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3. 2. 10. 22:21

 

 

“그리하여 드디어 대대 인사과에서 전투 병과인 박격포 반으로 옮겨

포판수 직책을 받아 7중대로 파견되었습니다. 이제 나도 대대 본부

행정병이 아닌 전투 일선에 나서게 된 것입니다.

 

그러던 어느날 - 드디어 귀국자 명단에 나의 이름이 나왔습니다.”

 

 

“아, 청룡이여!” 원고는 이렇게 월남전 생활이 끝나고 귀국한 것으로

맺음을 했지만 사실은 아직 월남에서 못 다한 이야기가 남아 있습니다. 

 

7중대 배속 81mm 박격포반에서 귀국명령을 받은 것이 아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손’에 이끌려 오윤진 대대장님과의 인연의 끈이 이어지게

된 이야기가 있습니다.  즉 대대장님 편지대필 서사 행정병으로 대대장실

파견근무를 하게 된 이야기가 빠졌습니다.

 

(81mm 박격포)

 

                                  (박격포 사격 훈련)

 

 

박격포반으로 오니, 대대 본부에서는 내가(158기) 제일 말단이었는데,

우선 후임 졸병들(160기 이후)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나마 포판수

되었습니다.

 

당연히 식사 당번 같은 허드렛 일은 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이게 어딥니까!

 

81mm 박격포는 최고참 병장이 사수포각(砲脚)을 맡습니다. 그 다음의

부사수포열을, 그다음이 포판을 맡는 포판수이고 그 아래는 탄약수입니다.

 

 

                       (박격포탄과 상자)

 

 

천우신조로 내가 박격포반에 있었던 3,4 주간 동안은 작전이 없었고 훈련만

몇 번 했습니다.  박격포 설치 자리를 정하면, 먼저 포판을 힘껏 내려 쳐서

바르게 땅에 잘 박히게 합니다.  그러면 그 위에 포열을 세우고 포열에 포각을

맞추어 조립합니다.

 

 

 

 

 

사수가 목표에 맞추어 방위를 맞추고, 거리에 따른 고도의 각도를 조정하고 

장약의 수를 부르면, 탄약수들이 포탄을 조립하여 전달하고 발사를 합니다.

 

 

 

                                    (박격포 사격)

 

 

그러고 있던 어느 날 오후, 7중대 중대장실에서 호출이 왔습니다.

 

그때 2대대 7중대장은 이승호 대위(해사 12, 예비역 해병대 준장)였습니다. 

 

서울의 명문고를 졸업했고 미남이셨습니다. 몇 년 전 우연히 만나 인사드린

적이 있습니다. (바이올리니스트 김남윤 선생님의 부군이시죠.)

 

중대장님이 전화를 바꿔 주는데 받으니 본부 인사부관입니다.

 

“이장원!”

 

“네! 상병 이장원!”

 

“너, 대대 본부로 올라와야겠어.”

 

“아니, 왜요?”

 

“대대장님이 말야, 편지를 대필해 줄 사람을 당장 뽑아 오라는데

  너도 알다시피 대대 안에 너 밖에 누가 있냐?“

 

  (사실 내가 대대 전 대원의 신상을 다 알고 있었지요.)

 

“저, 다시 대대 본부로 안갑니다. 소대에 오니 후임도 있고 여기가

정말 좋습니다. 저 안갑니다.“

 

“야, 이장원, 그러지 말고 제발 와! 대대장님이 당장 뽑아 오라고 하셔.”

 

“저 안갑니다.” 완강하게 버텼습니다. 그랬더니,

 

“ 야! 중대장님 좀 바꿔!”인사부관이 이승호 중대장에게 전후사정을 이야기

하면서 당장 좀 보내라고 하는 것 같았습니다. 이윽고 이승호 중대장께서

정색을 하고 명령조로 말씀하십니다.

 

“ 야, 이장원! 너 당장 곤뽕 싸가지고 대대 본부로 가!”

 

(전투 중의 박격포 사격 그림)

 

 

그때까지 전투가 없었기 망정이지 실제 전투에 투입이 되면 과연 어떨까

속으로는 떨리기도 했던 터라  결국 못 이기는 척 하고 소대에 돌아와

신고하고 대대 본부로 들어갔습니다.

 

 

그 배경은 이러했습니다. 청룡여단이 월남에 상륙하면서 4 개월씩 각 대대 중에

2개 대대는 전방에서 전투를 하고, 1개 대대는 후방 근무를, 그리고 되었습니다.

 

처음 4개월은 1대대가, 그리고 두 번째 4개월은 3대대가 후방 근무를 했습니다.

 

오윤진 대대장의 제2대대는 첫 번에 이어 두 번째 4개월까지 계속 8개월을

전방 전투 부대로 있었던 거지요.

 

 (투이호아 지구 청룡1호 작전 전투를 지휘하는 오윤진 2대대장)

 

 

그러니 그동안 받은 편지에 제대로 답장을 해 줄 시간이 없어 쌓아 놓기만

하셨던 겁니다. 7개월 쯤 되었을 때(아마도 1966년 4월 쯤), 인사부관을 불러

‘글씨도 잘 쓰고 글도 좀 쓰는’ 대원을 당장 뽑아 오라고 하신 모양입니다.

 

인사부관님의 고민은, 뽑아 왔는데 이 사병이 만약 대대장님의 마음에 들지 않게

되면 어떻게 되나 입니다. 그래서 제일감으로 우선 나를 생각을 했지요.

 

 

 

 

사회적으로말하자면 대대 안에 유일한 동문(단과대학은 다르지만) 후배입니다.

그러나 한 편은 바로 얼마 전에 자신한테 대들어서 소총소대로 쫒아낸 부하

대원이기도 했습니다. 그렇지만 전쟁터에서 하늘같은 대대장님의 명령인데 어쩌겠습니까.

 

대대 본부 도착하니 인사부관이 바로 대대장실로 데려가 신고를 시킵니다. 

 

밀린 편지에 대한 부담이 크셨던지 대대장님께 인사드린 즉시 한 묶음의

편지를 던져 주시면서 “읽어 보고 답장 써 와!“ 하셨습니다.

 

 

 

                 (투이호아에서 대민봉사 활동으로 개최한 수영대회에서 우승자에게 시상하는 오윤진 2대대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