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9. 7. 27. 17:45

포병-짜빈동(10)

 

<전과 확대>

 

잠시 정신을 잃었던 기억은 나지만 그리 편히 누어있을 수가 없었다.

 

화급한 일이 3가지 떠올랐다.

 

우선 USMC 앵글리코팀에게 공군기 지원을 받도록 지시하고 요청을 확인해야 하고,

그리고 멀리 도망치는 적병들이 소총 유효사거리 밖에 있으니 포탄 유도도 계속 실시해야

한다. 4.2인치 박격포 진지 뒤에 위치한 106미리RR(Recoilless Rifle대전차무반동포)

적에게 공격 사격을 해야 한다.

 

이 세 가지가 급선무이다. 우선 공군지원도 일차 요청하였고, 포탄 사격은 쉽게 유도가

가능했다. 그러나 106RR(무반동총)은 누가 사수이고 부사수인지 아무도 몰랐다.

(그 이유는 아직도 모른다. 혹시 전사하였나?)

 

1년 전에 해병 1연대 1대대 106RR 소대장 근무를 하였다가 포병학교에 파견 교육을

갔었으니 106미리 무반동총 사격 기술은 누구 보다 자신이 있었다.

 

이럴 때 사격기술을 발휘할 줄이야!

 

탄약고에서 포탄을 가져오라 소리치고 무반동총 에 장착된 조준총 방아쇠를 당겼다

새 빨간 106RR의 예광탄이 멀리 도주하는 적들이 도주하는 곳으로 빨려 들어갔다.

 

명중하는 조준 총탄을 확인, 바로 106미리 방아쇠 누름 손잡이를 오른 손바닥으로 내려

눌렀다. 그 순간 후폭풍의 굉음과 함께 시커먼 연기를 내며 포탄이 적진으로 날아갔다.

이제는 누가 쏘아도 전과확대 단계이니 급할 게 없었다.

 

무반동총 후폭풍을 조심하라고 간곡히 지시하고 시범을 견학한 대원에게 불과 5분 정도의

사격 교육을 실시한 후에 대원에게 사거리 가능 거리에 있으면 계속 사격하라고 지시하였다.

승리의 예포처럼 생각되는 여유 속에 소대원들 모두들106RR 사격 구경만 하는 상태였다.

 

중대장에게 올라갔다. 철모도 없이 압박 붕대만 머리에 두른 채 중대 지휘소에 갔다.

또 중대장이 없는 것이다. 이런 제기랄! 이때 이상한 상황이 발생하였다.

 

낙오한 베트공 2 명이 진지 내에 있어서 이를 소탕하는데 중대장이 앞장서서 지휘하는 것

같았다. 그 중 한명은 저항하다 사살되고 한명이 중대 OP 아래 바위틈으로 숨어들었다.

머리를 내밀더니 다시 바위틈에 숨는 게 보였다.

 

"베트콩! 라이라이! 베트콩 라이라이!" 라고 중대원들이 소리를 질러댔다. 그러자 바위틈에

숨어서 - "아군이다." - 라고 소리만 친다. 어떤 말을 해도 아군이다!” 밖에 답이 없다.

이런 사태에서 적병 하나에 중대 전체가 묶여 있어서는 안 된다고 중대장이 판단하고

유탄발사기와 수류탄으로 사살하였다.

 

이로서 총성은 막을 내렸다.

 

<지원 부대 도착>


                                                                (지원부대 2대대 6중대 도착)


 

관측반: "미도파(대대 상황실), 미도파 여기는 촉성루(OP)"

대대작전: "여기는 미도파, 촉성루수고 많았다. 임무 끝 OVER!"

포병대대가 평소에 일주일 내내 포를 쏘아도 다 발사를 못할 포탄1500발을 불과 3시간

30분정도에 퍼부어대었다. 포병대대의 모든 대포 가신(대포를 지지하는 포 다리)

땅속으로 거의 반이나 박히는 처절한 사격 임무를 마쳤고 한다.

 

편각, 고각, 사각, 편사각, 장약, 탄종 중에 어느 하나라도 각기 맡은 병사 중에서

한 명이라도 오차가 있을 수 없는 게 포 사격이다. 그런데 전체 대대 장병이 모두

성공적으로 사격을 완수한 것이다.

 

그러고도 "모든 공훈(功勳)은 보병에게로" - 라는 대대장의 호소를 조용히 또 충직하게 그

명령을 받아드리지 않았던가?

 

이 점이 해병 포병의 정신적 승리를 입증하는 모습이었다.

 

헬기로 지원부대 2대대 6중대 병력이 도착하였다. 또 부상자 후송헬기가 선착하자 20

부장자들을 부축하여 탑승장으로 갔다. 그중에서 제일 먼저 복부 관통상을 입은 중환자는

마치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부축도 받지 않고 헬기에 올라타는 기적도 보였다.

 

나는 머리에 압박 붕대만 착용하고 오직 생명을 구해준 구멍 난 철모만 손에 들고서 다낭

해군병원으로 후송되었다. 후속으로 청룡부대장 김연상 장군을 위시한 많은 지휘부 장교단과 

특종기사를 송고할 조선일보 특파원 목사균 기자도 속속 진지에 도착하였다.

 


참고로 한국군으로는 최초로 전 세계 각국 신문기자들이 모인 기자 회견(주월 미사령부

작전공보실)에서 중대장 정경진 대위의 답변을 상기해 본다!

 

사회자 : “왜 여단 본부에서는 즉시 헬리콥터로 지원 병력을 보내지 않았습니까?”

 

정대위 : “헬리콥터를 보내려면 지원포격(支援砲擊)을 중단해야 하는데 포의 중단은 곧

우리중대의 전멸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나는 지원 헬리콥터를 보내지 말도록

요청하였습니다.”

 

그러나 전투에 지친 병사들은 지원 온 병사나 격려차 방문한 장교단과 인사를 나누기

보다는 목숨까지도 전우를 위하여 내던진 해병11중대원들의 주검을 두고 이국의

산골짜기에서 자꾸만 하늘을 보고 눈물을 참아야 했다.

 

살아남았다는 기쁨보다는 전사한 전우를 생각하며 맨땅에 주저앉아 어깨를 들먹였다.

처절했던 짜빈동 전투는 이로서 완전히 끝났다.

 

간간히 내리는 안개비 속에 강력한 치누크(Chinook)헬기의 회전익이 먼지를 날렸고

20여명의 부상병들을 태운 후 전장의 먼지를 일으키며 수직으로 하늘에 솟구쳐 올랐다.

 

피에 젖은 붕대로 몸을 지탱하던 부상자들이 탄 헬리콥터기는 전진(戰震)에 얼룩진 피와

온갖 한이 맺힌 전흔(戰痕)을 날리며 처절하였던 생사의 역사현장을 떠났다.

 

공포와 전율에 휩싸인 월남 촌민들을 뒤로 한 채로 군데군데 바나나 나무가 가득한

짜빈동 부락 위를 치솟으면서 비행기는 몸부림친다. 세상을 떠난 말없는 영웅들의 명

복을 비는 눈물과 비감(悲感)어린 기억들을 함께 싣고 조용한 월남의 아침 하늘위에서

바다가 보이는 동쪽으로 무겁게 날아갔다.

 

 

-- F I N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