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3. 3. 2. 13:26

해병대, 그 이후”(2) 향토예비군 조직과 훈련

 

베트남에서 청룡부대가 막 호이안으로 이동하여 아직 진지 구축도 마무리

되지 못한 때였던 1968년 1월 21일, 김신조 일당의 청와대 습격사건이

발생했습니다. 

 

 

그리고 열흘 후 1968년 1월 31일, 베트남에서는 월맹군과

베트콩의 총공세인 구정공세가 있었습니다. 

 

구정공세로 베트콩과 월맹군은 엄청난 피해를 입었지만 미국 안에서의

반전 여론에 불을 지르는 데는 성공했고 결국 그 해 20만 추가 병력 파견

요구는 존슨 대통령이 거부하였고 이어서 미국 정부는 월남전에서 손을

떼는 수순을 밟기 시작합니다.

 

국내에서는 김신조 습격 충격으로 비상이 걸리고, 군 복무는 연장되며 즉각

향토예비군을 조직합니다.

 

 

나는 이미 1967년 8월에 보름간의 재훈련 소집도 창원에서 마친 터여서

그 이후로는 일 년에 한 번 점호나 받으면 되었는데, 새삼 향토예비군 조직으로

직장 예비군에 편성이 되어 일 년이 아니라 한 달에 한 번씩 훈련을

받아야 했습니다.

 

 

 

(전역 후 창원으로 가 재훈련 - 요즈음으로 말하면 동원 훈련? -을 받았습니다.)

 

 

 

직장예비군을 편성하고 보니 대부분이 온전하게 군대생활을 제대로 한 적이 없는

날라리 군대였습니다.   그나마 ROTC 출신의 휴전선 GP장 경력의 장교가 있어서

소대장을 맡고 내가 말하자면 분대장을 맡았습니다. 

 

 

마침내 직장 예비군 조직을 점검하려고 예비군 감사가 나왔습니다. 

 

 

육군 소령 감사관 앞에서 감사를 받습니다. 사무실에서 받는 감사이다 보니 

이동간 동작은 못하고 주로 정지간 동작을 해 보도록 합니다.

 

 

분대장인 내가 제병 지휘를 합니다.   기합이 바짝 든 월남전 참전

해병대 답게 구령을 부칩니다.   열중 쉬엇!  차렷!”  

 

 

오른편 어깨 총! 왼편으로 돌앗!  오른편으로 돌앗!

 

 

한참 듣고 있던 육군 소령 감사관이 어리둥절, 아니, 이게 무슨 소리요?

그제서야 사태를 파악하고 소대장이 설명합니다. 실은 분대장이 해병대

출신이어서 구령이 해병대 식이라 그렇습니다.

 

 

 

 

그 후 한 참 있다가 들린 바로는 이 멋진 해병대 구호는 육군의 숫자에 밀려 진부하기 짝이 없는

땅개 구령(우향우, 좌향좌가 뭡니까?)으로 통일되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오른편 돌아 갓! 왼편 돌아 갓! 얼마나 멋집니까?  이왕에 통일을 시키려면 숫자가 아니라

이렇게 멋진 순수한 우리말의 해병대 구령으로 발전적으로 통일이 되었어야지요.

 

 

너무 아쉽습니다. 진해 훈련소 4주차부터였던가요?  제식훈련. 정지간 동작,

이동간 동작, 집총동작.   훈련 때에는 꼭 있게 마련인 한둘의 고문관들로 단체기합,

모두 다 잘 맞을 때까지 기합, 기합.  거의 의장대 수준(?)이였지요?

 

 

그렇게 직장예비군을 거쳐 작은 직장으로 옮기면서 지역예비군에 들어가고

허허벌판이던 잠실 땅 빈터의 버드나무 숲에서 훈련을 받았는가 하면

세곡동 예비군 훈련장 만들기에 동원이 되기도 했습니다.

 

(지역 예비군에 소속. "일하면서 싸우고 싸우면서 일하자")



 

 예비군복에, 모자에, 혁대까지 갖추어야 했고, 동 사무소 앞에서도 모이고,

동네 초, 중, 고등학교 운동장에서 새벽 6시 컴컴한 때에도 집합했습니다.

 

 

이윽고 강남 땅이 모두 온통 아파트로 채워져 이제는  모일 수 있는 빈터도

없어져 버렸습니다.  비라도 올라치면 집합 장소가 없어 광림 교회에서 모여

김선도 목사 설교도 듣고 하면서 꼬박 달이면 달마다 훈련 소집을 받았습니다.

 

 

때로는 직장 일이 바빠서 한두 번 빠졌더니 고발을 당하여 경찰에서 수배가

내려지기도 하면서 만 35세가 될 때(1979년)까지 줄기차게 계속했습니다.

 

 

즉 그때까지만 해도 북한의 남침 위협이 피부로 느껴질 만큼 위험했다는

이야기가 됩니다.   지금은 예비군 훈련 얼마나 받나요? 

 

 

그 후 다시 만 36세부터 50세가 될 때까지 민방위 훈련으로 매달 훈련이

있어 꼬박 채웠습니다. 

 

 

해병대에, 월남전 참전에, 재훈련 소집에, 직장 예비군에, 지역 예비군에,

또 다시 민방위 훈련까지 꽉꽉 채워서 군대 관련이라고는 평생을 넌더리나게

훈련 받았습니다.

 

 

산업화 세대는 산업화만 한 것이 아닙니다. 안보와 경제를 위해 끊임없이

“싸우며 건설“해 나라를 지키고 일궈서 오늘에 이르게 한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