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3. 2. 15. 09:46

 

 

편지 대필 행정 비서

 

 

대대장실에 오니 여기도 식구가 만만치 않습니다. 하사관 운전병이 있고

당번병(164기 김영만)이 당연히 있습니다.

 

 

(김영만 전우의 고향 주소는 경기도 용인군 외사면 근창리였는데 -

현재는 백암면?. 2001년부터 각종 해병대 전우회 사이트에 접속하면서

찾았으나 못 찾았고 오윤진 장군님께서도 생전에 김영만 해병 한 번

보고 싶다고 하셨는데 결국 못 찾았습니다.)

 

 

대대장실에는 또 포항에서는 없었던 중대 연락병이라는 직책이 있었습니다.

각 중대(5,6,7 중대)에서 파견 왔는데 모두 무술 유단자들입니다. 실제로는

대대장 신변 경호가 그 임무인 듯 했습니다. 당번병을 빼고는 모두

나보다 고참이었지만 서로 직책이 분명하게 다르니 소대에서와 같은

특별한 고참 행세는 없었습니다.

 

(채명신 주월한국군 사령관 겸 맹호부대장의 청룡부대 방문)

 

오윤진 대대장님은 가족과의 편지를 제외한 모든 편지는 다 나에게

주시고는 답장을 써 오라고 하셨습니다. 그러니 매일 편지 쓰는 일이

내 과업입니다. 답장을 써 가면 대충 훑어보시고 그냥 보내라고

하시거나 정서해서 보내라고 하십니다.

 

어떤 경우는 한두 줄 첨삭하여 보내라 하시기도 했습니다. 가장 힘든

답장은 부대원의 전사, 전상자 가족에게서 온 편지였습니다.

 

그래서 한 번은 부대의 모든 전사자와 전상자를 파악하여 가족에게

편지가 왔든지 안 왔든지 모두 위로의 편지를 보낸 적도 있었습니다.

편지 대상이 너무 많아 대대장실 요원 모두가 달라붙어 얼마씩 나누어

맡아 쓰기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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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대대장실 근무가 한 달이 지나니 드디어 2대대의 전투임무

8개월이 끝나고 후방 경비대로 교체하게 되었습니다. 부대가 전부

다시 캄란 만으로 돌아갔습니다. 

 

(1966년의 캄란만 해변 휴양소.   베트남에는 지금도 이런 해변이 많이 있습니다.)

 

 

 

이제 귀국 때까지 전투는 없고 모두 항만 경비만 서면 됩니다.

 

한국에서 근무로 치면 항만 막사 생활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항만 막사(인천, 군산, 목포, 진해, 부산, 포항, 묵호) 근무 아무나

할 수 있는 곳 아니었죠? 엄청난 빽이 있어야 가능했습니다.

마지막 4개월은 그런 막사 생활을 했다고 보면 맞습니다.

 

 

(캄란만 해변 휴양소의 하늘과 바다가 평화롭습니다.)

 

 

후방 경비대로 빠지니 먼저 식사가 달라졌습니다.

 

이제 야전용 C-레이션이 아니고 후방용 B-레이션입니다. B-레이션은

1파운드 크기의 대형 통조림 통의 식재료를 간단하게 조리를 해서 단체로

각자 후라이팬과 캔틴 컵에 담아 먹습니다.

 

 

식사 후에는 남은 찌꺼기를 짬빵 통에 털고 식기를 비눗물, 더운물, 찬물

순서로 담그고 흔드는 식기세척을 합니다. 완전 미군부대 생활입니다.

 

 

(해변 휴양소를 다녀 오면서 월남인 주택 앞에서)

 

 

또한 순번에 따라 해변 휴양소로 놀러 가기도 합니다.

 

이렇게 후방 생활이 조금씩 익숙해지면서, 더러는 부대 밖 출입도 하고

(왜 나갈까요?), 더러는 피엑스 카드로 미군 피엑스도 이용해서 돈도

만들고, 또 누구는 미군한테서 건축 자재를 차떼기로 얻어와 월남

민간인들에게 팔기도 했다고 합니다.

 

 

(캄란 만 해변 휴양소에서)

 

 

그런 재미를 좀 볼까 했던 참에 오윤진 대대장님이 여단 본부의 작전참모로

발령이 나셨다는 겁니다. 졸지에 이 좋은 캄란 만 막사 생활을 제대로

해 보기도 전에 여단 본부로 옮겨 가게 되었습니다.

 

(대대장실 근무의 한 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