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병 단상

우정(牛亭) 2019. 7. 27. 20:47

푸억록 30고지 전투(10)

 

냇가 바로 옆에 제방 위를 내가 걸어가고 있었는데 바로 그 우측에는 작은 저수지가

있었다. 중대장과 나는 급히 제방 아래에 엎드렸다. 연거푸 연못에 뛰어드는 개구리

떼처럼 후미의 부대원들이 그 좁은 제방 아래로 밀어 닥쳤다. 장소가 협소한 데다 제방이

낮아서 결국은 허리 정도 빠지는 자세를 낮추고 움츠리고 있었다


적들의 위치는 정확히 파악할 수 도 없었고 우군이 제방 아래로 대피하자 총성이 멈추는걸

보면 완전하게 우리를 감제하고 있다고 판단되었다. 다행히 부상자나 전사자도 없었다.

중대원 대부분이 못에 빠진 상태가 되었다

 

허리까지 물에 빠져서 불편하기도 하고, 적을 관측하려고 좀 더 얕은 곳으로 나아가 제방

쪽으로 이동하려는데 발에 무엇이 걸렸다. 구부리고 집어 올려보았다. 아니? 우리

청룡의 얼룩무늬 군복 상의와 빈 배낭, 철모, 탄대 등이 여기저기서 아주 많이 건져졌다.

 

어느 부대였던가? 며칠 전에 푸옥록 교량부근에서 보병 2대대가 크게 피해를 보아 1

소대가 거의 전멸하였다던 기억이 떠올라 소름이 끼쳤다. 우선은 제방에 가려서

직사화기를 피할 수는 있었지만 적들이 82미리나 61미리 박격포로 공격을 해오면 손 한번

못 쓰고 전멸할 상황이었다.

 

즉시 포병 사격임무를 요청하였다.

 

여기는 미도파, 촉성루 나와라

여기는 촉성루 사격임무 좌표.........”

촉성루 여기는 미도파 사거리 미달로 지원사격을 할 수 없다

 

포병대대 작전참모 이병무 대위의 마지막 대답에 하늘이 노랗게 보였다.

 

청룡 해포대 지원사격 범위를 벗어난 지역에 있다는 것이다. 이때의 시간이 거의 3

경이었다. 정말 사전에 이 지역이 포병지원 사거리에서 벗어난 지역이었으면 철수계획을

변경하였어야 했고, 여단 본부에서는 수송차량과 접선하는 위치도 변경되었어야 했다.

 

더구나 제2대대 6중대가 피습되어 많은 피해를 본 바로 그 지점을 통과 시켰으니 마치

호랑이의 입에 머리를 드밀어 넣는 꼴이 되었다. 저수지 수면 밑에 가라앉은 해병대의

의복과 장구들이 바로 6중대 어느 소대인가 전멸하였다는 확증을 주는 무서운 곳이었다.

 

속수무책이라는 말이 바로 이 순간이었나 보다. 해포대 지원이 불가하다는 보고에 중대장

김윤형 대위도, 소대장들도, 분대장들도, 대원 모두가 잿빛처럼 창백하게 변하고 사기는

완전 바닥으로 떨어졌다.

 

간간히 총성이 들리고 기관총 소리도 들리는 가운데 다시 고개를 들어 전방을 주시하였다.

불과 300m 내지 400m 정도의 거리의 산 중턱에서 아래로 사격을 하고 있었다.

머리가 멍한 상태였지만 깊은 생각에 빠지면서 잠시 무전기 생각을 다시 하였다.

 

무슨 다른 대책이 없을까?

 

! 바로 바하의 무반주 첼로소나타의 기억을 되살리자 ...!

서 수병에게 구형 무전기 prc-10의 주파수를 확인 시켰다. 바로 한 시간 전에 들었던

그 주파수이다. 서수병 불러주는 주파수를 바로 PRC-25에 장입시키고 조정 클릭을

앞뒤로 한 칸씩 옮기며 여러 번 반복해서 사격임무를 내렸다.

 

작전기간 내내 구형 무전기로 듣던 KBS FM 주파수와 동일한 주파수에 미군포병

무전 주파수가 같아서 가끔 미군들의 사격임무 소리를 들렸던 기억을 해내었다.

 

“Fire mission from 촉성루!”

 

주파수 조정용 다이얼의 클릭을 다시 상향으로 한 개씩 또는 하향으로 한 개씩 클릭을 돌

리면서 무전이 잡히기를 바랐다.

 

“Fire mission from 촉성루!"를 반복하였다.

 

! 정의와 자유의 전위부대 해병대에게 영광이 있을 지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