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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牛亭) 2020. 1. 4. 09:23

짜빈동 전투를 돌아본다(2)

 

우리 3소대 정면으로 밀려든 적 병력(월맹 정규군+지방 게릴라)2개 대대 규모였다.

적은 철조망 파괴통(bangalo torpedo)으로 맨 외곽 유자 철조망과 원형 철조망을

차례로 폭파하고, 중화기와 중공제 자동소총을 쏘아대며 쓰나미처럼 밀려들었다. 적의

철조망 파괴통에 의해 맨 처음 유자, 원형 철조망이 10m 가량 뚫린 곳은 소대 우일선

분대인 1분대였다


당시 1분대 병력은 10 명에 불과했다. M1 소총의 탄창을 바꿀 수조차 없는 긴박한

상황에 처하자 우리 대원들은 야전삽과 곡괭이 등을 휘두르며 백병전을 벌였다. 3소대

외곽 철조망 아래는 급경사로 낮아져 사각지대가 많았다. 뿐만 아니라 중대본부가

보이지도 않았다.

 

그러나 워낙 중과부적인데다 엄청난 화력을 앞세워 밀려드는 적을 M1 소총으로 막기엔

역부족이었다. 3소대 1분대 1조 조장 이학현 상병과 2조 조장 조정남 일병은 진내에

들어온 적이 교통호까지 접근하자 그들을 쓸어안은 채 수류탄을 터뜨려 적을 죽이고

폭사했다. 이런 우리 대원들의 혈투와 클레이모아 공격, 중대기지 외곽에 매설해 놓은

지뢰가 터져 적들이 많이 죽었다. 그러나 그보다는 105mm 포격에 의한 폭살자가 훨씬

더 많았다.“

 

방어정면이 1,2소대에 비해 상대적으로 넓었던 데다 적이 공격할 경우 주 공격로일 수밖에

없는 위치에 배치되었던 3소대(10중대 소대장 은희목 소위 증언)는 인내의 수위를 훨씬 넘은 

적 화력에의해 내곽 방어선까지 밀려났다. 고작 전방 분대 후방 10m에 위치했던 소대 본부

(소대장, 선임하사, 통신병, 전령)도 마찬가지였다. 그런 가운데서도 3소대는 그야말로 

필사적으로 싸웠다. 1,2소대도 3소대를 지원해 줄 형편이 못되었다.

 

전황은 악화일로, 중대본부를 덮치기 직전까지 갔다. ‘11중대의 위기 탈출은 포병

105mm 포격에 의해 극적으로 이루어졌다. 개미떼처럼 덤벼들던 적들은 기지 외곽

철조망까지 바짝 끌어당긴 포병의 포격으로 인명피해가 늘어나고 점차 날이 밝아오자

퇴각하기 시작했다.

 

전투가 끝난 뒤 작성된 짜빈동 야간 방어전도는 적 시체가 3개 소대 중 3소대

지역에서 제일 많이 수습되었음을 보여주고 있다. 이는 그만큼 3소대가 치른 전투가

치열했고 소대장 이하 대원들이 용전분투했음을 웅변하는 것이다. 상세한 전투상보를

이야기하려면 끝이 없겠지만 이것이 거시적으로 본 짜빈동 전투다.

 


여기서 짚고 넘어가야 할 대목이 있다. 바로 3소대 방어정면 조정 건의 이야기다.

이수현 소위가 소대장을 인계받은 뒤 중대진지를 돌아보니 적의 접근이 제일 용이한

3소대 방어정면이 1,2소대에 비해 너무 넓었다. 그래서 중대장에게 조정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그때 지형적 특성상 적 접근이 상대적으로 어려운 1소대 쪽

방어정면을 넓히고 내가 건의한 대로 3소대 쪽 정면을 좁혔더라면 아군 피해를 훨씬

더 줄일 수 있었을 것이라며 이수현 소위는 아쉬워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