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9. 7. 27. 17:28

포병-짜빈동(6)

 

(우물이 있는 집에 살던 렁은 너무 어리기에 다른 해병들은 기억이 나지 않을 겁니다.

그러나 중대로 공수된 물로는 세탁 등으로 쓰기에 턱도 없이 모자라 그 집에 가지 않은

병사는 거의 없을 겁니다.

 

동네 아이들처럼 렁도 마땅한 놀이감도 없는 시골에서 조그마한 소녀들과 노는 경우가

많았지요. 그래도 짜빈동 촌장이 부대에 용무가 있었을 때는 어린 렁을 앞세우고 2번이나

우리 부대를 찾아왔습니다.

 

동네사람 10여명 앞에 렁에게 하얀 깃발을 단 막대를 들려 선봉에 세워 부대로 왔습니다.

제가 추라이 비행장에 있는 미군 구호단체(적십자사)에서 미국에서 온 구호물자(의류, 잡화

몇 가지)를 헬기로 얻어다 주었다고 바나나와 파인애플 등을 광주리에 담아서 가지고 와서

감사표시를 하였습니다.

 

의류가 전달 된 날은 온 동네가 (비록 체구보다 큰 옷이 많았지만) 미제 옷으로 넘쳐났습니다.

당시에 추라이 비행장 구호단체에는 영어만 잘하면 구호품을 쉽게 구할 수 있다는 사실을

대부분의 해병 부대원들은 모르고 있었지요.

 

틈틈이 C-ration이나 담배 과자류도 마을 사람들에게 주었습니다. 베트콩에게 전달되는

걸 막으려고 통조림은 반드시 작은 구멍을 낸 후에 주었고요. 체구가 비록 작지만 영리하고 

인정 많은 짜빈동 마을 사람들이 지금도 그립습니다.)

 

이제 숨을 돌리고 다시 중대 지휘소로 기어들어오니 중대장과 3소대 이수현 소위가 있었다.

이미 이소위가 지휘하는 3소대전방이 돌파 당하여 양쪽 동서로 분리되었고, 4.2인치 중포

포반 진지는 적군이 점령하여 격전 중이란다.

 

너무도 급박한 순간이었다. 접전소대가 양분되면 중대 지휘소가 노출되고 만다. 그런데도 

다행히 중대 지휘소로 직접 접근할 접근로는 급경사 지역이 있어서 야간에는 거의 불가능하다는

 점이 우리에게는 천만다행인 지형의 잇점이 있었다.

 

그러나 잔여 소대원들이 누구의 지휘로 전투할 것인가. 중대장이 3소대장에게 재배치

명령을 하여 3소대 이수현 소위가 본대로 달려갔다. 그러나 중대 지휘소의 분위기는

사기가 극히 떨어지는 짧고 무서운 시간이 흐르고 있었다. 이때가 정말 무서우리만큼

무거운 정적과 혼돈이 있었던 시간이었다.

 

관측장교의 할 일은 무언가???

 

중대 최전방 저지선이 돌파 당했을 경우 역습(逆襲)이야 소대장 중대장이 할 일이지만,

내가 우선 할 일은 무어란 말인가?

 

중대 진지 최 근접 사격으로 적군의 추가 병력 투입을 최대한 저지하고 역습을 도우는

길 뿐이다. 대대 작전에 초유의 근접 전투라는 상황보고를 낱낱이 짧게 했다

 

드디어 이갑석 중령이 직접 명령했다.

 

"박스인 준비!" 이제 나도 죽을 각오로 임할 순간이다. 내가 쏜 대포에 내가 죽을 수도

있다는 각오로 임할 수밖에 없다. 정말, 이판사판인 공포의 포병사격 임무이다.

.

적군과 아군이 뒤엉킨 지역이니 우군인 우리 해병의 안전에도 확실한 보장이 없는

전율의 포사격이었다.

 

-- 전 중대원!

-- 포탄발사 신호 직후 전원 호 속으로 몸을 숨겨라!

-- 진내사격이다!

-- 박스인이다 !

 

전 중대원에게는 진내사격이라고 소리치는 수밖에 없다.

 

보병이 박스인(포병전술 음어(陰語))이라는 용어를 이해시킬 수도 없으니까 말이다.

나도 긴급 지휘소에 몸을 숨기자 하늘에서 포탄 날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전원 호 속으로! 호 속으로!"

 

--우욱

씨욱 씨육 쓔-우욱

 

그 순간 천지가 진동하는 소리가 난다

 

연거푸

짜짜창 쾅 쾅

짜짜창 쾅 쾅..... 짜짜창 쾅 쾅 짜짜창 쾅 쾅

 

피아가 정신이 없다

 

그것도 탄종을 HE탄 순발신관(고폭탄이 땅에 떨어진 후에 폭발)으로 쏘다가 VT신관(지상

20미터 상공에서 자동 폭발하는 특수 탄종)으로 변경한 가혹한 포탄의 포사격이었다.

호 속에 있지 않은 사람은 숨을 곳도 없는 무서운 공중폭발 포탄 종류였다.

 

거의 철조망에서 100m이내까지 근접해서 순식간에 대대 하나발(한 번에 24발이 동시에

한 지역에 터지는 집단적인 집중사격 법)로 포탄이 날아와 터졌다.

 

그리고 - 또 대대 하나발을 서너 차례나 하는 무서운 사격이다. 이 좁은 11중대 진지

주변 100m 이내에 한번에 24발의 대포탄을 동시 쏘아댄다고 생각해 보자. 진지 내외의

피아간 그 폭음이나 섬광으로 천지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 순간들이다.

 

어찌 이리도 모험적인 사격이 실시되었나하는 이야기는 당시 청룡부대 작전참모 오윤진

중령(당시)3대대 부대대장 차수정 소령(당시)의 상황을 다음처럼 설명하였다.

 

-- 11중대에서 포격소리만 희미하게 들리고 번쩍이는 섬광은 멀리서 보이는데,

-- 11중대가 어떤 상황인지 알 수가 없었다.

-- 모두 전사하는 건지 아니면 계속 저항하면서 승리로 전세가 변하는지 알 길이 없었다.

 

오직 포병통신인 관측장교의 무전기만 교신이 되어 상황실에서 김중위의 보고가 전황

정보의 90%였다고 하니 모험을 걸지 않을 수 있었겠나?

 

박스인 포탄 사격 후 다시 소총소리가 요란하였다. 마치 우군의 포탄 지원 사격에 힘을

얻은 해병들의 고함 소리라도 들리는 듯하였다.

 

3소대장 이수현 소위가 전방 제1선 이 무너졌다고 중대본부에서 보고할 때는 정말 극도로

절망에 빠진 순간이었다. 최악의 전황인 그 순간에는 계급장을 떼고 포로가 되는 환상이

아주 짧은 순간에 들기도 하였다.

 

아마도 죽을 때 까지 해보자는 각오가 이럴 때 꼭 필요한 정신 자세이다. 이럴 때 누구

하나라도 사기가 저하되는 소리를 하거나 주저앉으면 패전의 추세로 순간에 몰리게 된다.

막상 큰 위기에 당하면 공포감도 없고 눈에 불똥이 튄다는 말이 맞는다. 이렇게 위험할

수록 지휘관의 탁월한 지휘와 격려하는 말이 꼭 필요하다.

 

악에 받쳐서 용전분투하는 해병혼이 있었기에 전세가 반전으로 갈 수 있게 된 것을

현장에서 보았다. 나가자! 앞으로! 라는 커다란 함성이 여기저기서 들리면 꺼져가는

불씨에 승리를 향한 투지가 살아 꿈틀 대었던 것이다.

 

, 장한 해병혼이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