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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정(牛亭) 2020. 1. 4. 09:28

짜빈동 전투를 돌아본다(4)- (11중대 3소대장 이수현 소위 회고)

 

이수현 소위는 짜빈동 전투 후 3소대장 근무를 끝낸 뒤 대대본부 106mm 소대장 겸

민사장교로 1 년간의 복무기간을 Full로 채우고 19681월 귀국했다. 정경진 중대장이

떠난 뒤 새로 부임한 김희근 중대장과 한동안 근무를 함께 했다.

 

또 하나 궁금한 것이 청룡부대장 김연상 장군이 이수현 소위에게 한 당부의 내용이다.

 

이 중위, 귀국해서 짜빈동 전투와 관련해서 이야기할 때 신중을 기해주게. 자네만

믿네.” 2대 청룡부대장(1966.12.20.~1968.8.5.) 김연상 장군이 1 년간의 파월근무를

마치고 19681월 귀국하는 이수현 중위(당시)따로 불러 한 당부다. 그러나 이수현

소위가 함구하고 있어 역시 유추해 볼 도리 밖에 없다.

 

혹시 이런 것은 아닐까. ‘짜빈동 전투몇 대목이 사실과 다르게 홍보되었고, 또 일부는

과도하게 미화. 과장됐는데 서훈에서 제외된 이수현 소위가 서운한 마음에서 사실대로

밝힐 경우 문제가 불거지거나 아니면 청룡부대 명성이 훼손될 수 있기 때문에 신중을

기해 달라고 당부했을 가능성 말이다.

 

이수현 소위(1942.5.15. 충북 영동). 그는 지난 2015215일로 48 년을 맞은

짜빈동 전투 당시11중대 3소대장이었다. 그가 짜빈동 전투에 대해 말문을 열기로

말하면 아마 끝이 없을 터이다. 그러나 이수현 소위가 짜빈동 전투에 대해 이야기하는

걸 들어본 동기생이 있는가. 아마 없을 것이다. 왜 그가 짜빈동 전투에 관한 한

입을 꽉 다물고 있는가. 바로 김연상 장군이 한 당부 때문이다.

 

그리고 그는 짜빈동 전우회 모임에도 나가지 않는다. 이유는 단 하나. 당시 중대장

(정경진. 해사 14)부딪치지 않기 위해서다. ‘부딪치지 않기위해서? 이 말을

뒤집어 보면 만나면 부딪칠 일이 있다는 이야기가 아닌가. 그러나 이수현 소위는

부딪칠 일이 뭔가에 대해서도 입을 열지 않는다. 언젠가 전우회 모임에 한 번 나갔는데

기어코 부딪치고 말았단다. 그래서 중대장이 참석하는 한 나는 빠지겠다.”고 선언한

후 지금까지 발을 끊고 있다고 한다.

 

파월근무를 마치고 귀국한 그에게 떨어진 인사명령은 진해 해병학교 교관이었다. 이수현

중위는 BOQ에서 생활하면서 해병학교 39~42기 사관후보생들에게 소대전술과 독도법을

가르쳤고 기초반 학생들에겐 군형법 교육을 했다. 해병학교 교관 근무 1 년이 넘었을

무렵 이봉출 행전참모부장(소장)이 진해교육기지를 방문했다.

 

당시 이봉출 장군의 전속부관은 해병학교 33기 권기옥 선배였다. 331일 전역을 앞두고

있던 권 선배가 이봉출 장군 전속부관 해볼 생각이 있느냐고 물어 해보겠다.“고 했더니

바로 사령부 비서실로 발령(1968.2.5.)이 났다. 이수현 중위는 권기옥 선배를 전혀 알지

못하는데 어떻게 자기를 이봉출 장군께 추천했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그가 이봉출 장군 전속부관으로 근무할 때 사령부에 들른 정경진 중대장과 우연히 만난

일이 있었다. “어떻게 오셨냐?“고 물었더니 옛날 일이 켕겼든지 , 우물쭈물 하며

그냥 내빼던 모습이 기억난다고 했다.


장군의 조카입니다 울고모부 너무 존경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