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구경

우정(牛亭) 2010. 1. 18. 10:32

영국 구경(3) - "애수-哀愁 - Waterloo Bridge"

 

우리나라 사람들의 해외 진출은 1950년대까지는 아마도 외교 공관,

해외 이민, 유학생이 전부였고 그것도 주로 미국이었을 것입니다. 

 

1960년대에 와서 무역 상사, 외환은행 지점, 중동 건설회사의 순서로 일본과

미국에 더하여 유럽으로 확대되었는데 유럽에는 주로 런던에 지사를 냈습니다 

그러므로 지극히 한정된 사람들, 즉 외교관, 유학생, 특파원, 무역상사 맨이나

영문학자가 아니고는 영국에 대해서 특별히 아는 것이 별로 없었습니다.

 

런던에 도착하고 보니 영국에 대해서 아무것도 모르기는 나도 마찬가지였습니다.

 

 (나도 런던에서 가 볼 곳으로 겨우 생각이 난 워털루 브릿지를 뒤로 하고 찍었습니다.)

 

70년대에 두 번에 걸쳐 7년간 동아일보 런던 특파원을 지냈던 권상(후에

KBS 사장)는 영국 예찬론자가 되어 성공한 역사의 나라라고 찬양하면서

영국의 역사, 정치, 문화를 극구 칭찬하는 책을 세 권이나 썼습니다.

 

그가 소개한 일화 하나.   1970년대 한국의 유명한 여배우가 런던에 왔는데

런던에 대해 아는 거라고는 워털루 브릿지(Waterloo Bridge) 밖에 없어

그 다리를 꼭 좀 보여달라고 했답니다.

 

 

 

(Waterloo Bridge 파노라마 뷰)

 

그 여배우나 내가 워털루 브릿지를 아는 것은, 마치 요즈음 일본 사람들이 "겨울 연가"

(일본 제목은 '겨울의 소나타') 촬영 현장을 찾아 남이섬에 오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1940년에 미국의 MGM 만든 영화, 당대의 미남미녀 배우 로버트 테일러와 비비안 리가

주연했던 일차 대전을 배경으로 워털루 브릿지에서 만나고 또 끝을 맺는 비극의 영화, 아마도

일본 사람들이 애수(哀愁)라고 번역한 영화의 원제목이 워털루 브릿지(Waterloo Bridge)였기 때문입니다

  

 

 

일본도 아마 태평양 전쟁이 끝난 뒤인 1945년 이후에나 보았을 것이고 일본을 통해

우리나라에는 또한 전쟁이 끝난 1953년 이후에나 들어오지 않았는지 모르겠습니다. 

 

  

(테임즈 강과 워털루 브릿지)

 

이 워털루 브릿지는 1817년에 완공되어 유료 다리로 개통이 됐는데 이 이름이 붙여진 것은

당연히 그 두 해 전인 1815년에 벨기에 워털루 전투에서 웰링턴 장군 지휘 하의 영국과 프러시아 등

7개 연합군이 나폴레옹을 마지막으로 패퇴시킨 그 전투의 승리를 기념한 이름입니다. 

그러나 모양은 특별할 것이 없는 그저 그냥 다리입니다.

 

 

 

 

영화 워털루 브릿지의 촛불 클럽에서 이별을 암시하며 울렸던 Auld Lang Syne음악이 새삼 생각이 납니다.

 "Waterloo Bridge"는 원래 1930년에 연극으로 공연되었고 1931년에 처음 영화로 만들어졌다고 합니다.

 

우리가 아는 "애수"는 1940년에 리메이크한 영화로 1939년에 비비안 리 주연으로 공전의 힛트를 한

"바람과 함께 사라지다" 에서의 비비안 리의 인기에 힘입어 만들어졋다네요.  그녀는 원래 상대역으로

로렌스 올리비에를 원했다고 합니다.

 

이 영화는 미국에서 처음 상영된 1940년, 그해 11월에 벌써 중국에서도 "魂斷 藍橋"라는 이름으로 상영되어

미국시장 보다 더 인기가 있었다고 합니다.  특히 주제곡 "Auld Lang Syne" 은 중국어로 "友誼 地久 天長"로

번역되어 중국과 타이완에서의 인기는 이루 말할 수 없었다고 합니다.  마찬가지로 일본과 한국에서도

수십년에 걸쳐 인기를 누리고 있으며 특히 대만에서는 최근에도 영화관에서 상영될 정도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