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수십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소위 ‘대박을 낸’ 발명가는 아니지만 생활하면서 느낀 불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특이하고 재미있는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발명 가족. 서로를 선의의 경쟁자로 생각하며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열정은 에디슨 저리 © 끼뉴스 김기수

초등학생 두 딸을 둔 마흔살 동갑내기 김성훈, 박란(경기도 용인시) 부부.

남편 김성훈씨는 생활발명가다. 아내 박란씨도 여성발명가다. 부부의 초등학생 두 딸도 발명을 한다.

수십억원대의 매출을 올리는 소위 ‘대박을 낸’ 발명가는 아니지만 생활하면서 느낀 불편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특이하고 재미있는 발명품을 만들어내고 있는 발명 가족.

네 식구 모두가 발명의 매력에 푹 빠진 사연은?

입원 중에도 발명 생각하는 남편

김성훈씨는 ‘괴짜’스럽다.

아내인 최씨도 남편을 이해하기 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렸다고 했다.

“연애할 때부터 남편은 발명에 관심이 많았어요. 한번은 남편이 병원에 장기입원할 일이 있었는데 입원 중에 속옷 갈아입기가 불편하다면서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팬티를 만들겠다는 거에요. 몸이 아파서 입원한 사람이 그 와중에도 발명할 궁리를 하고 있는 걸 보니 기가 막히더라구요. 그래서요? 결국은 만들었어요. 팬티 양 옆에 여성용 브라에 쓰이는 후크를 달아서 후크만 풀면 벗을 수 있는 속옷을 만들었어요. 제가 직접 바느질 해줘가며 함께 만든거죠.”

 

 

◇ 남편 김성훈씨는 ‘괴짜’스럽다. 몸이 아파 병원에 입원했을 때도 속옷 갈아입기가 불편하다며 쉽게 입고 벗을 수 있는 팬티를 발명할 궁리를 했다. © 끼뉴스 김기수
남편은 수시로 아내에게 여자만이 알 수 있는 불편이 무엇인지를 물으며 함께 발명에 대해 고민하도록 유도했다.



“남자는 여자가 느끼는 불편함을 알 수가 없잖아요. 그런데 아내(당시엔 여자친구)가 아이디어를 주면 좋은 발명을 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남편이 한마디 거든다.

그때 아내가 남편에게 제안했지만 포기한 아이디어 중 하나는 몇 해 지나 실제로 다른 업체에서 상품화가 된 적도 있다.

“여자들 마스카라로 눈썹 올리잖아요. 눈썹 올릴 때 열을 가해주면 눈썹이 더 예쁘게 말리는데, 마스카라 뒤에 열기구를 장착해보는 건 어떨까 하는 아이디어를 냈었죠. 그땐 흐지부지 됐는데 이후에 정말 그런 물건이 나왔더라구요.”

두 사람이 결혼한 뒤 남편은 주유소를 차려 사장님이 됐지만 그래도 발명은 포기하지 않았다.

급기야 2000년에는 멀쩡한 주유소를 접고 전업 발명가가 되겠다고 나섰다

남편 말리다 발명에 빠져든 아내

생계가 걱정돼 말리면서도 이것저것 남편의 발명에 관여하던 아내는 어느새 발명 아이디어를 궁리 중인 자신을 발견하게 됐다.

그리고 마침내 그녀도 발명품을 내놓기에 이르렀다.

첫 번째 발명품은 주부가 느낄 수 있는 불편함에서 아이디어를 얻었다.

“보통 가스렌지가 4구 정도 되잖아요. 제사나 명절 때 많은 음식을 한번에 하려면 4구에 모두 불을 켜는 경우도 있는데 한여름에는 에어콘이 있어도 땀이 줄줄 흐를 정도로 더워요.”

이러한 불편함에서 탄생한 발명품은 바로 가스렌지 앞에 냉풍기를 설치해 냉기막을 세우는 것.

별 기대 없이 남편의 권유로 뒤늦게 여성발명가협회 공모전 마지막날 응모한 것이 2등상에 해당되는 특허청장상을 받았다.

이때가 2004년. 10여년 넘게 발명에 몰두하던 남편을 제치고 아내가 먼저 상을 타게 됐다.

수상을 계기로 아내 역시 발명가로써 본격적인 활동을 시작하게 됐다.

이후 두 사람은 부부발명가로 활동하며 다양한 발명품을 내놓고 있다.

◇ 연애할 때부터 발명에 관심이 많던 남편과, 그를 말리다 덩달아 발명에 빠져든 아내. 그들은 이제 천생연분 부부발명가가 됐다. © 끼뉴스 김기수


“나도 발명할래” 딸 아이디어로 만든 발명품

항상 발명에 관해 연구하고 고민하는 엄마, 아빠를 둔 초등학생 두 딸들도 자연스럽게 발명에 관심을 갖기 시작했다.

관심에서 끝나지 않고 딸들의 아이디어로 ‘아이러브스푼’이라는 상품까지 출시했다.

하나의 손잡이에 포크와 스푼이 새싹모양으로 돋아있는 이 제품은 밥 먹을 때마다 포크와 스푼을 번갈아 드는 것을 번거로워하던 딸의 작은 아이디어에서 시작됐다.

단순한 플라스틱 조각 같지만 다양한 연구와 실험 끝에 인체공학적으로 제작됐고 새싹 모양의 예쁜 디자인 덕분에 장식용으로도 사용이 가능하다.

“어린 동생들이 밥을 먹을 때 내가 만든 스푼으로 신나고 재미있게 먹으면 좋겠어요.”

꼬마 발명가들이 소박한 바람을 내비친다.

부부 발명가는 자녀들의 발명을 적극적으로 지지하고 후원하고 있다.

아이들이 발명을 하면서 인생을 좀 더 창의적으로 생각할 수 있는 기회가 될 수 있다고 믿기 때문이다.

어린이승하차보호기·치카치카캡·폴더형 샤워기 등 발명품 줄줄이

부부는 최근 대한민국 세계여성발명대회에서 어린이승하차보호기로 금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어린이승하차보호기는 차량에 간편하게 붙였다 뗄 수 있고 따로 전원이 필요 없는 버스위험경고장치로 문이 열리면 차체에 붙어있던 ‘위험’ 경고판이 펼쳐져 옆에서 오는 오토바이나 자전거를 막아준다.

어린이승하차보호기에 대한 부부의 애정은 각별하다.

어린이들의 교통안전을 위한 부모의 마음으로 일일이 자치단체를 찾아다니며 아이디어를 소개했지만 서로 자기 소관이 아니라는 이유로 떠넘기며 잡상인 취급을 했다.

그렇게 냉대와 수모를 당하던 아이디어가 미국 방송 출연을 계기로 한국에서도 조금씩 관심을 보이며 시연회를 요청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부부가 애착을 갖는 또다른 발명품은 치약뚜껑걸이, 일명 ‘치카치카캡’이다.

“아이들이 양치할 때 치약을 쓰고선 뚜껑을 안 닫더라구요. 그럼 뚜껑이 바닥에 떨어지기도 하고 치약이 새어나와 욕실이 항상 지저분했어요. 아이들 혼내는 것도 하루이틀이고…”

아내는 아이들을 혼내지 않고, 자신도 스트레스 받지 않는 방법은 없을까 고민하다가 치약뚜껑을 한 곳에 딱 고정시켜 놓으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치카치카캡’은 흡착판을 이용해 치약 뚜껑을 욕실 거울이나 타일에 부착해놓고 치약을 쓰고 난 뒤 항상 그곳에 걸기만 하면 된다.

폴더형 샤워기도 아끼는 발명품이다.

욕실에서 두 딸을 씻길 때마다 샤워기와 수도꼭지를 번갈아 잡고 조절하느라 불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내가 아이디어를 낸 상품으로 폴더 각도에 따라 수량이 조절된다.

제품으로 출시하지는 않았지만 부부의 집에는 김치가위(가위 뒷쪽에 집게를 장착해 가위로 김치를 자르고 뒤집어서 집게를 이용해 접시로 옮길 수 있도록 한 제품), 발로 여는 냉장고(양손 가득 물건을 들고도 발로 간단히 냉장고 문을 열 수 있는 장치), 도어스토퍼(현관문 도어스톱(말발굽)을 발로 밀치지 않아도 문만 살짝 밀면 자동으로 도어스톱이 올라가는 장치), 건전지잔량체크기계(건전지를 기계에 넣었을 때 벨소리 크기로 건전지 잔량을 체크) 등 숨겨진 발명품들이 가득하다.

 

 

◇ 아내 박란씨가 욕실에서 두 딸을 씻길 때마다 샤워기와 수도꼭지를 번갈아 잡고 조절하느라 불편했던 기억을 떠올리며 아이디어를 낸 폴더형 샤워기를 들고 설명하고 있다.(좌) 치약뚜껑걸이, 일명 ‘치카치카캡’.(중앙) 현관문 도어스톱(말발굽)을 발로 밀치지 않아도 문만 © 끼뉴스 김기수

에디슨 열정 못지 않은 발명 가족

발명의 매력에 푹 빠진 이 발명 가족에게 어떤 이들은 정확히 누구 아이디어냐고 꼬치꼬치 캐묻기도 한단다. 그럴 때가 가장 난감하다고.

“라이트 형제가 비행기를 발명했어요. 그런데 정확히 형이 발명했는지, 동생이 발명했는지를 따지는 것이 의미가 있을까요?”라고 대답하는 아내.

함께 생활하면서 느낀 불편에 대해 같이 고민하고 생각해낸 아이디어라 가족 모두의 재산으로 여긴다.

실제로 아이디어에 대한 특허도 모두 공동명의로 해놓다.

그렇지만 서로를 선의의 경쟁자로 생각하며 더 좋은 아이디어를 생각해내기 위해 노력하는 열정은 에디슨 저리 가라다.

발명 가족은 앞으로 여성과 아이들을 위한 발명을 전문적으로 할 계획이다. 이 분야가 우리나라에서 가장 취약한 부분이기 때문.

그리고 꼭 당부할 말이 있다고 했다.

“외국은 생활에 작은 아이디어만 가미해도 좋은 발명으로 인정받는 반면 우리나라는 생활발명을 얕잡아보는 경향이 있어요. 생활발명을 하찮게 여기지 말아주세요. 그리고 생활발명에 관심 있으신 분들, 필요성을 느낀다는 이유 하나만으로 무리하게 발명에 투자하지 마세요. 제가 망해봐서 잘 알아요.” 겸연쩍게 웃으며 남편이 신신당부한다.

끝으로 언제까지 발명을 할 계획이냐는 질문에는 아내가 대답했다.

“언젠가 TV를 보니 할머니도 발명을 하시더라구요. 그걸 보고서 용기가 생겼어요. 저희 가족도 할머니, 할아버지가 될 때까지 해야죠. 생활 속 작은 발명을 통해 사람을 행복하게 하고 싶어요.” ‘생활의 발견’ 즐기는 발명가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