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과 스탈린은 왜

우정(牛亭) 2012. 7. 5. 18:09

 

모택동과 스탈린은 왜 한국전쟁을 시작했나? (2)

 

 

 

1945년, 히틀러를 베를린까지 밀어붙인 스탈린동구권에 그대로 주저앉으며

모두 공산주의 위성국으로 만들어 전 세계를 공산화 하겠다는 야망을 품습니다.

독일의  반쪽에 이어 이탈리아스페인이 그 다음 공산화의 목표였습니다.

 

 

                             (얄타 회담)

 

 

 

 

1949년에, 전승국 대표중의 한 사람이었던 장개석의 중국 본토를 모택동

공산당이 빼앗자 스탈린은 중국이 그 인적자원으로 아시아에서 공산주의 지경

넓히는데 아주 유용하겠다고 인식하게 되었습니다.

 

(1949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 선포)

 

1945년 8월, 소련은 뒤 늦게 일본에 대한 선전포고를 하며 만주로 뛰어들자마자

일본이 원자 폭탄으로 항복을 해버림으로 평양까지 순식간에 내려오게 되고, 여기에

섞여서 따라온 소련군 소령 김일성이 임시방편의 인민위원장 감투를 얼결에 쓰게 됩니다.

 

 

1948년 북한 정권을 수립한 다음, 1949년 3월에 스탈린에게 알현을 와 남침을 승인하고

지원해 주기를 요청했습니다.  그러나 미국과의 대결을 꺼린 스탈린은 즉각 "NO!" 합니다.

 

 

(1946년 김일성)

 

 

그러나, 1949년 5월, 북한의 국방차관을 모택동에게 보내 김일성의

남침 계획을 전했을 때, 모택동은 즉각 찬성과 지지를 약속합니다.

 

단, 중국 장악이 완전히 정리되고 난 1950년 상반기 쯤이 좋겠다고 했습니다. 

심지어 모택동은 “중국군을 투입해도 모두 머리가 새카맣기 때문에 미국군은

중공군인지 북한군인지 전혀 구별하지 못한다.“고까지 했답니다.

 

처음 생각은 이렇게 비밀리에, 비공식적으로 군대를 투입해 주겠다고 했습니다.

 

(1950년 모스크바의 모택동)

 

그러나 1950년 2월, 모택동이 모스크바를 방문한 이후에는

아주 공개적으로 미국과 대결하겠다고 입장을 바꿉니다.

 

“스탈린을 대신해서 미국과 싸울 테니 그 댓가로 소련은 중국에

기술과 장비를 주시오.“ 하는 것이 모택동의 계략이었습니다.

 

장개석이 대만으로 다 가져 가버린, 공군의 전투기와 해군의 함정이

절대로 필요한 모택동은 한국에서의 전쟁만이 이것을 얻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라는 사실을 깊이 깨달은 것입니다.

 

1950년 1월, 김일성은 소련 대사 스티코프에게 “이제 중국은 해방(공산화)을

완성했다.  그 다음은 조선이다.  스탈린의 승인을 받아야겠다.  만약 승인을

해 주지 않으면자기는 모택동 휘하로 가겠다. 모택동은 이미 지원을 약속했다.“

압박합니다.

 

이 보고를 받은 스탈린은 1950년 1월 30일 모택동이 모스크바에 있는 동안에

모택동에게는 한 마디도 하지 않고서 김일성에게 “도와 주겠다.”고 하면서 중국에는

절대 말하지 말 것을 명령합니다.

 

한국 전쟁이 스탈린에게 줄 수 있는 이점은 엄청났습니다.

 

1). 소련의 신무기(특히 Mig기)를 실전 테스트하고 미국의 기술 수준을 탐지할 수 있다.

2). 중국과 조선은 완전히 소련의 무기에 의존하기 때문에 전쟁 수위를 조절할 수 있다.

3). 미국의 아시아에서의 대 공산주의 전선에 참여 의지를 시험할 수 있다.

4). 중국 군대의 투입으로 미국을 아시아에 묶어서 유럽 공산화를 쉽게 할 수 있다.

 

 

 

1950년 3월 모택동이 모스크바를 떠난 뒤, 김일성이 모스크바를 방문했을 때 스탈린은

“이제 국제 정세는 많이 변했다. 중국이 도와줄 수 있다. 그러나 반드시 중국에 의지해야

한다.“며 상세한 전쟁 계획을 만들고 만약 실패하면 모택동에게 부탁하라고 합니다.

 

(중소 우호동맹 상호협조조약 체결 기념 우표)

 

 

1950년 5월 13일 김일성이 소련 비행기로 베이징에 날아가 스탈린의 승인을

모택동에게 알립니다. 그날 밤 11시 30분 주은래는 소련 대사에게 이 사실 확인을

요청했고 그 다음날 모스크바에서“김일성이 전쟁을 시작할 수는 있지만, 모택동과

의논해야 한다.“는 답을 받습니다.

 

1950년 5월 15일, 이 답을 받은 모택동은 “미국이 참전하면 중국이 지원한다.

소련은 미국과 38선 약속이 있어 참전하기가 어렵지만 중국은 그런 약정이 없다.“

라고 답하여 1950년 5월 16일 모택동에게 스탈린이 최종 승인을 합니다.

 

 

 

 

 

 

뒤에 스페인 공산당 당수 Santiago Carrillo 씨는 김일성에게 직접 들었다고 증언

했습니다. “한국 전쟁은 김일성이 시작했고, 모택동이 스탈린보다 전쟁 개시에 훨씬

더 적극적이었다“고 했답니다.

 

 

                                                       (6.25 전쟁 사진들)

 

이렇게 김일성은 소련제 탱크와 대포를 앞 세워 1950년 6.25를 일으켰습니다.

중공군의 참전까지는 계속 스탈린과 모택동 사이에 교묘한 밀고 당기기가 이어집니다.

(계속)

 

 

퍼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