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 공부

오자키 2009. 8. 18. 08:28

한국어 표준 발음 교재
얼마 전에 <한국어 표준 발음 바르게 읽기> (KBS 한국어 연구회 편저, 한국방송출판, 2009)를 샀다. KBS에서는 전에 <표준발음과 낭독> (KBS아나운서실 한국어연구회 편저, 한국방송공사, 1996)이라는 비슷한 책을 펴낸 적이 있었고, 나는 그 책 덕분에 한국어 발음이 많이 좋아졌는데, 그 책은 카세트로 듣게 되어 있고, 이제 나는 카세트 녹음기가 없다.

 

이번에 나온 <한국어 표준 발음 바르게 읽기>는 전에 나온 <표준발음과 낭독>과 구성은 비슷하다. 다만 실린 문장들은 일신했다. 내가 이 책을 사게 된 이유는 한국어 발음을 한층 더 정확하게 하고 싶었기 때문인데, 이 교재에 포함되어 있는 음원은 CD여서 컴퓨터에서도 들을 수 있다.


5년 전부터 내가 하는 방식 대로, CD의 음원을 컴퓨터에 복사한 후 음악 편집 프로그램으로 재생한다. 공부 방법은 내가 수업에서 항상 하는 방법과 똑같다. 자세하게 듣고 따라 하거나 동시에 말하기도 하는데, 리듬이나 억양뿐만 아니라 음색까지 똑같이 흉내 낸다. 학생들을 가르칠 때는 미안해서 많이 반복하지 못하는데, 내가 할 때는 미안할 게 없다. 미묘한 억양의 흐름이 인식되고 외워질 때까지 반복해서 연습한다.


장음이 책과 녹음에서 다르다
그런데, 전에 <표준발음과 낭독>으로 발음 공부를 했을 때도 느꼈던 일이지만, 이번에 <한국어 표준 발음 바르게 읽기>에서도 책에 표시되어 있는 장음과 아나운서가 발음하는 장음이 일치하지 않는다. 예를 들어 첫 번째 글인 ‘우리말 살리기’에서 일부를 소개하면 아래와 같다. (‘:’ 표시는 그 앞의 음절이 장음이라는 뜻이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영어 낱: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에 적절한 낱:말이 없:어서 그대로 받아들인 영어 낱:말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영어 낱:말을 아무 생각 없이 섞어 쓰는 버릇은 고쳐야 할 것이다. ‘공책’이라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노:트’라고 한다든지, ‘열쇠’를 ‘키:’라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10~11쪽)


그런데, 이 글을 녹음한 홍소연 아나운서의 장음은 아래와 같았다.


그런데 요즈음에는 영어 낱말을 그대로 받아들여 사용하는 경우가 많:다. 우리말에 적절한 낱말이 없어서 그대로 받아들인 영어 낱:말은 어:쩔 수 없:다고 하더라도, 영어 낱:말을 아:무 생각 없이 섞어 쓰는 버릇은 고쳐야 할 것이다. ‘공책’이라는 우리말이 있는데도 ‘노:트’라고 한다든지, ‘열쇠’를 ‘키’라고 하는 것은 분명 잘못이다.


여기서 네 번 나오는 ‘낱말’은 책에서는 모두 ‘낱’을 장음으로 표시해 놓았지만, 아나운서의 실제 발음은 세 번째와 네 번째에 나온 ‘낱말’만 ‘낱’을 장음으로 발음했다. ‘없다’는 (‘없이’를 빼고) 두 번 나오는데, 책에서는 둘 다 장음이지만 아나운서는 두 번째만 장음으로 발음하고 있다. 또한 ‘사용’과 ‘키’는 책에서는 어두가 장음인데, 아나운서는 단음으로 발음하고 있다. 뿐만 아니라, ‘어쩔 수’와 ‘아무’는 책에서는 어두가 단음인데 아나운서는 장음으로 발음하고 있다.


일본어에서는 긴 소리를 짧게 발음하거나, 짧은 소리를 길게 발음하면 듣는 사람은 완전히 헷갈려서 의사소통이 힘들어진다. 그런데 한국어에서는 이와 같은 표준발음의 표본을 제시하는 책에서도 소리가 적당히 길어졌다 짧아졌다 하고 있다. 그것도 첫 번째 글의 낭독에서 말이다.


장음과 관련된 이상한 일들
이런 사실과 관련해서 생각나는 것들이 있다. 꽤 오래 전에 어떤 학자의 책에서 긴 소리를 짧게 발음하면 의사소통에 지장이 생긴다고 주장하는 것을 읽은 적이 있다. 그런데 현실은 그 주장을 지지해 주지 않는다. 긴 소리를 길게 발음한다는 것은 하나의 교양을 뽐내는 일이고, 그것을 알아들을 수 있는 사람들끼리 서로 인정하는 표시에 지나지 않는 것 같다. 그렇다면 그 학자가 말하는 의사소통이란 과연 무엇이었을까?


또 15년 가까이 된 일인데, 연세대 어학당에서 열린 한국어 관련 학회에서 접수를 했을 때 담당하는 사람이 나의 이름을 보고 다짜고짜 ‘하안국어에서는 기인 소리와 짧은 소리를 저엉확하게 구별하지 않으면 의이사소통에 지장이 생길 수 있습니다.’ 이런 식으로 말했다. 아무리 긴 소리를 정확하게 낸다 해도 그렇게는 안 하겠지. 서울의 할아버지들이 하는 말에서 들을 수 있는 긴 소리는 말에 멋있게 약동감을 주고 있는데 말이다.


그리고 이번에 책과 녹음에서 장음이 다른 것을 확인한 것이다. (사실은 이 책의 장음표시도 의심스럽다. ‘아무’는 책에서는 단음으로 되어 있는데, 사전에 따르면 홍소연 아나운서가 장음으로 발음한 것이 오히려 옳다.)


실제로 쓰이는 언어를 따라야
그럼 나는 책에 써 있는 발음을 따를까, 아니면 아나운서의 발음을 따를까?


당연히 아나운서의 발음을 따른다. 실제 언어를 따르는 것이 나의 입장이기 때문이다. 실제 언어에는 장음뿐만 아니라, 억양과 기타 다른 모든 음성에 관한 정보들이 담겨 있다. 그 모든 특징을 규칙화해서 가르칠 수 있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언어에는 말로 설명할 수 없는 요소들이 많다. 실제로 쓰인 표본을 모형 삼아야 현실적이고 정확한 말을 터득할 수 있다.


일본에서도 마찬가지지만, 한국어에서도 다른 사람들이 하는 말을 지적해서 왈가왈부하는 책들이 많다. 거기서는 ‘틀린’ 한국어, ‘잘못 쓰는’ 한국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런데 그런 책들에서 공격하는 대상은 대부분 신문기자, 아나운서, 앵커 그리고 기타 지식인들이다. 쟁쟁한 한국어의 고수들이 사용하는 말을 갖다가 트집잡고 있는 것이다. 모든 사람들이 이상하다고 생각하면 그런 책이 필요 없을 것이다. 사람들이 생각하지도 않는 의견이니까 책으로 썼을 것이다.


그래서 나는 한국어를 배울 때 ‘틀린’ 한국어, ‘잘못 쓰는’ 한국어를 모범으로 삼겠다고 다짐했다. 그 말의 뜻은 실제로 한국 사람들이 쓰는 한국어를 배우겠다는 것이다. 실제로 쓰이는 한국어를 무분별하게 잘못 쓰고 있다고 해도 다른 대안은 없다. ‘올바른’ 한국어를 가르친다는 책에 쓰이는 한국어도 그 안에 들어간다. 듣는 대로 말하고 읽는 대로 쓴다는 것이 나의 외국어 학습 태도이기 때문이다.


모형을 골라야
물론 나는 품위가 떨어지는 말은 모범으로 삼지 않는다. 관심 있게 접하기는 하지만 정작 나 자신은 사용하지 않는다. 전에 일본에 들어갔을 때 한국어를 어느 정도 한다는 사람이 나에게 ‘너는 한국어를 안다고 하는데 이러이러한 뜻인 한국어를 뭐라고 하는지 아는가?’라고 물어본 적이 있었다. 그 말이 어떤 말이었는지 이제 생각 나지 않는데, 그때 내가 대답하자 ‘아니다. 무엇무엇이다’라고 했다. 그 말은 쓰긴 쓰지만 아주 거친 말씨였다. 그 사람 말로는 이제는 그런 말을 써야 잘 통한다는 것이었다. 나는 그런 말을 골라서 쓰면 나의 생활 환경이 많이 험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말을 배울 때는 어떤 말을 모형으로 삼느냐가 중요하다. 내가 모형으로 삼는 한국어는 주로 서울 사람이고, 대학 교직원이나 방송인, 출판인 그리고 기타 지적 직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하는 말씨다. 나는 그런 사람들 사이에서 살고 있기 때문에 그런 말을 사용하는 것이 암암리에 요구된다. 그래서 <한국어 표준발음 바르게 읽기>에 나오는 발음과 말씨는 나에게 그대로 통하는 한국어다.


<한국어 표준발음 바르게 읽기>에서 ‘바르게’ 읽는 한국어는, 장음에 관한 한 책에서 ‘바르게’ 표시돼 있는 발음과 다르다. 그것은 한국어에서 장음의 유무를 인식했던 시대가 이미 끝났음을 말해 주는 사례라고 볼 수 있다.


그런데 이것은 한국어의 현실이고, 실제로 이 아나운서들의 발음은 현재 한국어에서 최고의 수준임이 틀림 없다. 그런 발음을 직접 배울 수 있다는 것은 참으로 행복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