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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와 봉준호의 괴물[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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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씨~

2014. 5. 22.

  얼마전 이리저리 TV 채널을 돌리다가 우연히 봉준호 감독의 영화 괴물을 다시 만났습니다. 워낙 재미있어서 세번정도 본 영화라 채널을 돌리려는 찰나, 송강호의 대사 한마디가 저를 붙잡았습니다. 


"사망자인데요, 사망을 안했어요." 


  많이들 보셔서 아시겠지만, 송강호의 딸(고아성)이 괴물에게 납치당하고 난 뒤, 정부는 바이러스에 노출되었다는 핑게로 관계 당사자들을 모두 한 곳에 집단 수용시키고, 외부와의 소통을 단절시킵니다. 그리고 공무원들은 딸이 살아 있다는 말을 하는 송강호를 정신병자 취급합니다. 이 상황 자체가 바로 지금의 우리 모습을 보는 것 같아서 소름이 쫙 끼쳤습니다. 


  자.... 바로 그 상황에서 영화에서 그려내는 3부자의 대처 방법은 상당히 재미있습니다. 정작 모든 사실을 눈으로 봐서 알고 있는 송강호는 이러쿵 저러쿵 이야기를 해서 풀어가려고 하지만, 그와 공무원간에는 반투명한 비닐 장막이 가로 막고 있습니다. 사실을 이야기하는데도 미친놈 취급을 당하면서 이야기 자체를 들어주려고 하질 않죠. 


  할아버지인 변희봉은 뇌물을 주면서 공무원에게 사정을 봐달라고 합니다. 박해일은 니가 그러고도 민중의 지팡이냐면서 화를 냅니다. 변희봉이 표현한 우리 아버지 세대, 사회의 약자로서 살아남는 법은 바로 그러했습니다. 어짜피 이야기를 해봤자 통하지 않기 때문에, 사실을 알리고, 원칙을 따르기 보다는, 어떻게든 일이 되게끔 하게 하는 것이 중요한 것이죠. 원칙 따윈 일을 해 나감에 있어 하등 도움이 되지 않는 것입니다. 원칙을 지키지 않는 방법을 쓰기 때문에, 비록 그 돈을 받은 공무원이 나 몰라라 하더라도 어찌할 도리가 없을 겁니다. 애시당초 나는 아무 힘도 없고, 공무원, 정부가 뭔가를 해줘야만 되는 입장인 것이죠. 


  아버지 세대는 그랬습니다. 칼자루는 항상 정부가, 군부가, 법관이 쥐고 있고, 일반적인 시민,국민들은 언감생심 칼자루는 커녕 연필깎기 칼조차도 꿈꾸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강자들이 휘두르는 칼날에 국민들이 피를 보고 휘말리는 것은 그냥 운명일 뿐이었습니다. 할 수 있는 일이라곤 칼날을 피하거나, 칼자루를 틀어쥔 사람들을 회유하는 것 밖에 없었죠. 그래서 변희봉은 못난 아들이 총알 개수를 잘못 계산해서 죽게 될 때에도 별 원망이나 반항조차 하지 않고, 자식에게 얼른 도망가라고 손만 내젓습니다. 


  그에 반해 박해일과 송강호는 공무원에 대해 화만 내고 하소연만 하지 아무것도 얻어내지 못했었습니다. 사회적 약자가 강자와 협상을 하기 위해 어떻게 해야 되는지 모릅니다. 괴물은 주한 미군이 나오고, 미군이 방류한 폐수때문에 돌연변이가 되어 사람들을 집어삼키는 괴물이 나옵니다. 그래서 영화를 평면적으로만 보면 반미에 대한, 환경에 대한 영화라고 알기 쉽습니다. 하지만 인물 중심으로 보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괴물이 나타나고, 국민들은 죽어갑니다. 딸은 괴물에게 납치당하며, 딸을 구하고자 하는 아빠의 발언은 무시당합니다. 그 와중에 정부는 있지도 않는 바이러스 타령을 하면서 보균자가 국민들 틈에 있을지도 모른다는 말로 국민들을 서로 믿지 못하게 만들고, 국민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게끔 한강변 출입을 통제하죠. 변희봉이 가산을 탕진하면서 어렵게 총을 마련하고 한강변에 들어가서 괴물과 맞딱뜨리지만, 별 소득없이 변희봉만 죽습니다. 송강호는 잡혔지만, 박해일과 배두나는 자포자기하던 예전 모습과 달리 스스로 살길을 헤쳐나가고, 자기 나름대로 방법을 동원해서 조카를 찾아갑니다. 그리고 마침내 송강호는 소극적인 태도에서 벗어나, 인질극을 불사하면서 거대 조직과 맞서 탈출을 감행합니다. 결국 맞딱뜨린 괴물에 대해 박해일은 화염병을 던지고, 배두나는 망설임 없이 활시위를 당기며, 송강호는 마침내 쇠꼬챙이를 박아 넣습니다. 


  지금 괴물을 보면 이 영화에 담겨져 있는 모습은 우리 현실과 너무나 비슷합니다. 국민을 보호하지 않는 국가에 대한 차가운 현실이 담겨 있고, 국가에게서 외면당한 채 살고자 발버둥 치는 국민들의 가슴 아픈 단발마가 담겨져 있습니다. 한 발 더 나아가 전 국민의 무관심과 방조로 인해 거대화된 권력이 국민들을 삼키려 했을때 어떻게 저항 해야 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안타깝게도 괴물에서 결국 지키고자 했던 고아성은 죽습니다. 하지만 그 사건을 통해 고아성이 보호했던 아이는 살아 남습니다. 그리고 그 아이를 양자로 키우는 송강호의 모습은 예전과는 사뭇 다릅니다. 칠흑같은 어둠을 직시하면서 보이지 않는 것을 보려고 하죠. 그리고 그 어둠의 세력으로 부터 다음 세대를 지키고자 경계를 게을리하지 않습니다. 우리도 안타깝게 많은 아이들을 잃어버렸습니다. 하지만 영화에서의 송강호처럼 앞으로 더 아이들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해서 더 해야 할 일이 있을 듯 합니다. 


  그래서 봉준호의 괴물 지금 시점에 복기 한번 하시기를 권해 드립니다. 가슴은 뜨겁게. 머리는 차갑게. 이 시점에서 가장 적절한 말이 아닌가 싶습니다. 



  PS. 구세대의 대표가 변희봉이라면, 신세대의 대표는 박해일, 배두나입니다. 송강호는 기성세대 입니다. 맨 처음 괴물과 송강호 가족이 마주쳤을때,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지만 미련하고 아둔한 줄만 알았던 송강호는 괴물이 자기들을 보고 있다는 것을 제일 빨리 눈치 챕니다. 기성세대는 괴물에 대해 이미 제일 잘 알고 있었습니다. 모르는 체 하고 있었을뿐입니다. 하지만 괴물에게 제일 소중한 자식을 잃어 버리는 사람도 다름 아닌 바로 기성세대 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괴물에게 죽창을 박아 넣어 죽음을 선사하는 사명도 또한 기성세대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