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9. 7. 27. 17:23

포병-짜빈동(4)

---------------------------------------------------------------------

初心

(이 아침 나는 전장에 다시서 있었습니다. 추라이 포병대대 상황실에서 짜빈동 전투

후에 있었던 어느 날 밤의 모습이 떠올라 목이 멥니다.)

 

잘 숙달된 포병장교(연락장교, 관측장교)의 희생을 막기 위한 대대장의 다급한 목소리가

긴장에 질식할 것 같은 상황실을 뒤흔들고, 대대방석은 쉴 새 없이 사격하는 포연인지,

안개인지 분간할 수 없었고, ~참 대대장 벙커 뒤쪽에 미군 8인치 포도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아마 짜빈동 전투 당시 이갑석 대대장의 생각이 그랬을 겁니다. 지금 이 글을 읽는

입장에서는 흥미진진할 테지만, 그 현장의 전우들의 그 때의 심리는 어떤 것이었을까?

생각할 수 있는 것은 그토록 절박한 순간을 경험하지 못한 자의 사치스런 생각 일지도

모릅니다.)

------------------------------------------------------------------------

그렇다 !!

 

짜빈동 진지 북 서쪽에는 늘 입에 오르내리는 일명 "돌산"이 있고 그 주변은 늘 적의

정찰병들이 밤 고양이처럼 늘 진을 치고 우리를 감시하고 있다고 생각되는 곳이 있었다.

 

그 사이에는 별다른 높은 엄폐, 은폐물이 거의 없다. 다만 돌산 남쪽부터 짜빈 마을로

연결된 유일한 예상 접근로는 물이 없는 건천이 있고, 아주 낮은 둑(:제방(堤防))이 간간히

있을 뿐이다.

 

바로 이 곳이로구나! 그러고 지금 공격 부대가 위치한 곳도 우물이 있는 렁네 집 일대이다.

어쩐다? 공격 대상지역이 뚝방 일대라는 판단이 내려졌다. 무얼 망설이나? 중대 지휘소로 무조건 뛰었다. 총알이고 박격포고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이때는 왠지 소총과 공용화기

소리만 요란하지 포탄 터지는 소리가 잠시 뜸하였다.

 

중대 지휘소로 단숨에 뛰어오니 지휘소 초병이 나지막이 "누구야!" 하고 소리친다.

"나다 이눔아!" 대답 들을 결을 도 없이 벙커로 들어오니 지휘소가 텅 비어있었다.

또 나만 두고 철수하였나?

 

---------------------------------------------------------------------------

(짜빈동 작전이 있기 전 - 푸옥록 전투의 전우들 - 나중에 푸옥록 전투에 이야기할 기회를 ---)

그 때 3대대 9중대에서 지난 19661120일 푸옥록 전투의 악몽이 떠올랐던 겁니다.

눈앞에 오리걸음으로 적들이 다가 온다. 중간 중간에 있는 공동묘지 비석 뒤로 까만

그림자가 숨었다 또 다가오기를 되풀이한다. 아주 가까이 20미 터 전방까지 적이

다가왔을 때 이었다. 내가 쏘아대던 M2칼빈소총이 사격도중에 고장이 났다 .방아쇠를

당겼더니 불발이다. 노리쇠가 노리쇠 홈 중간에 걸려 있었던 것이다.

 

조명탄이 꺼져 칠흑처럼 어두웠기에 적들이 나를 못 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너무 가깝게

적이 있으니 권총을 손에 잡고 적을 응시 하였다. 비석 쪽에 서너 발의 권총을 쏘고는

젖은 군화 발로 들어 누운 채로 노리쇠를 발로 차서 전진시켰다. 그리고는 다시 후퇴시키고 

또 약실에 발로 차서 집어넣었다. 또 다시 발로 차서 탄알을 제거하기를 세 차례 하였다

 

그런데 하늘이 도왔나? 진흙투성이의 M2칼빈의 노리쇠를 군화바닥으로 찼더니 연발사격이 

가능하게 되었다. 적에게 연발로 난사하고 몸을 날려서 60미리 박격포탄 박스 뒤에 몸을

숨겼다. 다시 전투는 계속하였다 .

 

어찌나 몸이 닳았는지 총을 쏘면서, 엎드린 채로 바지를 입은 채로 소피를 보았다.

빗물과 진흙으로 범벅이 된 바지를 총알이 날아오는데서 벗은들 어찌한단 말인가?

, 불안하고 초조한 순간에 바지 속 허벅지 사이에서 느끼는 배설의 따스함이여...!

 

그 때는 정말 감사하였다 미제는 도 좋다는데 Colt병기창에서 만든 M2 칼빈이

우수하기는 하구나 - "쌩큐, 쌩큐"

 

오죽 다급 하였으면 관축장교인 내가 칼빈 소총 고장이 나서 다가오는 적에게 권총으로

응사를 하였을까?

 

그러다 보니 앞에 있어야할 전창우 소대장(9중대 1소대장)이 후방으로 후퇴하고 내가

최 첨병이 되었다. 잘못하다가는 우군 총에 맞을 지경이었다. 에구, 이런 변고가

있나? 허겁지겁 포복으로 1소대에 합류해야 하는 변을 당한 경험이 있었다.

--------------------------------------------------------------------------

그러니 외톨이 관측 장교가 되는 걸 겁내기 마련이었다. 이때 관측병은 관측장교가

전사한 줄 알고 중대본부와 합류하였으며 나와 떨어져 다니는 외로운 오리새끼가 되었다나?


나만 혼자서 소총분대와 함께 최전방에 소총을 쏘며 포탄유도를 하였던 악몽 같은

기억이 떠오른 거다.

 

그러고 보니 중대장이 안 보여 겁이 버럭 난 것이다. 다시 지휘소 왓찌(지휘소 당번

근무병)에게 물었다 - "중대장이 어디 있나?" 주간 OP쪽으로 상황 파악하러 갔다고

하였다. 적의 바주카가 전투 초반에 주간 OP를 중대 지휘소로 알고 사격 제1목표로

삼은 것이 기억나서 걱정스러웠다.

 

"위험해 빨리 중대장 모셔와!" 라고 근무병에게 소리치고는 내 본연 임무에 몰입하였다.

 

만사를 제쳐놓고 불빛에서 지도를 확인하고 상황 보고시작. 돌산에서 짜빈 마을까지

건천의 좌표를 따고(좌표확인) 사격임무 시작명령을 내렸다.

 

잠시 후 첫발이 날아온다고 무전에서 "떴다 OP" 신호가 왔다. "OP 확인 좌로(L) 100,

줄이기(-) 하나 100" 을 되풀이 하였다. 그 정도면 관측 없이도 명중인걸, 평소에 잘

알고 있으니 확인 보고도 없이 시작되었다.

 

온 천지가 조용하다 !!!

 

아마도 주간에 그처럼 엄하기로 소문난 포병 대대장이 이곳에 화풀이를 하고 있으리라는

생각도 해가면서 속으로 웃었다. 당시 이갑석 대대장 부대는 군기가 세기로 유명하였다.


전쟁터인데도, 이곳에서 포병 대대본부 전 장교에게 밤새도록 완전군장에 부대 순찰이라는

미명(?)으로 기합(특별훈련)을 실시한 그런 포병 대대장이었다. 투덜대면서 기합을 받던

기억이 났다. 그리고 반은 졸면서 걸어가는 순찰 아니 기합을 받으니 대대장에게 속으로

궁시렁 대던 기억이 났다.

 

그래 실컷 퍼부어라. 어딘가는 숨은 곳에서 깨꼴락“(월남어 사망”)할 것이다. 그럼

그래야지 !!!!! 용기를 내어 중대 지휘소 옆으로 기어가서 몸을 낮추고 관측을 계속한다

탄착 확인을 안 하고 사격유도를 하면 아군이 죽는 경우가 허다한 걸 알기 때문이다.

 

-----------------------------------------------------------------------------

(글 내용에 갑자기 짜빈동 작전 이전의 이야기가 실려 있어서 혼돈이 있을 것 같아서

사족을 답니다. 해병의 청룡부대 작전 기록에서 정말 안타까운 일이고, 정확히 밝혀지지

않은 찬란한 전력이 있습니다.

 

푸옥록 고지의 전투입니다. 불과 2개 소대의 병력으로 월맹 정규군 1개 대대와 싸워서

승리한 전투입니다. 실제는 적군 2개 대대가 참전하였으나 나머지 1개 대대는 모루 망치

전법으로 해병대 9중대가 후퇴하면 전멸시키겠다고 후방 매복을 하고 있었기에 직접

전투는 없었습니다.

 

당시에 해병 9중대는 짜빈동과는 달리 아주 열악한 방위 조건으로 부대주변에 장애물이나

교통호도 없는 허허 벌판이나 다름없는 월남 공동묘지에서 적과 정면으로 전투를

하였습니다. 이 또한 기적이었고 해병대 상급부대에서 사실을 상세히 밝히고 세상에

낱낱이 밝혀졌다면 어떤 면으로는 오히려 짜빈동 보다도 더 훌륭한 전투로 각광을 받을

전투였다는 생각이 드는 전투였습니다.

이 때 외톨이가 되어서 포탄 유도도 하고, 적과 직접 소총사격을 하며 싸우던 외로운

관측장교의 공포의 순간들이 짜빈동 전투에서도 나타나는 것 같은 두려움을 표시한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