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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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칼 바르트

2011. 5.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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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K.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 이해

                                               -교회 교의학 Ⅲ, 2를 중심으로-

1. 들어가며
2. 20세기 인간학의 견해들
3. 신의 계약 대상자로서의 인간
4. 시간속에 사는 영혼과 육체의 통일체로서의 인간
5. 나오며
6. 각주


1. 들어가며

오늘 우리가 인간이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을 던지면서 함께 연구해야 할 신학자는 20세기의 거장 칼 바르트(Karl Barth, 1886.5.10∼1968.12.9)(주1)이다. 우리는 오늘 그의 신학사상(주2)을 함께 고민하고 생각하면서 그가 도달한 진리의 세계에까지 가도록 씨름하고자 한다.

 

신학사상이 일반 철학사상, 문학사상과 다른 것은 후자가 인간의 Logos(理性)에 의한 신과 세계, 인간에 대한 사고를 서술하는 데 반해서, 전자는 하나님의 Logos에 입각해서 하나님, 세계, 인간에 대한 사색을 체계화 하는데 있다. 하나님의 Logos와 인간의 Logos는 그 본질구조에 있어서 다르다. 이것을 분명히 한계 짓는 데서 신학적 사고는 철학적 사고와는 다른 고유한 영역을 누릴 수 있으며, 신학은 인간학이나 사회학이 아닌 "신-인간" (Theo-logie)일 수 있는 것이다. 이런 입장은 바르트 신학에 있어서 하나의 확고부동한 원칙이었다.

 

바르트가 20세기 초에 현대 신학에서 본 심각한 문제점은 하나님의 초월과 내재의 혼란이었는데, 이 혼동의 원리는 첫째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의 내재적 방법 또는 그리스도교 신학에 있어서 데카르트적 요소, 즉, 앞에서 살펴본 바와 같이 '인간의 확실성에서 하나님의 확실성으로 나가는 방법', 둘째로, 로마 가톨릭 교회의 '교회의 교사직'(Magisterium)위에 있는 객관적 방법, 셋째로, 문자적 성서와 교리의 '객관성'의 원리위에 있는 객관주의적 방법이었다. 이 세가지 방법의 공통 분모는, 바르트가 보기에는, '내재의 원리' 였다. 그것은 곧 하나님의 초월성, 주격성의 상실이었기에 바르트는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을 대표하는 '내재의 원리'를 비판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초월성(주3)과 주격성을 회복하려 하였던 것이다.

 

이런 큰 흐름에서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주4)을 이해하는 것은 바람직하다. 그의 신학적 인간학의 특징은 내재와 초월의 변증법적 신학(주5)이다. 바르트의 신학적 방법론의 과제는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의 원리를 바로 세우는 일이었다. 그 속에서 바르트는 '내재' 속에 가리워진 초월(주6)을 찾고, '겉'에 가리워진 하나님의 '주격'을 찾음으로써 하나님을 하나님 되게 하고, 하나님을 인간의 문화와 역사와 동일시 될 수 없는 "전적으로 다른 타자"가 되게 하는 것이었다.

2. 20세기 인간학의 견해들

바르트에 의하면, 諸 非신학적 인간학(anthropology) 예를들어, 철학적 생물학적· 경제적· 심리학적 인간학은 각각의 관점에서 유용한 인간의 현상(주7)을 지시한다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은 인간의 현상만을 보여줄 뿐, 결코 참된 인간 (real man) -인간의 근원과 본질과 그 종국적 목표자체를 밝혀주지 못함- 을 설명해 주지 못하고 있다고 바르트는 비판한다. 그 이유는 하나님과 관계없이 인간이 독립적으로 자기를 이해하기 때문이며, 하나님과 관계시킨다고 해도 그 하나님이 성서의 하나님,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으로서가 아니라 모호한 어떤 신적 개념에 그쳐버리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이 점을 분명히하기 위해 자연주의적, 과학적, 관념론적, 실존주의적 인간학(주8)을 향해 비판할 뿐 아니라, 브루너의 인간학까지 유신론 철학이라는 이름으로 비판(주9)하는 것이다. 여기서는 지면 한계상 모든 非신학적 인간학을 일별 할 수 없기에, 김경재 교수님의 논문에 실린 철학적 인간학에 대해 간략하게 살펴보기로 하겠다.

㉠ 철학적 인간학: "인간의 본질은 없다."(주10)고전적 인간관: 고대철학을 대표하는 플라톤, 아리스토, 스토아 학파는 "인간은 본래 이성능력을 가졌다"는 입장에서 인간을 이해한다. 이런 입장은 합리주의적 인간이해이다. 그러나 고전적 인간 이해의 방식은 근대적 인간관과 차이가 있다. 첫째, 이성적 인간을 신적인 것과 본질적으로 동일시 한다. 둘째, 인간에 대해 이차원적 이해를 가진다. (육체는 惡 / 마음과 정신은 善)근대적 인간관: 계몽주의 시대를 통하여 크게 발전한 경험주의(주11)는 인간을 신과의 관계에서 이해하는 것이 아니라 인간자체에서 이해하려 한다. 이제 이성은 신에게서 독립해 만물을 인식하는 능력이고, 만물을 비춰주는 '자연의 빛'으로 인식이 전환된다, 한편 비이성적 경향이 나타나는데, 이성을 인간의 본질이라고 보는 합리주의적 인간이해는 낭만주의와
생의 철학 그리고 실존주의 -실존이 본질에 선행-에 의해서 점점 붕괴되어 간다.

 

현대적 인간관: 진화론적 실재관과 상대주의적 실재관, 급속도로 발전하는 과학적 세계관에 힘입어, 인간존재의 본질자체를 부정(주12)하고 인간은 자신의 본질을 스스로 창조하고 형성해가야 할 존재, 世界開放性을 그 특징으로 삼는 존재, 역사성과 사회성에 의해 철저히 규정되고 또 그것을 창조해 가야할 존재, 문화적 존재로서 자기를 이해한다. 그렇다면 과연 인간이 이런 현대적 인간학의 생존양식을 그 특성으로 할 때, 인간의 자기 동일성을 어떻게 유지하며, 인간은 과연 생성과정성과 세계개방성이 궁극적으로 지향해가는 가치와 방향과 목적 설정을 할만한 포괄자인가? 그리고 인간은 무엇을 지향해 가는가? 여기서 신학적 인간학은 진지한 물음을 던지는 것이다.

㉡ 신자연, 역사신학의 인간이해: 인간현상은 그리스도를 지향한다역사신학자 판넨베르그(W. Pannenberg)와 新자연과학 신학자 떼이야르.드 샤르뎅(Teilhard de Chardin)은 바로 이러한 철학적 인간학에 신학적 물음과 해명을 시도한 신학자들이다. 두 사람의 공통점은 결국 인간현상은 그리스도를 지향하고 그리스도를 통하고 있다는 것이다.(주13) 특히 현대신학에서 그리스도 중심의 신학적 인간학을 전개한 대표적인 사람으로서 칼 바르트를 소개하지 않을 수 없다.

3. 신의 계약 대상자로서의 인간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주14)의 기준:

바르트에 있어서 신학적 인간학의 기초는 그리스도론 (man for god, man for others)이다. 그러므로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은 그리스도를 모형pattern으로 한 인간관이며 그리스도 중심적 인간관이다. 바르트는 "그리스도의 인간 본성은 인간의 참된 본성의 최후적 계시"로 본다. 이 말은 곧 인간 예수의 본성만이 인간 본성의 문제를 푸는 열쇠가 된다는 말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본래의 인간학적 진리는 다만 그리스도와 우리 관계를 통해서만 분명하게 된다. 그래서 바르트는 그의 인간학에서 그리스도론에 기초하여 인간의 본성을 안다는 것이 무엇인지, 왜 그리스도론적 기초 위에서가 아니면 안되는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이다.

㉠ 예수그리스도의 선택과 신학적 인간학

3. 신학적 인간학
2. 그리스도론
1. 하나님의 선택

표1)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의 기초순서

인간은 하늘아래, 땅위의 존재로서, 하나님의 말씀 안에서 계시된 피조물이다. 또한 인간본질은 하나님의 선택의 대상으로서, 계약의 대상으로서 영원 전에 정초되었다. 하나님은 인간을 선택하시고 그의 계약 대상자로 삼으신 것이다. 계약 대상자로서 人間과 神의 관계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그를 통하여, 그로 더불어의 관계성이다. 왜냐하면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을 이해할 수 있는 유일한 열쇠요, 계시된 하나님의 말씀이고, 예수 그리스도만이 참사람이고 참 하나님의 아들이기 때문이다. 예수는 바로 선택하시는 하나님이며 동시에 선택된 인간본질의 원형이며, 인간본질의 처음과 미래이다. 그러므로 인간이 그리스도 없이 존재한다는 것은 존재론적으로 불가능하며, 인간의 본질과 그 운명은 그가 없이는 도저히 인식할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바르트에 있어서 신학적 인간학의 기초는 하나님의 선택론이요 그리스도론이다. 또한 인간의 본질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난 원역사인 예수 그리스도와 더불어 있는 존재,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음으로써 있는 존재이다. 그 분 자체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인간됨은 인간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하여 감사와 책임성을 가지고 응답함으로서 이루어진다. 우리는 여기서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의 근본적인 두가지 진술을 얻게 된다. 첫째는, 예수와 함께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존재는 하나님의 선택에 근거해 있고 둘째는, 이런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빛과 그의 삶과 죽음의 계시를 통해서 즉,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가운데서만 인간에게 알려진
다는 사실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간들을 선택하셨다는 사실은 하나님이 영원전에 한 대상, 참 사람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셨다는 관계성을 앎으로서 확신하게 된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를 선택하신 영원한 뜻은 무엇인가? 첫째, 그것은 그에 의해서 창조되고 그로부터 떨어져나간 인간을 위해서 그 자신을 내어주려는 것이다. 이 뜻 속에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을 향하시고 인간을 선택하시고 인간에 사랑으로 말미암아 메이시고 , 인간이 되신 하나님의 인간성이 깊이 스며있는 것이다. 둘째,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선택한 것은 그 자신의 영광을 위해 인간과의 교제를 선택하였고, 인간을 위하여 그 자신과의 교제를 선택하였음을 뜻한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러한 예수 그리스도의 선택을 통해서 인간본질의 운명을 계시(주15)받는 것이다.

㉡ 참사람: 인간성의 기본형식과 '하나님의 형상'

바르트에 의하면 '관계 속에 있는 인간', '공존의 인간성'이 곧 '하나님의 형상(Imago Dei)'(주17)인데 즉, 그는 하나님의 형상론을 근본적으로 만남과 사귐의 차원에서 관계적으로 파악하였다. 바르트에게는 만남의 존재, 더불어 있음의 존재, 서로 사랑하는 존재로서의 인간다움이야말로 그의 창조주 하나님을 닮은 유사성이요 그것이 곧 '하나님 형상'의 비밀이 되는 것이다.
이런 비밀을 바르트는 진정한 인간 예수의 인간성에서 발견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함께, 하나님 안에 존재하는, 철저히 하나님을 위한 존재였다. 그리고 동시에, 철저히 모든 사람을 위한 존재였다. 그는 인간과 함께, 인간들 가운데 존재하였으며, 모든 사람의 일을 자신의 일로 삼았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는 하나님과 인간과의 완전한 관계 속에 존재하는 진정한 인간으로서 '하나님의 형상'이 된다.

 

바르트는 이제 하나의 형상을 발견하는데 있어, 더 이상 개인적으로 하나님의 은혜가 일어나는 어떤 것으로가 아니라, 나와 너의 관계성에서 발견한다. 이런 구도가 인간성의 기본형식이 되는 것이다. 우리가 이미 알다시피, 창 1:26절에서는 남자와 여자 사이의 관계, 그 양자(兩者)가 만나서 어우러지는 생명의 현상속에 하나님의 형상은 현실화 된다. 서구라파는 개인의 주체적인 자유의식이 너무나 강해서 혼자 자유로울 수 있다는 생각이었다. 자유(주18)는 자신이 갖고있는 결정권이라고 생각하였다. 나(Ich)라고 하는 것은 너(Du)없이 완성되었다. 너없이도 나가 있을 수 있었다. 그것은 주체적 자아의 철학이었다. 그러나 바르트에 의하면 나라고 하는 자기의 주체의식 자체는, 너와의 끊임없는 관계속에서 드러나는 것이었다. 깊은 너와의 사귐과 관계성 없이 실존적 주체성은 절대로 형성될 수 없는 것이다.


4. 시간속에 사는 영혼과 육체의 통일체로서의 인간 ㉠ 영혼과 육체의 근거로서 하나님의 영 바르트는 인간을 말할 때 먼저 하나님을 말한다. 그에게는 "인간은 하 나님 없이 존재할 수 없다"는 설명이 인간구조를 설명하는 최고의 표현인 것이다. 이런 차원에서 "인간은 하나님의 영(spirit)에 의해 실존한다"는 바르트의 언명은 자연스럽게 이해된다. 이 말은, 육체와 영혼의 통전으로 서의 인간이 하나님에 의해 그 존재가 형성, 유지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또한 인간은 영을 소유한다.

 

이것이 바르트의 인간학의 기초적 관점이다. 바르트에 있어서 영은 본질적으로 하나님에게 속한 것으로서 그 영이 인 간 영혼과 육체의 기초요 근거가 된다. 특히, 인간생명의 이해는 신약성 서에 증언되고 있는 통전적 인간 예수에게 그 인식의 근거를 두고 있는데 이것은 곧, 기독교 인간관의 기초가 된다. 예수는 육체를 갖춘 영혼이었 으며 동시에 영혼을 갖춘 육체로서 그 양자를 동시에 살았던 참 사람이었 다. ㉡ 영혼과 육체: 그 상호 관계성, 특수성, 상호질서 바르트는 인간을 하나님과의 관계와 인간 상호간의 관계 속에서 살피 고, 이어 인간의 내적 구조, 즉 영혼과 육체의 관계를 설명한다. 바르트 에 의하면, 인간은 영혼이며 동시에 육체이다.

 

그는 영혼과 육체는 결코 분리할 수 없는 전체적 인간의 존재양태로 파악한다. 바르트는 이것을 인 간은 '자신의 육체의 영혼'(soul of his body)이라는 말로 설명한다. 영 혼과 육체는 서로 떨어질 수 없다. 영혼을 떠난 육체는 육체일 수 없고, 육체를 떠난 영혼은 영혼일 수 없는 것이다. 그러므로 육체와 영혼은 상 호 종속적이다. 이와 같이, 영혼과 육체는 온전한 통일성 속에 있다. 그러나 양자(兩 者)는 기능상 구별될 수 있는 특수성을 갖는다. 이 특수성에 기초해서 영 혼과 육체는 질서관계를 이루는데, 그것은 영혼이 먼저이고 육체가 나중 이라는 것이다.

 

인간을, 육체와 영혼으로 살아있을 수 있게하는 토대가 하나님의 영인데. 이 영을 받는 것이 인간의 영혼이며 이 영혼에 의해 세 워짐을 받는 것이 육체라는 것이다. 이런 영혼과 육체의 관계도 관계유비(주19)적으로 설명 될 수 있는데, 서로 함께 있을 수밖에 없으면서도 선후의 질서를 갖는 것이, 마치 하나 님과 인간, 야훼와 이스라엘, 그리스도와 그의 공동체 등의 관계들과 유 사하며, 관계적으로 상응성을 갖는다. ㉢ 시간 안에 있는 존재로서의 인간 바르트는 인간본질을 시간성에서 규정한다. 영혼과 육체의 통일체로서 인간의 생명은 時間的이라는 말이다.

 

시간은 인간의 유한한 생명을 한정 시켜주면서도 그의 생명을 근거지워주고 그의 생명을 담아주는 피조물의 형식이다. 반대로 인간존재의 한계를 그어주시는 자는 無가 아니라 그의 창조주, 계약의 대상자, 영원하신 하나님이다. 하나님의 시간과 인간의 시간은 본질적으로 다른데, 전자의 시간은 과 거, 현재, 미래를 동시적으로 살며, 후자는 창조된 시간을 살므로써 영원 자로부터 구분된다. 인간은 엄밀한 의미에서 시간을 창조할 수 없고 소유 할 수 없다.

 

인간에게 시간을 주시는 자는 하나님이요 하나님의 영원성이 다. 영원은 하나님 자신이며, 하나님의 영원성은 본래적인 시간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예수그리스도가 곧 시간의 主이시다. 예수 그리스도는 부활의 사건을 통해 예수 그리스도가 시간의 主이심이 드러났다. 시간의 主이신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에게 계시된 것은 하나님이 그의 영원 속에서 우리와 멀리 떨어져 계신 것이 아니라, 우리와 가까이 계시며, 우 리에게 등을 돌리시지 않는, 은혜로우시며 우리를 사랑하시는 자 임이 드 러났다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 그 자체로서는 유한한 존재요, 사멸하는 존재지만, 죽음자체가 완전한 끝이 아닌 이유는 바로 죽음 너머에 原理나 無가 아닌, 생명의 주, 시간의 주이신 그리스도 하나님이 계시기 때문이 다. 바르트는 이것을 '끝있는 생명의 영원화'(the eternalising of this life)라고 표현한다.

 

5. 나오며 우리는 신학을 배우면서 "모두 한 공동체"라는 말을 귀가 닳도록 들어 왔다. 또 신학의 전통으로부터 "인간은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를 직·간 접적으로 수도 없이 들어왔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들은, 인간이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모르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을 것이다. 칼 바르트의 신 학적 인간학을 미리 앞 질러서 공부한 사람이나, 이름만 많이 들어봤을 뿐 바르트의 신학사상에 대해 전혀 문외한인 사람도 인간이 어떻게 살아 야 된다는 것 쯤은 바르트 이상으로 깊이 사색하고 고민하고 있을 것으로 나는 확신한다. 문제는 이제 우리가 어떻게 살아야 하느냐?는 것이다.

 

우리에게는 자꾸 유혹이 다가온다. 각각 개인적으로 그 유혹의 질량은 다르겠지만, 그것은 늘 우리에게 갈림길에 서 있도록 괴롭힌다. 바르트가 지적하는 대로 책임 성과 역사성을 담보하는 참 기쁨의 자유의 포기, 인간성을 지키는 문제, 더불어 사는 존재·사랑하는 자로서의 공동인간성 개념에 대한 망각, 겉 모습과 속모습, 언행의 불일치에서 오는 내적 고민과 심리적 병리현상, 불안감, 외로움, 비겁함, 죄책감, 수치심, 열등감, 우월감등은 늘 우리의 삶을 인간답지 못하게 괴롭히고 모순되게하는 마성적 요소이다. 바르트는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진정한 인간상을 제시하려고 하였다.

 

이런 마성 적 요소는 예수 그리스도의 모습에서 찾아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인간은 공존하는 인간성으로 피조되었다. 그러므로, 인간과 인간의 교제와 협동의 기쁨을 거부한 어떠한 체제나 이념이나 문 화는 참다운 인간의 것이 될 수 없다. 오늘날 우리는 산업사회, 정보사회 의 구조속에서 존재와 존재의 관계가 아닌 일과 정보로서 인간을 만나는 기능에 익숙해져 있다. 여기에, 인간은 아무리 고도로 발달된 문화를 형 성한다해도, 인간을 인간이지 못하게 하는 문화는 악이라고 하는 바르트 의 경고는 유념해야 할 예언자적 음성이 아닐 수 없다.

 

바르트의 신학적 인간학은 그저 책상에 앉아서 관념적으로 추상적으로 나온 이론이 결코 아니다. 그의 인간학은 그가 처했던 역사의 자리와도 결코 무관하지 않다는 말이다. 그의 이론은 당시 1차 세계대전과 600만 유태인 학살의 주범이었던 히틀러 정권을 향해 던지는 폭탄 선언이기도 하였다. 오늘 이 시대는 지식과 정보가 부족해서 쩔쩔매는 시대가 아니 다. 보이는 곳에서나 보이지 않는 곳에서나 진실로 행동하는 양심이 부족 하기 때문이다.

 

앎으로서 끝나버리면 그것은 신학이 아니다. 신학은 신학 함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먼저 인간답게 살아야 한다. 그것은 곧 전쟁을 선포하는 것과 같다. 진지하게 말이다. "제 3차 세계대전이 어떻게 일어날지는 아무도 모른다. 그러나 제 4차 세계대전에서 인류가 무엇을 가지고 싸울지는 확실하게 알 수 있다. 그것은 돌과 몽둥이이다." 6. 각주 1) 스위스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 바젤 출생. 베른, 베를린, 튀빙겐, 마 르부르크등 여러 대학에서 신학을 배우고, 1909년부터 2년간 제네바의 개혁파 교회의 부목사를 역임하고, 자펜빌 교회의 목사로 10년간 근무 하였다.

 

그 동안 종교적 사회주의 운동에 참가하였는데, 19년에는 신 학계를 온통 뒤흔들다시피한 저서 '로마서 주해'를 출판하였다. 21년 괴팅겐대학 교수로 초빙되어 신학을 강의 하였는데, 22년에는 투르나 이젠, F.고가르텐, G.메르츠등과 함께 이른바 변증법적 신학운동의 지 도자가 되는등 개혁교회 신학사상에 큰 역할을 하였다. 그 후 뮌스터 대학 및 본대학의 교수를 역임하다가 나치스의 대두로 쫓겨나, 스위스로 돌아와서 바젤대학의 교수가 되었다.

 

한편 그는 반 나치스 교회투쟁에도 참가, 나치스에 영합하여 독일 기독교인 운동으 로 기울어진 고가르텐과 결별하고, 그와 함께 발행하던 잡지도 폐간하 였다. 그 후로 그는 국가 사회주의 ?㈍? 독일 기독교인운동에 반대하는 문필활동을 열렬히 전개하였으며, 교회투쟁의 중요문서인 '바르멘 선 언'의 기안도 작성하였다. 그의 대표작은 미완성으로 끝난「교회 교의 학: Die Kirchliche Dogmatik」(1932∼67)인데, T. 아퀴나스의 신학대 전에 비견되는 대작이다,

 

우리는 오늘 이 시간에 그의 勞作 '교회 교 의학' 중 바르트의 인간이해를 다루고 있는 Ⅲ의 2를 살펴보고자 한 다. 2) 바르트의 신학적 특색은 '하나님 말씀의 신학'이란 점에서는 다른 변 증 신학자들과 공통되나, 신학을 인간학을 바탕으로하여 확립하려 하 지 않고 오로지 하나님 말씀 그 자체, 즉 그리스도론 에서만 구하려 한 점이었다. 3) 신의 초월성이라는 개념은 바르트 신학의 중심부에 자리하고 있기때문 에 이 말이 무엇을 뜻하는지를 확실하게 밝혀두는 것은 대단히 중요하 다. 바르트에게서의 초월이란 공간적 개념이 아니다.

 

하나님이 "전적 인 타자"(derganz Andere)라는 말은 하나님이 타계적 존재라든가 이 세상과 역사 밖의 어떤 곳에 존재한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오히려 하나 님은 누구신가, 그를 어디서 발견할 수 있는가, 그와의 관계를 어떻게 표현할 수 있을까 하는 등의 온갖 인간적 노력으로부터 전적으로 자유 롭다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은 인간이 설정한 거룩한 장소나 거룩한 시간으로부터 자유롭 다. 하나님은 형이상학적인 사색, 사변에 의해 포착되지 않는다.

 

그 는 자연신학, 곧 독자적인 인간의 사고에 의해 도달하고자 하는 하나 님 인식에의 노력에 포착되지 않는다. 바르트는 우리가 하나님에 관하 여 알 수 있는 유일한 것은 여하한 경우에도 인간은 하나님을 알 수 없다는 사실 하나 뿐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하나님은 그 자신이 선택 하는 시간과 장소와 방식을 통해 인간에게 접근한다.

 

하나님은 그가 원하는 때와 원하는 방식으로 인간에게 자신을 계시하신다. 다시 말 하면 초월이란 하나님은 그를 파악하고 알려하고 만나려하는 인간의 능력을 넘어서 계신다는 뜻이다. 하나님의 초월은 공간적 초월이 아니 라 존재론적 초월이시다. 4) 신학적 인간학은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서 가능해지고 성취되는 인 간의 자기이해이다.

 

신학적 인간학은 자연 인간학, 문화 인간학, 철학 적 인간학에 관한 모든 지식을 넘어 그 현상 배후에 있는 인간의 근원 적 본질을 신학적 언설로 표명하는 노력이다. 즉, 하나님의 말씀의 빛 아래서 조명받게 하여 숨겨진 인간의 비밀, 그 인간성의 신비와 운명 을 이해함으로서 오늘 현실의 인간문제를 해결하고 방향제시 하려는 한 학문적 노력이다.

 

5) 변증법(辨證法)적 사고(思考): 1. 사물의 본질파악을 상호 관계성 (interrelations- hip)속에서 이해하는 것. 예를들어 신(神)과 인간, 음과 양, 영원과 시간. 2. 대상물을 운동적, 역동적 상태에서 파악하려는 사고방식. 3. 사물간의 관계가 긴장, 모순, 갈등, 충돌의 관계에 있기 때문에 이것 을 극복, 지양(sublation, 止揚) 관계로서 파악한다. 미루어 보건데, 여기서 바르트의 신학을 '변증법적 신학'이라고 성격화 하는 것은 그 가 인간을 향한 하나님의 말씀을 기본적으로 부정과 긍정이라는 구도 에서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하나님의 계시를 서로 상반되는 것의 긴장으로 파악한다.

 

예를들어, 하나님의 거룩하심과 인간의 죄됨, 하 나님의 인간 심판과 하나님의 인간 용서,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 인 간 등의 도식이 다 그렇다. 6) 기독교는 초월적 내재라고 볼 수 있다. 그것은 초월자가 피조물과는 질적으로 다르기 때문이다. 그것은 영원자가 스스로의 기뻐하심 때문 에 영원하신 사랑의 선택 때문에 스스로 피조물 속에 함께 하시고 피 조물을 변형시켜서 당신의 영광의 세계로 초청하는 것이다. 항상 방향 이 초월에서 내재가 되는 것이다.

 

초월성의 내재화는 기독교를 강조한 다. 하나님 스스로가 자신을 알리시지 않는다면 인간은 하나님을 영원 히 알 수 없다. 7) 인간의 현상: 바르트는 인간 본성에 대한 신학적 정의가 범위를 벗어 나지 않도록 여섯가지 기준들을 그의 교회교의학 Ⅲ,2 p.73-74에서 제 공한다. 첫째, 진정한 인간은 하나님과의 관계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 다. 둘째, 인간예수는 모든 사람의 구원을 위한 하나님의 현존과 계시 였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간은 이런 구원의 역사 속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셋째, 예수는 모든 사람을 위한 신적 행동 속에서 하나님의 자 유, 주권, 하나님의 영관이었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은 그 자체로 목 적인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진정한 결단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넷째, 예수는 그의 주로서 그를 넘어서는 하나님의 주권 아래서 존재한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은, 그가 하나님의 주권 아래 있다는 것 이 그의 존재의 가장 핵심적인 부분인 것으로 이해되어야 한다. 다섯 째, 인간 예수는 전적으로, 하나님이 인간의 구원자로서 활동하시는 역사 속에서 존재한다. 따라서 진정한 인간은 그의 존재와 활동에 있 어 이 역사와 자유에 참여하는 자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여섯째, 하나 님을 위하여 존재한 예수의 존재 자체는 다른 사람들을 위한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진정한 인간은, 하나님이 먼저 그에게 행하신 행동에 의하여, 하나님을 섬기고 인간을 위한 존재로서 이해되어야 한다. 이 상과 같은 기준들은 인간의 본성 개념을 다룰때, 특히 예수 아닌 다른 자료로부터 인간 존재를 탐구하는 때에, 바르트는 '인간의 현상'이라 고 규정한다. 그에 의하면 인간의 현상들은 인간의 진정한 실재를 보 여주는 것이 아니다. 8) 바르트는 하나님 말씀의 해명을 위한 수단 으로서 어떠한 철학적, 문 화적 또는 인간학적 요소에도 의존하려 하지 않는다.

 

특히 실존주의 가 냉혹하게 거부된다. 까닭은 실존주의란 그리스도교에 대한 자유주 의 신학의 인간학적 접근법의 또 다른 한 형식이라고 보였기 때문이 다. 그래서 이제는 오로지 신앙 인식만으로 작업하는 일이 바르트의 신학방법론의 전부가 되었다. 즉 바르트는 신학을 그가 신앙으로 받아 들인 전제, 곧 하나님이 그리스도 안에서 인간에게 말씀하셨다는 大 전제로부터 시작한다. 그리고 이 "하나님의 자기계시를 말씀에 대한 신앙적 순종 가운데서 해명하는 것"을 자신의 최대의 과제로 삼았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진리에 사로잡힌 신앙은 반드시 그 진리를 이해 할 수 있는 길을 찾게 되기 때문이다. 9) 바르트와 브루너 사이의 자연신학 논쟁에 관하여는 박봉랑 교수님의「 교의학방법론」Ⅱ의 pp.208-222를 참조.. 이 논쟁은,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없는가/(finitum non est capax infinitum)하는 기독교적 논쟁이었다.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없다는 것은 칼빈의 입장인데 유한과 무한의 질적차이를 강조하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이 언명은 하 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게 된다. 바르트는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없다는 입장이다. 루터나 브루너, 틸리히는 유한은 무한을 포용할 수 있다고 한다. 유한이 곧 무한이라는 말은 아니다. 있다라는 것은 내재 적인 하나님을 놓치지 않으려는 것이었다. 10) 근대 철학에서 주체는 세계에 대한 지식을 보증해 주는 중심 지위를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나 현대 철학에서 주체는 거꾸로 사회 제도나 규범에 의해 만들어지는 수동적 자리로 밀려난다. 주체는 확실하기는 커녕 의식조차 안 되는 것을 내부에 갖고 있으며, 만들어진 가상과 허 위 속에서 살아간다.

 

11) 흔히 근대를 파악할 때는 중세와 비교한다. 근대철학이 중세철학이 구분되는 가장 중요한 지점은 아마도 중세적 질서를 대변한 신의 자리 를 '이성적 존재인 인간'이 대신 차지해버렸다는 것이다. 데카르트는 이 점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하는데, 데카르트,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 들이 발전시킨 대륙의 합리주의, 이성주의 철학은 중세적인 사고방식 에 엄청난 문제제기였고, 그 결과 근대 철학의 문을 열었다. 다른 한 편 로크에 의해 새롭게 주창되어 또다른 철학 흐름으로 자리잡은 영국 의 경험주의 역시 중세적인 사고방식에 의문을 던진 것이었다. 경험주 의자들은 당연하게 여겨져온 것들을 그대로 받아들이길 거부했으며, 모든 것을 실험과 관찰, 경험에 근거해서 인식하려 했다.

 

따라서 실험 과 관찰, 경험에서 벗어난 신학적 개념들은 더 이상 중세에 누리던 절 대 권위를 유지할 수 없었다. 12) 현대철학에서 인간의 주체란 자명한 출발점도 아니며 통일성을 갖는 확고한 중심도 아니라고 본다. 반대로 그것은 주체 외부의 관계들에 의해 만들어지는 '결과물'이며, 이질적인 복합체로서 본다. 13) 더욱 자세한 내용은 김경재 교수님의 논문 "K. 바르트의 인간상", pp.6∼12과 "김영한: 현대신학의 전망",-대한기독교서회-을 참조. 14) 바르트는 인간을 네가지의 큰 관계에서 논한다. 여기서 네 가지란, 가장 본질적인 관계로서 하나님과의 관계, 그리고 인간과의 관계, 자 신과의 관계, 시간과의 관계이다. 15) 바르트는 계시의 본질을 파악하는데, 인간의 역사에 나타난 하나님의 계시의 본질을 탐색한다. 바르트에 의하면 계시란 인간이 지적으로 동 의해야 할 하나님에 대한 어떤 관념들이 아니다.

 

오히려 하나님은 행 위로서 자신을 계시 하신다. 따라서 하나님의 계시는 말로된 것이 아 니라 사건으로 된 것이다. 하나님은 자신이 누구신지를 인간에게 보여 주는 데 관심이 있지 자신에 대한 명제들이나 사변들을 전달하는데 관 심이 있는 것은 아니다. 또한 하나님은 그의 본성을 계시 하시지는 않 는다. 단지 인간을 위해 취하는 행동을 자신으로 계시하실 뿐이다. 따 라서 하나님의 계시는 하나의 객관적인 사실일 뿐만 아니라, 그게 바 로 예수 그리스도의 삶이라고 했을 때는 유일하다고도 말 할 수 있 다. 그리스도는 하나님이 자신을 확연하게 보여준 하나뿐인 계시이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삶은 역사 안에서 이루어진 일련의 객관적인 사건 들이다. 예수의 삶과 죽음과 부활은 언제나 하나님이 스스로를 나타내 신 일차적 계시, 원색적 계시, 아니 유일한 계시로 존재한다. 16) 바르트가 새롭게 발견한 것은, 하나님의 형상은 관계적이라는 것이 다. 즉 원초적으로 삼위일체 하나님이 성부, 성자, 성령의 관계 속에 계신다. 그러므로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대로 창조되었다고 할 때, 인 간 역시 관계 속에 존재하도록 창조되었다는 말이 된다.

 

그래서 하나 님과 인간간의 상호 관계와 인간과 동료인간(특히, 남자와 여자) 사이 의 관계성은 이 원초적 관계를 반영하는 것이 된다. 둘 사이의 모든 상이성에도 불구하고, 후자가 삼위일체 하나님의 존재 안의 아버지와 아들의 상호관계와 유사성을 갖는 다는 것이다. 인간이 이런 관계성을 이탈하면 할수록 非인간화되고 하나님의 형상으로부터 멀어진다는 것 이 그의 지론이다. 17) 바르트는 로마 가톨락 교회와 종교개혁 지도자들 조차도 하나님의 형 상을 초자연적 능력 또는 본래의 완전성, 즉, 인간의 소유물, 인간의 것으로 해석해 온 것을 비판하면서 관계성으로 볼 것을 주장한다.

 

박 봉랑, "칼 바르트의 信仰", 기독교사상, 1961 5월호 참고. 18) 바르트는 하나님의 은혜스러운 약속과 계명, 선택과 소명관계속에 있 는 참 자유를 소개한다. 가장 깊은 의미에서의 자유는 책임성과 한계 성을 동반하는 섬기는 기쁨의 자유다. 19) 관계유비(analogia relationis)란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어떤 유사성 이나 유비가 존재한다면, 그것은 신과 인간의 질적 유사성이 아니라 신의 자유적인 섭리로서 주어진 관계성의 유비가 있다는 것이다. 바르 트에 의하면 '하나님과의 상응과 일치'는 자연 인간 속에 있는 하나님 과의 접촉점으로서가 아니고 '오직 신앙 안에서의 일치'이다. 그래서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라고도 한다. 존재 유비는(analogia entis) 곧, 하나님의 존재와 인간의 존재의 동일성을 의미한다. 즉, 인간의 타락은 하나님의 형상을 완전히 파괴하지 않고, 자연 인간 안 에 하나님을 알고 경험할 수 있는 능력이 남아 있고, 그러므로 계시와 은총은 구원에 있어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는 관점이다. 김 남 중(한신대학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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