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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키 2011. 11. 12. 16:20

중1 아들이 학교 숙제로 소설을 썼다. 열심히 쓰더니 다 쓰고 나서 나에게 읽어 보라고 자꾸 조른다. 그래서 읽어 봤는데 괜찮은 것 같았다. 아래 사진은 그 소설이다.

 

 

그런데 글씨가 너무 엉망이어서 좀더 자세하게 읽으려고 워드로 치면서 천천히 읽어 봤다. 아래가 그 내용을 워드로 다시 친 것이다.

 

* ~ * ~ *

 

우주에서 왔던 소녀

 

  오늘의 밤하늘 색깔은 짙은 남색에 살짝 자주색이 섞여 사방이 퍼져나가 신비로운 색깔이다. 나는 이걸 사진을 죽어라 많이 찍어댄다. 나는 산에 있다. 동네 도시에 살고 있지만 산이 좋다. 산도 오래 있는다. 공사를 해서 도시를 짓기 때문이다. 그러면 건물의 때문에 아름다운 밤을 수가 없다.

  그래서 마치 '마지막 감상' 하는 듯이 나는 신비스러운 밤을 오랫동안 찍으며 보고 있다. 수많은 별들이 퍼져나가 마치 우유처럼 또는 다이아몬드처럼 반짝반짝 빛난다. 나는 속으로 생각해 봤다. "아아, 별이 밤이 영원히 이어졌으면…" 이렇게 말이다.

 

  그때였다.

  "그럼 우주로 볼래?"라는 말이 귀에 들려왔다.

  나는 뭐지? 하는 마음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그리고 거기엔 무척 아름다운 소녀가 있었다. 머리는 단발머리, 거기에 남색(신비로운)이었고 눈은 마치 우주 색깔 같은 그런 느낌이었다.

  그녀는 끝나기 무섭게 자기소개를 했다.

  " 이름은 메타모르포제. 별을 좋아해."

  이름이 메타모르포제라불어로 변하다는 의미일 텐데 프랑스 사람인가?

  "나는 뭐든지 변할 있어. 아름다운 , 예쁜 , 몽실한 구름. 하지만 남자는 변신 ."

  ? 의미를 모르겠다. 마치 외계인 같네.

  " 우주에서 왔어."

  순간 얼굴이 경직될 뻔했다.

  "나는 우주의 일부분이라 변할 수도 있고, 수도 있어. 여기를 떠나기 전에 너를 우주로 초대할게."

  나는 믿는 편이라 의심도 하고 고맙다고 했다.

 

  "그럼 가자" 하면서 소녀가 사라지더니 주변이 별이 가득해졌다.

  "이건... 플라네타륨(planetarium)?" 그러더니 목소리가 들려서 "플라네타륨? 지구는 그렇게 부르구나~" 신기하다는 듯이 말했다.

  가을이라서인가 사방에 가을에 보이는 별자리가 보인다. 대각선의 모퉁이에서부터 V자로 벌어진 별자리. 저건 '안드로메다' 자리다. 그리고 북쪽에는 W 별자리는 '카시오페이아' 자리다. 염소자리, 물고기자리도 보이고, 주위에 있는 수많은 별들도 무척 아름답다.

  "그럼 깊이 보자!" 메타모르포제가 말했다. 그러더니 플라네타륨 같은 주위는 속도를 내어 앞으로 가더니, 화성이 보였다. 다음 목성, 다음 토성, 다음 해왕성, 다음 천왕성. 무척 크고 웅장하다. 그리고 신기하다. 이런 별들을 눈에 보다니 빨아질 같다.

  ", 무척 좋아."

  "그럼 너도 나처럼 우주의 일부분이 될래?"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하지만 나는 망설임 없이,

  "아니, 그건 못해."

 

  그러더니 갑자기 플라네타륨은 사라지면서 메타모르포제가 다시 나타났다.

  "어째서? 우주가 되면 모든 것이 편해져."

  정말 이상하다는 듯한 얼굴을 했다.

  "그래. 확실히 우주로 되면 사회 걱정 미래 걱정도 없겠지. 하지만 나는 그것보다," 메타모르포제를 보면서 하늘을 향했다. "나는, 아름다운 하늘을 보고 싶고 지키고 싶거든."

  ", 사실 원래 프랑스 사람이었어. 나도 너처럼 밤하늘 보는 좋아했고 그리고 어쩌다가 나는 우주의 일부분으로 되었어."

  이름이 프랑스어였던 그것 때문이구나.

  "나도 너처럼 인간이었으면 좋았는데고마워." 하더니 메타모르포제는 빛나는 별이 되어 하늘로 버렸다.

 

… …

 

  후로 20. 나는 거길 다시 갔다. 산은 이미 깎아져 도시로 되고 너무 밝아서 별이 보인다.

  가끔씩 나는 "나도 우주가 되지 그랬나" 하고 어린애처럼 생각할 때가 많다. 이젠 사회인. 그런 신경 쓰고 나는 지금의 생활을 열심히 살아간다.

 

2011/10/16

 

* ~ * ~ *

 

선생님이 뭐라고 말하지 않았느냐교 물어봤더니 숙제를 제출하고 나서 한 마디도 안 하시더라고 한다. 아마 너무 갈겨쓴 글씨라 힘들어서 읽지 못하셨나 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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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키 2009. 8. 15. 01:43

결론을 아끼는 사람들
어떤 사람들이 쓴 글은 가끔 이상하게 말을 돌려, 명확한 결론에 도달하지 못하고 있다. 결국 무슨 이야기를 하려는지 알 수 없는 경우도 있다. 글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에 가까워지면 폼만 잡은 채로 머뭇거리고 있는 것이다. 결론을 아끼고 있다고나 할까. 답답하기 짝이 없다.


물론 이것은 서점에 깔린 책에 대한 이야기가 아니다. 그런 글이 서점에 깔릴 리야 없다. 동인지나 자비출판 등으로 나온 글들 중에는 이와 같은 것들이 가끔 있다. 그것도 학생들이 쓴 글보다 성인이 쓴 글들에 많다.


근거를 써야
나는 그동안 그렇게 쓰는 사람들의 심리를 이해할 수 없었는데, 얼마 전에 어떤 사람이 그렇게 쓰게 되는 속사정을 알려 주었다. 그의 말로는, 결론을 말해 버리면 바닥이 드러날까 봐 걱정 된다는 것이었다. 결론을 노골적으로 씀으로써 무식해 보이는 것을 두려워한다는 것이다.


그의 말을 듣고, 한 20년 전에 내가 원고지에 써 놓은 글이 생각났다. 그 글은 내내 결론만 나열해 가지고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무식한 글이었다. 그때 나는 나름대로 재미 있다고 생각하는 주장이 있었는데, 막상 글로 쓰다 보니 나 자신이 재미 없어서 결국 끝까지 못 썼다. 그것은 결론 주변을 빙빙 도는 글과 대조적인, 얕은 바닥을 드러낼 대로 드러낸 글이었다. 그때 나는 분명히 문장 작법에 대해 알고 있었는데도 그런 비논리적인 글을 쓰고 있었다. 지금 생각하면 이상한 일이다. 하고픈 말이 넘쳐서 그랬나? 그러므로 바닥이 드러날까 봐 걱정하는 것은 근거 없는 일은 아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좋을까? 대답은 간단하다. 첫째, 먼저 어떤 생각이 떠올랐다면 그렇게 생각하게 된 근거나 배경 등을 찾아서 쓰는 것이다. 둘째, 그렇지 않고 인상 깊은 경험을 중심으로 쓸 때는 그 경험을 쓰면서 왜 내가 이 경험을 쓰고 싶은가를 생각해 내어 솔직하게 쓰는 것이다. 자신의 경험으로 생각하는 것을 독자에게 맡겨서는 안 된다. 독자는 아무 생각도 하지 않을 수 있다. 그 경험을 통해 자신이 느낀 것, 즉 생각을 덧붙여 줄 때, 비로소 나의 경험을 독자와 공유할 수 있게 된다.

 

물론 근거나 경험은 결론과 논리적으로 연결돼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내일은 비가 올 것이다'라고 주장하고 싶을 때 '왜냐 하면 오늘은 날씨가 좋기 때문이다'라는 식으로 근거를 대면 결론과 논리적으로 연결이 안 된다. 반대로 '오늘은 날씨가 좋다. 그러므로 내일은 비가 올 것이다'라고 해도 마찬가지다. 왜 연결되지 않느냐 하면 결론과 근거 사이의 논리적 관계를 독자가 이해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것을 '논리적 비약'이라고 하는데, 논리적 비약을 신중하게 메워서 연결이 잘 되도록 만들어야 한다. 예를 들어 '오늘은 날씨가 좋고 하늘에 이러이러한 구름이 떠 있는데, 이럴 때는 다음 날에 비가 올 확률이 매우 높다. 그러므로 내일은 비가 올 것이다'라고 한다면 독자는 근거와 결론 사이의 관계를 이해할 수 있을 것이다.


결론을 깊이 있게 하려면
결론을 깊이 있게 하는 방법이 있다. 근거에 대해 이야기할 때 반대 의견과 맞붙이는 것이다. 그것도 반대 의견을 처음부터 깎아내려서 인용하는 것이 아니라, 충분히 일리가 있다고 느끼게 한 다음에 약점을 찌르는 것이 좋다. 물론 가능하면 말이지만 그렇게 논할 때 우리의 주장은 멋있어지고, 결론 또한 설득력을 갖게 된다.


또한 일반적인 통념과 다른 의견을 쓸 때는 아무리 그 통념이 잘못됐다 하더라도 일반 사람들이 가지고 있는 근거를 무너뜨리기가 만만치 않다. 그럴 때는 그들이 갖고 있는 근거를 깊이 이해해야 한다. 특히 학자들의 의견에 반기를 들 때는 더욱 그렇다. 학자들은 논쟁의 고수들 아닌가. 그들은 하나 하나의 주장에 대해 어마어마한 이유와 근거를 가지고 있다. 그렇지 못하더라도 그들은 수많은 논쟁과 고찰을 통해서 의견을 그럴듯하게 꾸미는 방법을 습득하고 있다. 뭔가 이상하다고 느끼는 내용도 섣불리 부정하기 어렵게 말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결론이라는 칼만 들고 있으면 안되며, 근거라는 두터운 방패도 동시에 들고 있어야 논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한 가지 좋은 방법이 있는데, 결론에 도달한 근거의 범위를 자신의 경험과 지식에 한정 짓는 것이다. 나는 이러이러한 경험을 했고, 그 경험만 가지고 말한다면 이렇다 라고 제한적으로 결론을 짓는다면, 아무리 치우친 결론이라도 욕하기가 어렵다. 왜냐 하면 자신의 경험과 보편적 진리를 확실하게 구분하고 있기 대문이다. 이런 방법은 섣부른 논쟁을 피할 수 있는 방법이며, 누군가가 논쟁을 걸어도 근거 자체가 다르다고 일축할 수 있다. (물론 논문이 그러면 안 되지만...)


반대 의견이 특별히 없을 때도 있다. 그럴 때도 의견만 늘어놓으면 읽는 사람은 재미가 없다. 그럴 때는 여러 시각에서 그 의견을 조명해 보면 독자는 다각적으로 그 의견을 볼 수 있어서 속이 깊지 않다는 인상은 주지 않을 것이다. 어쨌든 결론이 아무리 엉뚱해도, 이를 지지하는 근거나 경험 등이 사실에 입각하거나 쉽게 부정하기 어려운 내용이라면, 그 결론은 속이 쉽게 드러나지 않을 것이다.


결론은 솔직하게
글은 명확해야 한다. 그러므로 결론을 돌려서 써서는 안 된다. 결론을 솔직하게 쓸 것을 두려워하지 말고, 그 결론에 이르게 된 근거나 경험 등도 친절하게 써야 한다. 물론 그렇게 쓰면 자신의 주장이 너무 짜임새 있게 되어 나의 자연스러운 모습에서 멀어진다고 느낄지도 모른다. 그러나 글은 자연스러운 나를 드러내는 자리라기보다는 짜임새 있게 표현하는 자리다. 다듬어지지 않은 모습으로 방치하는 것이 아니라, 공을 들여서 갈고 닦아야 한다. 그러므로 용기를 가지고 결론을 솔직하게 쓰도록 하자.


(원래 이 글은 일본어로 쓸 생각이었다. 왜냐 하면 못쓴 글들을 읽은 경험은 한국어보다 일본어가 더 많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나의 친구가 글쓰기에서 똑같은 문제로 고민 중이어서 그 친구를 위해서라도 한국어로 쓰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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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자키 2009. 7. 20. 10:38

글쓰기를 하지 않는 사람들이 많다. 홈페이지도 운영하지 않고 메일도 보내지 않는다. 심지어 문자를 거의 쓰지 않고 대부분 전화를 이용한다. 전화는 받을 수 없지만 연락은 해야 할 때 문자를 보내면 핸드폰 벨이 울린다. 그때 당혹감은 이루 말할 수 없었다. 하던 일을 중단하고 50미터 떨어진 건물 밖으로 허둥지둥 뛰쳐 나가서 전화를 받는다. 엄청난 에너지 허비다.

 

물론 그 사람들이 무식한 것은 아니다. 책도 잘 읽고, 남의 홈페이지나 블로그도 즐겨 본다. 화제가 빈곤해서 그런 것도 아니다. 말만 열면 재미 있는 이야기를 들려 준다. 내용이 재미 있을 뿐만 아니라, 이야기의 짜임새도 깔끔하다. 대화를 통해서 내가 배우는 점들도 많다. 글을 쓰기 위한 기본 요소는 다 갖추어져 있는 것이다.

 

전에는 그들이 글을 쓰지 않는 이유를 겸손과 자제심 때문이라고 생각했었다. 나에게 글쓰기란 말하기와 비슷한 것이어서, 만약 글쓰기가 금지된다면 나는 욕구불만 때문에 미쳐 버릴지도 모른다. 내용이 있든 말든 글을 쓰고 있을 때 나는 행복하다.

 

글을 쓰고 싶어하는 것에 대해, 자기 과시욕 때문일 거라고 하는 사람이 있었다. 그러나 꼭 그렇지는 않다. 나는 나 혼자 읽기 위한 글도 쓴다. 그래서 글을 쓰지 않는 사람을 겸손과 자제심으로 입을 다물고 있는 거라고 생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다는 것을 나중에 알았다. 그들은 글을 쓰고 싶어 하는데 막상 쓰려면 잘 못 써진다. 글쓰기에 대한 두려움이 있는 것이다.

 

나의 친구 중에도 그런 사람이 있다. 그의 경우도 너무 어렵게 생각하는 나머지 글을 못 쓴다. 그는 글쓰기에 대한 강한 욕구가 있고, 나 또한 그가 지금까지 해온 이야기들을 글로 남길 수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생각한다. 그러므로 먼저 글쓰기에 대한 부담 요소를 제거해야 한다는 것을 절실하게 느낀다.

 

아래는 그와의 대화를 통해서 생각난, 글쓰기의 부담을 줄이는 방법들이다. 네 가지가 있는데, 첫째 멋이 있게 쓰려고 하지 말고, 둘째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생각하지 말며, 셋째 무조건 쓰기 시작하며, 넷째 질보다 양을 목적으로 삼으라는 내용이다.

 

멋이 있게 쓰려고 하지 마라
한 번 그가 쓴 글을 본 적이 있는데, 글맛이 너무 딱딱하고 군더더기가 많았다. 이야기를 할 때는 아주 기발하고 매력적인데 글은 솔직히 말해 형편이 없었다. 그런데 그 이유가 표현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유식하게 보여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불필요한 표현이 많이 들어갔던 것이다. 

 

그는 쓰기 전부터 완벽한 글쓰기를 꿈꾸고 있었다. 그래서 글 쓰기 전에 잔뜩 생각하고는 끝내 글을 쓰지 못하고 만다. 그리고 어렵게 글을 쓰는 데는 성공을 해도, 군더더기를 덕지덕지 발라대어 글맛을 흐릿하게 만들고 만다. 나는 그에게 입이 닳도록 그냥 나오는 대로 쓰라고 말하곤 하는데, 그는 그렇게 하면 무식하게 보이지 않을까 걱정하는 것 같았다. 

 

우리는 석학이 아닌 한 어차피 무식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일본에는 ‘글 쓰기는 욕 먹기(文を書くことは恥をかくこと)’라는 말이 있어, 글 쓰는 사람들은 욕 먹는 것도 감수하며 글을 쓴다는 게 상식으로 되어 있다. 글을 쓰다 보면 무식한 소리를 할 수도 있고, 착각해서 사실과 다른 이야기를 할 수도 있다. 몇 년 전에 나는 시베리아에 있는 캄차카 반도를 홋카이도에 있다고 써서 욕 먹은 적이 있다. 그렇게 무식한 발언은 아니더라도, 앞뒤가 맞지 않거나 나중에 본인이 봐도 무슨 말인지 이해할 수 없는 문장을 쓰기도 한다. 글을 쓰다가 전혀 예기치 않았던 곳으로 내용이 흘러가 버릴 때도 있다. 

 

그래도 우리는 글을 쓰는 이득이 있다. 글을 씀으로써 스스로 깨닫는 것들이 있고 또 그 글을 읽은 사람과 그 이득을 공유할 수 있다. 글을 쓰지 않으면 생각도 태어나지 않고, 또 공유할 수 있는 이득도 발생하지 않는다. 

 

우리는 글이 유식해 보이는 것을 읽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읽는다. 그러므로 고상한 표현을 일부러 사용해서 글을 쓰는 것은 헛된 노력이다. 뿐만 아니라, 문맥과 맞지 않는 고상한 표현은 으레 어색한 분위기만 자아낸다. 고상하기는커녕 우스꽝스러울 수도 있다. 그러므로 글을 멋있게 꾸미려는 생각을 버리고 솔직하게 쓰는 것이 좋다. 멋이 있게 쓰려고 하지 않는 것이 좋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생각하지 마라
그는 또 다듬어지지 않은 글이 나오는 것을 많이 두려워한다. 이에 대해서는 성격상의 문제도 있겠지만, 다듬어지지 않아도 글을 써서 올리는 용기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나의 경우는 그렇게 글을 쓴다. 컴퓨터를 쓰기 시작함으로써 이 경향이 더 심해진 것 같다. 전에는 처음 쓸 때 지금처럼 엉성하지 않았던 것 같다. 어쨌든, 처음부터 잘 다듬어진 글을 써야 한다고 생각하면 첫 마디부터 넘어져 버리는 것이 당연하다. 

 

출판하는 원고도 마찬가지다. 출판할 때는 다듬어지지 않은 부분을 편집자가 고쳐 준다. 그들은 문장의 프로다. 내가 아무리 완벽하게 썼다 해도 그들이 보기에는 흠집투성이다. 그렇다고 원고의 양은 채워야 한다. 원고의 양이 초과될 때는 다듬을 때 줄이면 되지만, 양이 부족할 때는 아무리 편집자가 문장의 프로라도 어떻게 할 수가 없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다듬어진 문장을 쓰려고 하는 것보다 그저 내 안에 있는 것을 쏟아 놓는 것이 좋다. 할 말이 생각나지 않을 때는 머리를 짜내더라도 글자의 수를 채워야 한다. 

 

이것은 내가 블로그에서 하는 방법이어서 별로 권할 수 있는 일이 아니지만, 나는 일주일에 세 번 글을 올린다는 목표를 채우기 위해, 글을 쓰면 한 번 퇴고하고 바로 올려 버린다. 그때는 문장이 잘 다듬어지지 않을 뿐만 아니라 내용적으로도 불충분할 때가 많고, 심지어는 한국어도 틀린 데가 만다. 물론 나의 제한된 한국어 실력 때문에 아무리 봐도 못 잡는 오류가 끝까지 남을 수는 있는데, 처음에는 부주의로 인한 오류들도 많다. 이런 상태로 올려 놓은 것을 나중에 시간이 있을 때 다시 보고 고치는 것이다. 

 

처음 나오는 글은 이와 같이 불완전한 것이다. 그것을 막으려면 글을 쓰기가 어려워지는 것이 당연하다.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 좋다.

 

무조건 쓰기 시작하라
나는 그에게 블로그를 시작하라고 권했다. 그리고 1주일이나 한 달에 몇 편씩 올린다는 목표를 세워서 내용이 있든 말든 쓰라고 권했다. 가끔 들어가서 읽겠다고 약속했다. 나는 내용보다 양에 대해 말하는 경우가 많은데, 양은 반드시 내용을 담고 있다. 내가 가끔 보러 가겠다고 그에게 말한 것도 당연히 쓴 글의 양을 보러 가는 것이 아니라, 내용을 보러 가는 것이다. 그리고 그 내용은 양적으로 많이 쓰면 쓸수록 점점 좋아진다. 

 

그런데 그는 그렇다면 글을 쓸 때 주제는 어떻게 할 거냐고 물었다. 주제?! 나는 글을 쓰기 전에 주제에 대해 거의 생각하지도 않는다. 다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서 쓸 뿐이었다. 주제 잡기는 중요하지만 주제란 게 다른 말로 표현하면 하고 싶은 말이 아닐까? 나는 하고 싶은 말만 생각했던 것이다. 뿐만 아니라 그것조차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쓰기 시작할 때도 있다. 

 

그는 글쓰기에 관한 많은 기교를 알고 있다. 그 가운데는 내가 모르는 것도 있다. 그는 글을 쓰고 나서 다듬는 데 도움되는 지식을 많이 갖고 있는 것이다. 군더더기는 지우고, 이야기가 왔다 갔다 하는 부분이 있으면 같은 내용을 다루는 곳으로 옮기고, 또 부족한 부분이 있으면 보태면 되는 것이다. 그런데 이런 것들은 글 쓰기 전에 하려고 하는 것이다. 내 생각에는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은 천재다. 

 

글을 쉽게 시작할 수 있는 방법은 있다. 수필 식으로 쓰는 것이다. 처음에 내가 경험한 일이나 읽은 책의 내용을 간단하게 소개하고, 이에 대해 느끼거나 생각한 점을 쓰는 것이다. 이것은 우리가 평소에 이야기하는 흐름과 아주 유사한 것이다. 말하자면 글로 쓰는 잡담인 셈이다. 그렇다면 주제도 결론도 없을까? 그렇지는 않다. 우리가 그렇게 잡담을 할 때도 나름대로의 결론이나 주제는 있을 것이다. 단, 글을 쓸 때는 맞장구를 쳐 주는 사람이 없다. 혼자서 이야기해야 한다. 이 점만 다르지만 나머지는 거의 똑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주의할 것은 첫 문장에 많이 신경을 쓰지 않아야 한다는 점이다. 작가가 쓴 글쓰기 책을 보면 첫 문장에 피나는 노력을 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가 첫 문장에 그렇게 신경을 쓰면 뭐할까? 뒤가 이어지지 않을 것이다. 아니면 아예 쓰기 시작하지도 못할 것이다. 그러므로 무조건 말이 나오는 대로 쓰기 시작하는 것이 낫다. 

 

질보다 양을 목적으로
또한 글을 잘 쓰려면 무조건 많이 써야 한다. 멋있게 표현하는 방법은 나중에 생각할 일이다. 재능이 있고 없고에 관계 없이 글쓰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글을 잘 쓰는 경우가 많은데, 그 이유는 여기에 있다. 그들은 아무도 읽어 주지 않아도, 자기가 쓴 글이 서투르다고 느끼면서도, 계속 글을 쓴다. 그래서 결국 괜찮은 글을 쓰게 된다. 

 

물론 반드시 모든 사람이 글을 잘 쓰게 되는 것은 아니다. 나의 아버지도 글쓰기를 좋아하고, 내가 태어나기 전부터 많은 글을 써 온 것 같은데, 읽어 봤더니 주제가 잘 안 보이고 내용도 뒤죽박죽이다. 그런데 문제는 자기가 글을 잘 쓴다고 생각한다는 사실이었다. 자신의 글에 부족함을 느끼지 못한다면 어떻게 실력을 닦을 수 있을까? 자신의 글이 이대로 좋다고 생각하는 것은 금물이다. 항상 부족하고 개선할 점이 많다고 생각해야 한다. 그러면서도 계속 쓰는 것이다. 완벽한 글은 없다고 한다. 그러나 좋은 글은 있다. 글쓰기에 익숙해지면 좋은 글에 대해 생각할 필요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좋은 글을 쓰기 위해서라도 먼저 많이 쓰는 것이 좋다. 일주일에 세 편이라든가, 하루에 한 편과 같은 식으로 목표를 정해서 글을 쓰는 것이 좋다. 처음에는 질보다 양을 목적으로 글을 쓰는 것이 도움된다. 그리고 질을 생각해야 할 단계가 된 후에도 역시 양적으로 많이 쓰도록 하는 것이 좋다.

 

이와 같이, 글쓰기에 부담감을 줄이려면, 첫째 멋이 있게 쓰려고 하지 말고, 둘째 처음부터 완벽한 글을 생각하지 말며, 셋째 무조건 쓰기 시작하며, 넷째 질보다 양을 목적으로 하는 것이다.

 

먼저 부담 없이 많이 쓸 수 없다면 좋은 글을 쓰는 토대조차 만들 수 없다. 서툰 글을 많이 써야 좀더 나은 글쓰기가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첫 문장에서 막혀 글을 못 쓰고 있는 사람에게 첫 문장의 중요성을 강조해서는 안 된다. 대신 두 번째 문장부터 쓰라고 권하는 게 좋다. 그가 첫 문장은 언제 쓰느냐고 묻는다면, 그건 안 써도 된다고 대답하는 게 어떨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