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읽기

오자키 2009. 9. 25. 14:45

入江敦彦(이리에 아쓰히코) 지음, 新潮文庫, 2007년, ISBN: 9784101322711.

 

읽을 책마다 이렇게 재미 있었으면 할 정도로 재미 있게 읽었다. 이 책은 일본 교토 특유의 의사소통 방법인 ‘いけず’에 대해 쓴 것이다.

 

‘いけず’를 설명하는 것은 어렵지만, 한 마디로 말하면 비판을 담은 메시지를 완곡하고 때로는 해학을 숨겨서 전달하는 방법이라고 하면 좋을까? 때로는 유머와도 비슷하고, 때로는 아이러니라고 할 수도 있다. 그래서 표준 일본어로 정확하게 번역할 수 있는 어휘가 없고, 더군다나 한국어에도 적합한 용어를 찾기가 어렵다.

 

이 책을 읽기 전에 나는 ‘いけず’가 악의적인 뜻을 넌지시 나타내는 것을 뜻하는 줄 알았다. 그러나 저자의 말에 따르면 그런 생각은 오해이고, 오히려 친근한 관계를 나타내고자 하는 표현이라는 점에서 더욱 인간적인 것이다.

 

외부 사람(よそさん)들이 들으면 욕설을 주고받는 대화처럼 들릴 수 있는데, 교토 사람들에게는 꼭 그렇지 않다고 한다. 예를 들어 버스에서 어떤 할머니와 그 할머니에게 자리를 양보하려는 술집 여자처럼 생긴 아가씨와의 대화다.

 

‘どう見ても、おばあちゃんの先に逝(ゆ)くんやから今のうちに座っときよし’ (아무래도 할머니가 먼저 세상을 뜰 거니까 살아 있을 때 앉으셔야죠.)
‘おおきに、おおきに。ほな、おっちんさせてもろて、冥土の土産にあんたの怪体(けったい)な格好でも眺めさせてもらうわ’ (고맙다, 고마워. 그럼 고맙게 앉아서 저승선물로 그 괴상한 모습이라도 눈에 담아야지.)

 

이런 대화를 화목한 분위기 속에서 주고 받는 모습은 도쿄 사람들뿐만 아니라, 일반적인 일본 사람들에게는 정말 이해하기 어려운 것이다. 이에는 일본 사람들을 당혹하게 만드는 한국식 농담과도 일맥 상통하는 점이 있다. 그러나 나이를 묻지 않는다는 점은 한국 사람과 크게 다른 점이다.

 

다만, 말에 가시가 있을 때도 있다고 한다. 예를 들어,

 

‘やー、長いこと見いひんかったねえ。まあ、立派な娘さんになりはって。ちいちゃい頃は、どないなベッピンさんにならはるかと思てたのに’ (어머나, 오랜 만에 보는구나. 의젓한 여인으로 자라고 말이야. 어렸을 때는 어떤 미인이 될까 싶었는데.)
‘そんなお世辭いわんといてー。恥ずかしいやんか。おばちゃんのほうは、ぜんぜん變わらへんねえ。ずーっと昔から今みたいやったわ’ (그렇게 칭찬하면 어떡해요, 낯뜨겁게. 아주머니야말로 한결같으세요. 아주 오래 전부터 지금과 똑같더라고요.)

 

저자는 길을 가다가 이 대화를 들었고, 이것이야말로 ‘いけず’의 진면목이라고 감탄한다. 서로 사이가 좋지 않은 관계인데도 이렇게 응수할 수 있다는 점에 교토 사람들의 끼를 느끼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이와 같은 ‘いけず’는 교토의 점유물이 아니라 보편적인 표현 기술이라고 말한다. 영국에서 거주하는 저자는 영국의 문인들은 대부분 ‘いけず’의 달인들이고, 그 원조가 셰익스피어라고 주장한다. 그리고 햄릿의 대사 등을 교토 말로 번역해서 보여 준다. 표준 일본어로 번역된 것을 읽을 때는 딱딱하고 모호한 대사가, 그가 번역한 교토 말로 읽을 때는 생생하고 설득력 있는 말이 된다.

 

‘あとがき’의 가장 끝에 영국인인 그의 아내에게 바치는 헌사가 있었다. ‘Let’s tell you something, Ian.’라는 말로 시작하면서 ‘I always thank for you when I am writing my book. You are so helpful for any occasion. Also, I would like to say thank you for your very English attitude as well at this time. How inspired it was.’라고 이어질 때까지는 그저 평범한 헌사라고 생각했는데, 이어서 ‘I dedicate this book to you and many humiliations you gave me. I certainly enjoy those!’라며 헌사를 맺었다. 지독한 ‘いけず’다.

 

나는 이 책을 용산역 근처에 있는 뿌리서점(797-4459)에서 샀다. 전 주인은 작년 10월 27일에 교보문고에서 산 것으로 기록기 찍혀 있다. 헌책방은 보물창고다.

 

나는 이 ‘イケズの構造’를 新渡戶稻造(니토베 이나조)가 쓴 ‘武士道’와 함께 읽는 것이 좋다고 생각한다. 여기에는 일본인의 서로 전혀 다른 성격이 나타나 있다.

 

참고로, 한국 사람들이 ‘武士道’ 기질에 가까운가 아니면 ‘イケズ’ 기질에 가까운가 하면, 분명 ‘イケズ’ 기질에 가깝다. 특히 서울의 토박이들은 그렇다. 이것이 내가 한국 생활에 재미를 느끼고 있는 이유 중 하나다.

 
 
 

책 읽기

오자키 2009. 8. 2. 16:24

한국 사회도 일본 사회 못지 않게 독서 격차가 심한 것 같다. 책을 읽는 사람들과 책을 안 읽는 사람들은 같은 한국인이라고 하기가 어려울 정도로 사고 방식이 다르다. 독서에 대한 생각뿐만 아니라, 공부와 지식에 대한 생각도 다르고, 인생과 미래 그리고 부에 대한 생각까지 다르다.


내가 독서 격차에 대해 생각하게 된 것은 요즘의 일이다. 나의 주변을 봐도 책을 읽는 사람들과 읽지 않는 사람들의 격차가 매우 심하다는 것을 느낀다. 이것은 학력과도 관계가 있지만, 학력보다 더 심각하게 인생에 작용하는 것은 독서에 대한 인식인 것 같다.


얼마 전에 읽은 <나의 인생을 바꾼 한 권의 책 2>(리더스북, 2009)에서 한국독서교육개발원 원장인 남미영씨가 자신의 일에 대해 ‘독서를 하찮은 심심풀이로 생각하는 어른들에게 독서의 위력을 알려주고 싶었다’(63쪽)고 밝히고 있다. 아니, 지식의 중요성을 젊은이들에게 가르쳐야 할 어른들이 독서를 ‘하찮은 심심풀이’로 생각하고 있다니!


현대는 출판계와 서점들의 수난 시대다. 어제 신문을 보니까 ‘서점조합에 따르면 현재 서울시 서점조합 회원은 250여 명. 대형 서점이 확산되면서 10년 전 1000여 명에서 4분의 1 수준으로 급감했다’(<매일경제신문> 2009.8.1, A1면)라는 대목이 있었다. 이런 현상은 대형서점 확산도 큰 문제지만 전체적인 독서량이 줄어들고 있는 것이 더 큰 이유일 것이다.


어제 이 기사를 읽은 후 광화문에 있는 교보문고에 갔는데, 매점 안은 북새통이었다. 종업원에게 사람이 굉장하다고 했더니 오늘 광화문 행사 때문에 이렇게 손님이 많은 거라는 대답이었다. 이 정도가 아니더라도, 교보문고는 주말이면 항상 축제날 같이 붐빈다. 교보문고만 보면 한국인의 독서 생활에 대해 잘못된 인식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 사람들은 책을 엄청 좋아한다고.


일본에서도 사정은 비슷하다. 일본인들의 독서량은 점점 줄어들고 있는 추세라고 한다. 이것은 학생들의 학력 저하와 관련해서 일본 국내에서 골치 아픈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에 대해 가쓰마 가즈요(勝間和代)씨는 개인적으로는 오히려 호기라고 귀띔한다. 그 이유는 사람들이 책을 읽지 않는 추세에서 많은 책을 읽게 되면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되기 때문이다. 그는 다음과 같이 이야기하고 있다.

 

 最近は本離れが進み、分厚い本、文字の小さな本、価格の高い本がどんどん売れなくなってきています。

 しかし、だからこそ、みなが振り向かないような本にチャレンジすることで、チャレンジしていない人との差別化が図れるのです。

(『効率が10倍アップする新・知的生産術』勝間和代、ダイヤモンド社、2007p.166


여러분도 주변에 책을 읽지 않는 사람들이 많으면 많을수록, 공부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을수록, 책을 읽음으로써 자신을 차별화할 수 있는 좋은 기회인 것이다. 만약에 모든 사람들이 독서에 목숨을 걸게 된다면 어떻게 될까? 여러분이 두각을 나타내기가 무척 어려워질 것이다. 그런데 지금 많은 사람들은 책을 피하고 그저 인터넷이나 텔레비전 같은 것으로 지식의 겉핥기만 하고 있다. 가쓰마씨 식으로 말한다면, 이때야말로 당신이 책 읽기를 통해 수준 높은 지식을 독차지할 좋은 기회인 것이다.


그러면 어떤 책을 읽는 것이 좋을까? 이것에 대해서는 구체적인 조언을 할 수 없다. 다만 확실하게 말할 수 있는 것은 먼저 독서의 질보다 양을 중시하라는 것이다. 그리고 1년에 100권 정도 읽는 것을 생활화해야 한다. 한 달에 평균 8권 수준이다. 그 정도로 몇 년을 읽어가면 책들 안에서 독서에 대한 지혜와 정보를 종종 접하게 될 것이다. 어떤 책이 좋다는 이야기도 나오지 않을 수 없다. 왜냐 하면 글 쓰는 사람들은 대부분 책 읽는 사람들이고, 좋은 책을 잘 알고 있는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독서 격차가 점점 심해지고 있는 지금, 이와 같이 독서를 생활화한다면 이 험한 시대를 오히려 호기로 바꿀 수 있을 것이다.

 
 
 

책 읽기

오자키 2009. 6. 30. 03:58

지금 <한국의 글쟁이들> (구본주, 한겨레출판, 2008)이라는 책을 읽고 있는데, 구본형 작가에 대한 기사에서 그의 독서법을 소개하고 있었다. 여기서 특히 눈길을 끈 것은 ‘읽은 다음에는 인용할 글귀를 메모한다. 그리고 가급적 읽은 책과 관련된 칼럼을 쓴다(85쪽)’라는 대목이다.


칼럼이라……. 좀 힘든 일이긴 하지만 해 볼만한 가치가 있을 것 같다. 그래서 나도 칼럼은 아니지만 최근에 장영희의 책 3권을 읽은 것에 대해 써볼까 한다.


<문학의 숲을 거닐다>
장영희는 서강대 영문과 교수이자 수필가로서 유명했던 사람이다. 나는 몇 년 전에 교보문고에서 발행하는 <사람과 책>에서 그의 인터뷰 기사를 읽은 적이 있는데, 그는 <문학의 숲을 거닐다> (샘터, 2005)를 발간해서 화제가 되고 있었다. 그때 나는 희미하게 관심을 갖기는 했지만, 문학 안내서겠거니 생각해서 서점에서 봤는데도 손에 들어 보지 않았다.


그런데 지난 5월 중순 쯤에 신문을 읽다가 우연히 장영희 교수가 타계했다는 기사를 읽고 그 책 생각이 났다. 며칠 후에 교보문고에 갔을 때 <문학의 숲을 거닐다>가 분야별 베스트셀러로 올라와 있었다. 그때 나는 비로소 그 책을 손에 들어 보았고, 그 책이 결코 문학 안내서가 아니라, 문학작품을 둘러싼 수필집이었다는 사실을 알았고, 또 그의 아름다운 문장에 놀랐다.


<내 생애 단 한번>
<문학의 숲을 거닐다>를 읽은 후 <내 생애 단 한번> (샘터, 2000)을 읽었다. 이 책은 저자의 신변에서 일어난 여러 가지 일들을 화제로 삼은 수필집이었다. 특히 학업과 수업 그리고 신체 장애에 대한 글이 많다. 역시 문장은 아름다웠는데, 다만 이 수필에는 자신의 추악한 면을 드러내기도 했다. 예를 들어 “현주야”에서는 어린 시절에 목숨 걸고 자신을 구해 준 아이를 그가 왕따 당하는 아이라는 이유로 무시해 버렸던 일을 후회하고 있었다. 이 수필집은 곳곳에 이와 같은 자신의 추하고 죄스러운 행동과 내면을 솔직하게 드러내고 있는 대목들이 눈에 띈다. 그때 나는 마치 저자가 수필을 통해서 자신의 죄를 참회하고 있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살아온 기적 살아가 기적>
그런데, 그 뒤에 읽은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 (샘터, 2009)을 읽을 때, 앞서 나온 <내 생애 단 한번>에 대해 ‘독자들은 나의 고해 사제였다’(66쪽)라고 써 있었다. 그래서 나는 장영희는 예수님의 제자인 베드로처럼 솔직하고 겸손한 사람이었다는 것을 알았다.

 

전해 들은 바에 따르면 마가복음서는 베드로가 아람어로 구술하고 마가라는 제자가 헬라어로 고쳐서 받아쓴 책이라는데, 이 복음서에서 유별나게 베드로의 추악한 언행이나 잘못 등이 생생하게 그려져 있다. 마치 베드로의 안티들이 쓴 복음서와 같은 느낌이다. 그렇게 자신의 잘못을 숨김없이 보여 줄 수 있는 베드로라는 사람은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으로 겸손한 사람이었을 것이다.

 

나도 마찬가지지만, 보통 사람이면 자신의 아름답고 훌륭한 면만 보여 주려고 하는데, 장영희는 그렇지 않았다. 이런 일은 신앙을 가진다고 할 수 있는 일이 아니다. 그는 정말 겸손한 사람이었던 것이다.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은 앞서 나온 수필집과 비슷한 여러 가지 주제들에 대해 쓰고 있는데, 내용이 한층 깊어진 것 같았다. 책 디자인도 <내 생애 단 한번>에 비해 많이 좋아졌다. 그는 수필가 치고는 인생에 대해 남다른 통찰력을 가지고 있었다. 예를 들어 ‘결국 중요한 것은 껍데기가 아니고 알맹이다. 겉모습이 아니라 마음이다’(120쪽)라고 하고, 또 ‘예전엔 보이지 않던 것이 보인다’(216쪽)라고도 하는데, 이런 생각은 수필집 전체에 깔려 있다.


사실 그는 1급 신체장애인이었고, 2001년에 암이 발견되면서부터는 계속 투병을 했었으며, 결국 <살아온 기적 살아갈 기적>이 올 5월 15일에 나오기 1주일 전인 5월 9일에 암 때문에 세상을 떠났다. 그래서 그는 항상 죽음이라는 것을 염두에 두었을 것이고, 그것이 그의 글을 더욱더 깊이 있고 아름답게 만들 수 있었을 것이다.


만약에 누군가에게 선물 주고 싶은 책을 고르라고 하면 아마 나는 장영희의 이 세 권의 수필집에서 한 권을 고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