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ursuit of Recording/좋은말씀

도미니크 2016. 2. 14. 11:16



1855년 경  북미대륙의 인디어 "시애틀 추장"이 했다는 명연설이 환경론자들에게 많이 인용된다.   환경정보시스템을 공부했던 나도 예전에 보았던 내용이다.  조영복 교수님의 "감옥으로 부터의 사색"에도 언급된 이야기이다.  검색을 해보니 역시 후세대의 사람들이 첨삭을 해서 많이 고쳤다는 사실이 있다고 한다.  누가 외곡시켜 고쳤다고 하더라도 "자연과 인간의 관계"에 대한 메시지가 강력하다.   소유할 수 없는 자연을 사고 파는 백인의 생각에 대한 비판, 자연 파괴가 결국 인간의 파멸로 이어진다는 것, 자연파괴는 신에 대한 불경이라는 메시지이다. 


<연설문의 주요 메시지> 아래는 참고 2를 이용함. 

* 출처 참고1: http://blog.daum.net/_blog/BlogTypeView.do?blogid=0CIrL&articleno=16413598

* 출처 참고2: http://blog.ohmynews.com/cjc4u/250985


“우리가 어떻게 공기를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대지의 따뜻함을 어떻게 사고판단 말인가? … 부드러운 공기와 재잘거리는 시냇물을 우리가 어떻게 소유할 수 있으며, 또한 소유하지도 않은 것을 어떻게 사고팔 수 있단 말인가? 햇살 속에 반짝이는 소나무들, 모래사장, 검은 숲에 걸려있는 안개, 눈길 닿는 모든 곳, 잉잉대는 꿀벌 한 마리까지도 우리의 기억과 가슴 속에서는 모두가 신성한 것들이다. … 우리는 대지의 일부분이며, 대지는 우리의 일부분이다. 


… 우리가 대지를 팔아야 한다면, 당신들은 알아야 한다. 그 공기 또한 우리에게 더없이 소중한 것임을, 살아있는 모든 것들에게 숨결을 불어넣어 주는 것이 공기이며, 모든 아침마다 우리가 맞이하는 것도 그 공기다. 바람은 나의 할아버지에게 첫 숨과 마지막 숨을 주었다. 그 바람은 우리 아이들에게도 생명을 불어다 줄 것이다. 세상의 모든 것은 하나로 연결되어 있다. 대지에게 일어나는 일은 대지의 아들들에게도 일어난다. 사람이 삶의 거미줄을 짜 나아가는 것이 아니다. 사람 역시 한 올의 거미줄에 불과하다. 따라서 그가 거미줄에 가하는 행동은 반드시 그 자신에게 되돌아오게 마련이다. … 대지는 인간에게 속한 것이 아니며, 인간이 오히려 대지에게 속해 있다. 그것을 우리는 안다."  


<연설문이 외곡되었다는 주장의 책> 

"천마디를 이긴 한마디," 헬게 헤세, 2007년


<여기서 한마디>

가톨릭에서는 성서와 성전(전례)를 모두 신성한 것으로 보는 교리가 있다.  성서 조차도 수백년간에 걸쳐 작성되는 와중에서 글 쓴이의 생각과 철학이 첨삭되었다는 것을 배제할 수 없듯이, 전통으로 내려오는 전례(예, 미사 예절)도 신성한 것으로 간주한다.   그런 의미에서 닉네임  OVIYA님의 아래의 댓글은 메시지가 있다.  판단과 행동을 위하여 자신을 추스리고  되돌아 보는 의미가 있다면, 외곡된 시애틀 추장의 연설문도 의미가 있겠다. 


"우주가 원소로 구성되어 있든 아니면 불이나 흙 같은 것들로 

이루어져 있든 그것이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선과 악의 진정한 본질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 자신의 좋아하는 감정과 싫어하는 감정, 

그리고 충동에 따라 행동하는 마음을 

적절히 다스리는 법을 아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우리의 삶에 일어나는 일들을 지켜보고, 

우리의 의지를 넘어선 것에 작별을 고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은가? 


우주를 지배하는 어떤 존재에 대해 

이해하는 것이 우리에게 그토록 중요한 것인가? 

그런 존재가 과연 있는가 없는가에 대해 

토론하는 것이 그토록 가치 있는 일인가? 

“ 너 자신을 알라” 는 델피 신탁의 말이 

쓸모 없는 것이라고 그대는 생각하는가?


*

그리스 철학자 Epictetus의 말입니다."


도미니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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