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9. 7. 27. 20:19

푸옥록(phuoc loc) 30고지 전투(5)

 

그 큰 포탄의 위력은 관측장교인 나도 기절을 할 정도로 무섭게 그리고 가까이에서

명중탄이 떨어졌기 때문이다.

 

첫발 효력사가 명중을 하는 순간에 적의 기관총이며 소총공격이 침묵하는 듯하였다.

 

반대로 1소대 방어진은 이런 포탄의 소란이 반대로 사기가 충천하는 계기가 되었다.

그러고도 다시 중대 하나 발 명령을 같은 장소에 되풀이하여 적을 제압하였다.

 

상대적으로 보병은 해포대의 포탄이 터지는 소리만 들어도 사기가 크게 향상되는 건

참전한 경험자들은 누구라도 인정하고 있다.

 

중대본부반 61미리 박격포반원에게 조명탄을 쏘라고 중대장과 내가 소리쳤다.

전에도 경험이 있는 포반장은 박격포 반원들은 장약을 최소로 하여 조명탄과 고폭탄

포사격도 날렸다. 워낙 가까운 거리로 발사하기 때문에 터지지 않는 우리의 박격포 탄이

많은 것 같았다. 쏘고 난 후 박격포탄 터지는 소리가 나야하는데 대부분 터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다.

   

1소대 정면 동남쪽에는 조금 큰 참나무들이 있어서 어느새 나무 위에서도 적들의 사격이

시작되었다. 소대장 김원식이 즉각 명령을 하여 분대장들이 유탄발사기로 반격하였기에

이들은 바로 제압되었다. 바로 이곳이 월맹군 조공방향이었다. 월맹군 대대 CP

의무중대가 있었던 곳이다.

 

우리에게는 적의 주공인 3소대 정면 보다 전투 초기에는 더 강력한 화력으로 공격해왔기 

때문에 9중대에게 크게 위협이 되었던 적들의 공격 지점이다.

 

그러나 최초의 포탄에 대대 지휘 체계가 완전 제압되었다는 사실은 전투 후에 알려진

정보보고에 나타났다고 합니다.

 

1소대 정면에 큰 위협을 주던 MB 341, 342, 343이 제압되자마자 포의 방향을 3소대

전면인 동북쪽과 북쪽으로 포탄 사격 방향을 옮겼고 포병대대 조명탄 요청을 시작하였다.

 

최초에는 61미리 박격포로 조명을 시작하였으나 불과 몇 분도 못 되어 사용 불능이었다.

61미리 포탄도, 수량도 부족하고 비에 젖어 불발이 일수였다.

 

사거리가 멀었기 때문에 105미리 포로는 조명이 불리하였고, 더구나 주공인 3소대

정면과 포병진지 사이에 적군이 있어서 조명탄 사격은 아주 큰 위험이 되었다.

 

그래서 고노이 지역에 진지가 있는 4.2인치 박격포로 조명탄사격을 시도하여 61미리

박격포보다 훨씬 좋은 효과를 보았다. 81미리는 반원들 3명이 전투개시하자마자

전사하고 반장만 넋이 나갈 만큼 놀라서 정신이 없어서 작전 투입이 어려웠다.

 

반장 박 하사는 적 로켓포탄 폭풍으로 한쪽 바지가 거의 찢어져 날아가고 여기저기

피가 흐르는 맨살을 들어낸 상태에서 본부반원과 함께 전투를 하고 있었다.

 

지상 800미터 상공에 첫 발이 터진 후 낙하산이 낙하하므로 20초 간격으로 연속으로

쏘았다. 안개비가 내리는 구름 낀 하늘이기는 하지만 조명탄 낙하산이 바람에 흔들흔들하며 

4~ 5개가 계단의 가로등처럼 계속해서 일정한 차이를 두고 하늘에 떠서 천천히 내려오고

있었다. 전투상황이 아니라면 이보다 더 멋진 불꽃놀이가 없다는 생각까지 들었다.


                                        청룡 해포대 전포대장(송석구중위 관측장교  김세창중위, 정건영중위, 이인건중위) (1966.11.)

 

바로 이 순간이다.

 

적들의 함성이 들리기 시작하더니 호각 소리가 나면서 함께 수류탄이 우박처럼

쏟아지면서 여기저기서 마구 터졌다. 섬광과 폭음이 바로 옆에서 뒤에서 터졌다.

 

철모위로 흙과 잔모래가 금속성 소리를 내며 내려 쏟아 부었고, 목덜미로 모래와

잔 돌이 때려 쏟아지며 충격을 가하였다. 얼굴에서 피가 흐르나 보려고 흙 묻은

손으로 얼굴을 수시로 쓸어내렸다.

 

수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여기저기서 수류탄이 터지니 고막이 터지는 것 같고

또 고막이 터지는 것을 막으려고 입을 벌린 채로 엎드리다 보니 연기와 화염이

섞인 화약 냄새로 숨쉬기가 매우 어려웠다. 바싹 마른 입안에 모래가 버적거렸다.

 

최초에 공격이 시작되자마자 제일 급한 일이 화집점 번호의 확인이었다.

어두움 속에서 지도가 보이지 않았다. 아무리 급해도 낮으막한 개인호에서 후래쉬를

켜보았다 지도에 좌표가 모두 지워져 있었다.

 

세상에나 .....! 최전방 관측장교는 포병의 눈이다. 화집점 표시 좌표가 안 보이다니?

그 순간의 난감함을 어찌 표현할까? 그래도 다시 침착하게 판초를 뒤집어쓰고 엎드려서

후래쉬의 조명색 가리개를 더듬더듬하며 돌려서 제거하였다.

 

빨간색갈의 필터 카바를 벗기고 나자 지도위에 빨간색 글씨와 숫자가 선명히 보였다.

아마도 그 때 걸린 시간이 3초 정도였을 것이지만 어두움 속에서의 긴장감과 적들의

총격 폭음에 대한 공포심으로 수십 분이 걸린 듯하였다.

 

그래도 순간에 다시 좌표를 확인하고 그 뒤에는 지도 없이 기억으로만 포탄을 유도하였다.

어릴 때 시골 동네에선 동네 어느 집이고 제삿날을 모두 기억하신다던 저의 모친..... 


지금 생각하니 그 어머님이 새벽기도를 드리던 시간과 내가 적들과 격돌하였던 시간이

일치하여 나에게 큰 능력을 주신 것으로 지금도 믿고 감사를 올립니다.

 

2008-08-0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