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택동과 스탈린은 왜

우정(牛亭) 2012. 7. 9. 12:26

 

모택동과 스탈린은 왜 한국전쟁을 시작했나? (3)

 

 

 

이렇게 전쟁은 시작되었습니다.

 

 

(부산에 상륙하는 미 해병대)

 

                    (공산주의 실체를 겨우 깨달은 트루먼 대통령)

 

 

미국은 우리 정부가 그토록 간절하게 요청한 군비증강을 외면하고 일본만 지키면

된다고 생각했다가 결국 남침을 당하고 나서야 뒤늦게  그나마 상황을 파악하고

다행하게도 즉각 UN 안보 이사회를 소집하여 신속하게 UN 군의 파병을 결의합니다. 

 

트루먼은 그제서야 공산주의자들의 의도를 깨닫고 베트남의 프랑스 군도

지원하게 됩니다.

 

 

그 때까지 안보리의 상임이사국인 중국의 대표권은 장개석의 대만 정부였습니다.

모두 당연히 소련거부권을 행사할 줄 생각했지만 스탈린 생각은 따로

있었습니다. 즉 “서방 군대가 한반도에 참전해, 중공군에 의해 희생될

것을 기대”한 스탈린이 소련 UN 대표였던 Yakov Malik가 안보리에

불참하도록 했던 것입니다.

 

 

 

1950년 7월 1일, 주은래(1949- 외무 장관)가 소련 대사에게 “중국의 항공대와

함대를 증강“을 요청합니다.   중국이 한반도 전쟁을 지지한 진짜 이유

이것이었습니다. 1950년 8월 19일, 모택동은 스탈린 특사에게 “미국이 30~40개

사단을 보내도 갈아 뭉게 버릴 수 있다.“고 호언을 했습니다.

 

 

(낙동강 전선)

 

 

 (인천 방파제를 넘는 미해병대 상륙군)

 

   (인천상륙 후 인천 항 모습)

 

 

  (서울 수복 시가전)

 

1950년 9월 29일, 서울이 탈환되고 드디어 밀리기 시작하자 김일성이

스탈린에게 SOS를 칩니다. 중국의 “의용군(Volunteers)" 지원을 보내도록

해 달라고. - 웃기는 용어 아닙니까? 의용군이라니 공산당 정부와는 상관없이

스스로 참전하는 군대다?

 

 

 

 

10월 1일, 김일성의 SOS를 받은 스탈린은 북한의 패전에 대한 아무 책임도

없다는 듯이 뻔뻔스럽게 모택동에게 신호를 보냅니다. “움직일 때가 왔다”고.

“나는 모스크바에서 먼 곳에 휴가를 와 있어 한반도 사태에 좀 멀어져 있는데...“

”북한에 5~6개 사단의 군대를 38선으로 보내도록.....‘의용군’으로 해서“라는

요지를 보냅니다.

 

 

10월 2일 오전 11:00 모택동이 즉각 명령을 발령합니다. 군대를 조중 국경으로

이동해 “언제든지 넘어갈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그리고 소위 정치국 회의에

“미국과의 전쟁 안(案)”을 올립니다. 정치국은 의결기관이 아닙니다. 그러나

반대 의견도 좋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제2인자 유소기(劉少奇), 명목상 군사 책임인

주덕(朱德)이 반대를 했고, 특히 임표(林彪)가 강력히 반대합니다. “미국이 중국의

주요 도시와 산업시설을 폭격할 것이고 원자탄도 쓸지도 모른다“는 의견이었답니다.

 

주은래(周恩來)는 영원한 2인자답게 아주 애매한 태도를 보입니다. 그래서 훗날

모택동이 “참전은 한 사람 반(半)으로 결정됐다.“고 했답니다. 한 사람은 모택동이고

반은 주은래였다고.

 

                                  (중공군 참전 준비)

 

 

모택동이 파병을 결정한 첫째 이유는 “미국과의 전쟁으로 중국 군대를 증강

하는데 필요한 것을 스탈린에게 얻어 낼 수 있는 유일한 기회“이기 때문입니다.

 

또 다른 이유는 “상당수의 버리고 싶은 인구”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이었습니다.

장개석과 전쟁 중에 무더기로 투항해 온 장개석 군대를 죽음으로 몰아내 버릴

수 있는 완벽한 기회라고 “심사숙고해 결정”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소련에 대해서는 값을 흥정합니다. “많은 동지들이 조심해야 한다고

한다. 안보내는 것이 좋겠다. 아직 최종결정은 안 했다. 의논하고자 한다.“

라고 뜸을 들입니다.

 

 

1950년 10월 5일, UN군이 계속 북진하자 초조해진 스탈린이 모택동에게

약속을 상기 시키며 한국전에 참전하지 않으면 어떤 지원도 없을 수 있다고

위협합니다. 1950년 10월 8일, 팽덕회를 “조선의용군” 사령관으로 임명하고

김일성에게는 도와주겠다고 타전하면서 한편으로 주은래와 임표를 스탈린에게

보내 보급물자 요구서를 제시하게 합니다.

 

 

 

 

 

1950년 10월 10일, 흑해 해변에 있는 스탈린 별장으로 찾아가자 대포, 탱크, 기타 장비 보급을

약속하면서, 돌연 7월에 한 전투기 1개 사단 124대의 지원은 2-3개월이 걸리므로 지금 당장은

할 수 없다고 합니다.  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지자 모택동의 끝없는 요구를 차단하기 위해 스탈린은

“그러면 참전하지 않아도 좋다”고 하기까지 압박합니다.

 

10월 13일, 모택동이 주은래에게 지령을 보냅니다. “우리는 꼭 참전해야 한다. 반드시 참전해야 한다.“고.

결국 모택동은 한 발 물러서며 “소련 항공의 엄호가 있든 없든 참전합니다.”하고 말합니다.

 

(모택동이 간절히 소원한 Mig 15 편대)

 

모택동이 소련대사에게 최종 확인을 합니다. “가능한 한 빨리 소련 비행단의

도착을 기대하면서(두 달 이내에) 참전한다.“

 

이렇게 ”1950년 10월 19일, 세계 공산주의 두 폭군의 야망과, 김일성의 지방 야망이 마침내

중국을 한국 전쟁의 지옥에 던져 넣었다.“ 고 이 중국 작가는 말합니다. 참전했던 중국

군대에게는 가히 지옥이었음이 틀림없었습니다.

 

(자유는 공짜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참전과 동시에 전쟁을 가로챈 모택동은 이익을 다 챙길 때까지 전쟁을 무한정 끌고 갑니다.

 

우리 민족이 모택동의 이익 챙기기로 말미암아 얼마나 희생되고 고통을 받았는지를

우리는 모두 똑똑히 알아야 합니다.  “모택동 한국전쟁으로 이익을 챙기다.”(계속)

↑↑↑↑↑↑↑↑↑↑↑↑↑↑↑↑↑↑↑↑↑↑↑↑↑↑↑↑↑↑↑↑↑↑↑↑↑↑↑↑↑↑
오래만에 좋은글 보고 가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