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dodo 2011. 8. 19. 16: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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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민학교 입학식 코 닦는 손수건

 

 

가슴에 매단 하얀 손수건

 

지금의 대다수의 학생들은 유치원에서 기본적인 교육을 받고, 나아가 기초적인 학습도 이미 사교육에서 마치고 학교에 입학하지만 우리가 학교에 입학하던 때는 학교에서 하나부터 열까지 가르쳐야 했던 시절이다.

 

예나 지금이나 부모님의 손을 잡고 학교에 가서 입학식을 하는 것으로 학창시절이 시작된다.

 

입학식 날 한쪽 가슴에는 학년 반이 적힌 명찰을 달고 그 아래에 코 닦는 하얀 손수건을 달고 서 있었다.

지금 아이들은 이해조차 힘들지만 입학하는 아이들의 가슴에는 어른들의 훈장처럼 하얀 손수건을 가슴에 달고서 입학식에 가는 것이 당연한 것으로 여기던 시절이다.

 

그 당시에는 너나 할 것 없이 왜 그리 당시에는 나일론 재질의 옷이 많아서 코를 닦고 나면 기름칠한 것처럼 유난히도 옷깃은 까맣게 번들거렸다.

 

나일론 옷은 질기고 바람을 잘 막아 주는 반면에 불에 약해서 추위에 불 가까이 가면 쪼그려 붙어서 옷을 망치기 일쑤였다.

 

 

 

 

 

즐거운(?) 시험시간

 

 

 

가슴 떨리는 통지표

 

 

 

 

 

난로 위 도시락

 

 

 

추억의 시절 도시락

 

 

아... 흰 쌀밥 위에 계란

 

 

 

추억 속의 풍금

 

 

 

국민교육헌장

 

 

 

국민교육헌장

'국민학교'에서 누구나 외워야 했던 국민교육헌장

국민교육헌장을 암기해야 했던 것은 물론 국민학생들뿐이 아니었다. 중고교생들도 암기해야 했던 것은 물론(모든 교과서 앞머리에 실리기도 했다), 입학시험과 국가고시 심지어 입사시험에도 사실상 의무적으로 관련 문제가 출제되었기 때문에, 국민교육헌장을 피할 길은 없었다.
 

국민교육헌장의 시대는 민주보다 반공이 앞서고(반공 민주 정신에 투철한 애국애족이 우리의 삶의 길), 개인보다 국가우선시되는(나라의 융성이 나의 발전의 근본) 시대였다.
 
문민정부
(文民政府, 1993년~1998년, 김영삼대통령) 시절인 1994년, 국민교육헌장은 교과서에서 삭제되고 공식적인 기능이 사실상 소멸됐다.

 

 

 

 

학생의 공부방

  


..
























 

 

 

                       성호교 어린이들이 주로 애용한 문방구는 학교만큼이나 유명했던 학교앞 성호당과 우리문방구

 

 

 

  미술시간에 꼭 가져가야 했던 크레파스와 미술도구들을 아침에 잊어 버리고 챙겨오지 못할때도 많았고 애들은 초록색 책상에서연필 따먹기놀이와 연필촉부러뜨리기,지우개 따먹기놀이도 많이했었지.

 

 

등교때와 방과후에 등장했던  학교앞의  잡상인 :  번데기장수,버들붕어장수, 병아리장수,소년동아일보장수,생강엿장수,솜사탕장수,

 

 

                          음악시간에 그 무거웠던 무게로 인하여 당번이나 분단별로 교실로 들어날랐던 그 시절 강당의 풍금

 

 

 

 60~70년대 혼분식 장려운동으로 흰쌀밥만 싸오던 애들은 교육감의 점심시간 시찰에 선생님의 지시에 황급히 도시락 뚜껑을 닫았던적도 있었지.

반찬통에 고무밴드가 잘 벗겨져 가방에 김치국물이 흘러내려 애들 교과서와 공책에 배여버리기도 했던 선학 알미늄의 양은 도시락.

그때 그시절 그 추억속의 국민학교 시절에 학교종이 땡땡땡 이야기 모음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선생님이 우리를 기다리신다~♪♬
                 지난 2006년 2월 101세의 나이로 미국에서 작고한 
                  故김메리 여사가 1945년 광복 직후 작사·작곡한 동요다.

 

 

                 학교 종이 땡땡땡 어서 모이자~

                 동요(노래) 제목 : 학교종, (故) 김메리 작사 작곡 - 악보

 

 


              누구나 초등학교에 입학하면 제일 먼저 배우는 노래였다.
              노래말에 나오는 학교 종은 銅(동)으로 만든 작은 종을 손으로 쳐서 울린다.
              요즘은 학교 종 대신 차임벨 소리나
짧은 음악이 수업시간의 시작과 끝을 알린다.

 

 

 


우리 귀에 너무나 익숙한 동요다.
몽당연필로 침을 묻혀 누런 공책에 꾹꾹 눌러
글을 쓰며 공부했던 학창시절의 추억을 떠올리게 하는 학교 종소리.

이제 학교종은 역사가 오래된 학교에
간혹 기념물로 걸려있는 골동품일 뿐이다.
학교 종소리도 동요가사에나 남아 있을까 실제로는 듣기 어렵다.

 

수업의 시작과 마침을 알려주는

                  이 종은 1970년대 이후 방송시설이 발달되면서 사라지게 되었는데
                  수업을 시작할 때는 들어와 세번, 수업이 끝날때는 두번,
                  운동장으로 모여는 다섯번씩 서너번,
그리고 화재등 비상사태는 연속하여 쳤다

1. 양초로 반질반질 광을 낸 복도를 아이들이 쿵쾅거리며 뛰어 들어온다.

2. 칠판지우개를 먼지털이 뒷부분으로 두드리면 선명한 줄자국이 났다.

3. 백묵으로 칠판에 글씨를 쓰면 뽀득뽀득 소리가 났다.

4. 학교종 소리는 잃어버린 동심의 세계와 향수를 일깨운다.

 

[시험 볼때의 장벽? ]

[ 주산 수업시간 ]
 

[ 야외 사생 미술시간 ]


[ 신체검사 받던 날 ]


[고무줄 넘기 ]


[ 운동회 날 부채춤 ]


[단채 벌 받기 ]


이젠 아련한 추억으로 남은 그때 그시절
다시 돌아갈 수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국민학교시절의 추억


 






 






 






 




 

국민학교 시절 추억 더듬기

 

아~ 옛날이여!

예전 책상과 칠판.

바닦이 병으로 윤내던 판자대기 대신 장판인 것이 우리때와는 조금 다르지만 그래도 옛생각이나네요.

우리가 국민학교 다닐 땐 한반에 70여명이 있어서 책상과 걸상으로 가득 찻었는데.

책상 중앙엔 금이 그어져 있을 것이고 의자는 삐그덕 거렸지요.

무거운 걸상을 들고 기압을 받기도 햇고 책상밑에 숨어 만화책을 보기도 햇습니다.

 

점심시간인가봐요

책생위에 도시락이 놓여져있네요.

혼분식 검사를 위해 다들 복도로 내보낸듯.

밴또 속에 겅개는 무었일까요? 이미 까먹고 개구락지를 넣어논 것은 아닌지....

 

 

점빵풍경이네요.

뽀빠이 자야는 보이지 않는군요.

우리때 천원엔 행진점빵, 할매점빵, 각시점빵, 고씨네, 용태아찌네 가게가 있었습니다.

 

 

검정 고무신과 백목

고무신은 왕자표 고무신짝이 유명했죠. 바닦이 닳아 떨어질 때까지 신었습니다. 하얀 실로 꿰매신기도 했구요.

신발을 잊어버리는 경우도 허다햇답니다,.

칠판에 쓰여지는 분필 소리가 들리는듯 네요.

 

 

쌤삥가방이네요,

우리 초등때는 거의 책보였죠? 여자는 허리에 남자는 어깨에 둘러매고 다녔습니다. 

몇몇은 형이나 누나에게 물려받은 끈 떨어진 가방을 들고 다니기도 했죠.

 

꽃패(딱지)와 옷갈아 입히기.

꽃패에 쓰여진 글자나 별의 숫자에 따라 승부를 가리는 지금으로 말하면 섯다 패입니다.

뒤집어 놓고 손바닦에 입김을 불어 처넘기기도 햇죠.

일찌기 승부욕을 키우는 놀이였죠.

인형 하나 가질 수 없던 시절 여자들은 그림을 가위로 오려 옷을 갈아 입히기도 했답니다.

 

 

세븐업이 처음 나왔을 때 한친구가 칠업이라고 헀던 것이 어찌나 웃겻던지.

소풍갈 때 단골 메뉴였던 칠성사이다가 빠졌네요.

빈병은 청소도구이기도 했죠.

 

 

쉬운책과 어려운책이 같이 있네요.

점수따기엔 도덕이 제일이었고 숙제는 산수가 어려웠습니다. 전과 없으면 몸으로 때웠어야 햇죠.

난 지금도 구구단은 앞에서부터 이어봐야 나옵니다. 칠일은 칠, 칠이십사 ,실삼 이십일.....  초 칠해서 바닦 밀 때 열심히 외워둘껄....

 

 

책상 엄청 파였군요.

책받침 아니면 글씨 쓰기도 어렵겟어요.

책상 밑에는 코딱지도 많이 붙어있을겁니다.

 

 

석유곤노네요.

아궁이에 비하면 획기적인 것이었죠.

 

 

 1971년이면 내가 국민학교 2학년 때네요.

반공 방첩과 새마을운동이 한창일 때일겁니다.

중단하는자는 승리하지 못하며 승리하는 자는 중단하지 않는다.

 

아래 단스처럼 보이는 것이 그 옛날 금성테레비입니다.

밤마다 모여 나이살이 진또리하던 우리의 밤문화를 바꿔놓기도 했지요.

라디오로만 듣던 태권동자 마룻치 아랏치 대신 정글왕자 타잔과 나시찬 주연의 전우가 그자리를 대신햇습니다.

그 전엔 김일 레스링 보려면 천원 만화방에....

 

 

당시 필수품 성냥이네요.

등잔대나 부석짝위엔 항상 놓여져 있어야 햇습니다.

솔개비를 말아 뻐끔거려야 할 때도 필요했구요. 

이사 한번이면 몇년 쓸 성냥이 확보됩니다.

 

 

국어 산수 사회 자연 음악 미술 체육 도덕... 새책을 받아 책가오 쌀 때가 좋았죠.

 

 

작기장(노트)도 귀했죠.

저학년 때 큰 칸 넓은 줄에서 고학년이 되면 좁은 줄로 일관화 됩니다.

 

 

통신표.

품행은 단정하나 학엽성젹이 저조함. 음악가 미술가 사회가 도덕가

친구들과 잘 싸우고 주위가 산만함.

그놈의 도장 찾기가 왜 그렇게 힘들었던지....

 

 

 

  당시유행했던 마분지종이놀이 : 축구공 볼펜 튀기기놀이,뱀 주사위놀이,여학생 만화주인공 옷갈아입히기 놀이

 

 

라면땅,자야등은 대표적 군것질거리 -  여름에는 동네 구멍가게나 문방구,만화방마다 고무뚜껑이 달린 보온 하드통에서 하드를 팔았지.

맨 밑에것을 잘못 사먹으면 소금이 섞인 얼음물이 하드에 배여 짠맛의 하드를 먹곤 했었고...

 

 

                         설탕이나 사각 포도당에 소다를 넣고 대나무작대기로 휘휘젓어 빨아먹던 일명: 오리떼기

 

 

                                               일본어의 잔재로 경상도  남자어린이들의 구슬치기는 - 다마 치기

 

             귀했던 구슬은 유리알속에 십자모양의 무늬가 들어가 있던 구슬  : 일반 구슬 10 개와 바꿀수있었음

 

 

 

                                                               소풍때 선생님 선물로 빼놓을수없었던 담배

 

 

                                    5~6학년 자연시간에 필요했던 교재 : 전자석,꼬마전구 불켜기세트,전종세트

 

 

                                          60~70년대 금방과 시계방에서 제일 흔히 팔던 탁상용 자명종 사발시계

 

 

 

1971년 대한전선에서 처음 나왔던 흑백 텔레비젼 : TV가 집에 없던 애들은 친구집이나 만화방등에서 당시 TBC에서 방영하던 황금박쥐,타이거마스크,요괴인간등의 만화와 외화 사하라 특공대,5-0수사대.제5전선,등을 보았고 제일 인기있었던것은 역시 김일 프로 레슬링경기..

 

 

 

  인터내셔널 챔피언 김일의 특기는 박치기 : 천규덕 ,장영철, 여건부, 일본 자이언트 바바,그리고 사과를 손으로 쥐어짜던 일본의 에이껭 하루까,하마구찌는 김일과 천규덕의 더블매치 단골, 병따개를 팬츠에 감추고 반칙을 잘하던 아프리카의 압들라 부처,브라질의 보보 브라질, 과거 세계 레슬링 챔피언이었던 프레드 브라쉬,루우 테즈, 칼 곳지등도 보였지...

특히 장충체육관에서 저녁늦게 경기가 열릴경우 남학생들은 김일 레슬링 경기를 본다고 숙제도 안하고 다음날 등교해서 선생님에게 벌받기 일쑤였지...

 

 

       1971년 국민학교 2학년 당시 전국민의 심금을 울렸던 KBS 연속극 여로 - 여로 연속극이 종영된후 다시 영화로도 출시되었고 극중에서 태현실이 운영하던 감골식당이름을 따서 전국에 식당이름을 감골식당으로 바꾸어 간판을 달았던 집이 유행할 정도였던 ...당시  마산에서는 중앙극장 건너편 골목에 감골식당이 문을염.

 

 

     성호교 주변에 많았던 만화방 : 인기있었던 만화가로 임창,이근철,하영조,하정균,엄희자,박부길,박기정,이상무,길창덕,권웅,손우성,주영,추동성,고우영,조치원,신영식,신문수,이덕송,박기당,....

 

 

여름철 방역시 흰연기를 뿜고 달리던 기아자동차가 일본에서 수입하여 조립했던 삼륜차: 부림동 건널목 철길에서 레일때문에 무게중심을 잃고 자빠진 삼륜차를 애들은 자주 목격하기도....  

 

 

 

 

학교에서 선생님이 꼭 2명에게 할당량으로 판매했던 육영재단의 어깨동무는 볼만한것이 손오공과 구월산 유격대

그러나 그것보다는  새소년,소년중앙이 제일 인기있었던 잡지.

제일 인기없었던 잡지는 소년세계

특히 소년중앙의 부록 [도전자 하리케인]과 새소년잡지의 [바벨2세]와 고우영선생이 그렸던 최배달의 [대야망]은 남학생들에게 최고인기있었던 만화

 

 

                                          성호국민학교 3학년 시절 30원씩 주고 3.15 회관에 단체영화를 보러갔던 벤허

 

 

 

        1974년 국민학교 5학년때 학교앞 벽이나 동네곳곳의 벽마다 붙어있었던 [별들의 고향] 극장포스터 - 마산 중앙극장에서 상영된후 다시 태양극장에서 상영되고 다시 신마산 마산극장에서 상영되었던 최인호 원작 이장호 감독의 별들의 고향 1편.

 

 


동요 모음 - 이선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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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나네요 그때가....ㅋ
어렴풋한 추억이... 아련하게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