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장로 임기제와 교회갱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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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신 나갔어!

2006. 7. 4.

 

목사·장로 임기제와 교회갱신       오만한 지도자, 

 

왜곡된 신앙 형태 사람은 대체로 조금 ‘높은’ 자리에 앉았다고 생각하면 오만해지기 마련이다. 참으로 겸손하고 남의 말에 귀를 기울이고 낮고 천한 사람에게서라도 무엇인가를 배우고자 하는 모습을 한국교회 지도자들에게서 찾아볼 수 있는가? 한국교회가 안고 있는 문제 가운데, 모든 문제가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상당히 많은 부분은 교회 지도자라고 할 수 있는 목사와 장로에게 직접 또는 간접 책임이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한국교회 문제를 모두 지도자 탓만으로 돌릴 수는 없다. 교인들의 신앙 형태도 사실은 큰 문제다. 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 형태 가운데 ‘이원론’이 점점 더 심화되고 있는 것도 문제다. 신앙과 삶은 분리되고 교회와 세상은 무관하며 그리스도인의 선지자적, 제사장적, 왕적 직무는 거의 무시되고 있다. 신앙생활은 대체로 교회생활로 한정되고 교회생활 잘 하는 것이 곧 신앙생활도 잘 하는 것으로 오인된다. 교인 가운데서도 마치 ‘계급의 차이’가 있는 것처럼 생각하는 것도 한국교회 교인들의 신앙 형태 가운데 특이한 점이라고 할 수 있다.

 

한국교회 직분과 관련된 문제점 목사와 장로가 교회 내에서의 일종의 계급 상승 또는 신분 상승으로 보는 것은 매우 심각한 문제다. 실제로 한국교회에는 목사와 장로보다 그렇지 않은 주의 제자들 가운데 주의 말씀대로 따라 살려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수 있다고 생각한다. 직무 수행에 대해서 평가하고 개선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전혀 마련되어 있지 않은 것이 현금 한국교회의 실정이다. 제도적 장치의 부재는 몇가지 심각한 문제를 초래한다고 생각된다.

 

첫째, 목사와 장로가 지도자로서 문제가 있을 때 개교회로서는 이것을 영적으로, 합리적으로 처리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둘째, 가끔 볼 수 있는 일부 목사와 장로의 나태와 안일, 독선과 전횡은 아무런 평가와 임기 제한없이 종신토록 시무를 인정하는 목사 위임 제도와 장로 종신제에 기인하는 것으로 보인다. 만일 일정한 임기가 정해져 있고 임기 내 직무 수행에 대해서 교인들로부터 반드시 평가를 받아야 한다면 아무래도 긴장할 수밖에 없을 것이고, 만일 조금이라도 긴장해서 일한다면 현재보다는 좀 더 성실하고 부지런히 직무 수행을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셋째, 목사와 장로의 직무 수행을 평가하고 임기를 제한할 수 있는 제도적 장치가 없기 때문에 다수의 교인들은 교회 안에서 수동적 위치를 벗어나지 못하고 각자의 은사를 충분히 개발, 사용하지 못한다. 이 점은 은사 공동체여야 할 교회로서는 대단히 유감스러운 일이다. 안수를 통한 임직, 임기제 도입의 걸림돌일 수 있는가?

 

장로 임기제는 한국교회에서는 생소한 개념이다. 한번 장로는 끝까지 장로이며 실제로 한 교회에서 장로로 시무하지 않는다고 해도 언제나 ‘장로’라는 ‘직함’을 유지한다. 한국교회에는 실제로 교회에서 장로로서 직무를 수행하지 않으면서도 여전히 장로로 남아 있는 ‘휴무장로’와 ‘무임장로’가 있다. 안수가 과연 종신직으로서의 효력을 발생시킬 수 있는가? 안수는 ‘사도적 계승’ 또는 어떤 신비한 ‘영적 능력’의 주입과는 거리가 멀다.

 

성경의 여러 경우를 미루어볼 때 안수는 임직에 반드시 수반되어야 할 것은 아니며 어떠한 신비적, 주술적 의미도 담고 있지 않다. 칼빈에 따르면 안수는 직분자를 하나님께 ‘맡기고’(commendare) ‘제물로 바치는(offere)’ 일을 상징하는 예식에 지나지 않을 뿐 그 외 어떤 ‘더 심오한 신비’가 깃들여 있지 않다. 따라서 한번 안수 받았다고 해서 그 안수받음으로 인해 장로직의 종신적 의미를 주장하는 것은 옳지 않은 것으로 보인다.

 

미국 장로교와는 달리 대륙의 개혁교회와 스코틀란드 장로교 전통은 장로와 집사 임직시에 안수를 하지 않는다는 것을 이와 관련해서 기억해 둘 필요가 있다. 장로직의 회복 조금 더 근원적인 문제를 돌아보자. 장로직이 어떤 직분인가? 칼빈에 의해 회복된 장로직의 특징으로 우리는 무엇보다 감독(episkopos)과 장로(presbyteros)를 같은 직분으로 보았음을 지적할 수 있다. 둘째, 칼빈은 장로와 감독을 같은 직분으로 보았을 뿐 아니라 두가지 부류의 장로, 곧 ‘치리하는 장로’와 ‘가르치는 장로’가 있다고 보았다. 바로 이 전통에서 “목사도 장로다”라는 말이 나왔다.

 

셋째, 칼빈이 시무했던 제네바 교회에서는 ‘치리하는 장로’와 집사는 한시적으로 시무하도록 하였다. 그렇다고 해서 목사와 장로 사이 어떤 계급상의 상하 차이가 있을 수 없고 다같이 동등한 장로와 감독으로 하나님의 교회를 수종드는 그리스도의 종이라는 의식이 개혁교회 전통을 통해 변함없이 계승되었다. 개혁교회 전통에서 시행되고 있는 장로의 한시적 봉사 개혁교회에서 통용되고 있는 장로의 한시적 시무에 관해서 좀 더 살펴보자. 칼빈에서부터 시작해서 개혁 교회 전통이 한시적 시무를 도입한 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었다. 첫째, 현실적 고려가 가장 중요한 이유였다.

 

치리 장로는 교회 일 뿐만 아니라 가정과 생업이 있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장로 직분을 오랫동안 수행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하다. 두 번째 이유는 목사와 장로의 전횡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 화란의 경우를 보면 1581년 미들부르흐총회에 질의된 것 가운데 장로와 집사의 종신직에 관한 사항이 있었는데 그 때 총회는 한시직을 다시 확인하였다. 이것은 장로의 한시적 시무를 교회 정치의 견제와 균형을 유지하는 수단으로 이해했음을 말해준다.

 

셋째, 많은 사람들이 교회 치리에 참여할 수 있을 뿐 아니라 교회 내에 감추어진 은사와 능력을 개발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것이 또다른 이유였다. 장로직을 만일 임기없이 종신으로 할 경우, 교회 내에서 장로직을 수행할 수 있는 능력과 은사를 갖춘 사람이 있는데도 그들을 세울 수 있는 가능성이 없게 된다. 장로 임기제를 도입할 때 한국교회가 가질 수 있는 세 가지 유익 지금까지 한 논의를 바탕으로 한국교회 안에서 장로 임기제를 도입하는 일이 어떤 유익을 가져올 수 있는지 생각해 보자.

 

장로 임기제 도입은 첫째, 장로가 어떤 ‘신분’이 아니라 ‘섬김’의 직분임을 분명히 인식하는데 유익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교회 안의 모든 직분이 섬김(diakonia)의 직분이란 사실은 집사(diakonos)직뿐만 아니라 목사와 장로의 직분에도 해당된다. 신약교회의 모든 직분은 섬김을 위해 있는 것이다. 마치 그리스도께서 “인자의 온 것은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막 10:45)고 하신 것처럼 모든 직분자들은 그리스도의 모범을 따라 섬겨야 한다. 교회 치리는 곧 성도를 섬김이다.

 

여기서 섬기는 자의 힘이 나온다. “직분자의 권위는 섬김 자체에 있다”는 말은 성경적 직분 개념을 매우 분명하게 요약해 준다. 둘째, 장로 임기제 도입은 장로 직무 수행을 정상화하는 데 큰 유익이 있으리라 생각한다.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직무 수행에 대해서 어떠한 평가도 받지 않았다.

 

만일 임기제를 도입한다면 평가제도 자연스럽게 도입될 수 있을 것이고 만일 평가제를 도입한다면 이것은 장로의 임기중 직무 수행을 성실하게 하는 촉진제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셋째, 장로 임기제의 도입은 교회 안에 잠재해 있는 은사를 개발하고 활용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제한된 수의 장로가 장기간 한 교회를 봉사하는 것보다는 많은 사람들이 장로로서 일정한 임기 안에서 돌아가면서 섬기는 것이 교회에 훨씬 더 유익이 된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 목사·장로의 임기제 도입은 우선 그 자체가 목적일 수 없다. 오직 올바른 직분 개념의 회복이 목적이 되어야 한다. 하지만 임기제는 왜곡된 직분 개념을 바로 잡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기 때문에 적극적인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개혁교회 전통대로 3년 또는 4년의 임기제를 택하든가, 아니면 예컨대 6년 또는 7년을 시무하고 1년 안식년을 가진 다음 신임투표를 통해 다시 시무하도록 하는 것을 각 교회와 교단과 교파의 상황에 따라 시작하면 좋을 것이다.

 

이미 몇몇 교회에서는 이러한 노력을 실행중이다. 교회개혁의 과제로서 목사·장로의 임기제와 평가제 도입은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시대적 요청임을 기억하자.(강영안) (본 원고는 복음과 상황 98년 11월호 30~41쪽의 내용을 요약, 정리한 것임을 밝혀둡니다) 출처 : 기독교윤리실천운동 소식지 1999년 2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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