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기행

우정(牛亭) 2010. 7. 13. 18:15

 

 

우정(牛亭)의 이탈리아 기행(4) 베네치아 구경

 

일년 반 동안 서울에서 국내은행과의 업무증진을 위해 열심히 일하는 한 편 이탈리아어()이탈리아

역사문화를 부지런히 익히면서 1997년 다시본점과 정례업무협의를 위해 밀라노를 방문하게 됩니다. 

 

이탈리아로 가는 김에 본점방문 날짜보다 일찍 도착하여 주말을 이용하여 먼저 베네치아로 구경을 갑니다. 

그때 마침 한국외대에서 이탈리아 어를 전공한 질녀가 파도바 대학으로 석사과정 유학을 와 있어 연락하여

베네치아 구경 안내를 부탁합니다.

 

              (밀라노 중앙역입니다.  베네치아로, 베로나로, 피렌체로 갈 때 모두 여기서 떠났습니다.)

 

 

(베네치아의 파노라마 뷰)

 

 

밀라노 중앙역에서 기차를 타고 베네치아의 산타 루치아 역에 도착하여

파도바에서 온 조카를 만나 드디어 베네치아를 둘러 봅니다.

 

(베네치아에 도착했습니다.)

  

물의 도시 베네치아. 산 마르코 광장과 성당, 운하, 다리, 곤돌라, 가면과 유리세공이면 베네치아는 

베네치아를 다 본 거라고 생각하기 쉽습니다.  아닙니다. 

 

우선 손쉽게 시오노 나나미가 쓴 "바다의 도시 이야기" 두 권을 읽어 보면  베네치아가 얼마나 위대한  

역사 현장인지 어렴푸시 느낄 수 있습니다.

 

 

(산 마르코 광장 앞에 섰습니다.)

 

 

                                                                      (안내해 준 조카와 함께 산 마르코 광장에서)

 

                                                                        

즉 베네치아 공화국은 1797나폴레옹에게 패망될 때까지 일천 년의 공화국, 즉 민주주의 역사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서울에서 만난 한 베네치아 청년은 이 사실을 아주 자랑스러워 했습니다. 

 

영국과 프랑스와 미국 등이 대헌장(Magna Carta 1216), 프랑스 대혁명, 미국 독립과 연방

헌법 들어 민주주의 발전이 그들의 전유물인 양 하면 아주 우습게 생각합니다.

                          

 

                                   

                                          (베네치아의 수상 택시 곤돌라)

 

6,7세기에 롬바르드 족과 훈족의 침략을 피하여 바다 가운데로 피난하여 세웠다고 하지요.

(대신 산 마리노는 산 꼭대기로 올라가 그 난을 피해 살아 남은 사람들이 입니다.)

 

바다 가운데에 나라를 세웠으므로 무역이 아니면 먹고 살 길이 없습니다.

 

 

                                                                  (베네치아의 다운타운 리알토 다리)

 

바람과 노를 모두 동력으로 이용하는 독특한 갤리 선을 만들어 아드리아해는 물론 동 지중해를 완전히

제압하고 국익을 위해서는 전국민이 똘똘 뭉쳐서 최선의 방법을 찾아 문제를 해결했습니다. 

 

 

(베네치아의 galley 선)

  

모든 국민이 무역과 전쟁, 경제와 안보에 귀천이 없이 참여했답니다.  무역 선에 노 잡이로 승선해도

제 몫의 무역을 할 수 있었고, 전투가 붙으면 노잡이들은 다른 나라 노예 노잡이들과 다르게 전원이 일시에

전투요원이 되므로 언제나 전투력이 두 배 이상입니다.  경쟁력이 비교가 안 됩니다.

 

                          ( 동방 견문록을 쓴 대 모험의 베네치아 상인 마르코 폴로: 1254-1324 )

 

 

세익스피어의 희곡, "베니스의 상인""오델로, 베니스의 무어인(人)"무대가 바로 무역의

중심지인 이  베네치아입니다.

 

                                                (베니스의 무어인, 오델로)

 

무역입국의 베네치아 답게 세계 최초로 상대국에 외교 사절을 상주시킨 나라입니다.

 

또한 베네치아는 세계 최초로 패키지 여행 상품을 만들어 판 나라입니다.   이슬람 점령 하에서

아무도 예루살렘에 접근을 못 했을 때에도 베네치아 상인들은 예루살렘으로 유럽의 성지순례단을

모아서 성지순례를 할 수 있도록 해 주는 여행 패키지를 팔았습니다. 

                                                        

산 마르코, 즉 신약성경 중 최초로 쓰인 것으로 추정되고 있는 마가복음의 저자가 베네치아의

수호성인이 된 전설도 시오노 나나미씨의 책에 의하면 재미 있습니다.  한 베네치아 상인이

알렉산드리아에서 전쟁의 와중에서 현지 사람으로부터  성인의 유골이라고 사 왔다고 합니다.

 

                                                                       (산 마르코 대성당)

 

이렇게 경제력과 국방력이 서로 상승작용을 합니다.  경제력이 있어야 국방력을 더욱 높일 수 있고

국방력이 있어야 경제활동을 지킬 수가 있습니다.  베네치아의 자유는 이 경제력과 국방력의

울타리 안에서 가능했다고 봅니다.

 

                                                                   (베네치아 카니발의 가면들)

 

베네치아는 일종의 해방구였으므로 무슨 사상이나 주장도 다 용납이 되는 곳이고 다른 곳에서는 금서(禁書)인 책이라도

여기서는 출판되는 곳이었답니다.  외부의 어떤 간섭도 배제할 수 있는 힘이 베네치아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베네치아 출신의 인물로 음악에는 "비발디"가 있고  또 그 이름도 유명한 "카사노바"도 있습니다.

 

(베네치아 음악을 꽃피운 안토니오 비발디 1678-1741)

 

 

                                                              (쟈코모 카사노바 1725-1798)

 

그래서 산 마르코 광장에 플로리안 까페(Caffe Floriano)라는 유명한 곳이 있다는데

나는 미리 알지 못해 찾아 가 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냥 광장에 서서 사진만 한 장 찍었습니다. 

 

              (이 광장 어느 곳이 아마도 "Caffe Floriano" 겠지요.)

 

Floriano 란 사람이 1720년에 열었다는데 이곳에는 당대의 세계적인 인물들이 다 이 카페에서

고담준론을 토론했다고 합니다.  여기서는 세계 최초의 신문을 사 볼 수 있었고, 어떤 사상과 주장도

펼칠 수 있었던 자유 공간이었다네요.  그 이름들이 괴테, 루쏘, 카사노바, 시인 바이론, 찰스 딕킨스,

마르셀 푸르스트 등등을 포함합니다.

 

                                        (그 유명한 Florian Caffe 내부입니다.)

 

나는 조카와 광장의 2층에 있는 근사한 식당에 들어가 점심을 먹었는데 그 식당 주인 말이

근년에 삼성이 베네치아 비엔날레를 후원했다고 하며 우리가 한국인이라고 하니 자기도

삼성이 한국 기업임을 안다고 자랑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