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9. 7. 27. 20:14

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3)

 

2. 최악의 지형 속으로

 

넓디넓은 들판 사이에서 적을 감제할 수 있는 30미터 정도의 작은 고지가 있었는데,

중대장 김윤형 대위는 3소대장 전창우 소위(해사19), 1소대장 김원식 소위(해사20)

그리고 관측장교 김세창 중위(해간33)와 작전회의를 하며 고심 끝에 연3일을

같은 숙영지로 결정하였다.

 

아니 이곳 이외에서는 우기에 물이 고여서 숙영할 곳이 없었다. 우리가 숙영할 30고지는

유일한 지역이었고 최악의 여건을 최소화할 수 있는 곳이기는 하나 참으로 위태하고

취약한 진지였으나 선택의 여지가 없었다.

 

진지 진입 위계(僞計)를 하느라 1시간여를 북쪽 산자락에서 휴식 겸 장비 점검을 하고

4시가 조금 지나 분대 단위로 분산해서 하루 전에 숙영했던 각자의 위치로 진입하였다.

 

그래도 걱정했던 적들의 부비트랩이나 지뢰가 없는 것을 감지하고는 포병본연의 작업을

시작하였다. 공동묘지에 바로 근접한 북서쪽 감제고지에 관측병 1명을 대동하고 관목

사이에 은폐하여 적을 관찰하는 일이었다.

 

서쪽으로 약 5000미터 지역은 개활지가 있었고 들이 끝나는 곳에 숲이 있고, 그 뒤는

굉장히 높은 산으로 이어저서 적이 자주 출몰하는 적색지역이었다. 집중하여 쌍안경으로

관측을 했더니 약 2개 소대정도의 검정색 옷을 입은 병력이 이동하는 징후를 포착하였다.

 

해포 7 중대(중대장 대위 최웅섭) 포로 10 여 분간 고폭탄(순발신관)으로 제압사격을 하였다.

그 후 어제 같은 시각에 중대 야간 방어를 위한 포병 화집점 사격을 전날과 똑같은 시간에

간은 장소에 반복 실시하였다.

 

이날도 역시 화집점 모두에 첫발들이 정확하게 명중하였다. 역시 장난기는 많아도 

전포대장 중위 정건영(해간 32)선배의 사격지휘 솜씨는 일품이었다. 포를 사격하여 

신속하게 명중탄을 때리고 나면 언제나 속이 시원하였다.

 

그러나 이 열악하고 좁은 지형에서 2개 소대의 병력과 소수의 파견병력 10여명(월남군

통역병사 2명 포함)이 하루 밤을 지낼 생각을 하니 그 위기감은 말로 표현할 수가 없었다.

내일은 여단본부 경비중대로 부대가 이동한다는 기대가 있어서 병사들은 다소 해이해질까

걱정이 되었다


산기슭 아래에서는 제1소대장 김원식 소위가 소대원들과 진지 작업으로 조명지뢰며

크레모아를 설치하는 게 보였고, 역시 여유가 있는 제3소대장 전창우 소위는 재빠른

작업으로 진지 작업을 마치고 소대원들에게 지시사항을 하달하다가 간간히 유모 섞인

말로 긴장을 풀게 하였다.

 

나는 좁은 진지지만 중대장이 위치한 곳에서 다소 3소대장 곁에 가까이 있어서 작은

소리라도 다 들을 수 있었다.

 

전창우 소위는 촌놈이었습니다. 나도 촌놈이라 서로가 그 정서에 썩 잘 어울렸는데

그는 특히 유머 감각이 뛰어났다. 해사시절에 럭비를 하였다던가....?

아무튼 내가 전창우 소위 땜에 질겁한 경험이 있었다.

 

우연히 소대에 배치된 신병 교육을 하기에 근처에 갔더니 3미터 정도에 십여 명이 앉아서

정신교육을 받고 있기에 무심코 바라보니 갑자기 전 소위가 수류탄 안전핀을 뽑아 소대원

곁으로 던지는 게 아닌가?

 

신입 소대원들은 놀라 자빠지고 나 역시 혼비백산... 모두 뒤로 넘어지고 엎드리고

난장판인데 .... 전 소위는 웃으며 서두르지도 않고 엎드리며 자기가 던진 수류탄을

덥석 잡고 철조망 밖으로 멀리 던젔다.

 

지상에 닿기도 전에 폭발하여 어안이 벙벙........ 제대로 교육을 하는 구나 감탄은 하였지만,

하마터면 제 2 의 해병 강재구가 되는 줄 알고 얼이 빠진 적이 있었다.

 

누차 말하지만 저는 원래 해병 1사단 1연대 2중대 소속 화기소대장으로 근무하였기에

보병들의 애로사항은 알지만 전창우 소위의 돌출행동으로 나 자신도 수류탄에 대한

공포가 다소 줄었다고 고마워했다.

 

2008-08-0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