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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영석 2013. 5. 1. 23:40


반려 동물울 키우고 싶다는 생각을 오래 전부터 하고 있었지만, 이상하게 고양이나 작은 개들은 별로 마음이 내키지 않았다.

덩치가 작다고 세계를 좁게 보는 것은 아니지만, 나는 속 좁아 자기 주위만 알고, 세계를 보지 못하는 사람들을 답답하게 생각한다. (분명히) 논리의 비약이겠지만  고양이나 작은 개들은 자기 코앞 밖에 생각을 못할 것 같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었다. 그래서 항상 큰 개를 생각하고 있었다.

그런데 마침 진도개 강아지를 만난 것이다. 진도개 또한 큰 개 종류에 속하는 것은 아니지만 ...


이름을 '프린세스'라고 지어 주었다. 처음에 보았을 때부터, 그리고  잠간 동안 같이 지내는 동안에 강아지의 '격조'가 엿보여 기품있게 자라라고 프린세스라고 불렀던 것이다. 나는 무게가 없는 사람, 격조가 없는 사람을 내심으로 썩 좋아하는 편은 아니다. 사회란 이런 사람 저런 사람이 모두 모여 살아야 하기에 함께 어울려 살지만, 될 수 있는대로 (외관만이 아니라 내면까지도) 아름답고 우아한 사람들과 같이 지내고 싶다는 것이 일반적인 심정이 아닐까...  야비하고 격조가 없는 사람들이 근본적으로 잘 못되었다고 생각하지는 않지만, 그런 사람들을 보며 "좀 더 잘 할 수 있을텐데... 잘 할 수 있도록 배울 수 있는 기회가 없었나 보다..." 하고 생각하는 내가 잘 못된 것일까? 그렇다고 그런 사람들을 경멸하거나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나는 단지 더불어 같이 지낼 때 두루두루 즐겁기를 바랄 뿐이다.

 

공부를 해서 지식이 있고 없고는 본인만이 관련된 사항이지만, 격조와 예의가 있고 없는 것은 삼대에 관한 우려를 낳게 한다. 본인이 노력을 하지 않으므로써 '부모가 가르칠 여력이 없었을 것이고, 본인은 아무런 노력을 하지 않았을 뿐이라, 자식에게 가르치고 보여줄 것이 없을테니 그 자식이 스스로 깨우쳐 배우지 않으면 그 사람의 다음 세대 또한 그 사람과 같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하물며 격조와 예의는 순전히 자신의 노력에만 달린 것이니....    

 

 

나는 프린세스와 아주 어릴 때부터 매일 거의 모든 시간을 같이 보낸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출퇴근을 같이 하고, 근무도 같이 하며, 산책도 같이 하고, 시내에도 같이 나간다. 물론 식당도 같이 가고 .... 평상시에는 자기 집에서 잠을 자지만, 날씨가 춥다거나 기분이 멜랑콜릭한 것 같으면 내 침대 곁이나 거실의 소파에서 잠을 재운다 (그런데 잘 때가 되면 거의 매일 같이 멜랑콜릭한 기분을 자아낸다-여우 같으니라고....).  

또 여우 같은 것은 차를 타고 목적지에 도착해 시동을 끄면 자다가도 얼른 일어나 내 뺨에 키스를 퍼붇는다. 분명 자기도 내리겠다고 아양을 떠는 것이다. 그래도 신통한 것은 나보다 먼저 차에서 내리거나, 내가 내려도 내리라고 말하기 전에는 차에 머물러 있는 것이다.  

 

출근 길이 2~3시간 걸리니 차 안에서 한잠 늘어지게 잔다. 회사로 들어가는 어귀에 내려주면 시속 30km 정도로 300m의 언덕길을 전력 질주하여 회사에 도착하자마자 친구들에게 뛰어간다. 아침 인사다. (회사에는 묶어 있는 커다란 진도견 숫놈이 두마리 있다.) 그리고 나서는  여기저기 구경하고 밖에서 돌아다니다 조금 피곤하면 내 사무실 한 구석에서 낮잠을 자거나 한가한 시간을 보내며 내가 일하는 것을 주시한다. 점심 식사 때에는 어김없이 나를 찾아 온다. 배 고파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같이 산책을 가자는 것이다. 우리는 한시간 동안 산으로 숲으로 산책한다. 프린세스에겐 내가 일하는 환경이 천국과 같다.  

 

반려 동물을 키운다는 것은 책임이 따르는 일이다. Cedric과 Delphie을 키우면서도 프링세스를 키우는 것 만큼 책임감을 느끼지는 않았다. 애들은 자신의 인격이라는 것이 있었고, 나 자신 하나의 불완전한 인간으로 또 다른 인간들에게 대하여 책임을 질 수는 없는 것이다. 물질적인 측면을 생각한다면 내가 아이들에게 대하여 책임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장래에 관한한 나의 책임은 아이들을 대신하여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 아이들이 자신의 미래를 결정할 수 있게끔 도와 주어야 하는 것이 내 책임인 것이다.  

그러나 프린세스와의 관계에서는 많은 것을 나 혼자 결정해야 했다.  가장 중요했던 결정중의 하나는 프린세스를 중성화 시키는 것이다. 즉 불임 수술을 해줄 것인가 말 것인가에 대하여 내 인생 전체를 통하여 그토록 심각하게 고민을 해 본적이 없다. 프린세스는 아무런 의견도 낼 수도 없이, 순전히 나의 결정에 의하여 그러한 중대 사항의 결과를 감수해야 하는 것이다. 정상적인 동물을 불임화 시키는 것은 자연적인 조처가 아니다.  프린세스가 새끼를 낳게되면 무척이나 예쁘겠지...., 그러나 그 새끼들이 분양이 되지 않는다면 어떻게 할 것인가?  예전에 친구가 새끼들을 안락사 시키는 것을 보았을 때, 비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새끼들이 동물이라서 우리를 위하여 아무 이유없이 그들을 안락사 시킬 수  있는 것일까?  난 살고 죽는 모든 것까지 auto-determination을 원해. 내 눈의 눈물은 내 손등으로 닦아야 하고, 내 삶에 있어서 앞으로 나아가야 할 문은 내 손으로 열기를 바래. 남이 내가 나아가야할 문을 열어줄 수는 없어. 난 남에 의하여 결정 지워지고 싶지도 않고, 또  남에게 책임을 돌리고 싶지도 않아.  

 

     

 

프린세스와 나는 등산을 자주하는 편이다. 등산길에 사람들은

"아저씨가 주인이세요?" 하는 질문을 자주한다. 그럴 때면 나는 

"강아지가 내 주인인지, 아니면 내가 강아지 주인인지 잘 모르겠는데요..." 한다.   우리가 꼭 소속되어야 할 이유가 있을까? 나하고는 달리 아마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꺼야 "너는 나에게, 나는 너에게 속해 있어. 그러기에 우리는 서로에게 길들여지고, 그러기에 더 즐거운 것이야."  많은 사람들이 소속되어 있지 않으면 불안해 하지.  아마 그래서 사막의 여우는 어린왕자에게 길들여지기를 원했겠지.

"프린세스, 우리는 마치 마치 캄캄하고도 커다란 방안에 비추는 한줄기의 빛 속을 함께 날아다니는 두개의 먼지와 같은 거야. 배우가 스폿라이트 속에서만이 존재하듯이 우리는 그 한줄기 빛이 비추는 동안만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이겠지. 그 빛의 경계를 벚어나면 마치 우리는 영원히 우주를 떠돌며 다시 돌아오게 될 날을 기다리게 되고, 만약에 빛줄기 속으로 다시 돌아 온다면 우리는 서로 다른 먼지와 함께 부유하게 되겠지.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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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정말로 고민을 많이 했어요. 지금도 뛰어 놀때 보면 저리 영리하고 예쁘게 생겼으니 후손을 남겨두게 했을 만도 한데... 하며 생각한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