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에 나타난 하나님의 변증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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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칼 바르트

2011. 7.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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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에 나타난 하나님의 변증법

 


1. 머리말

 

칼 바르트(K. Barth, 1886-1968)의 [로마서 강해]는 20세기 신학 전반에 결정적인 영향을 끼친 저술인 것을 부인할 수 없을 것이다. 위기의 신학, 하나님 말씀의 신학, 변증법의 신학 등으로 불리는 초기의 바르트 신학의 독특한 방법론은 [로마서 강해]에 나타난 '하나님의 부정이 하나님의 긍정'이라는 변증법의 논리이다.
그러나 바르트의 변증법적 논리는 단순한 신학적 사변의 결과가 아니라, 그의 생애에 가장 큰 영향을 준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사회주의 운동의 의해 제기된 문제들과 시름하는 과정에서 형성된 것이다.
1914년 8월 독일이 러시아에 맞서 선전포고를 하자, 그해 9월 독일지성인 93인이 독일의 황제 빌헤름 2세의 전쟁 정책을 지지하는 선언서를 발표하였다. 그 명단에서 하르낙(A. Harnack), 헤르만(W. Herrmann)을 비롯한 위대한 자유주의 신학자들이었던 바르트의 스승이 다수 포함되어 있었다. 바르트는 큰 충격을 받았다. 자유주의신학이 자본주의와 군국주의에 결탁하여 전쟁을 지지하는 신학으로 전락하였다면 더 이상 장래를 기대할 수 없는 신학이라는 확신과 함께 자유주의 신학과의 결별을 선언한 것이다. [로마서 강해]는 이 충격에 대한 신학적 대안이었다. 그래서 카톨릭 신학자 칼 아담스는 [로마서 강해]를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던져진 폭탄"이라고 하였고, 콘은 "자유주의 신학에 종지부를 찍은 개신교 신학의 코페르니쿠적인 혁명"이라고 하였다. [로마서 강해]가 자유주의 신학을 겨냥한 것이라는 평가는 이제는 신학적 상식이 되었다.


그러나 이 책이 겨냥한 것은 한편으로 자유주의 신학과 1914년의 독일의 참전 지지 선언이었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종교 사회주의운동과 1917년 레닌의 공산주의 혁명이었다는 사실이 간과되어 왔다. 물론 마르크바르트(F. W. Marquardt)와 단네만(U. Dannemann) 등이 바르트가 정치신학적 이방을 일관하면서 '하나님의 혁명'이라는 개념을 가지고 '레닌의 혁명'을 비판하였다고 주장하였지만, [로마서 강해]가 자유주의신학의 '인간의 이성'과 종교사회주의 운동의 '인간의 실천'을 동시에 부정한 변증법적 성격이 있음을 강조하진 않았다. 이런 점에서 보면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는 "자유주의 신학자의 놀이터에 던져진 폭탄"일 뿐만 아니라, "사회주의 혁명의 시위장에 던져진 폭탄"이었다. 바르트가 사용한 폭탄이 하나가 아니라 두 개였다는 것을 논증하려고 한다.


그리고 칼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를 통해 인간의 모든 현존질서를 승인하는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의 긍정'의 정통주의(Legitimism)와 더불어 인간의 모든 현존 질서를 부정하는 사회주의 혁명의 '인간의 부정'의 혁명주의(Revolution)를 동시에 부정하는 '하나님의 부정'만 이 '하나님의 긍정'을 가져온다는 독특한 신학적 변증법을 아주 도식적으로 제시하였다.
바르트가 하나님의 부정(Yes)과 하나님의 긍정(No), 정립과 반립, 그리고 '하나님의 합일(合一)'라는 용어를 즐겨 사용하지만 "하나님의 변증법"이라는 용어를 명시적으로 사용한 것 같지는 않다. 그러나 바르트가 변증법을 신학적인 방법과 내용으로 수용한 것은 사실이다. 따라서 인간의 논리나 인간의 변증법이 아니라는 차원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선포된 하나님의 논리를 '하나님의 변증법'으로 칭할 수 있는 내적 근거는 충분하다고 여겨진다. 하나님의 말씀은 '인간의 논리가 아니라 죄와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변증법'이기 때문이다.

2. 변증법의 일반적 원리

변증법은 언어의 변증법적 성격에서 비롯된 논리의 체계이다. 이러한 변증의 논리는 제논(Zenon)에서 시작하여 일종의 논리학으로 그 의미와 내용이 다양하게 발전하였으며, 헤겔에 의해 가장 방대한 체계로 전개되었다.
아리스토텔레스 이래의 형식논리학이 사고의 모순을 배제하는 無矛盾의 논리학이라면, 변증법적 논리학은 모순을 용인하는 '모순의 논리학'이다. 형식논리학은 '하나'가 '여럿'이 되는 연역의 논리와 '여럿'이 '하나'로 되는 귀납 논리를 사용했다. 그러나 변증법적 논리학은 '하나' 동시에 '여럿'이 되는 모순을 받아들여 '하나'와 '여럿'의 轉化를 논리적인 명제로 인정하는 것에서 비롯된다.


논리적인 것만을 진리로 받아들인 서구 철학사에서 형식논리의 一意的인 것의 한계를 인식하고 多義的인 것, 고정되지 않은 진술에도 진리가 있다는 주장과 더불어 새롭게 진리를 추구하는 방법적 도구로 등장한 것이 변증법이다. 변증법은 다의적인 전체를 진리로 본다. 다의적인 전체는 공간적으로 사고하면 모순이 되지만 시간의 차원에서는 무모순적인 것으로 파악된다. 따라서 변증법에서는 진리를 공간의 차원에 고정 불변된 것으로 '일'과 '다', '유'와 '무'의 轉化처럼 시간적 차원의 운동 과정으로 이해한다. "전체는 진리이고 진리는 운동이다. 그리고 운동 가운데 진리가 있고, 운동으로만 전체가 이해된다." 하이스는 '진리, 운동, 전체' 이 세 개념은 서로 순환하며, 이것이 변증법적 사상의 공통 분모라고 한다.


변증법은 단순한 논리의 법칙이 아니라 논리학보다 더 근원적인 "사고와 존재, 인식과 대상의 진정한 관계, 즉 진리를 연구하는 인식 내지는 방법론이며, 논리학, 존재론, 인식론, 방법론 등을 포함하고 있다." 변증법의 일반적 현상인 전체, 진리, 운동을 순환시키는 원리는 변증법의 일반적 원리로써 다음의 세 가지가 있다.
첫째는 제 1 원리로서 부정이다. 변증법의 현상을 순환시키는 제1차의 대상이 운동이라면, 이러한 운동을 야기시키고 긍정적인 것을 앞으로 밀고 나가 변화시키는 것이 "不定"이다. 모든 변증가는 부정을 사고의 출발점으로 삼는다. 모순의 논리학은 긍정적인 것으로부터 출발하는 것이 아니라, 부정적인 것에서부터 출발한다.


둘째는 제 2 원리로서 생산적 모순이다. 모순은 변증법의 핵심으로써 변증법적 사고가 발견되는 곳에는 반드시 모순이 등장한다. 모순이 생기고 그것이 공공연해지는 경우 반드시 운동(변화)가 일어나므로 모순의 원리는 생산적 원리이다. 부정과 함께 모순이 나타나고 여기에서 변증법적 운동이 시작된다. 모순의 성격은 중간 상태이지만, 중간 상태는 새로운 상태로 轉化한다. 모순은 '대립의 투쟁'과 '대립의 통일'을 일으킨다.


셋째로 제 3 원리로서 변증법적 단계이다. 이 원리는 모순은 다음 단계를 강요한다는 표상에서 시작한다. "대립과 모순 그 자체로부터 새롭고 보다 상위의 개념을 내놓는다." 모순에서 새로운 통일이 나오며, 새로운 통일은 다시 모순이 된다. 따라서 모순은 변증법적 계열을 갖게 되며, 변증법적 체계를 갖는다. 변증법적 체계와 계열은 전체 현상을 3단계로 구분하며, "이 삼분법은 변증법의 공식"되었다. 피히테는 이를 정, 반, 합으로 공식화했다.
이러한 변증법의 일반적 현상과 원리는 대표적인 변증법 사상가인 헤겔, 맑스, 키에르케고르에 의해 다양한 방식으로 전개되어 왔다. 변증법은 전체의 진리를 추구하며, 변증법 사상가에겐 이 전체적 진리가 각기 다른 절대자로 묘사된다. 헤겔은 '세계 정신'을, 맑스는 '계급없는 사회'를, 키에르케고르는 '역설적인 신'을, 바르트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체와 진리로 설정한다.


변증법적 운동에 대해서 헤겔은 '절대 정신의 원형 운동'(Kreislauf)을 주장했으며, 이 원형 운동이 역사의 과정이며, '절대 정신'의 고양을 지향한다고 한다. 맑스는 이 운동을 '생산 관계의 대립적 투쟁(혁명)'과정으로 파악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인간의 실존적 3단계로 나아가는 '실존적 운동'으로 설명한다. 그러나 바르트에게는 '하나님의 화해(合一)'는 시간적으로, 공간적으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 나타난 유일회적인 사건이므로 화해의 과정으로써 운동이라는 개념은 나타나지 않는다. "예수는 역사 안에서의 역사의 해체요, 시간 안에서 시간의 종말"이므로 운동의 역사적 과정이 불필요한 것이다. 하나님의 은혜는 수직선적으로 위로부터 우리에게 내려오므로(Vertical from above) 시간의 운동 과정이 불필요한 영원한 순간이다.


변증법의 3가지 원리에 대해서도 서로 상이한 이해를 나타내 보이고 있다. 제1원리인 부정에 대해 헤겔은 '논리학' 서론에서 자세히 설명하였다. 헤겔에 의하면 변증법이 가능한 것은 부정의 법칙이며, 이는 "규정적인 부정"과 "전면적인 부정"으로 구분된다. "규정적인 부정은 이 부정이 부정하는 긍정적 내용을 어느 정도 그 안에 흡수하고 있다." 이러한 부정은 긍정을 포함하여 보다 상위의 것으로 통일시킨다. 그러나 '전면적인 부정'은 아니다. 왜냐하면 긍정적인 것을 지양하면서도 그것을 수용하기 때문이다, 헤겔이 말하는 '전면적 부정'은 바르트의 위대한 부정(Great Negative), 하나님의 부정(Divine Negation)이라는 개념에 해당한다. 바르트는 하나님의 부정은 인간의 부정과 인간의 긍정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절대적 부정으로 보기 때문이다.


이에 반해 맑스는 부정을 '혁명적 사유의 부정'으로 본다. 무산 계급의 공산 혁명을 그의 유물변증법의 제1원리로 본 것이다. 키에르케고르는 "믿음의 고투를 통해 하나님의 절대성을 붙잡았을 때 느껴진 하나님의 거룩함에 환기된 의혹과 두려움의 부정"을 말한다.
제 2원리인 모순에 대한 견해도 차이가 있다. 헤겔은 '이성(정신)과 현실, 자유와 부자유'의 모순을 말하며, 맑스는 생산과 착취, 자본과 노동의 '생산적 모순과 소외'를 주장한다. 키에르케고르는 '죄인임에도 불구하고 의인이 되는' 종교적 삶의 '실존적 모순'을 강조한다. 그러나 바르트에게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의 모순", "신앙의 모순(paradox)"을 절대적 모순으로 파악된다.


변증법의 마지막 원리인 '변증법의 단계'는 '삼분법으로 구분되는 변증법의 공식'으로 다양한 형태로 등장한다. 헤겔은 [역사철학]에서 한 사람의 자유(동양), 소수의 자유(그리스, 로마), 모두의 자유(게르만)의 단계로, 그리고 [정신현상학]에서는 유한한 정신, 무한한 정신, 절대정신의 단계로, [법철학]에서는 추상법, 도덕, 인륜(人倫)의 단계와 종족, 시민사회, 국가의 단계로 설명하였다. 헤겔은 아주 자의적으로 전체 현상을 3단계, 혹은 3부분으로 형식적으로 나누었다. 이 공식은 맑스도 계승하여 [경제학 비판]에서 시민 사회를 3계급, 즉 자본가, 지주, 임금 노동자로 나눈다. 키에르케고르 역시 '실존의 세 단계(Stages in the way of life)'에서 미적 단계, 윤리적 단계, 종교적 단계를 제시한다. 바르트도 내용은 다르나 그 양식에서 '설교로 선포된 말씀', '성서에 기록된 말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이라는 하나님의 말씀의 3중적 형태의 변증법의 공식을 채용한다. 이것은 후기의 바르트가 신앙의 유비의 방법으로 전향했다고 주장함에도 변증법적 구조를 그대로 견지하고 있음을 보여준다.


헤겔은 '변증법을 참된 사유의 도구'라고 하였으며, 정, 반, 합의 발전 과정으로 중시했다는 점에서 양적 변증법이라 불리운다. 맑스는 변증법을 '철학을 과학으로 만드는 방법'이라 하여 스스로 과학적 변증법이라 했다. 키에르케고르는 헤겔의 변증법을 공격하는 과정에서 자기 자신의 변증법을 체계화했다. 헤겔의 사변 철학이 '이것 저것 둘 다(both and)'를 주장하는 천박한 화해와 조화를 공격하고, '이것이냐, 저것이냐' 양자택일을 강조하는 '질적 변증법'을 주장하였다.


바르트는 키에르케고르의 변증법을 그의 신학적 체계로 수용한 것임을 [로마서 강해] 서문에서 분명히 밝혔다. 바르트는 자신의 변증법을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는 통찰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양자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로 인해 아무런 중간 매개로서의 접촉점이 없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요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정반합의 변증법적 관계가 성립된다.

 

3. 바르트 신학의 방법론으로서 변증법

 

바르트의 신학은 위기의 신학, 변증법의 신학,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으로 불리운다. 용어는 다르지만 이 세 가지 신학방법론의 내적 원리는 변증법이라는 공통점이 있다.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는 20세기 신학의 결정판으로 '위기의 신학의 교본' 이라 불리운다. 위기(Krisis)라는 말은 스펭글러가 '서구의 몰락'에서 사용함으로써 20세기의 학문적 유행어가 되었다. 스펭글러가 사용한 위기는 사회적, 문화적, 역사적 절망에서 오는 위기의식이다. 그러나 바르트가 말하는 위기는 "19세기 인간 중심의 신학에 대한 분노의 하나님의 거센 부정(Nein)"이며, "인간의 의가 하나님의 의 앞에서 부인(Nein)되는 순간의 위기"이다. 메킨토쉬(H. R. Mackintosh)는 '위기'라는 말을 두 가지 의미, 즉 '생각의 움직임에 있어서 방향 전환'과 '하나님의 말씀의 심판'으로 설명한다. 따라서 위기의 신학은 19세기의 자유주의신학이 교회의 전통적 교리를 무시하고, 성서비평학을 통해 성서를 역사적 고문서인 인간의 기록으로 받아 들이고, 신학은 신에 대한 인간의 말로만 여기는 '인간의 말'을 원리로 삼는 신학을 위기로 규정한다. 그리고 성서의 전통교리를 새롭게 수용하고, 성서를 하나님의 영감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신학을 인간에 대한 신의 말씀으로 선포하는 '하나님의 말씀'을 원리로 삼는 신학으로의 전환을 촉구한다. 이 위기는 '모든 차안(此岸)의 긍정과 부정에 대한 부정'으로서 '위로부터 내려오는(인간, 세계, 종교 이 모든 것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이며, 하나님의 부정(Divine Negation)'이다.


그러나 위기는 또한 기회이다. 하나님의 심판을 통해 하나님의 구원이 완성되기 때문이다. 위기를 기회로 파악하려는 것이 바르트의 '변증법의 신학'이 [로마서 강해]의 주제이다. 이 책은 먼저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며,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세계는 세계라는 '하나님과 인간 및 세계 사이의 무한 질적 차이'를 강조한다. 이러한 무한한 질적 차이만 강조할 경우 그것은 하나의 위기요 모순으로만 드러난다. 그러나 성서는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다"고 선언한다. 바르트의 변증법적 신학은 하나님이 인간이 되신 그리스도의 성육신에서 출발한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인간은 인간이기 때문에 양자 사이의 무한한 질적 차이로 인해 아무런 중간 매개로서의 접촉점이 없다. 하나님이 인간이 되셨기 때문에, 참 하나님이요 참 인간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정반합의 변증법적 관계가 성립된다는 점을 다양한 방식으로 설명한다. .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무한한 차이가 양자의 참된 합일(合一)이다. 시간과 영원, 인간의 의와 하나님의 의, 차안과 피안이 예수 안에서 철저하게 대립(反)되어 있기 때문에, 이 양자들은 예수 안에서 그리고 하나님 안에서 합(合)하여 진다."
"이 변증법에는 살아 있는 진리, 곧 하나님에 관한 결정적인 언표 내용은 하나님(참 하나님 !)이 인간이 되셨다(참 인간 !)는 사실에 대한 확고부동한 통찰이 들어 있다."
"신학에 있어서 진술과 반대 진술의 방법을 사용하는 길 이외에는 다른 어떤 방법도 없으며… 우리는 변증법적 이원론의 방법에 의하지 않고는 하나님을 알 수 없다."
"우리는 신을 이율성(Zweiheit) 속에서 파악할 수 밖에 없으니, 하나가 둘이 되고, 둘이 참 하나가 되는 변증법적 이율성으로 신을 파악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은 하나님의 부정과 하나님의 긍정으로 파악된다. 인간의 부정과 인간의 긍정을 동시에 부정하는 하나님의 부정만이 하나님의 긍정을 가능케 한다. 하나님의 부정 역시 하나님의 긍정에서 비롯된 것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면하는 하나님의 부정은 하나님의 긍정에 비추어서만 이해할 수 있다. 저 부정은 긍정에서 나온다."

하나님의 부정과 하나님의 긍정 사이는 변증법적 관계가 있다. "부정은 불가피하게 긍정일 수밖에 없다.", "하나님의 부정은 예수의 죽음에 의해 긍정으로 나타난다." 왜냐하면 진노(부정)의 하나님은 사랑(긍정)의 하나님이기 때문이다. 고 한다.


바르트 해석자들은 그의 초기 사상과 후기 사상을 구분한다. 맥킨토쉬가 바르트의 신학을 '하나님 말씀의 신학'이라고 정당하게 평가했을 때도 "그가(Barth) 변증법적, 또는 역설적 사유를 초극했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고 전제한다. [교회교의학] 초판의 개정판에서 '변증법적'이란 말을 의식적으로 사용하지 않은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변증법이란 단어가 없기 때문에 그것이 소용없게 된 것은 아니다. 오히려 그는 조심스럽게 변증법을 말한다. "하나님의 말씀이 온전히 엄격한 의미에서 역설의 개념을 성취하는 것이다… 그러나 지금까지 이 개념이 혼란을 일으킨 일이 없지 않기 때문에 신학에 있어서 이제부터 이 개념의 사용을 아껴야 하겠다"고 말할 때 헤겔이나 맑스의 변증법을 염두에 둔 것이다. 그는 이러한 조심성을 [로마서 강해] 2판 서문에서 분명히 밝혔다. 성서의 본문 말씀을 이해하고 해석하기 위해 필요하고도 우선적으로 요구되는 것이 '주제의 내적 변증법'이라고 했으며, 그 자신이 하나의 '체계'가 있다면 그것은 키에르케고르의 '시간과 영원의 무한한 질적 차이'로 불리우는 '질적 변증법'을 이어 받았다고 명시했다.


후기의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에서 그는 하나님의 말씀의 3가지 존재 양태로써 '설교로 선포된 말씀', '성서에 기록된 말씀', '하나님의 계시된 말씀'을 웅장하게 피력했다. 이것은 말씀의 전체적인 현상을 3부분으로 조화시킨 것이며, 이러한 "삼분법은 변증법의 기본 공식"이며, 모든 "변증법적 사고의 공통 분모"로써 나타나는 것이다. 따라서 '하나님의 말씀의 신학'인 교회교의학도 그 형식에 있어서 변증법의 근본 원리를 쫓고 있다는 것을 부정할 수 없을 것이다.
바르트가 만년에 모짜르트 음악에 심취하여 모짜르트에 관한 수 편의 논문을 썼을 때도 그것은 바르트의 신학적 방법론을 음악적으로 시사하였다. 바하(C. Bach)는 하늘의 영광을 찬양하고 베토벤은 인간의 고난을 노래했지만, 모짜르트 하늘의 영광과 인간의 고난의 그의 '음악적 변증법'으로 제시하였으므로, 모차르트의 음악에서 자기의 신학적 체계의 멜로디를 들을 수 있다고 하였다.

 

이처럼 바르트에게는 변함없이 변증법적 사고가 그의 신학의 내적 형식 구조를 이루고 있음이 분명하다. 변증법의 여러 유형에 대해 공정을 기하기 위해 굳이 이름을 붙인다면, 바르트의 변증법은 헤겔의 양적 변증법이 아니라 키에르케고르의 질적 변증법을 이어 받은 것으로써 '인간의 논리가 아니라 죄와 죽음에 대한 하나님의 변증법'이다. 존재의 유비(analogia entis)가 아니라 신앙의 유비(analogia fidei)라는 법을 후기 교회교의학에서 채택했다고 하나, 신앙의 유비 역시 하나님과 인간의 不同性과 同性을 동시에 말하려는 비유나 은유가 아닌 제3의 비교점을 비교의 목표로 설정하는 방법론이므로, 그 형식에 있어서 변증법적인 성격을 지닌 것이다.


바르트의 변증법은 그의 신학의 일관된 방법론이다. 그의 변증법적 방법론은 "무엇보다도 예수 그리스도라는 이름이 변증법적인 것을 가지고 있다."는 기독록적 집중에서 출발한다. 참 하나님이 참 사람이 되고, 십자가의 사건이 부활의 사건이 되는 내재의 원리와 초월의 원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변증법적으로 형상화된다. 그래서 구원론적으로는 하나님의 심판이 하나님의 구원이 되고, 성서론적으로 성서에 기록된 인간의 말이 곧 하나님의 말씀이다. 종말론적으로는 옛 역사의 부정은 새 역사의 시작이 된다. 인식론적으로 계시된 하나님은 동시에 감추인 하나님이며, 윤리적으로 불가능한 가능성이 가능한 가능성이 된다. 그리고 예정론적으로 하나님의 선택된 자가 버림받고, 하나님의 버림받은 자가 선택된 것이다.

4.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의 긍정'과 종교사회주의 운동의 '인간의 부정'

 

바르트의 변증법은 '인간의 부정(human negative)과 인간의 긍정(human positive)' 그리고 '하나님의 부정(Divine Negative)과 하나님의 긍정(Divine Positive)' 사이의 관계를 분명히 해석할 때 밝혀진다. 이러한 주제가 가장 명시적으로 나타난 것이 [로마서 강해]이다. 그러나 로마서 강해에 나타난 바르트의 '변증법'은 단순한 신학적 논리적 사변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그의 변증법의 신학에는 그의 학업과 목회활동을 통해 결정적인 영향을 준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사회주의 운동과 시름하는 가운데서 "성서의 새로운 세계"를 로마서를 통해 발견함으로서 자유주의 신학의 한계와 사회주의 혁명의 한계를 동시에 극복할 수 있는 새로운 대안으로 주어진 것이다.


바르트는 그의 생애를 통해서 두 가지의 커다란 영향을 받았다. 첫째는 베르린과 마르부르크에서 수학하는 동안 가르침을 받은 두 위대한 자유주의 신학자인 하르낙(A. Harnack, 1851-1930)과 헤르만(G. Herrmann, 1846-1922)의 영향이다. 그는 1906년 가을 학기부터 하르낙을 비롯한 칼 홀(K. Hall), 카푸탄(J. Kauftan), 궁켈(H. Gunkel), 제베르그(R, Seeberg)가 가르치고 있던 베를린 대학에서 수학하였다. 그리고 1908년 봄부터는 마르부르크 대학에 가서 세 학기 동안 불트만(R. Bultmann)과 나란히 않아 헤르만의 강의를 들었다. 그리고 저명한 성서학자인 바이스(J. Weiss)와 율리허(A. J licher)의 역사비판적 성서 주석방법을 배웠다. 1909년 베른에 돌아와 목사안수를 받고 바젤의 개혁교회의 부목사가 되었다.

 

이 때에 발표한 그의 논문 "현대신학과 하나님의 나라의 봉사"에서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종교적 개인주의와 역사적 상대주의 때문에 마르부르크나 하이델베르크와 같은 자유주의적 신학교에서 훈련받은 사람들이 할레대학과 같은 보수주의적 신학교에서 훈련받은 학생들 보다 목회에 들어가기 어렵다는 것을 지적하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계1차 대전이 일어나기 전까지의 바르트의 강연과 설교는 자유주의 신학에 영향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그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에 근본적인 질적 차이가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1914년의 바르트의 설교를 들어보면 하나님은 인간이 생각할 수 있는 "가장 훌륭한 분"이지 인간과는 질적으로 다른 전적 타자는 아니었다. 심지어는 인간과 하나님의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인간은 이곳 땅위에 있는 제2의 신이다."고 까지 하였다.


둘째는 스위스 종교사회주의 운동의 대표적인 인물인 쿠터(H. Kutter 1863-1931)과 라가즈(L. Ragaz 1868-1945)의 영향이다. 바르트는 1911년 아르가우주 자펜빌의 목사로 부임하였는데, 그곳은 농촌지역에서 공업지대로 발전하면서 많은 사회문제가 드러나고 있는 곳이었다. 교인들의 대부분이 공장노동자로 생계를 유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바르트는 교구 목사로서 노동자와 고용주 사이의 대립과 사회 문제에 직면하였다. 바르트는 종교사회주의의 운동에 호감을 갖고 하나님과 인간의 변증법적 관계를 알기 위해 매일의 일과로 성경과 일간 신문을 탐독하였다.

 

쿠터의 라가즈의 주장에 따라 그리스도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은 단순히 영혼 구제만 일삼는 것이 이니라 육체적 곤고도 담당하시기 위하여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시고 부활하신 것으로 확신하였다. 1911년 노동자들에게 행한 "예수 그리스도와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이라는 강연을 통해 "예수의 인격의 참된 내용은 사실상 '사회정의를 위한 운동'이라는 말로 요약될 수 있다."고 주장하였다. 사회주의 운동은 하나님의 의지를 구체적인 삶의 현장에 실현시키는 복음적인 운동이라고 믿었다. "사회주의는 복음의 중요하고도 불가피한 적용이다."

 

그는 기독교적 현실주의에 입각하여 교회의 문제와 사회의 문제를 별개의 것으로 보지 않았다. 정치적 문제가 그에게는 무엇보다도 우선적으로 해결되어야 할 문제로 여겨졌다. 바르트는 트루나이젠과 함께 사회변혁을 지향하는 사회주의가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는 아니라고 해도 주일마다 설교할 수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실체에 대한 가장 인상적인 비유라는 신념을 공유하였다. 그래서 1915년에는 스위스의 노동자 정당인 사회민주당에 입당하였고, 1916년에는 '종교사회주의 협의회의 총회장'을 역임하기도 하였으며, 1917년 여름에는 '노동조합 결성'에 동참하였다.

 

 노사관계의 문제점을 직시하고 노동현장의 여러 모순적인 현실의 변혁과 개혁을 위해 노동쟁의에 적극 참여하였고 노동자 편에서 활동하였다. 공장주들은 이러한 바르트를 '사회주의 목사'(Sozialistischer Pastor), '빨갱이 목사'(Roter Pastor)라고 불렀다. 그의 교인 중 공장주였던 한 사람은 바르트의 목회 방침을 비판하고 카톨릭 교회로 간 일도 있을 정도였다.


그러나 바르트는 이처럼 그에게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던 자유주의 신학과 종교사회주의와의 결별하게 되었다. 1914년 독일의 1차 세계대전 참전과 1917년의 러시아 혁명은 그가 이제까지 지녀온 신념을 재검토할 수밖에 없는 상황으로 몰아 간 것이다.


먼저 자유주의 신학과의 결별은 1914년 8월 1일 독일이 러시아에 선전포고를 하고 1차 세계대전의 참전한 것이 그 계기가 되었다. 그해 9월 그가 존경하였던 보수주의 신학자 쉴라타를 비롯한 하르낙과 헤르만 등 93인의 독일의 지성인들이 독일황제 빌헤름 2세의 전쟁 정책을 지지하는 선언서에 서명하였을 때, 그가 받은 충격을 후에 이렇게 술회하였다.

"그 해 8월초 어느 날이 나에게 비통의 날로 다가왔다. 93명의 지성인들이 빌헤름 2세와 그의 자문관의 전쟁정책을 승인한다고 발표하였는데, 놀랍게도 그 가운데 신뢰하였던 많은 신학 스승들의 이름을 발견하였다. 그들의 윤리를 의심하면서 동시에 그들의 윤리학, 조직신학, 성서해석, 역사서술을 더 이상 따를 수 없으며 19세기 신학이 나에게는 미래가 없는 것으로 느껴졌다."

 

바르트는 1916년 가을 로이트빌(Leutwill)에서 행한 "성서 안에 놀라운 새로운 세계"라는 제목의 강연을 통해 12년 동안 목회자로서 지니고 있던 '자신의 신학적 사고와 경향'을 떠나 "성서의 놀라운 새로운 세계"로의 전회를 시도한다. 즉 "인간의 역사가 아닌 하나님의 역사, 인간의 입장이 아닌 하나님의 입장"으로 방향 전환을 꾀한 것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새롭게 발견하고, 진정한 신학은 신에 대한 인간의 사고가 아니라, 인간의 대한 하나님의 사고라는 신학에 있어서의 코페르니쿠스적 전회를 시도하였다.

 

"성서의 내용을 형성하는 것은 하나님에 대한 인간의 사고가 아니고, 인간들에 대한 인간의 사고가 아니며, 인간들에 대한 하나님의 사고이다. 성서는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할 것인가를 우리에게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그가 우리에게 무엇을 말하는가를 가르친다.… 성서 안에 있는 것은 이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성서 안에 있다."

 

1914년 1차 세계대전 이후에도 자유주의신학에 대한 반발로 종교사회주의 운동에 더욱 적극 가담한 것 같다. 그러나 1915년 투르나이젠에게 보낸 한 편지에서 종교사회주의 운동을 원칙적으로 지지하면서도, 그 원리와 방법론에 있어서 쿠터와 라가츠의 차이를 냉정하게 분석하고, 라가츠의 입장에 문제점이 있음을 직시하게 된다. 바르트는 반문한다. "사회적인 갈등 속에서 살아 계신 하나님은 어디에 현존하는가?" 라가츠의 사회운동에는 하나님과 하나님에 대한 예배가 설 자리를 찾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다.

 

가정예배 예식문의 교정 문제로 라가츠와 바르트는 직접적인 갈등을 빗게되고, 바르트는 '하나님의 섭리'와 조용히 하나님의 행동을 기다리는 예배의 중요성을 다시금 강조하게 된다.
1917년 10월 레닌의 의해 러시아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자, 바르트는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적 정치적 실현을 지향하여온 종교사회주의의 혁명 노선의 한계를 절감하고 종교사회주의와의 결별을 단행한다. 훗 날 당시의 심경을 술회한 것을 들어보자.

 

"나는 한 때 종교사회주의자였다. 나는 거기서 떠났다. 그것은 인간의 운명과 구원에 대한 이해가 성서의 가르침에 비해 깊지 못하기 때문이다."

1919년 탐바하에서 열린 종교사회주의 협의회에서 바르트는 "사회 속의 그리스도"라는 주제의 강연을 통해 "복음을 세속적 운동으로 속화하는 것을 경고"하였다. 라가츠는 후일 자서전에서 바르트의 강연으로 인해 "종교사회주의의 주제의 혁명적 요소가 마비되었다"고 술회하였다. 탐바하 강연 후 라가츠와 바르트는 결별은 명확하게 드러나게 되었다..


바르트는 [로마서 강해] 초판(1919)에서 종교사회주의의 하나님의 나라를 위한 투쟁 자체를 부정하지 않았지만, "사회민주주의가 하나님의 나라를 대신할 수 없다."고 확신하였다.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를 발견한 바르트는 라가츠의 종교사회주의 운동이 원리와 방법에 있어서 "하나님의 실천"을 "인간의 실천"과 동일시 내지 혼합하는 위험을 직시한 것이다. "이들은 결국 '하나님'과 함께 하면서 하나님에게서 등을 돌리기 때문이다." 바르트는 '인간의 혁명'의 한계를 지적하고 '하나님의 혁명'을 주창하였다. 혁명적인 하나님은 인간적 혁명보다 훨씬 철저할 뿐만 아니라 또한 인간의 모든 혁명들에 내재한 악을 드러내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로마서 강해] 초판 13장의 강해는 레닌의 [국가와 혁명]을 통해 주장한 영구혁명론을 실랄하게 비판하기 위해 쓰여진 것으로 평가된다.


바르트가 1919년을 전후하여 종교사회주의 운동과 결별한 후에 그의 전 생애 동안 이 러한 입장을 일관하였는가 하는 것은 바르트 학자들 사이에 논란이 되고 있다. [로마서 강해]를 쓴 1919년 이후 10년동안, 다시 말하면 독일에서 히틀러의 나치 정권이 등장하여 좌익으로 몰리기 전까지는 사회적 정치적 실천에 소극적이었다고 평가 할 수 있을 것이다.


바르트가 1915년 이후 '성서 안에서 발견한 새로운 세계'를 더욱 진착시킨 것이 [로마서 강해]이다.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의 강조로 인해 결국은 자유주의 신학이 '하나님의 말씀'과 '인간의 말'의 질적 차이를 해소한 것을 비판하게 되었으며, 동시에 종교사회주의 운동이 "하나님의 실천"을 "인간의 실천"으로 혼합하거나 혼동하는 것을 경고하게 된 것이다.


하나님은 하늘에 계시고 인간은 땅에 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고 세계는 세계이다. 그러나 하나님이 인간이 되셔서 이 세상에 오셨고 지금도 오고 계신다. 하나님이 오심으로 옛 사람은 새 사람이 되고, 옛 세계는 새로운 세계로 대체된다. 하나님은 옛 세계를 바꾸고 새 세계를 만드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하나님의 오심과 활동은 기존하던 옛 질서의 변화와 연결된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상을 변혁하는 것과 인간이 세상을 변혁시키는 것과 혼돈해서는 않된다. 이점이 바르트의 돋보이는 착안이다. 바르트는 "하나님이 새롭게 하시는 일이 인간적인 진보라는 것과 혼돈 되어서는 않된다."고 보았다.


당시의 인간적 진보는 두 가지 방향으로 전개되어 왔다. 한편으로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18세기의 계몽주의를 발전시켜 인간의 이성과 양심의 자유를 통해 역사의 진보를 꾀 할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나 자유주의자들의 역사의 진보의 논리는 국가의 발전의 논리로 왜곡되어, 1차 세계대전에서 보듯이 제국주의와 군국주의의 군화에 짓밟혀 전쟁의 포화 속에 수 많은 인명이 살해되는 역사의 후퇴를 가져왔다. 다른 한편으로 종교사회 운동과 맥을 같이하는 극단적인 혁명주의는 기존 질서의 전복을 통해 역사의 진보를 꾀하려 하였으나, 러시아 혁명에서 보듯이 유혈 폭동의 와중에서 수 많은 사람들이 희생되는 피의 악순환이 역사의 진정한 진보인가 하는 회의를 불러 일으켰다.


바르트는 새로운 대안을 제시하여야 했다. 그래서 [로마서 강해]를 들고 나온 것이다. 바르트에 의하면 하나님의 혁명은 세상을 점진적으로 개혁하거나 급진적으로 변혁하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새롭게 창조하려는 것이기 때문에, 하나님의 혁명만이 옛 역사를 청산하고 새 역사를 창조하는 유일한 대안이라 확신한 것이다.

5. 하나님의 부정과 하나님의 긍정의 변증법

 

앞서 살펴 본 것처럼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에 나타난 '하나님의 변증법'은 논리적 사변이나 추상적 이념의 산물이 아니라, 20세기 초 세계사의 격동의 한 가운데서 겪은 뼈아픈 실제적인 체험에서 우러나온 결단이요, 성서 특히 로마서를 통해 그에게 들려진 하나님의 말씀의 예언자적 대언이다.


바르트는 로마서 중에서도 특히 12:1-15:13을 통해 '인간의 긍정'을 부정하고 '인간의 부정'도 부정하는 '하나님의 부정'만이 '하나님의 긍정'에 이른다는 하나님의 말씀을 발견한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분의 성서 본문에 대한 강해의 제목을 아래와 같이 조직신학적인 체계로 도식화하여 제시한다.

12:1-15:13 Great Disturbance
12:1,2 The problem of Ethics
12:3-8 The pre-supposition
12:9-15 Positive possibilities(Human positive)
12:16-20 Negative possibilities(Human Negative)
12:21-13:17 The Great Negative Possibility(Divine Negative)
13:8-14 The Great Positive Possibility(Divene Positive)
14:1-15:13 The KRISIS of Human Freedon and Detachment

바르트는 인간의 긍정과 인간의 부정, 하나님의 긍정과 하나님의 부정 사이의 변증법적 관계를 로마서 12장 후반 부에 기록된 "악에게 지지 말고(12:21)",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12:17)", "선으로 악을 이겨라(12:21)"는 세 명제와 관련시켜 풀이한다. 현존 질서를 긍정하는 것은 악에게 지는 것이고, 현존질서를 거역하여 혁명을 꾀하는 것은 악으로 악을 갚는 것이다. 제3의 길은 선으로 악을 이기는 '하나님의 혁명'이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정과 긍정의 변증법의 논리를 좀더 구체적으로 설명하면 다음과 같다.

 

1) 악에게 지지 말라 : '인간의 긍정'에 대한 하나님의 부정

바르트는 인간의 자기 긍정을 현존질서를 긍정하는 것이라 하였다. 인간의 자기긍정은 악하기 보았기 때문에 현존질서를 긍정하는 것은 악에게 지는 것으로 개념화하였다.
'인간의 긍정'을 여러 말로 표현하고 있는데, 예를 들면 'self righteousness', 'self glorification', 'positive possibility', 'positive Ethics'등이다. 여기에는 '인간의 모든 것, 즉 순수과학, 응용과학, 예술, 도덕, 종교, 심리적 건강, 영적 건강, 복지, 결혼, 가정 생활, 교회, 국가, 사회, 그리고 수 많은 이념들' 등, 이 모든 것이 인간의 긍정이며, 그것은 현존 질서(existing order)를 긍정하는 '정통주의의 원리(Priciple of Legitimism)'에 입각해 있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이러한 자신의 사상을 기호화하여 간단명료하게 서술하였다. 인간의 모든 현존의 질서를 기호 "(a, b, c, d…)"로 표시하고, 그것을 인간이 긍정한다는 의미를 갖는 + 기호를 붙혀, "(+a, +b, +c, +d…)"로 표시한다. 그러나 모든 현존질서는 하나님의 절대선 앞에서 부정적인 것으로 판단될 수 밖에 없다. 따라서 현존 질서를 긍정하는 것은 "악에게 지는 것"으로 규정하였다. 하나님은 현존질서를 긍정하는 것을 전체적으로 부정하신다. 이 하나님의 부정은 괄호 밖의 - 기호로써 "-(+a, +b, +c, +d…)"로 나타냈다. 하나님은 현존질서를 긍정하는 정통주의는 악에게 지고 마는 것이므로 이를 부정하는 "The Great Negative Possibility"이기 때문이다.


현존질서에 수용 여부에 대한 바르트의 견해는 가히 혁명적이다. 바르트는 악에 대한 선의 승리라는 과제는 적과의 관계에서 보다 현존질서 안에서의 더욱 중요한 과제가 된다고 보았다. 하나님과 그의 질서를 찾는 사람들에는 현존질서는 승리에 도취되어 있는 불의의 화신으로 보일 뿐이다. 현존질서는 하나님에 대항하여 인간을 후원하고 방어하는 체제이며, 인간의 위선적 동맹이라고 보았다. "선이 구체화될수록 악이 된다. 최고의 정의는 최대의 불의(summum jus, summa injuria)".라는 것이다. 바르트는 그 실례로서 도스토엡스키의 대신문관에 나오는 최선의 현존질서를 구축하려 했던 신정정치의 과오에서 찾았다. 모든 선이나 권위가 구체화 될수록 사악하여 진다고 보았기 때문에 현존질서는 악해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유주의 신학은 현존질서를 모두 긍정하는 강한 경향성을 지니고 있으므로 결국은 악에 지는 결과를 초래하게 된다.

2) 악을 악으로 갚지 말라 : '인간의 부정'에 대한 하나님의 부정

바르트는 현존질서가 악하다고 그것을 부정하는 인간의 온갖 종류의 혁명을 악을 악으로 갚는 것으로 개념화하였다. 인간의 부정'을 'self annihilation','negative possibility','negative Ethics' 등 여러 가지로 표현한다. 이러한 인간의 부정은 현존 질서가 불의하고 악하므로 그 변혁을 위해 혁명의 원리(Principle of Revolution)를 주장한다. 그는 이것을 현존 질서의 부정은 괄호 안의 마이너스 기호를 붙이는 것으로 "(-a, -b ,-c, -d…)"로 기호화했다. 그러나 모든 혁명은 현존질서를 악으로 규정하는 것은 인간의 부정으로서 이러한 인간의 부정은 정당하나 현존하는 악한 질서를 변혁하기 위해 적의와 폭력의 수단을 사용하기 때문에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 되고 만다. 하나님은 이러한 인간의 혁명을 부정한다. 이러한 하나님의 부정은 괄호 안의 마이너스를 괄호 밖의 마이너스로 부정한 것이므로 "-(-a, -b, -c, -d…)"로 표시된다. 하나님은 현존질서를 긍정하는 정통주의를 부정하는 혁명주의는 악을 악으로 갚는 것이기 때문에 "The Great Negative Possibility"이다.


바르트는 레닌의 프로레타리아트의 독재라는 혁명적 구상을 비판을 염두에 두고 혁명의 부정적인 측면을 심도 있게 분석한다. 질서가 현존하고 있다는 사실 그 자체가 악이라는 인식에서 혁명적인 인간이 태어난다. 그러나 혁명가는 현실적 모순을 통찰한다는 점에서 지성적(inteligible)이긴 하지만, 모든 혁명은 적대감(hostility)으로 표출된다. 혁명가들은 부지불식 간에 적대감의 노예가 된다. 혁명가들은 자신이 자유의 주체라고 생각하지만 인간이 진정한 자유의 주체가 될 수 없다. 혁명가는 또한 비합적인 그것을 합법적인 것이라 항변하다. 자유의 이름으로 폭력을 사용하고 또 다른 억압으로 만들어 내기 때문이다. 혁명은 기존질서의 부정에서 출발하지만 혁명을 통해 불의하고 악한 현존 질서가 선해지지 않는다. 가장 급진적인 혁명도 그 자체로서는 기존질서의 정당화요 강화이다. 그러므로 기존질서의 부정이 궁극적으로 새로운 것을 만들어 내지 못한다. 혁명의 더 큰 위험은 현존하는 악에 대항하기 때문에 선일 수 있으리라는 착각이다.

 

"혁명적인 인간은 현존질서를 악하다고 부정하는 것 때문에 비상할 정도로 하나님께 가까운 것 같으나, 바로 그 이유 때문에 보수적인 인간보다 더 '악에게 지고' 있는 것이다. 악은 악에 대한 어떠한 대답도 아니다. 현존질서에 의해 훼손된 권리의식은 그러한 질서를 어김으로 말미암아 회복되지 않는다."

 

혁명은 '악은 악으로 갚으려는 것'이기 때문에 악에 대한 진정한 대답이 아니다. 혁명은 착각이며, 불가능한 가능성이다. 결국은 혁명은 또 다른 혁명을 불러 일으켜 악의 악순환을 야기시킨다. 인간의 모든 혁명은 인간의 부정에 대한 부정으로서 악을 악으로 이기려는 것이다. "우리는 로마서에서 혁명의 직접적 부정을 찾을 수 있다"고 바르트는 말한다. 이런 의미에서 로마서는 '자유주의 신학자의 놀이터'뿐 아니라, '종교사회주의 신학자의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기도 하다.

3) 선으로 악을 이겨라 : 하나님의 부정과 하나님의 긍정의 변증법

바르트는 현존질서를 수용할 것인가 거역할 것인가의 선택은 두 가지 원리에 의해 결정된다고 보았다.

"거대한 현존질서의 세력은 승인이나 복종을 요구한다. 우리는 그들의 요구에 복종해야 할지 거역해야 할지를 선택해야 한다. 만약 우리가 그들의 권위를 승인하면 우리는 정통주의의 원리(Priciple of Legitimism)를 선택한 것이 된다. 반면에 우리가 그 요구를 거절하면 우리는 분명하게 혁명주의의 원리(Principle of Revolution)를 선택하는 것이 된다."

그러나 바르트는 반혁명적주의자들처럼 정통주의의 원리를 선택하거나, 반보수주의자 처럼 혁명주의의 원리를 선택하지 않는다. 로마서의 이 본문에서 전혀 다른 선택을 제시한다. 오히려 양자의 부정을 선택한다. "우리는 로마서에서 혁명주의의 부정을 발견한다. 그리고 이미 암시한 것처럼 그곳에서 정통주의의 부정을 발견한다."


바르트는 로마서를 통해 새로운 선택을 본다. 악에게 지지 말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기라'는 요구이다. 선으로 악을 이기는 것이 하나님의 혁명이다. 그것은 레닌주의의 혁명과는 질적으로 다르다.

"그것은 레닌주의 보다 더 큰 것이다. 그리스도교가 기대하는 완성은 인류의 발전, 점진적 향상이라는('상대적이거나 절대저인') 목표와 결과가 아니라 새 창조의 계시 혹은 새 인식의 내용이다. 이런 의미에서 그리스도교가 중시하는 것은 '전부가 아니면 전무'라는 프로그램이다."

 

이것은 또한 예수가 선택한 새로운 혁명이다. 예수는 "성내지 않고, 공격하지 않고, 파괴하지 않고 서도 더욱 단호하게 행동할 수 있는 길"을 제시하였다. 예수가 선택한 이러한 하나님의 혁명은 하나님의 전적 부정이요 심판이다. 하나님의 혁명은 현존질서를 선한 것으로 여겨 '인간의 긍정'을 지향하는 정통주의도 부정하고, 현존질서가 악하다 하여 혁명을 부추기는 '인간의 부정'도 부정하신다.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부정은 괄호 안에 부정이 아니라 괄호 밖의 부정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부정은 부정으로 끝나지 않는다. "No는 어쩔 수 없는 Yes이다", "No에서부터 Yes가 나온다." "하나님의 부정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긍정으로 나타난다." 예수 그리스도는 죄 속에 있는 역사, 문화, 인간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부정)이며, 동시에 하나님의 구원(긍정)이다. 하나님의 심판(No)은 그 자체가 하나님의 구원(Yes)이 된다. 옛 역사의 부정은 새 역사의 시작이다. 강한 부정 속에 숨겨진 긍정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변증법적인 함(合)이 가능해진다. 우리가 찾는 합(合)은 하나님 안에 있다. 따라서 그것은 인간의 논리로써의 변증법이 아니라 "하나님의 논리로서 하나님의 변증법"이다. 하나님의 부정이 바로 하나님의 긍정이라는 것이 바르트가 말하는 '하나님의 변증법'의 내용이다. 이상의 논의를 바르트는 하나의 단순하고도 명확한 도식으로 설명하였는데 이를 다시 정리하면 다음과 같다.

1. existing order : State, Church, Law, Society… ⇒(a, b, c, d…)
① Legitimism : affirmation of existing order = (+a, +b, +c, +d…)
② Revolution : negation of existing order = (-a, -b, -c, -d…)
2. Divine Negation is negation of human Legitimism and Revolution
① negation of Legitimism = -(+a ,+b, +c, +d…)
Because "being not overcoming of evil" is not good but evil
② negation of Revolution = -(-a, -b, -c, -d…)
Because "redering to man evil for evil" is not good but evil
3. Divine negative is Divine positive : Divine Revolution.
① denial of human positive : -(+a, +b, +c, +d…) = +(+a, +b, +c, +d…)
② denial of human negative : -(-a, -b, -c, -d…) = +(-a, -b, -c, -d…)
Beacuse "overcoming evil with good" is only good.

 

6. 결 론

 

현존질서를 긍정할 것인가 부정할 것인가는 신앙 실천의 실제적인 과제이다. 헤겔의 변증법은 '현실적인 것은 이성적이며, 이성적인 것은 현실적이다'고 함으로 현실을 긍정하는 것에서 변증법적 발전 과정을 지나치게 낙관하여 인간의 이성을 절대 정신으로 추앙한 '인간 긍정'의 가장 위대한 체계이다. 19세기 자유주의 신학은 이러한 현실긍정의 진보주의를 수용하여 1914년 빌헤름 2세의 전쟁정책도 역사 발전에 공헌하리라 기대하고 이를 지지한 것이다.
맑스는 똑같은 변증법적 사고를 하지만, 현실을 부정하고 모순과 소외로부터의 투쟁과 혁명의 변증법적 과정을 낙관하여 무산 계급의 최후 승리를 굳게 믿었다. 그리하여 레닌은 자본주의 자체를 폭력으로 여기고 이 폭력을 영원히 제거하기 위한 마지막 폭력으로 1917년 공산주의 혁명을 일으킨 것이다.


반면에 키에르케고르는 하나님과 인간의 무한한 질적 차이의 질적 변증법을 주장하였으나 이를 실존적 차원으로 왜소화시켰다.
바르트는 현대사의 양대 비극 즉, 제1차 세계대전과 러시아 혁명을 겪으면서 [로마서 강해]를 통해 새로운 선택의 길을 제시하였다. 바르트는 자유주의 신학의 인간 긍정과 종교사회주의의 운동의 인간 부정을 동시에 비판하고, 키에르케고르의 실존적 신앙 결단의 변증법을 사회적 정치적 신앙실천의 변증법으로 발전시켰다. 이 점이 바로 바르트를 돋보이게 하는 측면이다. 그는 하나님의 부정과 하나님의 긍정이라는 논리로 자유주의신학의 '인간 긍정'이나, 공산주의 혁명의 '인간 부정'을 모두 부정하고 그러한 부정을 통해 긍정에 이르는 '하나님의 변증법'을 제시하였다.


한국교회의 신앙 유형도 양극화되어 있다. 보수적인 신앙은 개인 영혼의 변화를 강조함으로서 사회변혁에 무관심하게 되고 결과적으로 현존질서를 승인하는 모습을 보여왔다. 반면에 사회구원을 주장하는 진보적인 신앙은 사회 구조악의 변혁을 주장하고, 그 일부는 급진적이고 투쟁적인 혁명을 실천하려고 하였다. 양자 사이에는 기독교가 자기 동일성을 유지하면서도 어느 정도 사회적인 문제에 책임적으로 참여할 수 있을 것인가 하는 '참여와 동일성의 위기'가 드러난다. 우리는 바르트의 [로마서 강해]를 통해 또 다른 제3의 선택이 있음을 새롭게 발견하여야 할 것이다. 악에게 지지 말고, 악을 악으로 갚지 말고, 선으로 악을 이겨라. 갈등이 있는 곳에서 새로운 변화를 모색하려는 이들이 경청해야 할 말씀이다.(2000. 10. 7)  허호익(대전신대, 조직신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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