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9. 7. 27. 20:45

푸옥록30고지(9) - 전투 후 철수이야기

 

청룡 투혼의 위대한 승리-푸옥록(phuoc loc)의 철수작전

 

19661120일은 하늘도 구름이 없는 쾌청한 날씨였다.

 

새벽에 4시간에 걸친 전투에서 온몸은 천근처럼 무거웠으나 살아있다는 안도감으로

빗물에 젖은 옷의 불편함도 잊고 잔디와 흙이 묻은 C-ration 깡통을 옷에 문지르며

아침을 마쳤다

 

2중대가 작전으로 전과 확대를 하는 상황이라서 경계에 특별한 관심을 가질 필요가

없었다. 마음은 다소 이완된 상태였으나 중대원들은 각자의 무기점검과 탄약 정비를

정성을 다하여 실시하였다.

 

60미리 박격포는 포탄이 바닥난 상태였고 81미리는 포반원 3명 모두 전사한 터라

포탄처리에 골몰하며 페기 처분하는데 애로가 있었다. 냇가를 지나오다 물이 있는

수풀 속에 버린 기억이 난다.

 

마지막 도보로 철수하면 1번 도로에서 차량으로 귀대한다고 하였다. 부대는 1

행군대열로 출발하면서 중대 본부는 중앙 위치하고 긴 대열로 출발하였다.

Vinloc(3)마을을 지나며 여기 저기 수색과 정찰을 하였으나 마을 주민들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먹이를 찾아다니는 돼지 두어 마리가 우리 밖에서 군데군데 지나다니고 있었다. 갑자기

두려운 순간이기도 하였다. 누군가 돼지를 보고 오조준으로 총을 쏘는 바람에 돼지들이

기겁을 하여 달아나고 바짝 긴장을 하고 행군하던 나도 화들짝 놀라서 명령 없이

총을 쏘았다고 고함을 쳤다.

 

늘 그러하듯이 조용한 마을이 두려웠다. 행군 종대로 개인간격 10보 정도로 유지하며

행군을 하다 행군속도를 조절하기 위하여 마을이 보이는 낮은 언덕 가까운 곳에서

중식을 하고 휴식을 취하였다.

 

오늘 새벽에 고장이 났다던 prc-10무전기가 작동되고 앞에 멀리 보이는 연초록빛 논에

어우러진 평화로운 마을이 정녕 그림 같다는 생각을 하며 잠시 오수도 취하였다. 햇볕이

뜨거워서 수건으로 머리를 덮고 앉아서 잠간씩 소위 겉잠(nap)을 청하기도 하였다.

 

간간히 들려오는 구형 무전기에서 희미한 전파로 들렸다 안 들리기도 하던 고전음악들을

내 혼자 즐기기도 하였다. 바하의 무반주 첼로음악처럼 나른함을 더해주는 그런 음악이

들리는 오후였다. 구형이지만 예비 무전기로 음악을 듣는 전쟁터의 행복한 낭만(?)

군인이 되는 멋스러움을 즐기던 순간이었다.

 

통신을 하다보면 미스터리처럼 아주 먼 곳의 전파가 잡힐 때도 있다. 당시의 무전기로는

20km의 거리도 통화가 힘 드는 무전기들이었지만 간혹 시간대에 따라 예외가 있다.

그 예로 추라이 지역에서 포병대대 작전상황실 미도파와 교신을 하다보면 밤 9시에서

11시 경에 한국에 있는 인천경찰서 무전이 월남에서 잡히는 경우도 있었다.

 

통신보안상 위법이기는 하지만 한번은 인천경찰서 경관에게 부탁해서 명동에 있는 나의

내자에게 월남에 있는 나의 안부를 전한 사례도 있었다. 바로 이런 것이 신비로운 전파의

세계이다. 간혹 KBS에서 방송되는 fm 방송이 오후 1시부터 5시 사이에 들리는 경우가

있었다.

 

prc-10에서 들리는 주파수대이니 일반 라디오에서는 들리지 않는 방송으로 미루어 당시

남산 KBS에서 남양 송신소로 보내는 주파수가 아닌가? 추측하여 보았다. 아무튼 이 방송

시간에는 거의 고전음악만 들을 수 있고 아나운서의 말소리는 거의 들어보지 못하였다.


중식을 마치고 1시간정도 휴식 후에 도중에 지나치는 작은 마을은 아무런 장애가 없었다.

오히려 그 순간 마을을 거의 지나 냇가를 건너가면서 행군 방향에서 좌측에 다소 경사가

급한 야산이 보였다. 이 산은 행군대열과 평행선을 긋고 있으면서 다소 경사가 급한

상태였고 나무가 그리 많지 않은 산으로 우리 측을 감제하고 있었다.

 

마을 주변은 개활지였고 논으로 이어져 지형으로 보면 적들이 있다면 매복 공격에 아주

맞춤한 곳처럼 보여 두려움이 들었던 기억이 생생하였다. 당시 9중대는 2개 소대이지만

전사자와 부상자를 제외하면 80명도 채 되지 않는 소부대이었다.

 

마을을 벗어나 냇가를 건너가는 중에 갑자기 수십 발의 총성이 울리면서 냇물에 있는

자갈 위로 총탄이 튀었다. 북쪽에 위치한 감제고지(瞰制高地)로부터 기습공격을 받은 것이다.

반격이라고는 생각할 겨를도 없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