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업 및 일본어 교육

오자키 2012. 8. 6. 23:33

수업에서 암기하는 절차다. 아래와 같이 두 단계로 나누어서 한다.

 


 

1. 텍스트를 보고 <익히는 단계>

. 듣기 내용에 대한 질의 응답

. 짧게 끊어 가며 여러 번씩 반복해서 따라 하기

. 짧게 끊어 가며 번씩 따라 하기 *

. 들으면서 똑같이 말하기 *일곱 정도

2. 텍스트를 덮고 <외우는 단계>

. 짧게 끊어 가며 번씩 따라 하기 *두세

. 들으면서 똑같이 말하기 *일곱 정도

. 교사 학생으로 대화 암송하기 *역할을 바꿔서

. 학생끼리 대화 암송하기 *5 정도

. 발표 (여기서 평가할 때도 있음)

 


 

반복해서 따라 할 때는 발음도 정확하게 모방하게 한다. 특히 소리의 높낮이와 리듬은 음성 교재와 똑같이 할 수 있도록 지도한다.

 
 
 

수업 및 일본어 교육

오자키 2009. 7. 1. 18:14

나는 성적이의 신청기간에 항상 전화기를 앞에 두고 학생들에게서 문의가 오는 것을 기다리고 있다. 왜냐 하면 나도 인간이어서 실수로 자료에 오류가 생기거나, 성적을 다르게 입력해 버릴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또한 평가의 근거가 궁금한 학생에게는 시험 결과를 알려 주고 싶기 때문이다.

 

이번에도 그렇게 이틀 동안 기다렸다. 그런데 연락해 온 학생은 도합 3명 뿐이었다. 그것도 성적이의 신청기간 전에 홈페이지를 보고 문의해온 학생까지 포함해서 말이다. 혹시 내가 한국어를 못한다고 생각해서 부담스러워 하는지도 모르겠다. 나는 교실에서는 한국어를 사용하지 않지만, 전화나 문자 또는 메일 등에서는 한국어로 대해 주고 있다. 앞으로는 부담 없이 문의해 주시기 바란다.

 

물론 내가 학생들에게 약속한 원칙을 깨고 원하는 대로 성적을 올려 줄 수는 없지만, 아무리 신중하게 점수를 매겨도 오류에서 자유로운 사람은 없기 때문에 자신의 성적이 의심스럽다 싶으면 그 기간에 꼭 물어보는 것이 좋다. 물론 생각보다 좋다 할 때는 가만히 있는 것이 좋다. 다시 계산해서 점수가 부당하게 높다고 판명되면 나는 학생들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그의 점수를 다시 조정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대학에 근무하는 교수님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성적이의 신청기간처럼 곤욕스러운 시간이 없다는 것이다. 학생들이 자신의 성적을 올리기 위해 온갖 설득 방법을 동원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어떤 여학생은 F 학점을 받았는데, D라도 주신다면 무슨 일이든지 하겠다고 애걸했다. 그 교수님은 잠시 생각한 뒤, 그러면 지금부터 추가시험을 해 주겠는데 100점 만점을 받으라, 그러면 D를 주겠다고 대답했다.

 

자기 사정을 말하는 학생들도 만만치 않다. 가정에서 어려운 일이 있었다, 아파서 입원했다 등등 여러 가지 이유를 댄다. 정말 그런 경우도 있지만 의심스러울 때도 많다고 한다.

 

사실 이런 이야기들은 내가 대학에서 일하기 전부터 많이 들었던 것들이다. 그래서 2005년에 처음으로 대학에서 일하기 시작할 때 나도 무척 걱정했었다. 학생의 요구에 따라 성적을 고칠 수는 없다. 또한 거짓말을 잘하는 학생에게 좋은 점수를 줄 수도 없고, 그렇다고 정말 사정이 있는 학생을 부당하게 평가할 수도 없다. 그렇게 고민하면서 시행착오를 하다가 지금 수업 운영 방식이 되었다.

 

대부분의 교수님들은 공평한 성적 평가를 지키기 위해 이 기간에 곤욕을 치르는 것이지만, 그분들에게 부족한 것은 평가 방법이나 기준에 대한 투명성이었다. 투명하지 못하기 때문에 공평하다는 사실을 학생들이 믿어 주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나는 거기에 투명성을 더해, 공평하고 투명한 평가를 위해 홈페이지를 만들어서 평가 기준 등이나 운영 방침등을 알려 주었다. 그렇다고 모든 학생들이 그 페이지를 꼼꼼하게 읽지는 않았겠지만, 읽고 이해한 학생들은 학점을 관리하는 데 이득이 있었으리라 생각한다.

 

그런데 가끔, 후한 점수를 주셔서 감사합니다 라는 메일을 주는 학생이 있다. 나는 그럴 때마다 복잡한 기분이 든다. 나는 평가에 대해 모든 것을 이미 알려 주었고, 그것들에 따라 충실하게 평가할 뿐인데 그것을 믿어 주지 않는 것이다.

 

이것은 어쩌면 투명하지 못한 부분이 아직도 남았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그 부분이란 여러분의 시험 성적 결과를 알려 주지 못하고 있는 점이다. 평소 점수에 관해서는 홈페이지에 올린 연락 사항을 보면 대강 알 수 있을 거라 생각하는데, 시험 결과가 어떻길래 그 점수가 나왔는지는 알 수 없을 것이다. 그렇다고 설마 여러분 모두의 시험 결과를 홈페이지에 발표할 수도 없고, 여러분 모두에게 개별적으로 메일로 알려 주는 것도 힘들다.

 

그래서 투명성의 마지막 관문인 개별적 시험 결과 통보는, 미안하지만 여러분이 나에게 문의함으로써 해결해야 한다. 이것이 성적이의 신청기간에 내가 여러분의 문의를 기다리는 이유인 것이다. 그런데 문의하러 연락해 오는 학생은 항상 적다.

 

물론, 성적이의 신청기간이 끝난 후에 문의해도 좋고, 다음 학기에 문의해도 좋다. A+를 받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A0였거나, 적어도 A0를 기대했는데 B+였을 때 왜 그 성적이었는지 궁금할 것이다. 물론 자기의 현실이 드러나는 것은 두렵기도 하겠지만, 그래도 아는 것은 나중에 힘이 될 것이다.

 
 
 

수업 및 일본어 교육

오자키 2009. 6. 29. 19:37

시험 때면 심심치 않게 부정행위가 적발된다. 부정행위는 위험성이 매우 높은 학점 관리 방법이다. 적발되면 학업을 망치고 때로는 인생을 망칠 위험까지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는 학생들이 부정행위 유혹에 넘어가서 학업을 망치는 일을 막기 위해 어떤 방법을 써야 할지 고민했었다.


시험으로 알아볼 수 있는 실력으로는 아마도 질과 양 그리고 성품이 있을 것이다. 질이란 정확성과 지식의 양을 말한다. 대부분의 시험은 오로지 이 측면만을 조사한다. 답안을 다 쓰면 교실에서 나가도 좋다는 시험은 이런 시험이다. 양은 유창성을 말한다. 내가 하는 시험은 이것이다. 성품은 얼마나 착하고 예의바르며 정직한가 하는 것이다. 성품이 실력이라는 것은 좀 이상한 말이지만 대학에서는 인정받는 평가 요소인 것 같다.


성품 평가
성품을 평가 기준에 넣은 예는 장영희의 <내 생애 단 한번> (샘터, 2000)이라는 수필집에 수록된 «A+ 마음»이라는 글에서 보았다. 저자는 얼마 전에 타계한 서강대 영문과 교수이자 수필가다. 그의 수업에 병진이라는 학생이 있었는데, 영어 실력은 아주 높았지만 아쉽게도 발음이 엉망이어서 성적을 매길 때 B+와 A- 사이를 왔다갔다 망설이고 있었다.


그런데 어느 아침 출근길에 신촌로터리에서 신호를 기다리는데, 추운 날씨에 부채를 파는 할아버지에게서 필요하지도 않은 부채를 두 개나 사 준 병진의 모습을 목격했다. 추위에 떨면서 팔리지도 않는 잡동사니를 파는 할아버지를 도와주려는 것이 분명했다. 그래서 학교에 도착하자마자 병진의 성적란에 A라고 써 넣었다.


이것은 평가 기준에 성품이 들어갈 수 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예다.


하지만 성품 평가는 장영희 교수와 같은 사람이 아니고서는 제대로 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인간은 맑은 미소와 고운 말 그리고 친절한 행동 등에 호감을 느끼기 때문에, 그것을 연출하는 데 성공하면 성품 평가가 높아질 수 있다. 그러나 엄밀히 말해 이것은 성품이 아니라 태도에 지나지 않는다.


전략적으로 호감을 주는 태도는 연출할 수 있다. 내가 아무리 나쁜 사람이라도 정말 착하고 순수한 사람인 것처럼 행동할 수 있는 것이다. 그래서 어떤 학생의 호감 가는 태도를 속임수가 아닐까 의심하는 나머지 정말 성품 좋은 학생에게 낮은 점수를 줄 가능성도 있다. 성실하게 한 일에 대해 혼 나거나 나쁜 점수를 받았다는 이야기는 책에서도 가끔 보고, 나의 주변에서도 이따금 들을 수 있다.


성품 평가는 가장 형편 없는 기준이며, 학생은 거짓말을 하게 되기 쉽고, 교수는 학생을 의심하게 된다. 베테랑이면 정확하게 평가할 수 있을까? 아니다. 베테랑도 넘어간다. 그래서 이것은 실용성이 없는 평가 기준이라고 아니 할 수 없다. 나는 이런 평가는 절대로 하지 않는다.


질적 평가
그 과목과 순수하게 관계된 평가는 질적 평가와 양적 평가, 이렇게 2가지밖에 없을 것이다.

 

질적 평가는 부정행위 유혹이 매우 강하다. 지식이 부족한 부분을 쪽지로 해결하려는 충동에 이기지 못하는 학생이 각 반에 반드시 1명 이상은 있다. 그래서 매 학기마다 시험 중에 쪽지를 몰래 보는 학생이 적발되어 크고 작은 불이익을 당하고 있다. 강조하지만 이런 행위는 학문에 대한 배신 행위이며, 그 자리에서 제적당해도 학교를 탓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질적 평가를 빼놓을 수는 없다. 부정행위가 일어날 가능성에 대해서는 단속을 강화할 수밖에 없지만, 좀더 지혜롭게 부정행위를 막는 방법이 개발되면 좋겠다. 부정행위를 적발하는 것보다는 학생이 부정행위 유혹에 넘어가지 않도록 막아 주는 것이 더 친절한 시험 감독 방법일 것이다.


양적 평가
그런데 양적 평가의 경우는 원리적으로 부정행위가 불가능할 뿐만 아니라, 채점자를 속이는 방법도 없다. 말하거나 쓴 것이 바로 자신의 실력을 나타내기 때문이다. 그리고 쪽지를 참조하는 것도 점수를 올리는 데 도움되기는커녕 참조하는 사이에 말하거나 쓸 기회를 놓치게 되므로, 시험 감독이 적발하지 않아도 쪽지 참조가 곧 점수 상실이 된다. 이것은 마치 달리기에서 어떤 방법을 써도 자신이 뛰는 속도보다 높은 속도를 낼 수 없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부정행위 유혹에서 학생을 보호하고, 또 부정행위를 한 학생 때문에 성실하게 배운 학생들이 피해를 입지 않기 위해서라도 이와 같은 양적 평가가 꼭 필요한 것이다. 한 마디로, 양적 평가는 부정행위가 불가능한 시험인 것이다.


이것이 내가 어절수로 점수를 매기고 있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