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 사조 이야기/추상주의·추상파 미술

Doldosa 김교수 2015. 11. 30. 17:04

 

피트 몬드리안 (Pieter Cornelis Mondriaan, Piet Mondrian)



네덜란드 출신의 화가.

 

출생-사망 : 1872년 3월 7일 네덜란드 아메르스포르트~ 1944년 2월 1일 미국 뉴욕

 

몬드리안의 작품상의 발전은 1900년에서 1920년까지 회화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초기 작품은 상징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아, 대담한 색을 사용하였다.

평생 숨겨져 있는 근원적인 실체와 그 실체의 보편적인 양식을 밝혀내고 탐구하였다.

 
학력 암스테르담미술학교
데뷔 1908년 'MillinSunlight'
경력 1942년 뉴욕 Nierendorf 화랑에서 강의
1917년 10월 데 스틸 초판 발행, 데 스틸 운동
수상 1906년 Willink Van Collen 상
대표작 Composition No.10, BroadwayBoogie-Woogie, VictoryBoogie-Woogie

 

   

 

 

 

 

예술양식

격자형 그림, 3원색으로 칠한 정사각형과 직사각형,

수평선들과 수직선들을 교차하여 구성한 기하학적인 그림

 

 

피트 몬드리안의 작품상의 발전은 1900년에서 1920년까지 회화가 나아가야할 방향을 제시해주었다. 자연과 그것의 변화무쌍한 모습을 포착하려는 인상주의적인 표현법이거나 도식적인 표현법, 어느 편이든 간에 이미 형상을 알아보기 쉽게 표현하려는 목적에서 벗어나 있었다. 몬드리안의 초기 작품들은 상징주의로부터 영향을 받았는데, 특히 대담한 색의 사용에서 드러난다. 그러나 이러한 상징주의와의 강한 유사성이 이 시기 이후에 몬드리안 회화의 중요성을 훼손시킬 수는 없다. 여러 가지 면에서 그는 회화가 변모할 수 있는 가능성과 주제 문제에 있어서 소통하는 방식을 급격하게 바꾸어 놓았다.

 

몬드리안의 수많은 작품들 사이에서 1910년대에 그려진 것들을 식별할 수 있는 유일한 관련성은, 그 작품들이 인식 가능한 세계의 근원적인 구조에 몰두해 있다는 점과 이미지를 파악하고 구조화하기 위해 이용한 방식에 있다. 숨겨져 있는 근원적인 실체와 그 실체의 보편적인 양식들을 밝혀내고 탐구하는 것이 그가 평생에 걸쳐 집요하게 몰두하던 주제가 되었다. 1920년대 초반에 몬드리안은 입체주의 양식을 받아들였는데, 특히 형태를 구성요소로 분할하는 분석적 입체주의 단계로 나아갔다. 이러한 형상의 분할은 인식 가능한 세계가 어떻게 구성되었는지에 대해 진리를 밝혀내는 작업을 의미했다.

 

1920년에 몬드리안은 노랑, 빨강, 파랑의 3원색이나 흰색과 검정색의 제한된 색채를 사용하여, 개별적인 정사각형과 직사각형들을 병치시킨 격자형 작품 연작을 제작했다. 사각형들은 구성의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여겨지는 뚜렷한 검은 선으로 분리되곤 했다. 몬드리안은 이러한 양식을 향후 20년간 계속 발전시켰고, 그의 그림들은 점차 더욱 정교해지고 섬세해져갔다.

 

"화가의 지위는 미천하다. 화가는 본질적으로 전달 통로다."

 

네덜란드의 화가로, 추상회화의 선구자. 암스테르담 부근의 아메르스 포르트에서 출생, 뉴욕에서 사망. 암스테르담의 미술아카데미에서 배움. 경건한 칼빈주의자인 부친의 영향에 의해 20대 후반부터 신지학(神智學)에 몰입, 후년의 회화에서의 절대성 추구의 연원을 이룬다.

 

처음엔 자연주의적 수법으로 풍경, 정물 등을 그렸으나, 1908년 마티스의 작품에서 순수색에 감명받아 1910년 파리로 나아가 큐비즘으로 전신, 『나무』의 연작등을 통해서 추상화의 노력을 시작한다. 1914년 귀국해서 1917년 두스브르흐 등 네덜란드의 추상화가들과 「데 스틸」그룹을 결성, 본격적으로 순수추상운동을 전개한다(1925년 그룹 이탈). 1919년 파리로 돌아가 다음 해 파리에서 신조형주의(네오 플라스티시즘)를 창도했다. 제 2차대전의 위기를 느끼고 1938년 런던에 이주하였고, 1940년 뉴욕으로 건너가 만년의 충실한 작품활동을 전개했다. 일체의 구상성(具像性)을 버리고, 수직선과 수평선에 구조의 원리를 두어 원색의 정방형, 장방형의 배치에 의해, 지고(至高)의 질서와 균형을 구했다. 도시와 건조물에도 큰 관심을 갖고 있었으며, 그의 사상은 20세기의 조형이론에 깊은 영향을 주었다. 만년의 대표작에는 『브로드웨이 부기우기』(1942~1943, 뉴욕현대미술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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몬드리안의 방: 신조형주의 새로운 삶을 위한 예술 (책 이야기) 

 

 

목차

 

자연의 리얼리티와 추상적 리얼리티: 세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 에세이

신조형주의: 조형적 등가가치의 일반이론

신조형주의 일반원리

 

역주

역자해설―몬드리안, 완벽한 삶과 예술을 꿈꾼 유토피안

수록문 출처 및 몬드리안 저작 목록

몬드리안의 생애

찾아보기

 

출판사 서평

  

 

화가이자 이론가로서의 몬드리안

 

정사각형의 흰 캔버스, 엄격한 수직으로 교차하는 검정색 선, 그리고 그것이 만든 빈 사각형을 채운 빨강, 파랑, 노랑의 색면. 일련의 공식과도 같은 기본요소로 무수한 변주를 만들어내는 몬드리안의 구성은, 이제 추상회화의 고전이 되었다.

일견 정해진 규칙에 따라 쉽게 그린 듯 보이는 극도로 단순한 이미지는, 그러나 몬드리안이 그림을 시작하면서부터 품어 온 모든 내면의 격정과 고민이 마침내 극복된 결과물이었다.

 

이러한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조형'을 향한 그의 끈질긴 실험과 탐구는, 우리가 익히 알고 있는 회화작품으로만 이루어진 것은 아니었다.

그는 추상의 의미와 타당성을 명징한 논리와 문체로 확립한 탁월한 이론가이기도 했다.

 

이같은 기질은 스케치북에 자연과 우주에 대한 이해를 정리하고, 동료 미술가, 비평가들과의 모임에서 자기 생각과 다른 이들의 말을 꼼꼼히 기록했던 그의 습관에서 충분히 짐작할 수 있으며, 이는 후에 그가 신조형주의 이론을 정립하고 오십 편에 달하는 글을 발표하는 데 큰 밑거름이 된다.

 

1917년 반 두스뷔르흐와 함께 만든 『데 스틸(De Stijl)』 창간호에 처음 수록하기 시작해 말년까지 지속적으로 발표된 몬드리안의 글들은 놀라운 일관성을 지니고 있는데, 그것은 사회적인 삶 전체와 새로운 미술이론이 하나가 되는, 신조형주의가 실현된 유토피아의 추구였다.

 

이렇듯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이론에 관한 핵심적인 글 3편을 그의 회화작품과 함께 새롭게 편집한 것이 이 책 『몬드리안의 방』이다.

 

세 사람의 대화로 풀어가는 추상화(抽象化) 과정의 일곱 단계

 

첫번째로 소개된 「자연의 리얼리티와 추상적 리얼리티: 세 사람의 대화로 이루어진 에세이」(1919-1920)는 몬드리안이 동료들과 토론했던 내용과 방식을 차용한 실험적 형식의 논문으로, 『데 스틸』에 13회에 걸쳐 발표되었다.

 

자연주의 화가 X와 문외한 Y, 추상-실제 화가 Z〔몬드리안은 추상이 조형적인 실제에 의해 표현된다는 의미에서 󰡐추상󰡑이라는 말 대신 󰡐추상-실제 (abstract-real)󰡑라는 말을 더 선호했다〕, 이 세 사람이 시골에서 도시로 걸어가며 펼치는 추상화(抽象化) 과정의 일곱 장면은, 그가 심취했던 신지학(神智學)에서 말하는 신비주의의 일곱 단계를 참조하여 정신의 각성 혹은 󰡐진화󰡑 과정을 풀어낸 것으로 해석되기도 한다.

 

지평선 위로 달이 떠 있는 평원, 달빛을 머금은 하늘을 배경으로 어두운 윤곽을 드러내는 숲, 별들이 빛나는 광활한 모래밭에서 이루어지는 장면 1, 2, 3은, 그가 회화의 출발점으로 삼고 변형해 온 전형적인 주제들, 즉 자연풍경에 상응한다. 몬드리안 자신을 대변하는 Z는 자연 안에 이미 존재하는 󰡐관계󰡑의 중요성을 언급하면서, 그것이 장소에 따라, 또 그것을 보는 이들의 개별적인 지각능력에 따라 식별될 수 있다고 설명한다.

 

 하지만 궁극적으로 새로운 인간은 자연적인 것에서 추상적인 것으로, 즉 불명확한 것에서 명확한 것으로 이행함으로써 새로운 조형을 발견하여, 마침내 삶의 불균형과 비극을 타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X: 난 아직도 우리가 자연을 벗어난, 즉 현실을 벗어난 조형적 표현을 발견해야 한다는 개념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요.

Z: 나를 포함한 우리 모두가 꼭 그렇게 해야만 하는 것은 아닙니다. 오히려 자연 안에서, 그리고 현실 안에서 조형성을 발견해야 합니다. 그리고 이는 회화가 이제까지 해 온 것들입니다. 즉 순수한 조형적 시각의 경로를 따라 자연주의적 리얼리즘을 통해 추상적 리얼리티에 도달한 것입니다.

 

―「자연의 리얼리티와 추상적 리얼리티」 󰡐장면 3󰡑에서, 자연주의 화가 X와 추상-실제 화가 Z가 나눈 대화.

 

이어지는 장면 4, 5, 6에서 세 사람은 풍차가 있는 풍경, 인공적으로 다듬어진 정원, 짙은 어두움을 배경으로 하는 교회 앞에서 이야기를 펼쳐 간다.

 

 즉 시골에서 도시로 접어들어, 자연물이 아닌 사람이 형상화한 것과 사람의 정신을 나타내는 것들에 대한 대화를 나누며 추상화(抽象化)의 단계를 진행해 나간다.

 

그리고 마지막 일곱번째 장면에서 마침내 Z의 작업실에 도달하며, 여기서 나눈 긴 대화를 통해 신조형주의 전체를 포괄하는 개념을 완성한다.

 

이 장면에서 묘사된 Z의 작업실은 실제로 몬드리안이 파리에 마련한 자신의 방을 모델로 하고 있으며, 그곳에는 모든 분야의 예술과 산업에서 조화와 균형의 미를 추구한 그의 이상적 삶의 형태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Z: 건축에서의 새로운 색채조형은 여전히 드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개별적인 신조형주의 회화보다 그쪽이 더 낫다고 생각합니다.

 

Y: 그러한 건축이 우리에게는 더 생명령이 있다는 말이군요?

Z: 그렇습니다. 이미 그에 대해 논의한 바 있지요. 그러나 그 이상의 것이 있습니다. 즉 우리가 이 방의 어디에 서 있든 상관없이 정확한 효과를 가진다는 점이지요. 반면 회화는 단 하나의 시점에서 볼 때 효과가 있습니다. … 회화는 항상 독자적인 무엇인가를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미 말했듯이 회화는 한 사람을 위해서, 반면에 방은 여러 사람들을 위해서 만들어져야 합니다. 신조형주의 장식은 사회를 위해, 사회 안에서 구상되어야 합니다.

―「자연의 리얼리티와 추상적 리얼리티」 장면 7에서, 문외한 Y와 추상-실제 화가 Z가 나눈 대화.

 

 

미래의 인간에게 바치는 유토피안의 메시지

 

두번째로 수록된 「신조형주의: 조형적 등가가치의 일반이론」(1920)은 신조형주의의 본질적인 개념들을 정리한 글로, 이 역시 모든 보편적인 것과 개인적인 것에 대한 균형 잡힌 이원성을 창조하는 새로운 정신, 새로운 예술을 지향하고 있다.

 

몬드리안은 회화뿐 아니라 여러 다른 예술 즉 음악, 조각, 공예, 건축, 문학, 연극, 춤에서도 마찬가지로 과거와의 결별을 통해 새롭고 순수하며 표현적인 수단을 얻을 수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끝으로 「신조형주의 일반원리」(1926)는 신조형주의 이론을 간단히 요약한 것으로, 신조형주의의 조형적인 수단과 원리, 형태와 색채의 문제가 알기 쉽게 정리되어 있어, 실제로 그의 회화를 비롯해 데 스틸의 회화, 건축, 디자인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된다.

 

인간은 과거에는 자연의 아름다움만을 그리고 묘사했던 반면, 이제 새로운 정신을 통해 스스로 아름다움을 창조한다.

이러한 새로운 아름다움은 새로운 인간에게는 필수불가결하며, 그 안에서 인간은 자연과의 등가적인 대립으로써 자신의 이미지를 표현한다. '새로운 예술이 탄생하였다'.

―「신조형주의: 조형적 등가가치의 일반이론」 중에서

 

금욕적이고 수수한 삶의 방식 뒤에 열정적인 기질을 감추고 있던 화가 몬드리안. 그의 도덕적 엄격함과 끈질긴 지적 성향은 고향 네덜란드의 정신적 풍토, 그리고 그곳에서 배출된 뛰어난 선배 예술가들에게서 비롯되었을지 모른다.

 

더구나 20세기초 불안한 전운이 감돌던 당시 유럽의 분위기는, 필연적으로 그의 이러한 재능을 그대로 묻혀 있게 놔둘 수 없었을 것이다.

 

동시대 다른 추상미술가들과 마찬가지로, 그에게 회화는 철학적이고 정신적인 활동의 일부였다.

 

그것은 자연의 형상 뒤에 숨겨진 실재를 드러내, 인간의 정신을 비극적 우연성에서 해방시켜 고요하고 아름다운 완벽한 균형의 상태로 이끌어 주기 위한 수단이었다.

 

지금으로부터 거의 한 세기 전, 몬드리안은 「신조형주의: 조형적 등가가치의 일반이론」을 쓰며 '미래의 인간들에게(Aux hommes futurs)' 이 글을 헌정했다.

 

지나친 일관성과 단순한 논리 때문에 그를 독선적이라고 평가하는 이들도 있지만, 몬드리안의 미래를 살고 있는 우리들에게 그의 글은 여전히 유효한 메시지와 여운을 남기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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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에트 몬드리안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1930
캔버스에 유채 ㅣ 51×51cm ㅣ 개인소장, 뉴욕

파랑, 빨강, 노랑의 색면과 검정색의 선만으로 이루어진 회화작품이 있다. 종이 위에 어떤 형상을 나타내려는 노력도 없이 3원색의 사각형을 두께를 약간씩 달리하는 검은 선으로 구획지어 놓은 이 그림 앞에서 어떤 사람들은 이것도 그림인가라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아니면 미술교과서 어디에선가 본 작품임을 생각해낸 사람이라면 이 정도는 나도 하겠다는 생각을 하기도 한다. 혹은 단순한 색면과 검은색 선만으로 이루어진 이 작품이 깔끔하면서도 딱 떨어지고 뭔지 모를 아름다움이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이렇게 단순한 작품이 어떤 맥락에서 유명하게 되었는지를 아는 사람은 정작 많지 않다.

사진과는 달리 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것

이 작품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은 네덜란드 출신의 피에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 - 1944)의 작품이다. 몬드리안이 화가로서 작업을 시작하는 20세기 초반 화단에서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닮게 그려내는 능력은 그다지 주목받지 못하였다. 왜냐하면 당시가 사진이 대중화되기 시작하는 때였다는 점을 감안할 때, 사물을 있는 그대로 닮게 묘사해 내는 능력에 있어서 사진을 능가할 만한 것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렇기에 르네상스 이후 작품 속에서 닮게 그리는 것을 추구해오던 화가들은 이제 사진과 경쟁하기보다는 사진과는 달리 회화만이 보여줄 수 있는 어떤 것을 찾아 나서야 했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몬드리안 또한 자신이 작품 속에 무엇을 그려야 하고 무엇을 담아야 하는가를 고민하게 된다.

이 시기 몬드리안은 당시 지식인들 사이에 유행하고 있던 ‘신성한 지혜’를 추구하는 모임인 ‘신지학협회’에 가입한다. ‘신지학’은 일반적인 현상들 속에서 보편적인 특성을 끌어냄으로써 신과 하나가 될 수 있다고 믿는다. 이러한 신지학의 영향으로 몬드리안은 우리가 보는 사물 속에는 모든 것을 관통하는 보편적인 본질이 내재해 있으며, 그 본질은 궁극적으로 조화로운 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파악하게 된다. 즉, 몬드리안은 우리가 보는 나무, 건물, 일상의 사물들은 그 겉모습은 비록 다를지라도 본질적으로 동일한 조화의 상태를 이루고 있다고 파악하고, 이렇게 일상 속에서 우리들이 쉽게 알아볼 수 없는 사물의 본질을 작품을 통해 드러내 보여주는 것이 화가의 임무라고 생각하게 된 것이다.

나무는 점점 추상화되어 기본 조형요소만 남는다

그 결과 몬드리안은 우리 주변의 사물 속에 내재하고 있는 본질을 찾아나가게 되는데, 그의 이러한 과정은 나무 연작을 통해 잘 드러난다. 비교적 초기에 제작된 사실적으로 묘사된 [붉은 나무] (1909-10)는 나무의 형상을 유지하고는 있으나 나뭇가지들은 살아 움직이듯 꿈틀대고 있으며, 나무와 나무를 둘러싼 배경의 색채는 실재하는 색채라기보다는 오히려 나무의 생명력을 드러내려는 듯 강렬한 대비를 이루는 붉은색과 하늘색으로 묘사되어 있다.

1 붉은 나무, 1908
2 회색 나무, 1911
3 나무, 1913
4 꽃피는 사과나무, 1912

한편, 바로 다음해에 제작된 [회색나무] (1911)에 이르면 대상이 된 나무는 여전히 나무임을 알아볼 수는 있으나 훨씬 더 간단해 졌다. 이렇게 사물의 형태 및 색채를 간략하게 해 나가는 과정을 통해 몬드리안은 사물의 본질에 다가갈 수 있다고 생각하였는데, 1912년 제작된 [꽃피는 사과나무]에 이르면 제목을 보고서야 이 작품이 나무를 대상으로 하여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게 되며, 여기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가 [나무](1913)에 이르면 화면은 최소한의 색채와 선만으로 이루어짐으로써 제목을 확인하고서도 화면 속에서 나무의 형태를 파악해 내기는 쉽지 않게 된다.

이러한 단순화 과정을 통해 몬드리안의 화면은 최종적으로 빨강, 파랑, 노랑의 3원색과 흰색과 검정색, 그리고 수직과 수평의 선과 그것들이 교차하는 선만이 남게 되는데, 몬드리안은 이와 같이 가장 기본적인 조형요소 만으로 사물의 본질을 드러낼 수 있다고 믿었다. 이러한 몬드리안의 믿음을 반영한 작품이 이 글 도입부에서 본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인 것이다. 이렇게 사물의 보편적인 본질을 파악해 나가는 과정 속에서 몬드리안은 20세기의 추상미술의 선구자가 됨으로써, 이후 그의 미술 이론으로부터 영향 받은 많은 미술, 건축, 디자인 운동이 전개된다.

한편, 몬드리안은 자신의 작품이 사물의 본질을 드러내는 요소로만 이루어진 것이기에 누구나 이해할 수 있다고 생각하였으며, 이렇게 이루어진 추상미술이야말로 순수함과 완벽함, 조화와 균형을 관객들에게 제공할 수 있다고 믿었다. 이처럼 몬드리안과 그의 동시대 작가들이 염원한 전 인류가 이해할 수 있는 보편적인 회화 언어로써의 추상미술에 대한 바람은 그러나 관객들로부터는 어려운 그림, 혹은 이해할 수 없는 그림이라는 평가를 받게 되는데 이는 역사의 아이러니라 아니할 수 없다.


작가소개

빨강, 파랑, 노랑의 구성 이미지 1

피에트 몬드리안 Piet Mondrian (1872. 3. 7 ~ 1944. 2. 1)
네덜란드의 근대 미술 화가이다. 몬드리안은 추상화의 초기 화가에 속하며, 네덜란드 구성주의 회화의 거장이다. 빈센트 반 고흐와 야수파에서 많은 영향을 받았지만, 몬드리안의 유명한 신조형주의적인 그림들은 강렬한 추상성이 특징이다. 그의 그림의 주된 모티브는 빨강, 파랑, 노랑 등의 원색을 가진 직사각형 면과 그와 섞인 흰색과 검은색 면, 그리고 검정색 선들이다. 이런 기본적인 형태를 중요하게 다룬 추상화는 신조형주의가 추구한 양식의 두드러진 특징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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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트 몬드리안 〈뉴욕 시 3〉

피트 몬드리안 〈뉴욕 시 3〉

1941, 캔버스에 유채, 연필, 목탄, 컬러테이프, 117x110cm

 

 

20세기 초의 서양 미술은 마치 롤러코스터처럼 정신없이 내달렸다. 몇 백 년 전에 처음으로 힘을 잃기 시작했던 종교는 이제 완전히 미술에서 자취를 감췄다. 더 이상 영웅의 이야기가 필요하지도 않았다. 형체도 사라졌다. 남은 것은 캔버스와 색과 선이었다.

도대체 무엇을 그린 것인지 알 수 없는 추상미술이라는 것은 여기에서 탄생했다. 옛날에는 꼭 필요하다고 생각했던 그림의 필수 요소들이 하나씩 사라져서 형체까지 사라진 것. 그러니 미술관에서 추상화를 보면서 무엇을 그렸는지 모르겠다고 해서 좌절할 필요는 없다. 그러나 서사가 사라지고 형체가 사라져도 아름다움은 있을 수 있다. 우리가 피트 몬드리안(Piet Mondrian, 1872-1944)의 그림을 보고 아름답다고 느끼는 것이 그 증거다.

몬드리안은 네덜란드에서 태어나 활동하다가, 마흔 살이 되던 해에 파리로 이주했다. 그곳에서 브라크(Georges Braque), 레제(Joseph Fernand Henri Leger) 등의 입체주의 화가들과 교류를 시작했으나 제1차 세계대전의 발발로 인해 네덜란드로 돌아가야만 했다. 그리고 1917년 네덜란드의 건축가, 화가들과 함께 『데 스틸(De Stijl)』이라는 잡지를 창간했다. 원색과 직선만이 순수한 아름다움을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이들의 생각이었다. 몬드리안은 신중하면서도 원칙주의자였는데,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런던에 이어 뉴욕으로 이주하게 되면서 뉴욕의 국제적이면서도 자유로운 분위기에 끌려 그의 작품 역시도 자유로운 풍모를 띠게 되었다. 뉴욕에서 그는 거대한 도시의 모습과 마천루, 재즈에 영감을 받은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뉴욕 시〉 연작이 대표적인 예인데, 몬드리안이 뉴욕에서 새로 접한 것 중에는 대도시의 마천루, 자유분방한 재즈 음악뿐만이 아니라 여러 색으로 된 종이 접착테이프도 있었다. 우리가 티센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뉴욕 시 3〉 같은 작품을 만들 때, 여러 가지 색과 두께로 된 종이 접착테이프를 캔버스에 이리저리 붙여 가면서 작품을 구성했다. 흰색 캔버스에 원하는 비율과 색깔대로 테이프를 붙인 뒤, 작업실에 놔둔 채 완벽한 구성이 나올 때까지 수정을 했다. 그리고 나서 더 이상 수정할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해지면 그대로 캔버스에 유화로 옮겨 그렸다.

티센 미술관에 있는 〈뉴욕 시 3〉은 흰색 캔버스에 빨강, 검정, 파랑, 노랑 종이테이프를 붙여 놓은 ‘미완성’ 상태다. 네모진 구획에 노란색으로 칠한 것 말고는 아무런 물감 칠이 안 되어 있고, 캔버스와 테이프뿐이다. 언뜻 보면 테이프의 폭이(즉 색선의 두께가) 모두 같아 보이지만 잘 들여다보면 약간 차이가 난다. 테이프의 폭 자체가 다르기도 하거니와 어떤 선은 반 정도 겹쳐서 두 겹으로 테이프를 붙여 놓았기에 다른 선보다 좀 더 넓다. 이 캔버스는 몬드리안이 사망한 1944년까지 미완성 상태로 있었고, 1977년에 몬드리안의 친구이자 유언 집행자였던 화가가 몬드리안이 남겨 놓은 그대로, 그러나 테이프가 떨어지고 손상된 것만 교체하여 ‘미완성’인 상태로 복원해 놓았다.

 


 

피트 몬드리안의 작품 세계

 

​예술의 최종 목표는 무엇인가. 인간의 손끝에서 만들어지는 작품이 최종 목표일까. 그렇지 않다. 미의

가치가 잘 구현된 작품을 만들어 내는 것은 그러한 마음가짐을 가진 창작 주체, 즉 인간이 있기에 가능

하다. 인간이 만들어 내는 창작물 보다 더 중요한 것은 바로 이를 만들어 내는 인간이다. 예술의 최종

목표는 창작 행위를 통해 조화와 균형을 갖춘 완전한 인간에 도달하는 것이다. 이러한 인간은 만인이

공감하는 예술을 창조해 낸다. 예술의 최종 목표는 인간 완성이며, 완성된 인간이 만든 예술은 인간을

정화하는 능력을 가진다.

 

- 피트 몬드리안 명언 중

 

 

 

​피트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neo-plasticism]

신조형주의란 몬드리안을 중심으로 한 기하학적 추상주의의 일파 또는 작품을 통해 형상화시키는

예술에 관한 철학적 운동을 말한다. 신조형주의는 유럽 각지에서 등장한 추상 개념 중에서도 가장

순수성이 중시되었다. 이 운동을 주도한 피트 몬드리안은 철학자이자 신자학자였던 쇤마커스 박사

의 저술 [세계의 새로운 이미지]에서 영향을 받아 '신조형'이라는 용어를 채택했다. 이 용어는 1917

년부터 2년 동안 11회에 걸쳐 [데 스틸]지에 연재된 '회화에서의 신조형주의'에서도 사용되었다.

 

그는 입체주의와 신지학 등의 영향으로 화면에서 재현적 요소들을 점차 감축해 가는 작업을 지속하다

결국에는 조형 요소를 수직선과 수평선, 정방형으로 엮어 내는 면과 선, [빨강, 파랑, 노랑]의 삼원색과

[백색, 회색, 검정색]의 무채색으로만 구성한 색채 표현에 힘썼다. 예술은 탈자연화 되어야 한다고 생각

했던 그는 가변적이고 특수한 것에서 탈피하여 보편적인 리얼리티를 구현하고자 했다. 이러한 몬드리안의

신조형주의 원리에 따른 회화는 입체주의를 통해서 순수한 추상 미술로 접어드는 한 예를 보여주고 있다.

  • 《빨간 나무 The Red Tree》(1908), 헤이그 시립박물관(Haags Gemeentemuseum)
  • 《회색 나무 The Grey Tree》(1912), 헤이그 시립박물관
  • 《햇빛 속의 풍차 Windmill in Sunlight》(1908), 아테네 국립미술관
  • 《타원의 구성 Composition in Oval》(1913), 암스테르담 시립박물관(Stedelijk museum, Amsterdam)
  • 《구성 #6 Composition No.6》(1914), 헤이그 시립박물관
  • 빨강 노랑 파랑의 구성 Composition with Red, Yellow and Blue》(1928), Wilhelm-Hack-Museum, Ludwigshafen
  • 《파랑과 빨강의 구성 Composition No. 2 in Blue and Red》(1929), 뉴욕 근대미술관(Museum of Modern Art, New York)
  • 《브로드웨이 부기우기 Broadway Boogie-Woogie》(1942-43), 뉴욕 근대미술관
  • 《빅토리 부기우기 Victory Boogie-Woogie》(1943-44), 헤이그 시립박물관(Haags Gemeentemuseu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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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http://blog.naver.com/totoro2010/100063842002

http://2proo.net/759

 

 

몬드리안의 여인,
아가사 트래제우스

 

몬드리안의 여인, 아가사 트래제우스

그림1-몬드리안/붉은 옷을 입은 여인/1908/네덜란드 헤이그 시립미술관 소장

몬드리안이 남긴 흔치 않은 여성의 초상화다. 작업실의 가구들을 흰색과 빨강, 검정색의 직선 이미지로 꾸몄던 그는 일상의 공간마저도 자신의 그림처럼 정리하던 남자였다. 마치 영화 '플랜맨'에서 모든 일에 세세하게 알람을 맞추고, 꼼꼼히 계획을 세우며 같은 형태의 안정이 평화라고 꿋꿋하게 느끼는 남자 주인공 '정석(정재영)'처럼 말이다.

 

그가 그린 여성의 초상화는 우리가 알고 있는 그의 대표작품 꽤 거리가 멀다. 1908년 경, 그가 30대에 그린 작품이다. 그 유명한 빨강, 노랑, 검정의 직선으로 이루어진 절제된 추상을 시작하기 전인 초기시절에 그려진 작품인 것이다. 그래서인지 나는 이 작품이 더욱 매력적으로 다가온다. 그에게는 없을 것만 같던 사랑이라는 감정이 아스라하게 느껴져서 좋다. "내 평생 감정이 소모되는 사랑 따위는 안 해!" 라고 말했을 것 같은 남자의 숨겨진 첫사랑을 찾은 기분이랄까.

 

나에게 몬드리안이 남긴 여인의 초상화는 이렇다 할 여성과의 큰 스캔들 없이 살았던 화가의 연애사를 파헤치고 싶은 그림이다. 맞다. 그에게도 한 때 사랑으로 일상이 물들던 시절이 있었다. 그녀의 이름은 아가사 트래제우스(Agatha Zetraeus).이 그림은 1908년 몬드리안이 아가사 트래제우스를 그린 작품이다.

 

그녀는 1872년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나 1966년까지 암스테르담에서 90년 이상을 살았다. 18세 되던 해에 암스테르담에 있는 미술학교에 입학한 그녀는 그 곳에서 미술교사였던 몬드리안을 만난다. (몬드리안에게는 미술교사자격증이 있어 그 곳에서 학생들에게 데생과 유화를 지도했었다.) 그때부터 두 사람은 스승과 제자이자 연인 관계로 발전한다. 당시 몬드리안은 우리가 알고 있는 '데 스틸' 스타일의 그림을 그리기 전이라 도시의 풍경화를 자주 그렸는데 그녀의 그림들은 당시 몬드리안의 화풍을 닮았다.

몬드리안의 여인, 아가사 트래제우스

그림2-아가사 트래제우스/자화상/1907년 경/pastel/ 45 x 30 cm

몬드리안의 여인, 아가사 트래제우스

그림3-아가사 트래제우스의 풍경화

그러고 보니 영화 '플랜맨'에서 로봇만큼이나 계획적이던 정석(정재영)의 일상에도 귀여운 인디밴드 가수 소정(한지민)이라는 여자가 나타나 즉흥적으로 변하며 일탈이 시작됐었다. 사랑이 그를 바꾸기 시작한 것이다. 몬드리안은 그녀와 동거를 하며 연인 관계를 지속했다. 그때 그린 작품이 위의 붉은 옷을 입은 여인이다. 그렇게 8년간 둘의 관계는 지속되었고 몬드리안이 암스테르담을 떠나 파리로 향하기 전까지 둘 사이는 문제가 없었다. 1908년 쯤 둘은 결혼도 약속한다. 하지만 화가로서의 더 큰 꿈을 꾸는 몬드리안은 자신의 나라인 네덜란드를 떠나 예술의 도시인 파리로 가고 싶어 했다. 영화 '플랜맨'에서 정석과 소정의 사랑이 해피엔딩이었던 것과는 달리 몬드리안과 그녀의 결혼 약속은 새드엔딩으로 끝이 난다.

 

홀로 네덜란드에 남은 아가사는 꾸준히 그림을 그린다. 그와 함께 걸었던 도시의 풍경들이 그녀에게 작품의 소재가 된다. 파리로 떠난 몬드리안은 그 후 영국을 거쳐 2차 대전이 발발하자 1940년 아예 미국으로 이민을 간다. 그때 나온 그림이 브로드웨이 부기우기와 같은 대작이다.

몬드리안의 여인, 아가사 트래제우스

그림4-몬드리안/브로드웨이부기우기/127x127㎝/캔버스에 유채/1942-1943

하지만 둘은 40년 이상 꾸준히 편지로 소식을 전하며 개인적인 이야기부터 작품에 대한 고민까지 나눴다. 암스테르담에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위트레흐트라는 도시를 자주 찾은 그녀는 87세가 되던 1980년에 예술작품을 거래하는 화상을 만나 그림들을 정식으로 거래한다. 몬드리안에 비해 비교적 말년이 돼서야 세상에 화가로써 등장한 것이다. 2014년 가을부터 이듬해 초까지 네덜란드 아머르 스포르트에있는 몬드리안 생가 박물관에서는 아가사 제트래우스의 전시를 진행했었다.

몬드리안의 여인, 아가사 트래제우스

그림5-몬드리안/Evolution/1910-1911

몬드리안이 그린 또 다른 여인들의 초상화. 그림 속 세 여인은 몬드리안과 사랑했던 아가사 제트 라우스일까? 그와 그녀는 서로를 어떻게 이해하며 평생을 지냈을까?

 

영화 '플랜맨'의 정재영은 한지민을 만나 계획적으로 짜여진 삶이 무너지고, 그 안에서 새로운 질서와 사랑의 의미를 찾는다. 하지만 몬드리안은 그녀를 떠나 홀로 지내며 더욱 작업 활동에 전념했다. 몬드리안이 네덜란드에 남아 아가사와 계속 사랑하고 결혼했다면 그가 남긴 수많은 직선 가득한 역작을 만들어 낼 수 있었을까? 글쎄, 아닐 것이다. 그에게 사랑은 흠뻑 젖어야 하는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기보다 정성껏 피해야 하는 소나기였을지 모른다.

몬드리안의 여인, 아가사 트래제우스

그림6-몬드리안/Passionflower/1908

그가 그린 또 다른 초상화다. 그림의 제목을 보자. Passionflower(시계초) 덩굴성 식물의 하나로 1500년대 스페인 탐험대는 페루에서 이 꽃을 처음 발견한다. 그들은 암술머리가 십자가의 형태인 이 꽃을 보고 예수의 고난을 의미한다고 믿었다. 《허브도감》에 설명된 시계초에 대한 설명에 의하면 속명인 Passiflora는 라틴어인 'flor della passione'를 번역한 '정열적인 꽃'이란 뜻이다.

 

눈을 감고 있는 여인의 어깨 위로 시계초 두 송이가 살포시 피어난다. 마치 누군가를 기다리는 듯한 그녀는 몬드리안의 연인이었던 아가사 트래제우스일까? 안타깝게도 시계초의 꽃말 중 하나는 '독신'이다. 어쩌면 이 그림은 평생을 독신으로 살았던 몬드리안이 아가사 트래제우스에게 보낸 편지가 아니었을까? 시계초의 꽃말이 그녀에게 말하는 듯하다. '나는 당신 곁에 계속 머물 수 없는 사람이라고…'

 

이소영(소통하는 그림연구소-빅피쉬 대표/bbigsso@naver.com/출근길 명화 한 점, 그림은 위로다. 명화보기 좋은 날 저자)

 

 

 

출처; http://hub.zum.com/metroseoul/73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