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9. 7. 27. 17:32

포병-짜빈동(8)

 

<여명(黎明)>

 

수류탄 투척전도 한동안 벌어지고 있었다.

 

또한 적과 거리가 다소 떨어져 있는 1소대나 2소대 쪽에서는 철모에 위장용 나뭇가지와

풀을 꽂은 월맹군을 구별하기기 시작하여 해병들은 조준 사격도 가능한 시기였다.

 

더구나 날이 희미하게 밝아오자, 적군 속에는 4.2인치포 분대 벙커에서 우군의 개인

사물이 담긴 더플백을 노획하여 짊어지고 후퇴하다 사살되는 vietcong도둑(?)도 있었다는

뒷이야기도 들렸던 순간들이다.

 

창자가 나오자 손으로 배를 움켜잡고 수류탄을 입으로 까면서 저항하던 부하 해병의

모습에 눈이 튀어나오는 것 같았다.“ 던 김기홍 화기소대장의 이야기는 최악의 근접전을

했던 때가 이시기이다.

 

3소대 쪽 적의 주공 방향과 달리 2소대 (소대장 김성부 중위)는 조명탄이 거의 조명 효과도

없는 산 동쪽 하 경사면에 위치하였다. 적의 동태를 주시하며 거의 완벽한 방어를 하고

있었던 장한 소대이다.

 

잠간, 잠간 산발적인 총격전과 소총사격이 있었기는 하지만 타 소대에 비해서는 이

시기에는 너무도 조용해서 오히려 불안하다. 그래도 조명 요청도 없이 적의 접근만을

주시하며 철저히 방어하여 완벽하게 진지를 지키고 있었다.

 

주공 쪽으로 우군의 병력 집중을 막으려고 적들은 양동 작전을 하였는지도 모른다.

그랬다 3소대 쪽의 역습 돌파는 피나는 노력으로 죽음도 불사한 투혼의 결과였다.

그 결과가 적의 침공지역에 역습을 감행하여 성공적으로 재탈환한 것이었다.

 

적들은 AK자동소총으로 무장한 월맹 정규군 주력 부대였으나 해병 11중대는 2차 대전에

개발된 반자동식 M1소총으로 싸운 근접 육박전을 하였다. 근접전에서 자동총과 반자동

소총의 차이가 얼마나 큰가는 전투를 하지 않은 사람도 상상이 가능한 일이라고 본다.

 

너무도 열등한 기본화기인 M1소총을 가진 해병들의 악전고투(惡戰苦鬪)이었다.

 

정말 기적이다! 아니 해병들의 용맹의 결과이니 기적이 라고 말하는 것은 말이 안

되겠지만. 소총 성능의 비교만으로는 기적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근접전에서 반자동

소총이 자동소총을 제압하였으니 불가사의(不可思議)가 바로 이런 것이다.

 

(그림에서 1소대 쪽이 우물터 집 () - 중대 OP 남동쪽 바위와 경사진 면이 가장

근접으로 뚫린 3소대)

 

어찌 되었거나 돌파된 지역을 역습으로 완전히 탈환하였다. 적들이 너무 오래 시간 동안

한곳에서 우군에게 저지(沮止) 당하였다가 점차 어슴푸레 날이 밝기 시작하자 결정적인

전세의 역전이 되는 타이밍 시간이 시작이 된 것이다

 

게다가 강력한 포 사격으로 적의 지휘체계에 구멍이 날 만큼 최전방 지휘소에 타격을 주었다.

 

그에 더하여 적의 추가 지원 부대의 근접 지원이 거의 와해 된 것도 승기(勝氣)를 잡는데

큰 역할이 되었다고 본다. 더욱 중요한 건 적의 박격포와 로켓포 진지로 예상되는 지역에

강력한 대 포병작전을 감행한 포병의 역할이 있었다.

 

11중대 철조망에서 500m-1.5km 떨어진 지점들을 연속으로 이은 타원형지점에 계속해서

3개 포병중대와 155미리 육군 포병으로 쉴 사이 없이 포 사격을 하였으니 적의 박격포들이 

초반 30분 정도를 지나고는 감히 맥을 추지 못하였다.

 

호출부호 "촉석루"11중대 관측소 무전기이었다. 포병7중대의 6문의 대포는 촉석루만

가용(可用)함도록 확보되었다. 즉 관측장교 김중위 명령만 하달되는 임무를 수행하였다.

 

말하자면 전방 관측의 눈을 가진 7중대포로 섬광 하나하나 적 방향의 작은 움직임이라도

발견되면 즉시 사격을 가하게 된다. 간혹 소대장의 보고를 중대지휘소에서 전갈하여 그

지역에도 포 사격지원을 하였다.

 

아마도 3소대보다 다소 여유(?)가 있게 전방관측이 가능한 1소대장 신 소위의 보고가 제일

요청을 많이 하였다. 1소대 신원배 소위는 그 이전에도 다른 작전에서 포병 협동작전으로

짭짤한 전과를 올린 경험이 있었기에 포의 사격 지원 요청을 잘 활용하였다.

 

어렴풋이 물체의 윤곽이 점차 멀리 보이기 시작할 6시 무렵 1소대 전면에 큰 바위가 있고

그곳에 은폐한 적 10여명이 로켓으로 공격해 오는 것을 발견하고 소대선임하사 김용길 중사 

등이 수류탄을 다량으로 가지 가서 적을 섬멸하고 유탄포 3문 까지 노획하는 전과를 올렸다.

 

이때부터는 사실상 적은 훨씬 약화된 산발적 소총공격을 가해 올 뿐 진지 내에 서 있었던

전투는 종식 단계였다. 그러나 적들은 거의 완벽에 가까운 위장으로 공용화기인 기관총

공격이 있었으나 그것도 잠시였고 접근전 양상은 아니었다.

 

시체가 쌓이고 쌓인 지역이 특히 3소대 3분대 지역이었다. 적들도 자기편의 시체를 넘고

넘어 진지에 진입하느라 제정신이 아니었을 것이다. 전투에서 극도로 흥분하다 보면

무서움도 모르게 되는 순간도 있다. 그러나 극히 좁은 지역으로 계속해서 적들이 진입하다 

보니 아군의 수류탄과 공용화기의 효력이 배가 되는 현상이 있었던 것이다.

 

3소대와 1소대 전면에 시체가 많았던 이유는 바로 근접전에서 수류탄의 효과가 얼마나

큰가를 알 수 있다. 언제나 전투 후에 보면 월맹군이 던진 방망이 수류탄은 특히 비가

많이 오는 우기에는 불발된 수류탄이 많이 있었다. 바로 이런 사소한 것 같은 무기의

성능이 전투에 커다란 기여를 하였다. 비록 소총에서는 우리가 열세였으나 수류탄은

그 질과 양에 있어 우리가 절대 우세였다.

 

진지에서 800미터~1200미터 떨어진 곳을 관측하니 북서쪽 돌산 쪽으로 도주하는 아주

새까맣게 수많은 적들이 도주하는 게 보인다.

 

-- 아니 저리도 많은 적병들이 우리를 공격하였단 말인가? --

 

거리가 멀기는 했지만 개미 떼 만큼이나 많은 적들이 까만 옷을 입고 도주하는 장면은

믿어지지 않을 정도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