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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파 2010. 1. 18. 15:45

518은 단순한 민주화운동으로 알려져 있다. 그러나 그 이면에는 단순한 민주화운동 이상의 배경과 원인이 있으며 이 근원적 배경을 알아야만 대한민국을 정확하게 이해할 수 있다. 이를 알지못하는 자는 대한민국에 대해 아무 것도 모르는 자이다.

광주사태의 발생 배경을 근원적으로 분석한 논문으로 유석춘 교수의 "한국전쟁과 남한사회의 구조화"(유석춘,이우영,장덕진 공저; 1990년)라는 유명한 글이 있다. 이는 625 당시의 지역별 참전율, 특히 압도적으로 높은 영남의 참전율과 전국 최저의 호남 참전율이 전후 대한민국의 권력질서에 미친 영향 및 이것이 518의 발발에 미친 영향을 규명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에 더해 518의 보다 근원적인 배경이 되는 전라도 특유의 문제가 하나 더 있음을 정확히 알아야 한다. 그것이 바로 <전라도의 인성문제>라는 것이다. 오히려 이 전라도의 인성문제가 615의 낮은 참전율로 인한 전라도의 권력소외보다 더욱 근본적인 518 발발 배경이다.

 

전라도의 권력 소외와 518

 


유석춘 교수가 밝힌 625 당시 지역별 참전율과 불참율은 다음과 같다.

 

참전율; 전국평균 35.1%, 경상도는 전국최고 40.8%, 전라도는 전국최저 26.9%

불참율; 전국평균 61.2%, 경상도는 전국최저 55.2%, 전라도는 전국최고 70.1%

http://blog.daum.net/ikdominia/5

이러한 참전율의 압도적 차이는 종전 후 대한민국의 권력질서에 결정적 영향을 미쳤으니, 전쟁영웅과 희생자가 가장 많았던 영남은 자연스럽게 권력의 중심으로 등장했고 전국에서 참전율이 가장 낮았던 호남은 권력으로부터 배제되는 현상이 벌어지게 되었다.

이러한 권력질서가 30년 가까이 이어지자 더 이상 참지 못한 호남이 마침내 반발하고 일어난 것이 바로 다름 아닌 '광주민주화운동'이다.

 

유석춘은 그의 다른 논문 "지역감정의 사회심리학"에서 "광주사태로부터 출발점을 찾을 수 있는 80년대 민주화운동은 기존의 지배질서 즉 영남 중심의 참전세력에 의한 정권의 지속을 거부한 저항운동에 다름아니었다"라고 말한다.



518 발발의 근본적 원인, 전라도의 인성 문제

 

유석춘 교수의 분석은 매우 일리있으나 그러나 유교수가 한 걸음 더 나아가 밝혔어야 할 광주사태의 보다 근본적인 원인이 있다. 왜 다른 지역과 딴판으로 전라도가 그렇게 목숨을 걸고 전라도출신의 집권을 염원했어야 했는가 하는 문제이다. 왜 전라도민은 다른 어떤 지역과도 달리 목숨 걸고 전라도 출신의 집권을 간절히 원하게 되었던가 하는 점이다.

 

이는 전라도의 지역개발상 차별이나 인사 정책상의 차별 탓이 아니다. 물론 그런 면이 전혀 없지는 않겠으나 굳이 따지자면 그런 문제는 강원도나 충청도도 굳이 자유롭다고 볼 수는 없다. 다른 지역과 다른 오직 전라도만의 유일한 문제가 있었다고 보아야 한다.

 

그것은 바로 전라도의 인성문제로 인한 차별이었다.

전라도의 인성문제란 것이 도대체 무엇일까?

 

전라도는 그 시기를 알 수 없는 시점부터 남의 뒤통수를 치며, 믿을 수 없고 배신을 잘 하며 인간성이 좋지 못하다는 평가를 전국적으로 받고 있었다. 이것이 전라도의 인성문제란 것이다.

이러한 전라도의 인성의 차별 문제는 모든 도민에게 한 마디로 죽고 사는 문제로까지 작용했다. 타지역 사람들은 이 점을 전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전라도의 인성문제는 곧 전라도인이 죽고 사는 문제

 

전라도 출신으로서 소령으로 전역을 했고 <해소냐 호남독립이냐>, <호남죽이기 정면 돌파>등을 쓴 김환태는 "호남인의 인성 문제야말로 호남인에게 있어서는 죽고 사는 문제"라고 말을 한다. 김환태는 <호남죽이기 정면 돌파> 187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 1984년 우등열차를 타고 출장을 가던 길이었다... 객실 내 승객들이 죄다 똑똑히 들을 만큼 뚝배기 깨지는 듯한 굵은 목소리로 "전라도 놈들은 영 뒤끝이 안 좋아" 소리치자 그 말을 받은 일행 중 한 명은 몇 술 더 떠 "네 말이 맞다. 전라도 놈들은 믿어서는 안돼, 표리부동한 놈들이야" 하고 맞장구를 치자.. 또 다른 일행이 빠지면 섭섭할세라 근질거리던 입을 터뜨리고 말았는데 왈 "전라도 놈들은 사기꾼 아니면 도둑놈이야" 하고 아예 막가는 말로 도마 위에 올려 놓고 물고를 내었다....

 

객실에 실려 가는 다른 승객들도 누구하나 일어서서 "거 젊은이들 말을 함부로 하고 있네"라는 한 마디 말도 할 줄 모르고 오히려 젊은이들의 말에 공감이 가는 듯한 표정으로 미소를 머금어 쳐다들 본다. ...

 

가는 날이 장날이라고 혹시 나에게만 우연의 일치처럼 그러한 장면이 부딪혔는가 싶어 주위 호남친구들에게 물어 보니 심심하면 겪는 일인데 새삼스럽게 묻긴 왜 묻느냐고 처연한 모습으로 되묻기에 나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이런 일은 전라도 출신이라면 누구나 수도 없이 겪고 살았던 것이다.

김환태는 <해소냐 호남독립이냐>(1993년) 295페이지 이하에서 전라도라는 이유만으로 "호남사람 안 써요" 취업 문턱에서 좌절하고, "상대가 하필 호남이냐" 결혼문전에서 울고, "고향이 전라도요? 방 나갔는데..."방 못 얻어 서러움을 겪는 등 이루 말할 수 없는 차별의 고통을 받고 있다고 말한다.

 

 

전라도인으로서는 죽고 사는 문제는 다름 아닌 전라도인의 인성에 대한 차별문제였다는 점을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김진혁의 논문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지역감정 연구>(1990년)에 의하면 다른 지역민들이 호남인과 가장 같이하기를 꺼리는 일이 사업(39.1%), 결혼(34.6%), 친구(22.3%), 이웃(13.9%) 등으로 나타났다. 김진혁은 사업이 에 있어서 가장 거부감이 큰 것은 전라도인의 믿기 힘들다고 알려진 인성문제가 가장 크게 미치기 때문이다. 1989년 고흥화, 김창주의 <군생활이 지역감정에 미치는 영향; 육군사병을 중심으로>에 따르면 더 심하다. 전라도인을 일상적으로 접하는 군인사병에 대한 설문조사에 의하면 전라도인과 "결혼하고 싶지 않다" (46%), "친구관계를 맺고 싶지 않다" (50.2%), "사업을 같이 하고 싶지 않다" (50.4%)에 이르렀다.

 

2009년 <해태타이거즈와 김대중>이란 책을 쓴 김은식이란 자가 있다.

책 표지에 그는 1973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난 것으로 적혀 있지만 책 중에서 말하듯이 그의 성장과정을 함께 한 외할머니는 전남 광주 사람이다. 그는 이 책 44페이지에서 이렇게 말한다.

 

"몇 해 건너 한 번씩 명절 때나 볼 수 있었던 나의 어느 먼 친척 할머니는 만나는 사람마다 노총각 외아들의 중매를 부탁하며 이렇게 말하곤 했다. '인물도 필요 없고 아무 것도 필요 없어. 살림살이도 필요 없어. 그저 숟가락만 들고 오면 돼. 아무 것도 따지는 거 없어. 그저 전라도 여자만 아니면 돼'


그리고 두어달에 한 번 쯤 나의 아버지를 '형님'이라고 부르면서 술 한 잔 하러 우리 집에 오곤 했던 조그만 회사를 한다던 어느 마음 좋게 생겼던 아저씨도 종종 이런 이야기를 늘어 놓곤 했다.

'하여간 학벌이고 성격이고 다 필요 없다니까요. 뽑아서 일 시켜 보면, 좋은 대학나오고 공부 잘했다는 놈들이 더 사고치고 일도 똑바로 안 해요. 그저 정신 똑바로 박히고 인간성 제대로 돼서 묵묵하니 성실한 놈이 최고에요.그래서 나는 전라도 놈들은 안 뽑아.거짓말이나 살살하고 좀 키워볼까 생각하고 있으면 뒤통수나 치고 말이지. 천성이 아주 야비하거든요.'"

 

이런 것들은 단편적인 예들에 불과하며 이런 예는 너무나도 많다. 이런 일을 일상으로 겪는 전라도인들의 심정은 어떤 것이었을가. 전라도인들은 이런 상황을 더 이상 견딜 수 없는 지경이었다. 차라리 죽고 싶은 심정이었고 그 저항감이 80년 무렵에는 이미 임계점에 이르러 있었다.

 

 

영남정권과 전혀 무관한 전라도인의 인성 차별


이런 전라도에 대한 인성 차별이 영남정권 탓이라고 할까봐 분명히 말해 두는데, 이런 전라도인에 대한 "믿을 수 없다"는 관념은 그 시초를 알 수 없는 시점부터 존재해 온 것이다.

 

프랑스 선교사들이 1593년부터 1871년까지 약 280년간의 조선 선교 과정에서 경험한 내용을 수록한 프랑스 선교사 "샤를르 달레"의 <조선교회사 서론>에 의하면 당시 전라도인에 대한 평은 이러했다.

 

"전라도에는 양반이 적다 그 주민들은 다른 조선사람들로부터, 버릇없고, 위선적이고, 교활하고, 자기들의 이익만 구하고, 덕만 볼 수 있다면 언제고 가장 타기할 만한 배반행위도 서슴지 않고 할 사람들이라고 간주되고 있다."

http://blog.daum.net/ikdominia/35

 

타기한다는 것은 침뱉고 버린다는 말이다. 전라도인에 대한 평가는 너무나 극악했다.

또한 위선, 이중인격, 배신 등 현재까지 이어지는 전라도인에 대한 악평과 전혀 다르지 않다.


전라도인들은 1950년대의 명확한 기록에 의하더라도 지금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정도로 최고의 악평을 받고 있었다. 이 점은 여기를 참고하라.

http://blog.daum.net/ikdominia/2

 

이에 더해서 50년대의 자료를 하나 더 소개한다면,



 

1955년 10월 22일 중앙대 학보에 소개된 어느 전라도 출신의 <풍전세류>란 글이다. 지역감정은 결코 영호남간의 문제가 아니었다. 당시 서울사람들은 전라도인이란 말만 듣고도 몸을 움짓하며 전라도인이라면 아주 질색을 하고 있었다. 이 글을 쓴 이는 이런 사건들을 겪고 난 후에는 아예 서울사람을 만날 때 최전방에서 보초를 서는 심정이었다고 말한다.  

 

 

인성차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무엇이든 지불할 태도였던 전라도

 

전라도인들은 이러한 차별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자신의 무엇이든 지불할 각오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 정말 그랬다. 98%란 기형적인 몰표가 그냥 나오는 게 아니다.

 

작가 유순하는 <김대중 살리기>라는 책에서 어느 전라도 청년과의 경험담을 말해준다. 87년 대선 직전의 일이라고 한다.

 

"... 대방전철역 앞 허름한 술집에서 닭똥집을 안주로 술을 마시던 그날, 나는 박이라는 그 사내에게 물었다. 당신은 직장에서도 떨려 나왔고, 블랙리스트에 올라가 있어서 앞으로 직장을 잡기도 쉽지 않을 텐데, 왜 가진 돈 전부를 김대중에게 보냈는가, 하고. 그때 박은... 기호3번이 당선되기만 하면..., 하고 허두를 뗐다. 그는 주머니에서 지갑을 꺼내, 그 지갑에서 조그만 신문쪼가리를 찾아내 내밀었다. 김대중씨의 구좌번호가 적혀있었다. 나는 주민등록번호 외드끼 다 외고 있으닝께로..."

 

이 청년은 직장에서 해고되었음에도 가지고 있던 모든 돈을 김대중에게 보냈다는 말을 한다. 오직 김대중의 당선을 위해서란다.

 

 

일반의 소시민이, 직장에서도 잘리고 재취업도 불투명한 평범한 사람이 자신의 전재산을 김대중에게 보내는 이런 행동, 이런 비정상적 행동을 도대체 어찌 이해해야 하나?

게다가 자신은 주민번호 외듯이 김대중의 계좌번호를 외고 있어 신문쪼가리가 없어도 되니 유순하가 김대중에게 계좌번호로 정치자금을 보낼 것을 부탁하며 이 쪼가리를 주고 있다.

 

기호3번이 당선되기만 하면 대체 어떤 세상이 된다는 말일까?

자기가 갑자기 고위직에 오르기라도 하는가? 아니면 갑자기 전라도에 좋은 직장이 많이 생겨서 자기가 좋은 일자리를 구하기라도 하는가? 취업은 무슨 서울이나 수도권에 가서 하면 안되는 건가?

 

공장이 없다는 이유라면 강원도나 충청도가 먼저 들고 일어났을 수 있다. 그러나 어느 지역도 그러지 않았다. 충청도는 밖에 나오면 점잖다는 말을 들었고 강원도는 순박하다는 말을 들었고 경상도는 뒤끝 없고 남자답다는 말을 듣고 살았기 때문이다. 아무도 밖에 나와서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었다. 그러나 전라도만 달랐다. 전라도는 밖에 나오면 뒤통수를 치고 배신을 잘 하며 믿을 수 없고 인성이 야비한 자들로 인식되어 극도로 거부감을 받았다.

 

저자는 전라도 사람들이 객지에 나가서도 자기 고향 사투리를 애써 숨기려들지 않는 세상이 되기를 바란다고 하는데, 이 전라도 남자가 진정 갈망한 세상도 그저 이런 세상이었다. 진정 전라도의 인성에 대한 차별 문제는 전라도인들에게는 당장의 생계를 넘어서는 말 그대로 죽고사는 문제였던 것이다.

 

그러나 마침내 이 모든 문제를 해결해 줄 메시아가 등장했으니 이것이 김대중이다.

 

 

전라도 인성 문제 해결의 메시아 김대중

 

518 당시 김대중이 이미 전라도인들에게 그 어떤 존재였는지 넉넉히 짐작할 수 있는 하나의 예를 든다. 위 책 <김대중 살리기>에 정소성 단국대 불문학과 교수가 같은 쓴 "내가 겪은 518과 김대중"이라는 체험기의 일부이다. 정소성은 경북 봉화 출신으로 대구에서 성장했고 518 당시 전남대 교수였던 아내와 광주에 살았다. 그는 광주 시민들에게 매우 신망이 두터운 인물이었다.

 


"방문밖으로 나가 보았더니, 뜻밖에도 오치 사는 박씨였다.

"아니, 박선생님께서 어쩐 일로?"...

박씨는 주변을 살피더니 나를 데리고 뒷산으로 갔다.

"정교수님 드릴 말씀이 있어서 왔구만요. 너무 놀라지 마시시요. 옥녀 얘기를 잘 들었지라" (옥녀는 정소성의 아이들을 봐 주고 있다가 518이 일어나자 황급히 서울로 떠난 사람이다)

"무슨 말씀이신데요?"

"저어기 선상님의 주민등록증에 고향이 어디로 되어 있지라?"

"그야......"

"그랑께 내가 말씀드릴려고 왔당께요"

"......"

"그것을 가지고 다니시지 마시라요. 우리들이야 정선상님을 동네에서 잘 아니께 무슨 일이 없지라. 하지만 혹시 정선생님을 모르는 사람이......"

"......"

나는 할 말이 없었다. 너무나 허망한 생각이 들었다. 어쩌면 이런 일이 일어날 수 있는가 하는 의문이 무슨 분노처럼 내 가슴을 메꾸어 왔던 것이다.

"그리고 혹시 정선상님이 동네 사람이 아닌 사람을 만나더라도......"

박씨는 말을 잇지 못하고 나의 안색을 살폈다. 내가 너무나 굳은 표정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으리라.

"말씀을 계속하십시오."

"상태가 쪼메 위험하거든 저어기......"

"말씀하시구려."

"저어기- 김대중 선생을 존경한다는 말을 하시라요. 그라마 아마도......."

"으음."

나는 분명히 내 입술을 빠져 나오는 신음소리를 들었다."

 

 

이것은 코미디도 뭣도 아니다. 김대중을 존경한다 한 마디면 그 어떤 상황에서도, 그 어떠한 사지에서도 살아 나올 수 있는 곳이 광주였다.

 

어찌 보면 두렵기까지 한 스토리이지만, 그러나 이것이 전라도에서의 김대중이었고 그를 메시아로 바라보는 전라도인의 시선이었다. 김대중은 전라도인들 바로 자기 자신을 넘어 전라도의 유일한 희망이자 구세주였다.

 

왜 그랬나? 김대중이 당선되면 자기가 한 자리라도 하게 되어서 그런 것이 아니다.

김대중의 당선은 다시 말해 대한민국 국민 다수가 전라도를 거부하지 않는다는 증거를 보여 주는 것이며 이는 전라도인의 인성에 대한 분노와 멸시, 차별이라는 천년의 굴레에서 벗어날 가능성을 의미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전라도인들은 타지역에 나와 전라도인임을 숨기지 않고 말할 수 있기를 원했다. 오직 이 한 가지였다.

 

 

518의 뇌관, "김대중씨가 체포되었습니다"

 

전라도는 79년 박정희 사후 김대중의 집권에 대한 희망에 부풀어 있었다. 그들은 박정희와 겨루었던 김대중이 당선되고, 그러면 이 모든 문제가 해결되리라 들뜬 기대감에 젖어 있었다.  

 

그러나 일은 그렇게 진행되지 않았으며 전두환이란 자가 권력을 쥐었다는 말이 나오고, 오히려 그들의 메시아는 체포되는 처지가 되었다는 말이 전해졌다.

김대중이 체포되었다.

이는 전라도인들을 결코 견딜 수 없도록 가장 극도로 자극하는 말이었다.

 

김진혁이 그의 논문 <호남인의 영남인에 대한 지역감정 연구>에서 <전남사회운동협의회>가 펴낸 <죽음을 넘어 시대의 어둠을 넘어>를 인용한 부분이다.

 <...광주항쟁 당시 시민의 호응을 불러 일으킨 최초의 구호-"김대중씨가 체포되었습니다."로 미루어 볼 때 분명한 것이라고 생각된다. 즉 광주항쟁은 그 발단에서부터 지역성을 가지고 있었다고 할 수 있는데...>

 

광주 대규모 시위를 선동한 촉발점은 김대중이 체포되었다는 말이었다.

이 말 한마디에 광주 시민들은 봉기했다. 또한 사태를 겉잡을 수 없이 악화시킨 것은 경상도 군인들이 전라도인들 다 죽이러 왔다는 유언비어였다. 이는 정말로 유언비어라 볼 수밖에 없다. 어떻게 특정지역 군인으로만 계엄군, 시위진압군을 편성할 것인가. 이건 도저히 말도 안되는 일이었다.

 

 

그러나 광주에는 이런 말이 광범위하게 유포되어 있었다. 광주 시민은 이 소문을 받아들였다. 김대중이 체포되었다는 청천벽력과 이런 지역감정 자극적 발언은 전라도인들에게 목숨을 걸고 뒤집어야 할 문제였을 뿐이지 앞뒤를 재고 가릴 여지가 있는 문제가 아니었다.



 

518의 본질은 김대중 집권운동

 

518의 이면에는 전라도인들에게 쌓이고 쌓인 전국적인 전라도 인성 차별의 지역감정이 그 뒷배경에 짙게 깔려 있었다. 이로 인해 전라도인들은 견딜 수 없는 고통을 겪다가 마침내 구세주처럼 등장한 김대중을 그들의 문제 해결의 다시 없는 기회이자 유일한 메시아로 생각했으며 박정희 사후 부풀었던 그의 집권의 꿈이 무산될 위기에 처하자 총 봉기하여 518을 일으킨 것이다.

 

전라도인들 중 누군가가 고위직에 올라가고 말고 하는 것은 일반 소시민과 아무런 상관이 없다. 전라도에 공장을 세우는 문제도 목숨을 걸 만큼 심각한 문제는 결코 아니다.

그러나 다른 지역에 나올 때마다 인성에 문제가 있는 사람이란 취급을 받는 것은 상하를 막론하고 모든 전라도인들에게 바로 직결되는 바로 그들 개개인 자신들의 문제였다.

 

518이란 그 시초를 알 수 없는 시점부터 전국적으로 인성에 대한 극심한 차별을 받던 전라도인들이 625의 낮은 참전율 탓에 권력에서 자연스럽게 배제되어 이 문제 해결의 벽에 부딪히자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벌인 김대중 집권운동, 전라도 집권운동이다.

 

요약하면 그렇다. 전라도는 자신들의 인성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목숨을 건 사건인 것이다. 518은 그냥 민주화운동,,, 그런 것이 아니다.

 

혹여 충청도나 강원도가 집권을 했더라도, 전라도가 집권하지 못했다면 그들은 한 번은 대규모로 들고 일어났을 것이다. 전라도의 인성 멸시 문제는 전라도 출신이 집권하는 이외에 다른 누가 집권하더라도 풀리지 않는 문제이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발생하게 될 새로운 지역감정도 영호남의 지역감정이 아니라 당시 집권 세력과의 지역감정, 즉 충청도와 전라도 또는 강원도와 전라도 사이의 지역감정이 되었을 것이다. 대한민국은 그럴 수밖에 없었다.

 

여기에 625 당시 가장 많은 희생자와 전쟁영웅을 낸 영남의 불행이 있고 세계에 유례 없는 기적의 성장을 일구었음에도 극심한 지역간, 이념간 대립으로 고통받고 있는 대한민국 불행의 근원이 있다.

 

특정 지역의 주민들이 천년 이상 인성에 대해 멸시를 받는 세계에 유례가 없는 전라도라는 별난 지역을 안고 있는 탓에, 대한민국이 끝모를 혼란과 분열의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전라도의 인성 문제, 바로 이것이 518 발발의 근원이며 나아가 전라도 인성문제는 대한민국 전체를 뒤흔들어 놓은 태풍의 핵인 것이다.

 

이 점을 분명히 알아야 한다. 전라도 인성의 문제는 80년대 소위 민주화운동의 근원이 무엇인지, 대한민국의 현대사가 어떤 것인지, 대한민국의 분열과 갈등의 원인이 어디에 있는지를 정확히 이해하는 핵심적 열쇠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