leadership

오영석 2005. 2. 24. 16:59

한국은 동방예의지국이다. 국민이 아주 예의가 바른 나라이다.
그렇다. 그런데 아는 사람들 사이에서만 예의 바른 나라이다.

아침에 차를 몰고 출근하다 바로 옆집골목 사람과 마주친다. 아침에 출근하랴 바쁘기는 하지만 그래도 큰 미소를 지으면 “안녕하세요”라는 신호를 보냈다. 저 쪽도 큰 미소로 답한다. 먼저 나가라는 손짓을 하니 나 보고 먼저 가란다. 그래도 어찌 내가 먼저 갈 수 있나? 서로 앞서 가기를 양보했다. 이 모두 이웃 사촌이니 그럴 수 밖에 없다. 서로 아는 사이에 먼저 가겠다는 말이 안 된다. 예의를 지켜야지. 그렇지 않으면 나는 예의를 모르는 사람으로 주위 사람에게 찍힐 것이다.

큰 길로 나선다. 옆집의 그 남자는 벌써 앞에 갔다. 주위의 차를 둘러 보니 아무도 아는 사람이 없다. 이젠 나도 빨리 가야겠다. 옆차가 깜박이도 안 켜고 밀고 들어 온다.
“이 사람 보게?! 어딜 끼어 들려고 그래! 내가 끼어 들게 내버려둘 것 같아. 법으로 끼어들기는 금지되었어!” 나는 차를 앞차의 뒤꽁무니에 바짝 댔다.
옆차 주인은 약간 주춤하더니 막무가내로 밀고 들어 온다.
“내가 자길 언제 봤다고 차선을 내줘! 어림도 없지!”

어제 오전의 일이다. 건물의 문을 밀고 들어간 나는 뒤에서 뭔가 부딪히는 둔탁한 소리와 함께 단말적인 비명을 들었다. 한 외국인이 얼굴을 감싸고 주저 앉아있다. 나는 ‘이상한 사람도 다 있어’ 라고 생각하며 내 갈 길을 갔다. 볼 일을 다 끝낸 후에 우연히 오전의 그 일과 관련하여 친구의 이야기가 생각났다. 외국여행 중 앞에 나가던 사람이 자기가 문 앞에 올 때까지 문을 잡고 있더란다. 그래서 자기는 문잡고있는 사람 앞을 그대로 살짝 빠져 나갔는데 나중에 보니 뒤에 오던 사람은 문을 잡으며 ‘고맙다’고 하더란다. 그러니 오전의 그 사람은 내가 당연히 문을 잡고 기다려줄 줄 알았나 보다. 나도 바쁜 사람이데, 내가 왜 문잡고 기다려. 내가 자길 언제 봤다고.

그렇다. 한국말에 “내가 자기를 언제 봤다고” 하는 표현이 있다. 본적이 없으니 막 해도 좋다는 이야기다. 본적이 없으니 차선을 양보 해줄 필요가 없고, 본 적이 없으니 남을 배려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본적이 없으니 엘리베이터에 같이 타도 목례는커녕 못 본척한다. 그래도 감시해야겠기에 곁눈질을 흘끔 흘끔 한다. 왜냐하면 아는 사람이 아니니 불안하다.

아는 사람이 아니면 불안하니, 아는 사람으로 만들어야 한다. 그래서 만나면 학연.혈연.지연을 따져보고, 심지어는 개.고양이의 고향까지도 따져 보아 조금이라도 걸리는 일이 있으면 일단 안심이 된다

“’새끼 발가락’ 좀 보여 주세요. 어디 나랑 닮은 데가 있나 보게”


오영석

2002년 7월 23일, 경기 화성에서


주기 :
- 편의상 ‘나’를 주어로 쓴다. 나는 방문객이니 ‘나’가 될 수가 없으니까.
- 누구의 ‘새끼 발가락’인지 기억이 안 난다. 아마 李箱의 것인지도…

정확한 지적입니다.
아는 사람에게는 친절하고 모르는 사람에게는 난폭한 게 한국인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