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9. 7. 27. 20:09

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1)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

 

짜빈동 대첩의 화려한 명성으로 해병전사에서 그 빛이 묻혀버린 푸옥록의 전투는

이제 서서히 해병 모두에게서 잊혀지고 있습니다.

 

그 때의 용감한 전사들은 지금은 점차 찾아보기 힘들어 가고 있습니다.

 

투망작전의 귀환 중 짜빈박에서 월맹군의 매복에 걸려 너무나 많이 전사(32 )

부상(30 )을 당하였고 그 중에 전사한 소대장 2 (전창우 소위, 김진철 소위)

당시 선임하사 이영구(7년 전에 병사)가 세상에 없는 처지라서 안타깝습니다.

 

청룡 9중대의 푸옥록30고지 전투는 반드시 후배 해병대원의 정신교육에 꼭 전수되어야

하고, 해병전사에 당당히 그 진정한 모습을 보여야 합니다.

 

용안작전의 부분으로 취급되어 있으나 이 전투는 전사에서 독립적으로 부각시켜

주어야 합당합니다.

 

그 당시 전과는 추라이 지역 전투사에서 숫자상으로도 확연히 돋보일 만하였고

적 사살 110명이나 됩니다. 추라이 전선에서 이처럼 많은 적을 사살한 예가

짜빈동 대첩 이외에는 없습니다.

 

용안작전 초기에 2대대의 고전으로 피해가 막대할 때 대규모 부대와 싸워서

추라이 지역에서 최초의 대 승전으로 청룡부대 전체가 사기충천의 계기다 되었고,

 

최전방 중대들은 포병 화력지원을 적절히 운용하여 작전에서 필승할 능력이 있다는 점

확인한 전투였기 때문에 전술, 전략적으로 월남전에서 중대전술에 전기(轉機)가 되었다는

면에서 다시 재조명하여야 합니다.

 

짜빈동 진지는 거의 완벽한 야전 축성진지의 방어전이었다고 본다면, 청룡해병 9중대

2개 소대는 전혀 다른 열악한 지형 조건이었고, 진지 역시 매복진지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습니다.

 

적 접근을 저지할 장애물은 물론 철조망도 없는 낮은 공동묘지 기슭에서 겨우 2개 소대

대원과 해포7중대 관측반 4, 81미리 박격포반 5, 월남육군2(통역), USMC ANGLICO

대원 2명을 포함하여 80명 정도의 병력으로 지역 베트콩 지원 병력과 월맹정규군

48대대 및 46대대의 합동공격을 격파한 위대한 전투였습니다.

 

청룡전사에서 이런 정도의 전과와 용맹을 보여준 사례가 없습니다.

또한 짜빈동 대첩 이후에 적들의 정보판단보고를 보면 푸옥록30고지 전투에서

 

치명적인 월맹군부대 피해는 포병의 막강한 화력 때문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이는 청룡 해병전사에서 포병의 역할을 재조명하고 또 이를 중시(重視)하는 재평가를

해야 합니다.

 

홍보 부족으로 이름만으로 겨우 존재하는 푸옥록 전투사를 이번 월남 탐방을

계기로 기억해 보려합니다 **

 

저는 푸옥록 30고지 전투에서는 적과 뒤섞이기도 하고 2~3미터에서 갑자기 다가선

적에게 권총도 쏘고 발길질도 하며 전투를 하였습니다.

 

제가 관측장교인데 3소대장 전창우 소위 곁에서 칼빈도 쏘아가며 포탄 유도를

하였습니다. 실제로 짜빈동에서도 백병전이 있었지만 그래도 철조망이라는

장애물과 교통호를 넘어오는 적들이어서 이동 동선에 한계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러나 푸옥록에서는 거의 4면에서 접근하는 적과 들개처럼 육박전을 하였습니다.

그리고도 대대병력의 적을 단지 2 개 소대가 물리 쳤습니다. 그래서 살아있는

9중대원의 한을 풀어주고 싶습니다.

 

정말 빛나는 청룡의 혼을 불사른 9중대원들입니다. 그 후에(1967110)

소대장 2명이 투망작전에서 전사하였고 선임하사 이영구 상사도 몇 년 전에

병사하였습니다.

 

당시의 전투소대장 김원식 소위(중령예편) 한 명만 생존하고 김윤형 대위님은

지금 포항에 생존하셨는데 몸이 병약하여 전화통화가 힘이 들 정도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