통 피하고 싶은 어려운 협상같은 일들에도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Level 4는 ‘이 수준의 사람이라면 듣는 사람이 누구냐에 따라 말을 조절할 수 있고 상담, 설득, 협상, 견해 표명, 고위직 인사를 위한 통역 등을 할 수 있다. 전문적인 필요에 의한 주제도 이야기할 수 있다.’ 이 정도 수준이 되는 사람은 극히 일부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물론 모두가 이 수준을 향하고 노력한다면 몰라도, 적어도 일본어에 관해서는 일부 달인들만 이 수준을 차지하고 있다.


Level 5는 이렇다. ‘전화로 말하면 누가 들어도 영어원어민이라고 생각할 정도의 수준. 얼굴을 보고 나서야 외국인이라는 것을 알 수 있을 정도로 언어 생활이 완벽한 정도가 이에 해당한다. 그러니까 원어민(native speaker)과 전혀 다를 바가 없는 수준이다.’ 여기서 ‘누가 들어도’라는 말에 무게가 있다. 내가 들으면 일본 사람인가 하는 수준의 일본어라도, 다른 사람이 듣고 아니야, 저 사람 말씨는 어딘가 어색해, 라고 한다면 ‘누가 들어도’가 아니다. 그러므로 이 수준이 되는 것은 정말 힘든 것이다. 나는 지금까지 이 수준의 일본어 실력을 가진 한국사람을 본 적이 없다 (이에는 물론 일본에서 자란 사람이나 일본어 세대인 사람들은 포함하지 않는다. 그들의 국적은 비록 한국이지만 일본어의 모국어 화자이기 때문이다).


하광호 교수는 Level 4를 목표로 하라고 권하는데, 사실 이것은 가혹한 요구일지도 모른다. 이 수준까지 되는 사람이 드문데 말이다. Level 4는 전문가 수준이다. 그들은 한국 사회를 이끌고 있는 지식인들이며, 대부분 다른 일에도 유능하기 때문에 우리가 만나기조차 어렵다. 그런데도 나는 여러분에게 Level 5를 목표로 하라고 권하고 싶다. 이 수준은 나도 경험한 적이 없지만, 이런 극치의 실력을 가진 사람을 누가 내버려 둘까. 그러므로 외국어 공부에 뜻을 세운 사람은 Level 5를 목표로 하자.

 

학습 소요 시간
실력과 학습 시간의 관계는 일률적으로 말할 수 있는 것은 아니지만, 대체로 100시간 정도 공부하면 중급 수준이 되거나 중급 수준에 가까워질 수 있다고 한다. 그러므로 여러분이 외국어 공부를 시작할 때 적어도 100시간은 확보해야 한다.

 

그 다음에 1,000시간 정도 배우면 그 외국어에 익숙해진다고 한다. 고급 수준이 된다는 이야기일 것이다. 중급은 아직 그 외국어에 익숙한 것은 아니니까. 여러분도 1,000시간 이상 일본어 공부를 했을 거라고 생각하는데 그 정도 배우면 고급 수준이 돼야 하는 것이다.

 

그리고 10,000시간 정도 배우면 전문가 수준이 될 수 있다고 한다. 외국어 공부에 있어서 어느 수준에 해당하는지 대충 가늠해 보면, 최상급 중 Level 3은 전문가라고 하기가 좀 그렇고, Level 4 정도가 돼야 진정한 전문가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Level 2~3 정도로 전문가 노릇을 하는 사람들은 많다. 특히 Level 3은 언뜻 보기에 누가 봐도 전문가로 보이지만 본인은 아직 많이 부족함을 느끼고 있을 것이다.). 10,000시간을 공부하려면 보통 10년 정도 걸린다. 하루에 2~3시간 정도 열심히 공부를 한다면 10년이면 어마어마한 수준이 되는 것이다. 10년의 힘은 크고 크도다.

 

물론 그 시간을 대충 배워서는 안 될 것이다. 공병호 박사는 공부에 대해 ‘치열하다’라는 말을 즐겨 쓰는데, 정말 그 말처럼 치열하게 그 시간을 공부한 사람만이 그 수준에 이를 수 있다. 내가 잘 해서 하는 말이 아니다. 잔뜩 후회하는 마음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나는 그동안 정말 게을리 살아 왔다. 그래서 지금까지 한국어에 접해 왔던 시간은 많은데 그만한 수준에 이르지 못했던 것이다. ‘용맹정진’이라는 말이 새삼 달콤하게 느껴진다.


하광호 교수는 그의 저서에서 ‘영어의 바다’라는 말로 언어를 ‘바다’로 표현했다. 정말 탁월한 식견이다. 외국어는 넓디넓은 바다다. 그 바다의 넓이를 잘 헤아려서 들어가면 많은 수확을 얻을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