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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 바르트(1886-19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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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칼 바르트

2011. 7. 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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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위스의 개혁파 신학자, 개혁파란 것은 칼빈의 정신을 이어받은, 곧 우리 장로교회의 신학적 전통을 이어받은 개혁파의 대표적 신학자이다. 루터파나 기타 개신교계 모든 교파를 망라해서 어머 어마한 영향을 끼친 신학자이다. 가톨릭 교회에 굉장한 영향을 미쳤다. 20세기 가톨릭신학의 아버지는 칼 라너(Karl Rahner)라는 사람인데, 20세기 그 어떤 교황보다 가톨릭 교회에 어마어마한 영향을 끼쳤던, 가톨릭정신에 일대 혁명적인 변화를 일으킨 신학자였다. 20세기는 두명의 칼 대제가 지배를 했다고 혹자가 말한다.

 

 신학 공부를 했다는 사람들이 신대원을 졸업하고도 칼 바르트나 칼 라너의 사상에 무지해서는 곤란하다. 그것은 기적같은 일이다. 20세기 신학은 이 두 사람을 빼고는 생각할 수 없다.
칼 라너는 칼 바르트보다 나이가 어리고, 라너가 신학 공부를 하고 있을 때 칼 바르트의 신학 정신을 깊이 배웠다. 바르트의 신학을 가톨릭 신학적으로 응용을 해서 일약 세계적인 신학자가 된 것이다. 바르트는 라너가 등장할 수 있는 기초를 만들어 주신 분이다. 두분 사이의 신학적 연계성을 강의중에 배우게 될 것인데, 어쨌든, 과정 전체를 볼 때 20세기의 단 한분의 신학자를 꼽으라고 하면 칼 바르트를 꼽을 수 밖에 없는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학자이다.

 

 이분이 우리 개혁파 신학자라는 것을 우리는 기쁘게 생각할 수 밖에 없다. 개혁신학을 가르칠 때 제가 볼 때는, 개혁 신학의 시작은 칼빈에서 시작된다고 보아야 하는데, 칼 바르트를 빼고 개혁신학을 논하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특별히 20세기 개혁신학은 바르트를 빼고는 말 조차 할 수 없다. 유감스럽게도 대한민국에서는 개혁신학을 하는 학자들에게 칼바르트를 찾을 수가 없으며, 그것은 기적적인 이야기다. 왜 그렇게 되었을까? 공부를 하면서 알아갈 사항이다.

 

특별히 한국 장로교회의 신학적 비극과 관련이 있는 문제이다. 독일은 루터파 신학의 왕국이다. 독일은 거의 압도적으로 대다수의 교회가 루터파이다. 독일안에는 개혁파가 있기는 있으나 대단히 소수파이다. 따라서 개혁파 신학자들이 독일의 신학교에서 자리를 얻는 것이 어렵다. 그런데, 모든 신학교에서 칼 바르트를 가르칠 교수가 필요하다. 칼 바르트는 반드시 가려쳐야 한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바로 그 자리가 개혁파 계통의 신학자들이 교수 자리를 얻는 자리이다. 개혁파 교수들이 가르치는 영역이 주로 칼 바르트이다. 어찌보면 칼 바르트는 독일 개혁파 신학자들의 속된 말로 밥줄이다 이렇게 볼 수 있다. 독일의 거의 모든 신학교에서 칼바르트에 대한 강의는 인산인해를 이룬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로 칼바르트를 배우려고 한다.


21세기 신학이 20세기 신학과 달라야 하고 더 발전한 새로운 신학이 등장해야 한다고 말할 수 있는데, 새로운 신학이 등장하기 위해서도 20세기의 산맥은 일단 넘어가야 한다고 볼 수 있다. 칼 바르트는 어머어마하게 많은 글을 쓰고, 어마어마 하게 많은 사상을 자신의 가슴속에 두고 발전시켰던 사람이다. 무엇인가를 발표하고 싶은 사람이 있으면, 먼저 칼바르트가 그 주제에 대해서 무엇을 말했는지를 확인해 볼 필요가 있다. 바르트의 글을 읽고나면 발표할 용기가 없어진다. 대다수의 학자들이 느낀 경험이다. 바르트를 넘지 못하면 절대로 새로운 신학이 안된다.


20세기 후반에 몰트만이란 대단한 신학자가 등장을 했다. 몰트만 교수는 우리학교 개교기념일에 초청을 해서 오신다. 개교기념 특별강연을 하도록 계획이 되어있다. 몰트만도 연세가 75세쯤 되셨다. 몰트만이 칼 바르트를 자신의 선생이신 오토베버(O. Weber)란 분에게서 가르침을 받았다. 오토 베버는 칼 바르트의 직제자인데, 조교로 일한 적도 있고, 칼바르트가 특별히 많이 칭찬했던, 사랑을 받았던 제자였다.

 

오토베버가 칼바르트의 교회 교의학을 요약한 책을 썼는데, 그 책을 바르트가 읽고 마음에 흡족해했다. 바르트의 사상을 그런식으로 표현하려고 했던 제자가 있었는데 골빗츠라고 하는 사람이다. 그도 조교를 한적이 있고 바르트의 신학을 이어가는 대표적인 학자인데, 그의 작품을 보고는 바르트가 화를 냈다. 잘못했다고. 칼바르트의 엄청난 정수인 교회교의학을 배우면서 몰트만은 이제 더 이상 신학책을 쓸필요가 없다고 생각했다. 단지 우리는 바르트가 이야기한 것을 그대로 외워서 전하는 일만 남았을 뿐이다. 한동안 그렇게 생각을 했다. 바르트를 읽을 때 일반적으로 누구나 느끼는 느낌이다. 몰트만은 한동안 바르트의 신학에서 헤어나지를 못했다.


이런 몰트만이 어느날 바르트 신학의 어떤 결점이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종말론에 대한 것인데, 특히 역사와 관련된 종말론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을 어느날 몰트만이 발견하게되었다. 마침내 몰트만이 써내려갔는데, 그것이 20세기 후반의 가장 뛰어난 저술로 알려진 몰트만의 "희망의 신학-Theologie "이란 것이다. 희망의 신학으로 몰트만은 일약 세계적인 신학자로 등장하게되었다. 세계적인 신학자가 되는 방법은 간단하다. 이 위대한 신학자인 칼 바르트 그 분의 신학의 결정적인 문제점을 결함을 밝혀내고 그것을 극복하면 틀림없이 세계적인 신학자가 된다. 지금도 마찬가지다.

 

독일의 조직신학은 아직도 칼바르트의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거의 대다수가 그 그늘 속에서 존재하고 있다. 그 그늘이 어디에 결함이 있는 지를 밝혀낸다면 그것이 21세기의 신학이 될 것이다. 지금까지는 유럽에서 그런 작업을 했는데, 21세기에는 대한민국에서 그런 사람들이 나오기를 기대한다.

 

그러나, 이것이 말 같이 쉬운 일이 아니다. 바르트에게 문제가 많다고 욕을 많이 한 학자가 있는데 그 분이 벤틸(Van Til)이라는 학자다. 세계 학계에서 별로 알아주지 않는 사람이다. 그냥 입이 험하구나! 그렇게 비난하지 않고 진짜 문제를 찾아내는 것이 21세기의 신학이 되는 것이다. 20세기의 신학은 전체적으로 바르트, 부분적으로 몰트만, 20세기 신학은 바르트와 몰트만의 신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것을 하려면 한동안 그속에 들어가서 헤메어야 한다. 한동안 이분의 말씀이 주님의 말씀처럼 생각이 되어서 지내다가 ... 그러다가, 어떤 천재적인 분이 뭔가를 알게되는 것이다. 그것이 새로운 신학이 시작되는 장소이다. 그러니까 칼바르티 신학연구는 상당한 중요성을 가진 것이고 한학기로 배우기에는 너무나도 많다. 유럽에서는 바르트의 인간론, 창조론, 바르트의 삼위일체론 이런식으로 주제별로 다루게된다. 수박 겉 핧기는 대단히 위험하다. 그러므로, 개인적인 공부가 많이 필요하다.

 

TERM PAPER를 하나씩 써야하는데, 한 주제에 대해서 나름대로 깊이 연구를 해서 바르트의 신학의 진정한 깊이를 맛보시고 페이퍼를 써주시기 바랍니다.

오늘 바르트의 중요한 책들을 소개하고 마치겠습니다.


칼바르트의 저서
Kirchliche Dogmatik I,1 -IV,4 - 칼바르트의 연구를 위해서는 독일어가 상당히 필요하다. 영어로 하게되면 아무래도 약점이 있고, 우리말로만 연구를 하려면 정말 약점이 많다. 아직도 세계신학을 이끌어 가는 중심 무대는 역시 독일이 아닌가 생각이 든다. 미국도 신학이 최근에는 많이 발전을 해가지고 독일 신학에 근접해 있다는 느낌은 주는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아직도 한단계 뒤떨어져 있는 느낌을 지울 수 없다. 신학을 본격적으로 공부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 목회할 사람은 독일어 학습이 상당한 시간을 요구하므로 그럴 필요가 없지만 - 독일어를 잘 읽을 수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바르트 신학연구에 독일어는 매우 중요하다.


바르트의 가장 중요한 저서로 총13권이다. 약 9000페이지에 달하는 거대한 신학대전이다. KD I/1 약어로 이렇게 쓴다. 우리말로 번역하면 교회 교의학 1의 1권이란 의미다. 영어로 번역해서 쓸 경우에는 CD I/1. 유감스럽게도 우리말로는 번역이 안되어 있다. 한국 칼 바르트 학회가 이것을 번역하기위해서 8년전에 작업을 시작했다. 모교회에서 2억 정도의 지원금을 받아서 - 박봉남 박사, 지금 돌아가시려고 합니다. 마지막 작업으로 생각하시고 자신의 목회를 하는 제자에게 간곡한 부탁을 하셔서 그 교회에서 2억에 가까운 돈을 출연 받아 - 번역에 착수를 했는데, 보통 힘든 작업이 아니다. 다행히 13권 중 4권이 번역이 완료되었다. 기독교서회에서 순차적으로 나오게 될 것이다. 앞으로 5년 이내에 완간이 될 것이다.


Der Romerbrief 로마서 강해, 제1판이 1919, 제2판이 1922 에 나왔다. 로마서 강해가 바로 칼 바르트의 이름을 전세계에 알리게 만든 결정적인 책이었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놀고 있는 놀이터에 떨어진 폭탄이라고 알려진 유명한 책이다. 로마서 강해는 제2판이 번역이 되어있다. 번역문을 읽은 분들의 한결같은 이야기가 무슨 이야긴지 알 수가 없다는 것이다. 이게 큰 문제다. 그런 난점이 있다. 제일 좋은 것은 독일어 원어로 읽는 것이며, 정확한 개념을 잡는 것이다. 최소한 우리말과 영문판을 같이 읽어 들어가야 개념을 정확하게 잡을 수 있을 것이다. 번역이 어려운 이유는 칼바르트가 원래 글을 어렵게 쓰기 때문이다. 난해하기도 하고 문장도 어렵다. 독일 사람들은 바르트의 글을 읽고 그렇게 감동을 받는다. 어머어마하게 우렁찬 메시지로 들려진다.


Die Christliche Dogmatik 1927년에 나온 책. 교회 교의학을 쓰기 전에 기독교 교의학을 먼저 썼다. 유명한 책이다.

Credo 1935 바르트의 대단히 중요한 책이다.
Rechtfertigund ??? 1938 '칭의와 법'으로 번역할 수 있는 것으로 번역이 되어 있다. 교회와 국가에 대한 바르트의 견해를 잘 알 수 있는 글이다.

Christengemeinde und B ??? 1946 '그리스도인의 공동체와 시민공동체' 교회와 국가 사이에 관한 대단히 중요한 글이다. 번역되어 있다.

Die protestische Theologie im 19. Jahrhunter 1946 '19세기 개신교 신학' 바르트의 유명한 저술이나 번역이 안되어 있다.

Die Menschlichkeit Gottes 1956 '하나님의 인간성' 또 한 번 세계를 놀라게 만들었던 대단히 유명한 글입니다. 번역서가 있습니다.

Die Einfiihrung in die evangeliche Theologie 1962년 만년 칼바르트가 노인이 되었을 때 쓴 글로 '개신교 신학 입문'으로 번역되는 글인데, 이형기교수가 복음주의 신학 입문으로 번역을 해 두었다. 복음주의란 개념과는 조금 다른 특성이 있다. 가톡릭과 개신교를 구분할 때 사용하는 것으로, 가톨릭과 대립되는 복음적인 신학을 하는 곧 개신교를 의미하는 것이다. 정확하게 하면 개신교 신학 입문이라고 하는 것이 좋다.

바르트에 관한 책들 대표적인 것 몇 가지


칼 바르트의 생애에 대한 유명한 책들
E. Busch. Karl Barths Lebenslauf 칼바르트의 전기, 대단히 두꺼운 대단히 유명한 책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K. Kupisch 쓰고, 박종화 교수가 번역한 '칼 바르트' 란 번역책이 있다. 한국신학 연구소에서 출판했다.
G. Casalis 쓰고 번역한 기독교서회에서 93년 출간

칼바르트의 신학에 대한 유명한 책들
E. Jungel Barth - Studie 바르트 연구라는 유명한 책, 번역 안됨
독일에서 몰트만, 판넨버그와 더불어 세명의 유명한 학자중의 한 사람이 융겔이다.
H. U. von Balthasar, Karl Barth
발타잘은 칼 라너와 더불어 20세기 가톨릭신학의 쌍두마차, 가톨릭의 2인자라고 할 수 있다. 바르트에 대한 불후의 저서를 남긴 것이다.
H. Kung, Rechtfertigung 칭의 라고 번역할 수 있는데, 교회론으로 20세기 후반에 강력한 영향을 끼친 학자인데, 바르트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학자이다. 한스 큉
G. C. Berkouwer, The Triumph of Grace in the Theology of K. Barth 벌카우의 '칼바르트의 신학에 있어서 은총의 승리', 화란에 있는 화란에서 가장 유명한 학자로 개혁파 신학자로 그 명성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는 대단히 유명한 분인데 바르트 연구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은 분이다.


F. W. Marquwart, Theologie und Socialisimus '신학과 사회주의' 엄청난 논쟁을 불러일으킨 책이다. 마르크바르트는 박동현 교수가 공부한 베를린 신학대학에서 논문을 썼는데, 선생이 골비츠였는데, 통과가 되지 않았다. 대단히 철저하게 연구한 것은 틀림 없으나 바르트를 잘 못 해석했다. 바르트를 좌파로 해석한, 바르트를 일종의 좌익으로 해석한 대단히 유명한 책인데, 골비츠란 교수가 베를린 자유대학과 신학대학의 양쪽에 교수직을 하고 있어서, 베를린 자유대학에서 통과를 시켜 주었다. 찬반에 대한 거센 논쟁이 있었다. 마르크바르트에게 큰 영향을 받은 한국의 칼 바르트 신학자는 이화여대의 박순?? 교수이다. 그의 제자들도 바르트를 좌파적으로 해석해 가고 있다.
E. Busch, Die groBe Leidenschaft 1999 '그 거대한 정열'


토렌스 저, 최영 번역
제프리 브롬물리 저, 신옥수 역, 우리 학교 대학원에서 칼 바르트 석사학위 논문을 쓰고 풀러에서 신학박사를 하고 있는 사람으로, ' 칼 바르트 신학 개론 ' 바르트 신학 입문서로 괜찮음
헌징거 저, 번역안됨, 프린스톤 조직신학교수, "How to read Karl Barth"

수업시간에 필요한 책으로는
현재의 도전과 오늘의 조직신학 - 이책의 3부가 칼바르트가 쓴 논문들이 들어있으며, 수업시간에 직접적으로 필요하다.
오토 베버(O. Weber) 저, 김광식 역, '칼 바르트의 교회 교의학' 다른 책들보다 더 추천할 만한 책이다. 바르트를 이해하는데 우선 빨리 핵심을 찾는데 상당히 도움이 되는 좋은 책이다. 유럽에서도 일반적으로 칼바르트 연구의 교과서처럼 사용하고 있다.

 

이번 학기에 할 일은
1. 출석 - 매주 부르기 힘들어서, 가끔 불러서 빠진 사람은 치명적인 손해를 본다. 출석을 하지 않아도 시험을 잘 칠 수 있다. 그러나, 신학 교육은 확신과 관련이 있다. 어떤 정보로 해결되는 것이 아니라 확신과 관련이 있다. 수업 시간에 강의를 들은 사람은 어떤 확신이 생긴다. 안듣게 되면 정보는 있으나 가슴속에 확신은 없다. 신대원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것 중의 하나가 확신을 가르쳐야 하고, 신념, 자신의 신학관을 형성시켜야 한다. 그것을 가지고 목회를 하는 것인데, 그것은 수업시간에 앉아 있어야 형성되는 것이다. 예정론, 삼위일체론 등 여러 가지 신학적 미궁들, 우리 신학에 있어서 엄청나게 중요한 문제들이 다루어지게 되는데, 공부를 하게 되면 어떤 확신이 생기기 마련인데 출석을 하지 않으면 그런 확신을 가질 수 없다. 여러분들의 장래를 위해서 빠지지 않도록 노력해 주시기 바랍니다.
2. 학기말 시험은 배운데서 나온다. 수업시간에 공부한 것을 잘 정리하면 잘 쓸 수 있다.


3. Term Paper 칼 바르트와 관련된 것 중에 자유롭게 선택해서 쓰면 된다. 계시론, 예정론, 자연신학, 교회와 국가의 관계, ...... 원고지 25-30매 정도, A4 8매 정도의 분량으로 하고, 논문의 형식을 정확하게 갖추어야 한다. 자기가 연구해서 자기의 글을 써야 한다.

두 번째 강의
I. 자유주의 신학과 신정통주의 신학


칼바르트의 신학을 신정통주의 신학이라고 하는데, 자유주의신학과의 관계속에서 정확하게 파악할 수 있으며, 나아가서는 17세기 정통주의신학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종교개혁시대부터 신학사조를 개관해 볼 필요가 있다.
당시에 여러 가지 흐름의 신학전통이 있었으나 그 중에 대표적으로 지배하고 있었던 신학정신을 정리해 놓은 것은 16세기는 종교개혁의 시대로 볼 수 있다. 주로 루터의 신학과 칼빈의 신학이 지배하고 있었다. 한세기가 흘러서 17세기는 소위 개신교 정통주의 신학의 시대라고 일반적으로 이야기한다. 루터파에서는 루터파 정통주의가 형성되었고 칼빈파 교회에서는 칼빈주의 정통주의가 만들어졌다. 종교개혁신학과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은 대단히 유사하다.

 

정통주의가 종교개혁 신학을 모체로 해서 발전해 온 종교개혁정신의 후예들이기 때문에 당연히 둘 사이에는 깊은 밀접한 관계가 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은 두 신학을 거의 같이 취급하고 있는 현상을 볼 수 있다. 그런데, 이 두 개의 신학은 대단히 유사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간과할 수 없는 어떤 차이점들이 존재하고 있다. 이 차이점은 앞으로 신정통주의신학을 이해하는데도 굉장히 중요한 것이다. 한가지 예를 들어서 이야기하면, 장로교인들에게 중요한 예정론을 이야기하면, 예정론은 정말 복잡한 이야기다. 신대원 졸업하기까지도 제대로 이해하기 어렵다. 칼바르트 신학을 한 주도 안 빠지고 계속해서 듣다보면 어느 날 갑자기 각을 하게되는 그런 일이 일어날 가능성이 굉장히 높다.

 

우리 신학의 큰 난제중의 하나가 예정과 인간의 자유 사이에 놓여 있는 논제이다. 인간의 자유가 들어갈 수 있는 자리가 어디에 있는가? 인간의 자유를 강조하면 하나님의 절대주권, 하나님의 예정에 대한 모든 교리가 실질적으로 무의미해지는 그런 문제가 발생한다. 인간의 자유와 하나님의 예정사이에 놓여있는 신학의 난제는 2천년 기독교가 해결하지 못했던 신학의 난제이다. 또 고약한 난제가 하나있는데 삼위일체론이다. 하나님은 세분이신데 한분이시다. 하난데 셋이다. 칼빈 시대때부터 복잡했다. 세르베투스란 사람이 아무리 생각해도 삼위일체론이 이해가 안되었다.

 

하나님이 셋인데 하나다. 몸뚱아리가 아니고 머리가 셋달린 괴물을 믿으라는 것과 마찬가지다. 그래서, 세르베투스는 삼위일체론을 반대했다.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칼빈이 잡아서 감옥에 투옥했다. 그러나, 끝까지 자기의 주장을 굽히지 않았다. 칼빈이 세르베투스를 화형을 시켰다. 왜 화형을 시켰을까? 마귀가 들어 있다고 생각하고 화형을 시킨 모양이다. 불에 태우면 마귀가 죽을까 안죽을까? 사실 화형을 시키면 마귀가 좋아하는 것이다. 화형의 역사는 마귀에 의해서 주도된 역사이다. 사실 악한 것이다. 신대원 졸업할 때까지 수많은 각을 해야 훌륭한 목사가 될 수 있다. 신대원 입학때와 졸업 때 굉장한 수준의 차이가 있어야 하는데, 순간 순간 각을 하는 고비를 넘어야 하는 것이다.

 

 각을 하는 때는 성령의 은혜가 임하는 순간이고, 새로운 사람으로 거듭나는 순간이다. 성령께서 쓰실만한 일군으로 바뀌어지는 순간이다. 세르베투스는 화형을 당하는 순간에서도 의연했다. 순교자들처럼 그렇게 죽었다. 칼빈의 이 행위가 잘 된 일일까? 잘 못된 일일까? 칼빈의 후예들이 세르베투스를 화평시킨 그 자리에 그 때일을 참회하는 비석을 세웠다. 칼빈은 위대한 신앙의 조상인 것은 틀림없지만, 이 일은 잘 못된 것이었다. 참회의 비석을 세웠다. 루터파들이 칼빈주의자들을 공격하는 창 중의 몇 가지가 있다. 그 중의 하나가 세르베투스의 화형을 거론한다. 살인자라고 비난한다. 문제는 하나님이 세분이고 한분이다. 이것이 납득이 안되는 것이다. 신대원을 졸업하기 전까지 이것을 알고 졸업해야 하는데.....


예정론, 삼위일체론 잘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에 대한 칼빈 선생의 답은 그것은 우리의 이성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신비라는 것이다. 네 좁은 머리로 어떻게 하나님의 신비를 다 알 수 있겠는가? 너의 이성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신비라는 것이다. 어떻게 하나님이 삼위일체냐?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어떻게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를 같이 이야기할 수 있는가? 성경이 그렇게 이야기하고 있다. 성경이 하나님의 예정을 분명히하고 있으면서도, 인간이 멸망하는 것은 자기의 죄악 때문이라고 명백하게 말하고 있다. 칼빈이 진정한 의미에서의 조직신학자일까 하는데 대한 논쟁도 있다. 진정한 신학자는 하나님의 예정과 인간의 자유의지 사이에 놓여있는 해결되지 않은 문제를 붙들고 씨름하고 그것을 해결하는 시각을 우리에게 전해주는, 해결하는 분이 진정한 신학자다.

 

칼빈은 성경에 적혀 있는 것만 나열하다가 서로 엊갈리면 이것은 인간의 이성을 넘어서는 하나님의 신비다라고 이야기하고 도망을 가버린다. 그것을 탐구하려고 하는 사람은 오히려 비난하는 태도를 일반적으로 취하고 있다. 어떻게 진정한 신학자의 자세라고 할 수 있을까? 결국 칼빈은 성경을 나열하고 있는 수준에서 벗어나지 못한 것이 아닐까? 개혁파 교회 밖에 있는 사람들은 우리처럼 칼빈을 높이지 않는다.

 

칼빈에게 있어서 그런 문제들이 다 하나님의 신비로 치부됐고, 말을 뒤집으면 나는 모른다는 말이 아니냐는 것이다. (모르면 복잡해지고 말이 어려워진다.) 칼빈이 그래서 많은 비판을 받기는 하지만, 그래서, 칼빈이 많이 칭찬을 받기도 한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겸손해 할 줄 아는 신학자였다는 것이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존중할 줄 아는 신학자였다. 그래서, 자기 머리로서 이해가 안되었을 때 그것을 잘라내 버리는 역할을 하지 않고 그것을 그 대로 두었다는 것이다. 이해가 안되더라도 그 말씀에 복종해야 한다는 것이다. 칼빈을 이해하는 방향에 따라서 평가가 달라질 수밖에 없는 분이다.


그러나, 17세기 정통주의 시대에 접어들면은 칼빈의 성경앞에서 겸손해 하는 이런 태도가 무너진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흐르게된다. 질문에 대답하지 않을 수 없는 상황으로 교회가 몰려가고 교회 주변에서 논쟁과 공격이 일어나고, 그래서, 뭔가 논리적으로 거기에 답을 해야하는 상황에 몰려든 것이다. 정통주의 신학은 대단히 논리적인 특징을 가진 신학이다. 합리적인 방향으로 교리를 정비를 하는데, 예정론과 자유의지와의 관계에 있어서도 합리적인 방향으로 가닥이 잡힌다. 결국은 T. Beza 라는 사람이 있는데, 칼빈의 제자라고 볼 수 있는데, 칼빈의 정신을 이어받아 합리적인 17세기 정통주의 신학의 기초를 잡은 유명한 신학자인데,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이라는 기본틀에서 인간의 자유의지를 해석하는 방향으로 나간다.

 

제1원인자, 제2원인자란 말을 쓰기시작한다. 인간의 자유의지로 행해지는 것의 배후에는 제1원인자로서의 하나님의 작용이 있다는 것이다. 인간의 자유로 무엇인가를 하지만, 그 배후의 하나님의 작용을 생각하는 이런 형태로 문제를 정의를 해 버린다. 인간의 자유의지가 제1원인자인 하나님의 주권과 예정에 종속되는 결과를 얻게된다.

 

사실상 인간의 자유의지가 희생당하는 문제점을 남기게 되었다. 논리적으로 대단히 합리적으로 전개가 되었으나 결과적으로 보면 성경의 상당부분이 잘려나가 희생당하는 그런 문제가 발생되었다. 이런 것은 예정론에만 일어난 것이 아니라 신학전반에 걸쳐서 일어났는데, 특별히 유념해야 할 것은 성서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다는 것이다. 성서관에 어떤 변화가 있었는가? 나중에 좀 더 자세히 다루겠다. 17세기 정통주의신학이 강조했던 신학의 정신을 핵심적인 것을 언급을 하면 첫째로, 인간의 전적인 부패를 강조했다. 인간의 이성도, 인간의 양심도 완벽하게 다 부패했다는 것이다.

 

인간의 양심과 이성은 죄를 만드는 공장이다. 이렇게 이해했다. 생각하는 것, 행하는 것이 다 죄뿐이다. 이런 인간의 전적 타락이론은 그 배경에 종교개혁자들의 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라는 교리가 들어있다. 종교개혁자들이 우리의 구원은 오직 은총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오직 믿음으로 이루어진 것이다. 그것을 강조했는데 그것의 뒷면이 인간의 전적 타락에 대한 이론이다. 동전의 양면처럼 서로 물려 있는 것이다. 그리고, 이것은 17세기 칼빈주의 정통주의 속에 들어 있는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이론과도 연결되어 있다.

 

우리가 구원에 이르는 것은 오직 은총으로, 오직 믿음으로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무조건적인 선택에 기인하는 것이다. 그리고, 17세기 정통주의가 특별히 강조한 것은 성경의 절대 무오의 교리를 발전시켰다. 성경은 일점일획도 오류가 없다. 성경은 성령께서 불러주시는 대로 성경기자들이 기계적으로 기록을 했다. 기계적 영감론이라고 한다. 불러주는 대로 그냥 기계적으로 적었다. 축자영감, 글자 한 자 한 자, 단 한 곳도 오류가 없다.

 

무엇이 옳은가 그른가를 판단하는 최후의 재판소는 성경이다. 성경에 맞으면 그것은 옳은 것이고, 성경에 맞지 않으면 그것은 틀린 것이다. 그런데, 문제는 그것이 끝까지 맞았으면 아무런 문제가 일어나지 않는데, 그런데 그 다음부터 전개되는 문제가 단순하지 않고 복잡한 일들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무슨 일이 일어났는가? 한 세기가 흘러가면서 유럽에는 계몽주의 사상이 넓게 영향을 끼친다. 한 세기가 더 흐르면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의 시대가 흐르게된다.

 

정통주의는 허물어지고 정통주의와 전혀 다른 자유주의신학이란 것이 유럽을 지배하게된다. 정통주의 신학교는 다 쫓겨나고 유럽의 모든 신학교는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지배된다. 불과 2세기 동안에 어떻게 이런 어마어마한 변화가 일어나게 되었는가? 한마디로 정통주의의 붕괴가 일어났다. 왜 유럽땅에서 정통주의가 붕괴되었는가? 철학자들이나 사상가들의 영향을 배제할 수는 없다. 그러나, 역사가 바뀌는 것은 한 두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니라 보편적인 어떤 경험과 관련되어 있는 것이다. 18,19세기에 접어들면서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게된 것이다.

 

과거에 없었던 것을 경험하게 되었다. 과거에는 질병은 마귀에 의해서 주어진 것이고, 하나님께서 고칠 수 있다고 생각했다. 병든 사람은 목사나 신부를 찾아갔다. 17세기까지는 그런 생각이 지배했다. 그런데, 계몽사상이 발전되면서 세월이 흐르면서 사람들이 다른 경험을 하게된다. 병이 병원에서 낫는다는 것을 알게된 것이다. 병균들이 발견되기 시작했다. 교회에서 낫지 않던 것들이 병원에서 약품을 통해서 치료되는 것이다. 인류역사에 있어서 충격적인 일이었다. 처음에는 일부가 경험을 했는데, 세월이 지나면서 많은 사람들의 경험으로 나타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과학이 발전하기 시작합니다. 생물학과 의학이 발전하기 시작한 것이다. 그런데, 이런 과학을 발전시키는 도구가 무엇이냐? 인간의 이성이란 사실을 알게된 것이다. 계몽주의와 자유주의 시대의 두더러진 특징은 인간을 신뢰하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 인간의 양심을 신뢰하는 것이다. 영국에서는 이신론이란 것이 발전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세상을 창조하셨지만 질서를 만들어 주심으로 세상은 그 질서에 따라서 움직이게된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 과학적인 질서만 제대로 알게되면 모든 것을 해결하게되는 것이다. 이런 역사적인 경험을 배경으로 해서 데카르트, 칸트와 같은 이성을 중요시하는 철학자들이 우후죽순처럼 출현하며, 자유주의 신학이 발전하게되는 것이다.

 

과거에는 저 하늘을 나는 것은 하나님께서 날개를 주지 않으면 절대로 날수 없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날 비행기를 만들어서 하늘을 나는 충격적인 역사가 일어났다. 이게 20세기로 들어오면서 사람들이 더 절대적으로 이성을 신뢰하게되는 하이라이트와 같은 사건이다. 사람들이 이 이성을 잘 활용하면 모든 문제를 해결하고 하늘까지 날아갈 수 있다. 인간의 이성은 죄나 만드는 공장이 아니고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역사하고 있다. 이렇게 생각하게되었다.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이성과 양심을 사용해서 하나님의 나라를 만들려고 하신다. 불과 200년 흐르는 사이에 인간의 생각이 바뀐 것이다. 과거에는 인간의 이성은 죄나 만드는 공장이었는데 그렇게 인간을 부정적으로 비관적으로 본 것은 정통주의자들의 잘못이다..... 이렇게 되면서 17세기 예정통주의자들의 인간의 전적부패의 이론은 붕괴되어버렸다. 사람들은 더 이상 그 이론을 믿지 않게되었다.


사실 초기 칼바르트도 한동안 자유주의자였다. 칼바르트의 설교를 분석해보면 하나님의 영이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찬란한 역사를 만들어가고 계신다는 설교를 하고 있다. 젊은 시절의 설교의 내용이다.


사람들이 이성을 점점 더 신뢰하면서 당시까지 절대권위를 가지고 있던 성경에 그 이성을 적용하는 "불경한 일"이 일어났다. 처음에는 고전비평이 시작되었다. 희랍의 옛 영웅들에 대한 고전을 이성을 가지고 비평을 해보니까 그 영웅들에 대한 이야기가 절대 다수가 허구라는 것을 알게되었다. 이렇게 고전 비평을 하던 사람들이 마침내 성경은 어떠할까? 성경의 이야기는 과연 절대적인 진리일까? 그 자를 성경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성경의 문제들이 이상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하늘과 땅이 바뀌는 문제가 여기서부터 시작되었다. 성경의 모순이라고 하는, 성경의 오류라고 하는 것들이 막 드러나기 시작하는 것이다. 세월이 흐를수록 더 많이 수도 없이 드러나기 시작했다.

 

여기서 사람들은 17세기의 가르침에 대해서 근본적인 회의를 갖기 시작했다. 성경은 성령의 가르침을 기계적으로 불러 적은 것이 아닌 것이 틀림없다. 성경안에 이런 수많은 오류와 모순이 있는 것은 정통주의자들의 성경에 대한 가르침이 정당하지 않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은 위에서부터 떨어진 책이 아니고 인간의 종교적인 체험을 기록한 체험의 문서라는 결론을 내리게되었다. 성경의 절대 무오의 교리가 붕괴되었다. 과거에는 진리와 비진리의 최종 재판소는 성경이었으나 계몽주의 시대를 지나면서 이성으로 바뀌어져 갔다. 이성에 맞는 것은 진리고, 이성에 틀린 것은 비진리다.


19세기 부터는 정통주의가 완전히 무너지고 본격적인 개신교 자유주의 신학으로 접어든다. 슐라이에르마허(Schleiermacher), 리츨(Ritschl), 트렐치(Traeltsch), 헤르만(Herrmann), 하르낙(Harnack)에 이르기까지... 유럽은 전역이 이런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사상에 잠기게되었다.

성경에 나타나고 있는 오류의 예들
창세기 6장 19절 이하와 7장 3절 이하 방주에 넣은 짐승 한 쌍, 일곱 쌍
마가복음 14:3 요12:3 향유를 머리에, 발에...
막15:32 눅23:39-43 두 강도가 욕함, 한 강도가 욕함
열왕기와 역대상하도 서로가 많이 엇갈리고 있다.
이런 보도의 차이가 굉장히 많다.


창세기 첫머리부터 보면, 1장부터 2:4까지 보통 비평학자들은 P 문서라고 하는데, 엿새동안 천지를 창조하고 마지막에 인간을 창조하는 것으로 되어 있는데, 2:4 이하 J 문서라고 하는 것을 보면 창세기 1장과 순서가 다르다. 처음 이 세상에는 아무 것도 없는, 초목도 없고 안개만 있는 그런 상황속에서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먼저 창조한다. 그리고, 에덴을 창설하시고 나무를 나게하고 동물들을 데려오시는 순서로 창조 이야기가 전개되고 있다. 창세기 1장과 창세기 2장 4절 이하의 창조 이야기의 내용이, 순서만 살펴보아도 상당한 차이가 나타나는 문제를 야기시키고 있다.


처음부터 이런 문제에 직면해서 해결해 가는 것이 좋다. 1차 적으로 우리는 무엇이 진리인가? 를 탐구해야 한다. 이런 탐구의 과정에서 잘 못 가는 수도 있다. 그러나, 신학 사조의 발전 과정은 무엇이 진리인가를 탐구해가는 과정이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이와 같은 것들을 수 없이 밝혀내고, 결론을 내린 것은 성경은 성령께서 불러주신 것을 기계적으로 받아 적은 것은 절대로 아니며, 위대한 종교적 인물들이 위대한 신적인 종교적인 책임을 기록한 글이라는 것이다.

인간의 이성에 대한 신뢰가 굉장히 높아지게되었다. 자유주의 신학은 인간을 신뢰하는 특징을 지닌 신학인데, 인간의 이성을 신뢰하고 인간의 양심과 도덕을 신뢰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그럼, 이 자유주의신학은 어떤 신학적 특징을 가지고 있을까? 다섯가지로 설명을 하려고 한다.


첫째로, 성경에 대한 새로운 이해 -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성경을 아래로부터 솟아난,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쓴 책이 성경이라고 생각한다. 자유주의 신학자들도 성경을 굉장히 존중히 여긴다. 그들이 성경을 대수롭지 않게 생각한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그들을 곡해한 것이다. 그들은 성경을 하나님을 이해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한 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그 기본적인 정신이 정통주의와 다르다. 정통주의는 방향이 위에서부터 하나님이 말씀하신다고 보는 것이고, 자유주의신학자들은 방향이 아래로부터다. 인간의 글이기 때문에 오류가 있고 제한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러면, 기독교의 조상들만 신체험을 했겠는가? 다른 종교의 조상들도 하나님에 대한 체험을 했을 수 있는 가능성이 충분히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자유주의신학은 종교신학이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 특징은 20세기가 끝나는 시점까지 영향을 끼쳤다. 20세기 신정통주의 신학이 등장하면서 자유주의신학이 대단히 많이 붕괴된 것은 사실이지만, 자유주의신학은 없어지지 않았다. 20세기를 관통해서 오늘에까지 자유주의는 대단한 영향을 끼치고 있다. 20세기에 종교신학이 발전했는데, 자유주의 신학의 새로운 부흥이라고 할 수 있다.


두 번째로 자유주의 신학은 이성의 신학이다. 이성에 맞지 않는 것은 비진리로 간주했다. 성경에 적혀 있기 때문에 진리라는 것은 정통주의자들의 사고방식이지만, 성경에 적혀 있더라도 이성과 맞지 않다면 그것은 잘 못된 것으로 간주된다. 기독교의 초자연적인 교리들이 전부 잘려져 나가는 일이 발생하게되었다. 예수님의 부활이라든지, 동정녀 탄생, 물위를 걸으심, 마귀를 쫓으시고 병을 고치셨다. 예수님의 선재, 삼위일체 교리등이 잘려 나갔다. 이것은 이성에 맞지 않는 잘못된 가르침이라는 것이다. 슐라이에르마허에 의하면 초자연적인 것에 대한 사상은 포기해야만 마땅하다. 우리는 어디에서도 그것을 믿으라는 요청을 받고 있지 않다.

 

이 슐라이에러마허는 헤겔과는 다른 특징의 자유주의를 발전시켰다. 자유주의도 헤겔적인 것과 슐라이에르마허 적인 것이 있다. 헤겔적인 것은 인간의 이성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나라를 이루어가신다는 역사적인 측면이 강하고, 그런가 하면 슐라이에르마허는 종교의 본질을 인간의 내적 본성에 있다고 보았다. 절대의존의 감정을 신앙의 근원으로 생각했고, 인간의 내부, 마음 깊숙한 곳에는 신과 교류하는 어떤 장조가 존재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슐라에르마허에 의하면 계시는 우주에 대한 근원적이며 새로운 직관이다. 우주에 대한 직관이 신에 대한 이념보다 더 가치가 있다. 이런 사고방식은 일종의 범신론적 사고와 가깝게 가 있는, 우주 만물을 바라보면서 직관을 얻고, 인간의 내적인 종교성을 찾고, 그 속에 신의 본질적인 계시가 있다고 보는 자유주의다. 두 개의 흐름의 자유주의가 공유하고 있는 것은 이성에 맞지 않는 것은 거부하는 그 점에 있어서는 양쪽이 똑 같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세 번째로 인간 예수를 강조하는 기독론.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예수께서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인 성자라고 생각하지 않는다. 근본적으로 삼위일체론을 반대하고 있기 때문에 당연히 예수에 대한 이해도 다를 수밖에 없다. 예수는 누구냐? 하나의 인간이라고 생각한다. 슐라이에르마허에 의하면, 신성이 충만한 사람이었다. 모범적인 최초의 그리스도인이었다. 그래서, 하나님의 뜻을 완벽하게 실현해 나간 그런 특징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란 성경의 표현은 예수께서 하나님의 뜻을 너무나도 정확하게 받들어 드렸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당신의 아들로 삼으셨다. 즉 양자론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기독론은 양자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리츨에 의한 예수 그리스도는 역사 안에서 온 사람이지 역사 밖에서 온 사람은 아니다. 역사 안에서 온 사람이란 것은 우리와 똑 같은 역사의 흐름속에서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하나의 인간이었다는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선재하셨다가 역사안으로 뚫고 들어왔다는 정통주의자들의 사고를 부정하는 것이다. 이렇게 되었을 때 가장 큰 문제는, 속죄론이 희생되는 문제가 가장 큰 문제이다. 속죄론이란 것은 예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실 때에 만민의 죄를 짊어지고 만민의 죄를 속량하기 위해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다는 것이 속죄론이며, 종교개혁자들의 신학의 핵심인 형벌대속의 이론이다.

 

이것은 지금까지 한국 장로교회의 가르침의 기둥중의 기둥이라고 볼 수 있다. 우리가 보통 전도한다고 할 때, 그 전도의 핵심이 이 속죄론이다. 자유주의 신학속에는 이 속죄론이 존재하지 않는다. 왜 존재할 수 없느냐? 예수께서 우리와 동일한 인간이기 때문에 속죄론이 근본적으로 불가능하게 되어있다. 속죄론이 존재하기 위해서는 예수님께서 신이 되어야 한다. 하나님의 아들이 되어야 한다. 만민의 죄를 짊어질 수 있기 위해서는 그 분이 신이어야 한다.

 

삼위일체 하나님의 제2위인 성자가 되어야 속죄가 성립한다. 그런데, 그것을 부정하기 때문에 속죄론이 근원적으로 불가능하게된다. 그렇다면, 자유주의는 무엇을 믿으라는 것인가? 예수의 인격성, 예수님을 모범으로하는 그런 특성을 가지고 있다. 그 분의 삶, 인격 그것을 모범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 '작은 예수 전태일의 이름으로 기도했습니다.' 이런 신학생도 있었다. 부활은 육체의 부활이 아니라 예수님의 민중 운동의 정신이 부활한 것이다. 민중신학자 안병무 교수가 가르친 가르침이다. 안병무 교수의 가르침에도 속죄론이 없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정신을 이어받았다고 볼 수 있는데, 속죄론이란 것은 바울이 원시 종교의 제의적인 신화를 받아들여서 예수의 죽음을 제의적인 신화적인 시각에서 발전시킨 이론이라고 생각한다. 우리가 원시종교로 다시 들어갈 필요가 없다는 것이다.

 

원시 종교의 신화를 걷어내야 한다. 예수와 바울을 극단적으로 많이 구별한다. 예수와 바울을 철저하게 구별해 내는 대가 중의 한 분이 하르낙이란 사람이다. 예수의 정신과 바울의 정신은 엄청나게 차이가 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나라를 전했는데, 바울은 예수를 믿으라고 예수의 복음을 전했다. 어떻게 보면 예수에 대한 우상화가 생겨난 것이다. 그 흐름에서 보면. 그러니, 이런 원시 종교의 이런 제의적인 신화, 거기에 기반을 두고 있는 속죄론, 이천년 기독교회는 그것을 기반으로 자라났는데 그것이 잘못이다. 이런 흐름이 안병무교수를 통해서, 홍근수 목사에게로 전달된 것이다. 예수께서 갈릴리 민중운동을 하시다가 억울하게 죽으시고, 그분의 정신이 갈릴리 민중들에게 부활한 것과 마찬가지로, 전태일이 노동운동을 하다가 억울하게 죽었는데, 그분의 정신이 한국의 노동자들에게 부활을 해서 노동운동으로 부활했다. 전태일은 한국의 위대한 예수이다. 우리가 예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데 꼭 유대인의 이름을 넣을 필요가 뭐있나? 우리 나라의 더 위대한 사람도 많이 있는데, 작은 예수 전태일이 이름으로 기도한다........


무엇이고 정통주의이고 무엇이 자유주의인가? 이것을 나누는 시금석이 여러 가지가 있는데, 간단하게 볼 수 있는데, 예수의 피가 너의 죄를 속량했다고 믿느냐? 예라고 하면 그것은 별 수 없이 정통주의자다. 정통주의 가운데도 여러형태가 있을 것이다. 폭이 넓은 사람과 외골수가 있을 것이다. 그러나, 어쨋건 정통주의자다. 자유주의 신학자들은 속죄론을 믿지 않는다.


네 번째로 자유주의 신학의 핵은 무엇이냐? 사랑의 윤리다. 도덕주의라고도 표현하는데, 사랑의 윤리가 더 가까운 말이 아닐까 생각한다. 자유주의의 핵은 예수 그리스도의 인격을 닮는 것인데, 그것은 하나님 사랑과 이웃사랑이다. 자유주의자들은 예수를 배우려고 하는데, 예수의 인격을 닮으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예수의 인격이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정신이고, 인간을 사랑하는 정신이다. 자유주의자들의 유명한 말이 있다. '교의는 분리하나 봉사는 연합한다. ' 교리를 강조하면 싸움 밖에 안되는데, 봉사를 하면, 사랑을 하면 하나가 된다. 자유주의자들이 사랑을 강조한 것은 대단히 위대한 점이다. 자유주의자들이 십자가의 속죄를 제거한 것은 대단한 신학적인 실수지만, 사랑을 강조한 것은 대단한 신학적 공헌이라고 생각한다. 속죄론과 사랑은 분리될 수 없는 것이다. 슈바이쳐 박사도 자유주의신학자였다. 그도 예수님을 삼위일체중 제2위인 성자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생명을 사랑하는 정신을 배웠다. 생명경외의 정신, 그래서, 일생동안 생명을 건지기 위해서 아프리카에서 살았다.


정통주의자들은 노상 싸움만 하고, 싸워서 분리하고 분열만했다. 분열의 명수들은 근본주의자들이었다. 모든 것이 다 맞아도 한가지만 틀려도 기어코 박치기를 하고, 서로 원수가 되어서 나가버리는 그런 특징들을 볼 수 있다. 자유주의자들의 가슴속에는 사랑이 있었다. 성경을 읽어보면 하나님이 사랑이시다. 어떤 사람들은 자유주의자들이 다 지옥에 갔을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나는 상당수가 천국에 있을 것이라는 생각이든다. 우리가 정확게 잘 모르는 것들이 많이 있다. 우리가 잘 못 알고, 틀리게 알 고 있다고 하더라도 사랑의 신이신 하나님께서 우리를 받아 주시지 아니하시겠는가? 좀 틀리더라도 너무 저주하지 말고, 서로 대화를 해서 바른 진리에 이르도록 서로 협력하고 진리를 찾아가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고, 그것 너머에 그리스도의 사랑이 빛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자유주의자들은 이점이 위대한 사람들이다.


정통주의자들은 신앙은 좋은데 인간성이 더럽고, 자유주의자들은 신앙은 좀 그런데, 인간성이 좋다. 그런 이야기가 있다. 만남의 경험 속에서 느낀 것이다. 보편적으로 그런 경험을 많이 한다. 교리는 좋지 못하지만 사랑을 많이 배워서 그런 것이다. 반드시 그렇다는 것은 아니다...


다섯 번째, 자유주의자들은 역사의 진보에 대한 신앙, 헤겔의 영향, 역사가 발전한다고 믿었다. 인간의 자신의 이성과 양심을 잘 사용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잘 발전시킬 수 있고, 마침내 이 땅에 유토피아, 하나님의 나라가 올 것이다. 그렇게 믿고 있었다. 하르낙의 말에 역사 앞에서의 경외라는 말이 있다. 슈바이쳐는 생명 앞에서의 경외인데, 역사 앞에 서면 하나님앞에서 가지는 것과 마찬가지의 경외심을 느끼게 되는데, 이유는 이 역사속에 신의 영이 활동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역사를 보면 경외심을 가질 수 밖에 없다는 것이 역사 앞에서의 경외이다. 자유주의신학은 역사적 범신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역사를 거의 신적인 운동과 동일시 해 버리는 경향을 가지고 있다. 이것을 역사적 범신론이라고 한다.


이런 특징을 가지고 있는 것이 자유주의 신학인데, 평가를 해보면, 자유주의 신학의 큰 오류는 기적이나 초자연적인 것을 부정해 버리는, 너무 인간의 이성을 지나치게 신뢰한데서 일어난 문제라고 볼 수 있다. 이 부활과 같은 것은 그리스도교의 삶과 죽음을 결정하는 결정적 복음의 핵인데 그것까지 다 날려버리는 인간 기독론을 강조하면서 속죄론, 복음의 핵중의 핵인 속죄론을 날려 버리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을 다 날려버리는 심각한 문제를 야기시켰다. 반면에 사랑을 강조한 측면이라든지, 역사에 대한 이해 - 범신론적으로 빠진 것은 문제가 있지만 - 기독교 신앙의 중심으로 역사를 생각하기 시작했다는 것은 훌륭한 점이다. 이와같은 자유주의 신학의 가르침으로 19세기는 완전히 점령을 당했고, 20세기 초까지 유럽은 완전히 자유주의 신학의 전성기에 접어들어 있었다.


그런데, 20세기에 들어와서 칼 바르트(Safermil K. Barth)라는 한 젊은 목사가 200년전에 무너진 정통주의를 회복하는 엄청나게 놀라운 일을 행하기 시작했다. 헤르만과 하르낙이란 자유주의의 대가들의 사상에 맞서서 - 이 두분은 칼 바르트의 신학적 스승들이다 - 정통주의를 세우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 그래서, 이것을 신정통주의라고 한다. / 신신학 = 자유주의 /


칼바르트는 자유주의를 대항해서 자유주의를 무너뜨리고, 200년 무너진 정통주의를 회복시킨, 독일 교회에서 가장 존경하는 신학자(칼 바르트와 본 회퍼 목사), 보수적인 사람들이 가장 좋아하는 신학자중의 한사람이다. 우리나라에서는 이 두 분을 다 싫어하는 경향이 있다. 유럽에서 가장 복음적이고 정통적인 신학자로 알려진 칼 바르트가 왜 한국에서는 신신학, 자유주의자의 대변인으로 알려 졌을까? 그것은 그렇게 만드신 분이 계시기 때문이다.


세 번째 강의

신정통 주의의 특징
1. 성서의 신언성을 강조. 성경은 계시의 책이고, 위로부터의 책이다. 당시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생각하지 않는 분위기였다. 그래서, 바르트는 "말씀의 신학자"란 별명을 가졌다. 그의 스승인 하르낙과 논쟁을 하면서도 바르트는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주장했다. 모순이 많은 성경을 학문적으로 신학계에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이야기한다는 것은 아주 큰 신학적인 문제였다. 어떻게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할수 있는가? 칼바르트가 실질적으로 사람들을 설명하는데 성공을 했다. 이것이 신정통주의 신학의 역사적 큰 의의라고 할 수 있다. 어떻게 성공을 했는가? 칼 바르트는 성경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인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적 도구를 통해서 전달되었다고 주장했다.

 

그래서, 성경은 두가지 차원이 있는데, 한편은 하나님의 말씀이고 다른 한편으로는 인간적인 증언이다. 하나님의 말씀인 동시에 인간적인 증언인 책이다. 성경에는 이 두가지 특징이 존재하고 있다. 쉽게 말하면, 예수님의 역사 말씀 자체는 영원한 말씀이고 하나님의 말씀인데 그것을 사도들이 또는 사도들과 가까운 목격자들을 통해서 전달되었다는 것이다. 그 과정에는 구전의 역사도 있고 편집의 역사도 있다. 그런데 이 하나님의 말씀이 인간을 통해서 전달되다 보니 성경 안에는 인간적인 약점이 존재하게되었다는 것이다. 예를 들자면, 향유를 예수님의 머리인가? 발인가? 이 사건은 분명하게 있었는데, 일반적으로 머리에 부었을 것으로 생각을 한다. 마가복음의 기록의 역사적 신빙성이 더 있을 것으로 생각을 하는데...성경 전승의 과정은 애매하고 불분명할수록 더 신빙성이 있는 것이다.

 

어떻게 여자가 예수님의 머리에 향유를 부을 수 있는가? 라는 생각들로 어느 시점에선가 슬거머니 발로 바뀌었을 수 있는 것이다. 이런 것은 인간의 증언의 과정속에서 발생할 수 있는 인간적인 약점이다. 그런데,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이런 성경에 내재된 인간적인 약점을 발견하고서는 이내 성경의 본질을 뒤 엎어 버린 것이다.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 아니라 인간이 하나님에 대해서 생각한 것을 기록한 것이라고 뒤집어 버린 것이다.

 

 이렇게 자유주의 신학자들에 의해서 성경의 본질이 뒤집어져 버렸다. 칼바르트에 의하면 성경은 인간적인 약점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이다. 또 어떤 것은, 그 당시의 세계관을 가지고 있었던 증언을 하는 성서 기자들이 그 하나님의 계시를 받았을 때 언제나 자기의 세계관 속에서 그것을 이해했다.

 

그러므로, 당시의 원시적 세계관에 성경이 부분적으로 노출되어 있다는 것이다. 그런, 원시적인 세계관이 노출된다고 해서 그것을 인간의 책이라고 생각한 것이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근본적인 오해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다. 그러므로, 바르트는 성서비평학은 나름대로 가치가 있고 권위가 있다고 생각한다. 오히려 성서비평학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하나님의 말씀되게 하는데 결정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복원하는데 성서비평학의 가치가 있다고 가치를 인정했다. 그러나, 성서 비평학이 오만하고 불손하게도 인간적인 차원을 넘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옳고 그름을 판단할 자격이 없다. 하나님의 말씀 앞에는 복종하는 것 밖에 다른 것이 없다. 성서비평학은 인간적인 한계를 극복하고 원래의 계시를 드러내는데까지만 필요한 학문이다. 17세기 정통주의자의 성서영감론과 19세기 자유주의자의 성서관중 하나를 택하라고 한다면, 바르트는 17세기 정통주의자들의 성서관을 택하겠다고 단언했다.

 

두 관 모두 오류가 있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옛정통주의자들은 성서의 본질을 정확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이다. 성경의 본질은 하나님의 말씀 즉 계시의 책이라는 점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사건이 결정적인 것이다. 근데, 옛 정통주의자들은 성경의 인간적인 측면을 간과해버렸다는 것이다. 바르트는 루터가 가르쳤던 성경은 아기 예수가 누워있는 구유와 같다는 비유를 훌륭한 비유라고 생각했다. 성경의 본질은 아기 예수라는 것이다.

 

결정적인 계시인 예수그리스도, 그런데, 그 구유에 보면 지푸라기 같은 것도 있다. 루터는 그 지푸라기로 야고보서를 이야기했지만, 바르트도 성경안에는 지푸라기, 계시가 아닌 인간적인 요소들이 내재해 있다고 생각을 했다. 바르트의 성서관과 루터의 성서관은 대단히 닮았다고, 거의 차이가 없다고 하는 것이 학계의 일반적인 견해다. 우리가 루터의 성서관을 좀 더 잘알기 위해서 몇가지를 언급하면, 루터는 성경에 대한 비판적인 입장이 제법 강했다.


예를 들자면,
"모세가 모세오경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하더라도 아무런 상관이 없다." 모세 오경에 모세가 죽고 난 뒤의 이야기가 있다. 그래서, 늘 문제가 되었다. 자기가 죽고 난 뒤의 이야기를 어떻게 기록할 수 있는가? 축자 영감설을 믿는 사람들은 억지 주장을 하지만, 루터는 저자에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다.
열왕기는 민수기에 비해서 엄청나게 좋은 책이다.


요한복음과 바울서신 베드로의 편지들은 모든 책들가운데 알맹이요 골수이다.
사도 바울의 편지들과 사도 베드로의 편지들은 마태 마가 누가의 복음서들보다도 훨씬 더 위에 있다. 루터가 성경을 똑 같은 가치의 책으로 보지 않고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복음을 더 훌륭하게 잘 증언하는 책도 있고 그렇지 못한 책도 있다는 것이다. 성경안에 더 위대한 성경이 있다고 생각하는 것이다.


히브리서는 세례받은 다음에 죄인의 회개를 부정하고 금하기 때문에 복음서와 사도바울의 편지와 서로 반하고 있다.
야고보서는 복음서와 바울의 편지에 비하면 지푸라기 같은 서신이다. 왜냐하면 그것은 복음의 본질을 가지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요한 계시록은 예언의 책이나 사도의 책이 아니다. 이 책은 그리스도를 가르치지 않고 그리스도를 알리지도 않는다.
루터의 시각으로서는 야고보서나 요한 계시록과 같은 책들은 성경의 가치에 미달된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우리가 여기서 성서관을 분명하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 루터가 바로 오직 성경으로 하는 그 정신을 만들어내게 한 인물인데, 솔라 스크립투라 하는 개념이 무엇인가? 오직 성경으로 하는 뜻이 무엇인지 우리가 잘 알아야 한다.

 

"오직 성경으로"와 17세기와 기계적 영감론은 상당한 차이가 있다. 오직 성경으로의 기본적인 성격은 권위의 중심을 교황에게서 성경으로 옮기려고 하는데 초점이 있다. 종교 개혁정신의 핵은 절대적인 권위가 교황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다는 것을 이야기하려는데 잇다. 권위의 축을 교황에게서 성경으로 옮기는데 초점이 있었던 운동이다. 유념해야 할 것은 종교개혁자들이 기계적 영감론이나 성경의 절대무오를 가르치지 않았다.

 

 칼빈과 루터 두 분 다 성경안에 오류가 있다는 것을 알고 계셨다. 이분들의 핵심적인 가르침은 우리가 따르고 믿고 언제나 표준으로 생각해야 할 절대적인 권위는 교황, 교회의 가르침, 전통에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에 있다는 것을 강조하려는 것이었다. 그리고, 우리가 하나님을 만나는 결정적인 통로가 성경이라는 것을 강조했던 분들이다.

 

바로 이런 의미에서의 "솔라 스크립투라"이다. 근데, 이것이 한 세기가 흐르면서 성경의 절대무오의 교리로 발전을 하게된다. 소위 성겨은 성령께서 불러주시는대로 기계적으로 적었다는 기계적 영감론이 등장하게되었다. 이런 것이 칼빈의 글에 부분적으로 나온다. 그러나, 칼빈이 이런 말을 할 때는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기 위해서 썼던 표현이다. 성경의 신언성, 하나님의 말씀됨을 강조하려고 칼빈은 그런 개념을 사용했는데, 그것이 한 세기가 지나면서 성경의 축자적 무오를 의미하는 것으로 변질이 되게되었다. 종교개혁자들의 정신이 강화되면서 종교개혁자들이 가지고 있지 않았던 정신이 17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참고로 칼빈의 성경관을 보자면, 풍만 출판사 "칼빈의 성서관"이란 책이 있다. 거기에 보면, 유명한 학자들의 글들이 정리되어있는데,
행7:16절에서 누가는 창세기 23:9절에 비추어 보면 명백한 실수를 했다. 이 부분은 수정되어야 한다.
엡4:8주석, 바울이 시편 68:18을 언급하면서 자기의 주장을 뒷받침하기위해 그 본래의 의미로부터 적지 않게 벗어났다. 심지어 선물을 인간에게서 받으시니 라는 구절은 완전히 정반대의 의미로 바꾸어 놓았다. - 칼빈이 비평학적인 작업을 이미 하고 있었다.


벧후, 나는 베드로의 말이라고 도저히 인지할 수 없다.
행4:6 예루살렘 대제사장의 연대기에 대한 언급 본문인데, 누가의 견해보다는 요세푸스의 견해를 더 선호하는 발언을 함.
누가는 여기서 안나스를 대제사장이라고 하고 있는데, 이것은 대단히 이상한 일이다. 왜냐하면 요세푸스의 글에는 그렇게되어있지 않기 때문이다.
칼빈 자신이 '성경은 성령께서 불러 주시는대로 적었다'는 말을 하기도 하지만, 성경 안에 이런 모순이 있다는 것도 언급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칼빈은 전체 가르침의 총체가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단어 하나 하나에 오류가 있다고 주장하는 사람들에 대해서 문자를 강요하는 사람들이라고 비난했다. 말 한마디에 덫을 놓는 나쁜 인간들이다고 비난했다. 오히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이 천한 문체의 옷을 입고 인간에게 전달된 것에 최고의 신비가 있다고 말했다. 이런 표현은 칼바르트의 표현과 굉장히 닮았다. 더듬거리는 인간의 말속에 영원한 하나님의 말씀이 숨어 있다고 했다. 이런 특징들 때문에 일반적으로 유럽에서는 바르트의 성서관은 종교개혁자들의 성서관의 부활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루터나 칼빈은 성서의 비평학이 존재하기 이전의 사람이었고, 칼바르트는 그 이후의 사람이기 때문에 차이가 있으나, 성경에 대한 기본적인 이해가 종교개혁자들과 칼바르트 사이에는 거의 차이가 없다. 그런데, 왜 칼바르트가 신신학자가 되었을까? 갈수록 더 이상한 일이다.


두 번째로, 신정통주의 신학은 예수그리스도의 신성을 강조한 신학이다. 바르트은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하나님의 자기계시의 역사로 인식했다. Selbstoffenbarung Gottes 하나님이 자기 자신의 모습을 완벽하게 드러낸 역사라는 것이다. 하나님에 관한 어떤 것을 드러낸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을 드러낸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라는 것이다. 성경의 절대적 권위가 여기서 나온다. 예수 그리스도의 역사를 그대로 담고 있는 책이 성경이기 때문이다. 여기서 나아가서 삼위일체론을 강조했다. 자유주의신학자에 의해서 완전히 파괴된 삼위일체론이 칼바르트에 의해서 다시 복구되었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 삼위일체론을 강조하는 신학자들이 많이 나온다. 전부 바르트의 신학적 도움에 크게 힘입었다고 볼 수 있다.


세 번째로 계시와 종교의 구분과 질적 차이를 강조했다. 19세기의 신학이 종교신학적인 특징을 가진데 반하여, 바르트는 종교는 인간이 하나님을 찾는 것인데, 결국 이것은 인간적인 어떤 것으로 보았다. 계시라는 것은 세상속에 감추어져 있던 어떤 것이 드러나는 것이다. 전적으로 새로운 어떤 것, 알지 못했던 어떤 것, "성경 안에 있는 새로운 세계"라는 강연을 하게되는데, 과거에 알지 못했던, 지금까지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놀랍고도 새로운 세계가 성경안에 있다는 것이다. 타종교에 대한 대단히 부정적인 입장을 가지고 있다. 타종교는 우상숭배다.

 

대개 종교다윈주위를 주장하는 사람들은 칼바르트를 언급하면서 바르트가 타종교를 우상숭배의 집단으로 주장했는데 이 주장이 얼마나 잘못됬는가를 입증을 하면서 바르트를 심각하게 욕하고 비판하면서 일반적으로 종교다원주의 신학을 시작한다. 바르트는 종교다원주의 신학자들의 최대의 적이라고 할 수 있다.

 

 심지어는 가톨릭에 대해서도 좋게 생각하지 않았다. 가톨릭을 적그리스도라는 말도 종종했다. 나중에 제2차 바티칸 공의회의 손님으로 초청을 받아서 참석하고 난 뒤에, 늙어서 한 뒤에 한 말씀은, 거기서 가톨릭의 중심부에서 모든 것을 살피신 후에 남기신 말씀은 "가톨릭이 적그리스도는 아니다"라고 했다.

 

 그렇다고 높게 평가한 것은 아니다. 적그리스도의 카테고리에 들어가지는 않는다는 이야기다. 왜 타종교를 이렇게 부정적으로 생각을 했을까? 그 핵심은 계시를 모른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 놀랍고도 놀라운 계시를 모른다는 것이다. 그 계시의 핵은 예수 그리스도 사건이다. 그 측량할길 없는 망극하신 하나님의 사랑, 그 극단적인 하나님의 사랑, 일반적으로 종교는 다 율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일부 은총적인 특징을 가진 종교가 있기는 하지만 - 아미타 불교, 박티 요가와 같은 - 일반적으로 종교는 율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는데, 측량할 수 없는 그리스도의 은총 - 일흔번씩 일곱 번을 용서하시는, 율법학자들 보다 세리와 창기가 천국에 먼저들어가는 - 그것을 모른다는 것이다.

 

 가톨릭을 비난한 것은 가톨릭의 자연신학으로는 제대로 안된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진짜 모습을 보는 것에 실패한다는 것이다. 가톨릭은 그리스도의 영이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교황의 영이 지배하는 곳이라는 것이다. 바르트의 극단적인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의 강조 때문에 수많은 개신교 사람들도 거기에 실족을 하게된다. 하나님의 은혜가 너무나 크기 때문에 실족을 하게된다. 도저히 받아 들일 수가 없다는 것이다.

 

바르트를 비판하는 사람들은 일반적으로 율법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바르트가 "내 신학에 문제가 있다는 사람은 틀림없이 심술 사나운 율법주의자다"라는 말을 남겼다. 우리 심성속에 있는 율법주의적인 심성이 바르트의 신학을 받아들이는데 장애로 작용하게된다. 바르트가 만년에 질문을 받았다. 당신의 그 많은 글을 요약해서 한 마디로 말할 수 없겠는가? 당신의 신학이 뭐냐? '예수 사랑하심을 성경에서 배웠네, 이 찬송이 나의 신학이다. 나의 신학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이야기하는 신학이다. 예수님의 사랑의 넒이와 깊이를 이야기하려는 신학이다. 나는 이 예수님의 사랑의 넓이와 깊이를 성경에서 알았다. 다른데서 알 수 없다.'


네 번째로 속죄론의 회복과 하나님의 은총의 신학. 바르트 신학의 중심은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중심이고, 그분의 대속의 죽음이 신학의 중심이다. 만민의 죄를 짊어지고 죽었다는 것이다. 바르트가 만인구원론자가 아니냐라는 문제가 발생한다. 화해론에서 다룰 것이다. 이점에 있어서도 루터와 바르트가 너무나도 닮았다고 생각된다. 루터도 복음을 이야기하고 하나님의 은총을 이야기하려는 것이다. 복음과 은총 그것이 종교개혁의 내적 동인이었다.

 

율법적인 성향의 기독교 운동에 의해서 이런 복음과 은총이 침식을 당한다. 칼바르트의 일생의 적 가운데 경건주의자가 등장한다. 경건주의자들의 지옥이란 말도 나온다. 경건주의자들은 진정한 의미의 복음을 모른다고 생각했다. 바르트는 경건주의 가정에서 태어났다. 바르트는 어려서부터 경건주의의 교육을 받았다. 피부로 경건주의를 알았다. 복음을 발견하고 경건주의를 날카롭게 비판했다. 경건주의 안에는 복음이 숨쉬고 있지 않다고 보았다. 바로 루터가 발견했던 위대했던 복음을 20세기의 칼바르트가 다시 복구했다. 그래서, 독일 교회가 바르트를 존경하고 사랑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고 볼 수 있다. 바르트는 개혁파 신학자지만, 개혁파라는 교파의 굴레를 넘어서 모든 교파에 영향을 크게 미쳤는데, 특별히 루터파 교회에 영향을 크게 끼친다. 바르트를 자기 신학의 아버지로 생각을 하게된다. 성서관, 복음과 은총에 대한 이해 등이 루터가 가진 폭발적인 그런 특징이 바르트에게 그대로 연결되고 있다.


다섯 번째로는 하나님의 중심의 신학이다. 신정통주의는 신학의 주제를 인간에서 하나님으로 옮긴 신학이다. 자유주의 신학의 주제는 인간이었다. 그야 말로 신학은 신학이지, 인간에 대해서 왈가왈부하는 것이 아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강조가 등장한다. Lordship. 하나님이 행하시는 곳에 구원이 있고 희망이 있다고 생각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희망이 없다는 것을 가르치는 신학이 신정통주의 신학이다. 하나님이 함께 하시는 오직 거기에만 희망이 있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기도의 중요성이 동시에 등장한다. 왜? 하나님께서 행하셔야 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행하지 않으시면 그것은 결국 아무것도 아니기 때문에 기도의 중요성이 등장한다. 기도가 신학적으로 대단히 중요한 자리를 잡게된다.


여섯 번째로, 만남과 사건으로서의 진리.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만남(Begegnung-만남, Ereignis-사건, Akt-사건, 행위/ 신정통주의를 대표하는 용어)이란 말을 많이 사용한다. 진리는 만남 속에 있다고 한결같이 말한다. 부활을 누가 아느냐 하면 부활한 그리스도를 만난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안다는 것이다. 부활을 객관적으로 이성적으로 따져서 부활을 알기 어렵다. 자유주의자들은 이성적으로 납득이 안되기 때문에 부활을 없애 버렸는데, 영원한 진리는 특별히 만남 속에서 우리에게 계시가 된다는 것이다. 성령과 우리가 만나는 만남의 사건이 일어나야 한다.

 

진리는 이 만남속에 있다. 사건이란 것은 그 만남이 일어나는 그것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 속에 진정한 진리가 존재하는 것이다. 일면 자유주의의 공격에서 신학을 보호하고 기독교의 초자연적인 진리를 되살려내는데는 성공하고 기여했다. 그러나, 문제점은 실존주의적인 특징을 많이 가지고 있는데, 진리가 인간의 실존의 영역속으로 갇혀 버리는, 객관적인 측면, 역사적 측면이 희생될 소지가 내재하고 있다. 그래서, 만남으로서의 진리는 긍정적인 측면도 지니고 있는 반면에 부정적인 측면도 지니고 있는 신학적 개념이다. 신정통주의 신학자들은 당시 대단히 유행하고 있던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다 받았다.

 

전체적으로 보면, 신통주의 신학이란 것은 옛 정통주의 신학의 부활, 더 넓게는 종교개혁 정신이 20세기에 토양을 배경으로 해서 다시 등장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대개 세계의 신학자들이 그렇게 생각을 하고 있다.

한국교회에서 칼바르트를 자유주의와 동일하게 보게된 배경 -
유럽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라 미국의 직접적인 영향을 받은 것이다.


미국으로간 청교도들은 정통주의 신학을 가지고 미국에 도착하게된다. 정착하는 과정에서 신학적 논의가 있을 수 없었기 때문에, 19세기 말엽까지 옛 정통주의 신학이 영향을 끼치게된다. 우리에게 특별히 중요한 것은 19세기 말엽에 미국의 유니온 신학교에서 Briggs 사건이란 것이 발생한다. 브릭스라는 교수가 성경 비평학을 가르쳐서 문제가 발생하게된다. 유럽에서 만개한 자유주의신학이 미국에 건너와서 처음에는 영향을 못미쳤다. 19세기 말엽에 제법 영향이 나타나기 시작되었는데, 그것이 특별히 장로교회안에서 문제가 된 사건이 브릭스 사건이다. 브릭스가 총회로부터 책벌을 당하게되고, 유니온 신학교는 이 때 미국 북장로교회와 단절되게 된다. 1895년 성경고등비평학에 위기감을 느낀 미국 보수주의 종교인들이 모여서, 미국보수주의 대연합을 결성하게되는데, 이들은 근본주의라고 부른다.

 

근본주의 신학은 1895년에 태동하게된 것으로 유럽의 것이 아니고 미국에서 생겨난 것이다. 근본주의 운동의 주축이 된 두 그룹이 있는데, 첫째는 구파 칼빈주의자이고 또 한 그룹은 세대주의자들이다. 한국에는 특별히 종말론에서 세대주의의 영향을 많이 받아서 엄청난 혼란이 있다. 세대주의는 영국 사람 Darby 다비에 의해서 시작된 것인데, 세대주의 특징은 인류 역사를 일곱세대로 나누는 것인데, 세대마다 하나님의 구원의 방법이 달랐다고 생각하는 특징이 있는 사상이다. 노아시대는 양심으로 구원받고, 모세이후는 율법으로, 성령강림 이후로는 은혜로, 세대마다 구원경륜이 다르다고 생각하는 사상이다. 종말론에서 예수님의 공중재림, 7년 대환란, 아마겟돈, 지상강림, 천년왕국 전개, 곡과 마곡의 반란, 백보좌 심판, 신천신지 건설된다. 종말론의 시나리오를 만들어 두었다.

 

세대주의는 침례교계통, 부흥집회, 오순절주의에도 많은 영향을 끼쳤다. 한국 대다수 교회가 세대주의 종말론을 정통 종말론으로 믿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이것은 쓰레기통으로 빨리 가야하는 종말론인데 한국교회에 엄청난 영향을 끼치고 있다. 더 큰 문제는 조용기 목사가 세대주의 종말론을 신봉하고 있는 사람이다. 한국교회가 신학을 멸시했기 때문에 한국교회에 바른 신학이 자리잡지 못하고 괴상한 신학이 자리잡고 있으며, 이 괴상한 신학을 몰아내지 못하고 있다. 우리나라에 세대주의가 정통으로 자리잡는 이유도 근본주의 운동과 무관하지 않다.


두 그룹이 연대하여 근본주의 5대 신학강령이란 것을 발표한다. 첫째가 성경의 절대무오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동정녀 탄생 셋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대속적 죽음 넷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부활 다섯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육체적 재림. 실제 핵심은 제1항에 있다. 제1항만 파수되면 나머지는 자동적으로 파수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근본주의는 성경의 절대무오를 파수하기 위해서 만들어진 신학운동이며 신학이론이다.

 

이 근본주의 운동의 칼빈주의 계통의 학자로는 B. B. Warfield 라는 분이 주역으로 활동을 했다. 이 분은 근본주의 신학의 신학적 지주중의 한 분이다. 성경의 절대무오론을 강조하기 위하여 피나는 노력을 경주한 분이다. 기상천외의 이론을 만들었다. 최초의 성경 원본의 무오이론을 만들어 내었다. 최초의 원본은 어디에 있는가? 물론 없다.

 

 그러니까 어느 누구도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기발한 억지다. 원래 원본이 오류가 없었다면 사본에 꼭 같은 오류가 나오기 어렵다. 각각 다른 지역에서 꼭 같은 오류가 드러내고 있을 때는 역으로 추정할 때 원본의 오류라고 보아야 하는 것이다. 1910년대까지는 교리를 파수하는데 성공한다. 미국장로교회를 지배하는 신학이었다. 1910년에 미북장로교회가 제5항만 일부 변경시키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적으로 대체) 근본주의 5대 강령을 미북장로교회의 신조로 채택을 했다. 1920년대 들어서면서 아주 복잡해진다. 자유주의와 정통주의가 서로 싸우게되면, 역사적으로 결국 자유주의가 다 이겼다. 한 번도 옛 정통주의가 이기지 못했다.

 

미국에서도 결국 붕괴되고 있다. 1922년 포스딕 Fosdick 목사, 근본주의자들을 이길 것인가? 란 설교를 하여 출판하여 베스트 셀러가된다. 근본주의자들은 자유를 억제하고, 관용성이 없고, 몇 몇 교리를 절대화시키고 있는 데 교회의 수 많은 사회적 책임을 도외시하고 사소한 문제로 싸움만 일삼고 있다는 내용의 설교로 그리스도인의 사회적 책임을 강조했다. 맥카트니 라는 목사가 너무 흥분하여 "불신앙을 이길 것인가?"라는 설교를 하여 출판을 했다. 신학논쟁이 일어났으며, 신학논쟁으로만 끝난 것이 아니고 총회에 고소를 했다.

 

 이 싸움에서 포스딕 목사가 목사직에서 물러나게 되었고, 이 사건으로 뉴욕 노회가 총회와 맞서는 일이 생긴다. 여기에 세기의 재판으로 알려진 스콥스 사건이 일어나게된다. 스콥스란 분은 공립학교 교사였는데, 진화론을 가르치면 안된다는 법을 어기고 진화론을 가르쳤다. 이 사실을 알고 흥분한 근본주의 목사님 브라이언 목사님이 고소를 했다. 미국의 전역에 생중계가 될 정도로 엄청난 싸움이 일어나서 스콥스 진영의 데로(Derrow)라는 변호사가 날카로운 질문을 했는데, 브라이언 목사님은 시종일관 그냥 우겼다. 재판결과는 당시 100불의 벌금형으로 스콥스에게 판결이 났다. 둘 다 결국 법적으로는 근본주의자들이 이겼다. 근데, 여론이 정반대로 불기시작한다.

 

근본주의는 인간의 자유를 박탈하고, 학문의 자유를 억압하는 구나, 근본주의 정신은 대체로 폐쇄적이구나... 많은 사람들이 근본주의에 대한 혐오감을 느끼기 시작하게된다. 1924년 장로교회에서 어번(Auburn) 선언이란 것이 등장한다. 미국 북장로교회 안의 1200여명의 목사가 싸인 한 것인데, 진보적인 학자들에게 관용을 베풀어야 하고 1910년에 미국북장로교회가 채택한 다섯가지 교리는 하나의 학설로 보아야 한다는 것이다. 1925년 총회에 어드만 이란 분을 총회장으로 선출하는데, 이 분이 바로 관용성을 강조했던 학자였다. 극우적인 근본주의를 대단히 싫어했던 진보적인 성향의 관용을 주장했던 분이 총회장으로 당선되면서 미국 북장로교회의 방향이 바뀌어지게된다.


1926년 매이첸(Machen)이라는 교수가 프린스톤 신학교 교수였는데 근본주의자였다. 워필드를 가장 존경했던 사람으로, 워필드가 죽었을 때 통곡을 했던 사람이 매이첸이다. 이 분이 미국 북장로교회 총회에서 정교수 인준을 받아야 하는데, 프린스톤 안에서의 싸움꾼이었다. 바뀐 총회의 분위기로 정교수 승인을 보류시켰다. 결국은 정교수 승인을 얻지 못하였다. 매이첸이 1929년에 프린스톤을 떠나서 필라델피아로 가서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를 만든다. 이 때 밴틸이란 신학자도 함께 간다. 1936년에 정통장로교회라는 새로운 교단을 하나 만든다. 프린스톤 신학교의 분열의 역사다. 일부 교수와 일부 학생이 따라간 사건이 웨스터민스터 신학교가 만들어진 사건이다. 이 사건이 대한민국에는 핵폭풍으로 다가온 것이다. 이것이 영향을 끼쳐서 1959년 한국의 어마어마한 대분열이 일어나게 된다.


이 시기에 한경직 목사님, 김재준 목사님, 박형룡 박사가 이 때 프린스톤에 유학을 하고 계셨다. 박형룡 박사가 매이첸의 사랑을 받았다. 박형룡을 한국의 매이첸이라고 한다. 박형룡은 웨스터민스터에서 박사과정이 없어 루이빌의 침례교 계통의 신학교에서 학위를 하게되며, 여기서 세대주의의 영향도 많이 받게된다. 박형룡은 개혁주의 신학의 정통이 아니다. 극단적인 한 가지의 출신이다. 당시 프린스턴에 칼바르트신학이 상륙하고, 1920년대 말엽부터 신정통주의로 신학의 방향을 잡게된다. 미국 북장로교회는 신정통주의 신학을 중심으로 1960년대까지 지속적인 성장을 하게된다. 매이첸이 자기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위해서 프린스톤을 비난하면서 신정통주의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신정통주의는 사실상 성서비평학을 받아들이기 때문에 겉으로만 정통주의지 실질적으로는 자유주의라고 공격을 하게되었다. 매이첸이 죽고 난 뒤에 밴틸이란 사람이 계속해서 신정통주의를 공격하고 비난하는 글을 많이 남겼다. 매이첸과 밴틸을 중심으로 해서, 바르트와 신정통주의신학은 신신학, 사실상의 자유주의 신학으로 비난을 받게되었다. 이 신학을 박형룡이 그대로 한국에 가져들어와서 성경비평학을 무차별 공격하고, 신정통주의를 신신학 자유주의로 비난하게된다.


1953년 김재준 박사 책벌, 기장이 만들어지는 장로교회 분열이 이루어진다. 김재준 박사는 신정통주의 신학자였다. 프린스톤의 주류적인 성향을 그대로 이어받아서 신정통주의 신학을 하셨다. 한경직 목사님과 가까운 친구사이였다. 이미 이전에 아빙돈 주석사건으로 한경직 목사님이 총회에 반성문을 낸 사건이 있다. 따라서, 김재준 박사의 책벌시 김재준 박사를 돕지 못했으며, 이로 인해 김재준 박사로부터 많은 비난을 받았다. 박형룡은 남산 장로교신학교의 교장으로 있으면서 한국교회의 정통의 상징으로 자리매김하고 있었다. 1959년의 분열은 결국 박형룡과 한경직 사이의 갈등이라고 볼 수 있다.


네 번째 강의

박봉남 박사의 "신학의 해방" 기독교서회에서 나온 책, 1953년의 논쟁에 대한 자세한 보도가 나온다. 기가 막히는 논쟁이다. 학문적으로 열등한자가 학문적으로 앞선 자를 공격하는 논쟁이다. 당시의 한국교회가 그것을 이해할 만큼 성숙하지 못하여 결국 김재준 목사를 책벌하는데 한국교회가 동의하는 일이 일어나게된다. 김재준 목사님은 학문적으로는 존경할만한 분이시다. 신학적으로 당시에 선진적인 신학을 이미 잘 배우셨고 한국에 잘 소개한 특징을 가지고 계시고, 한편으로 한국 땅에서 역사책임적 신학의 아버지가 되었다. 사실 당시의 한국교회는 예수 믿고 천당가는 것 밖에 모르는 교회였다. 이런 한국교회에서 역사를 새롭게 하는 것이 교회의 가장 중요한 과제라는 것을 인식했던 학자가 김재준 목사였다. 그분의 역사 책임적 신학, 그 가르침이 결국 유신체제 아래서 기장의 저항운동으로 나타나게 되었다. 김재준 목사님이 없었다면, 우리 개신교회의 저항운동은 없었을 가능성도 있다.

 

개신교회의 저항운동이 일어나게되는 신학 정신을 거꾸로 올라가보면 제일 먼저 가르친 분이 김재준 목사님이셨다. 칼바르트를 잘 알고 계셨고, 칼바르트가 히틀러 시절 바르멘 신학선언을 기초하고 저항운동에 앞장서셨다는 것을 잘 알고계신 학자였다. 김재준 목사님은 대단히 훌륭한 점을 많이 가지고 계셨던 학자라고 평가할 수 있다. 목회자로는 한경직 목사님이 훌륭하셨다. 당시의 한국 장로교회가 그 분들을 이해할 만큼 신학적으로 성숙해 있지 않았다. 그래서, 오히려 박형룡 박사의 압도적인 영향을 받게되는.... 기장에서 지금도 예장을 비난하는 것이 있다. 지금 우리 교단은 김재준 목사님을 책벌할 때의 상황에서는 많이 달라졋고 신학적으로는 많이 개화가되었다고 볼 수 있는데, 에큐메니칼 운동을 같이 하고 있고, NCC를 이끌어 가는 형제교단으로 협력을 하고 있는데, 기장분들이 그들의 정신적인 신학적인 아버지인 김재준 목사를 이단으로 책벌하고서 아직 해벌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리 교단에서는 해벌하고 싶은 마음이 없는 모양이다. 일부에서 해벌 운동이 조금 일어나다가도 아직도 그게 안되고 있다. 세기가 바뀌는 마당에 아직도 신학적 비극이 그대로 남아있다.
프린스톤 분열 30년 만에 1959년 우리 예장이 전국적으로 분열되는 비극이 또 발생하게된다. 53년은 서곡 같은 그런 싸움이었고, 59년 대대적인 싸움이 일어나게된다. 목사장로가 멱살잡고 두들겨 팬일이 전국 도시에 없는 데가 없었다. 대구의 모 교회에서는 오물투척사건이 있었다. 화장실에서 그걸 퍼와가지고 강대상에 목사님께서 설교를 하시려고 하는데 그걸 부은 대단한 사건이 일어나고, 일반신문에 대서특필 보도가 되고 이런 비극이 59년부터 몇해에 결쳐서 싸움이 계속되어 한국 장로교회가 시골 작은 교회까지 분열되는 어마어마한 사건이 일어났으며, 아직 극복되지 못하고 지금에 까지 왔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는 그 안에서 또 싸움이 붙어서, 왜 싸웠냐 하면, 그 안에 세대주의자들이 같이 잇었는데, 이 세대주의의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고 잇엇다. 세대주의를 용인할 수 있다, 없다사이의 갈등. 서로 논쟁을 하다가 웨스터민스터 신학교가 분열을 해서, 그 근처에 Faith Theological Seminary 라는 것이 만들어 진다. 페이스 신학교의 주인물이 칼 McIntire 매킨타이어라는 인물이다. 이 사람도 한국교회에는 대단히 잘 알려진 사람이다. 이 쪽에서는 세대주의를 받아들이고 싶어 하였다. 웨스트민스터는 세대주의를 배척하려고 했다.

 

그것과 더불어 천년왕국 문제가 붉어져 나왔는데. 웨스터 민스터는 무천년설을 주장하고 매킨타이어는 전천년설을 주장했다. 세대주의자들이 전천년설을 믿고 있다. 주초문제도 싸움의 핵심인데, 웨스터쪽은 주초문제와 극장 출입은 개인의 신앙에 해당하므로 개인에게 맡기는 것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매킨타이어는 철저하게 규제를 해야한다는 입장을 가지고 있었다. 사소한 문제로 혈압을 있는대로 올려서 싸운 것이다. 매킨타이어 그룹은 1937년 미국성경장로교회를 만든다. 1936년 웨스터민스터를 중심으로 정통장로교회가 만들어졌는데, 그 다음에 성경장로교회를 만들어 작은 그 교단을 분열시키게된다. 매킨타이어는 1941년 미국기독교협의회 A.C.C.C. 를 만들어서 1948년에 국제적으로 확대를 해서 국제기독교 협의회 ICCC 를 만든다. International Counsel of Cristian Churches. I.C.C.C.라는 것도 외워두는 것이 좋다. 당시대의 책들을 살펴보면 ICCC라는 것이 많이 나온다.

 

조그만 단체인데, 한국에서는 굉장히 큰 문제다. 이들은 한결같이 WCC를 험악하게 비난한 특징들을 가지고 있다. 바로 이 매킨타이어 그룹을 지칭해서 신근본주의라고 한다. 페이스 신학교가 얼마안되어 또 분열하는데, 버스웰이라는 사람이 세인트루이스로 가서 카비넌트 신학교를 만든다. Covenant , Buswell . 이들의 교단을 미국 복음 장로교회라고 한다. 작은 교단이 계속해서 분열하는 것이다. 1930년대 접어들면서 근본주의가 이런 과정에서 일반 성도들에게 인기가 없어져 버린다. 사람들이 다 지겨워하게 되었다. 지금은 근본주의라는 말이 나쁜 말이다.

 

1930년대부터 근본주의는 부정적인 의미를 많이 갖게되었다. 지금은 근본주의의 본산이라고 할 수 있는 웨스터민스터 신학교도 자신들을 근본주의라고 안부르고 개혁주의라고 부른다. 웨스터민스터 신학교에서는 자기들의 신학적 입장을 개혁주의라고 주장하는데, 개혁주의라는 말에 속아넘어가면 안된다. 한국에서도 개혁주의에 대한 혼선이 심각하게 있다. reformed tradition을 이야기하게되면 칼빈 이후 우리 장로교회의 신학정신을 이야기하게된다. 20세기 reformed tradition의 인물을 보면 단연코 칼바르트와 에밀부루너와 같은 사람들이다. 20세기 후반에 들어오면 몰트만, 스위스의 로흐만, 루카스 피셔, 네들란드의 벌카우어, 미국의 프린스톤의 밀리오르, 거스트리 같은 학자들이 개혁신학을 대표하는 학자들이다. 20세기 개혁신학의 중심은 칼바르트에게 존재하고 있고 칼바르트의 정신을 이어 받은 20세기 후반의 신학자들 속에서 흐르고 있다는 것이다.

 

개혁신학이라고 하면 당연히 그런 것으로 유럽에서는 알고 있다. 그런데, 저분들의 개혁주의는 20세기에 들어와서 워필드와 매이첸을 중심으로 해서 밴틸로 연결되는 소위 근본주의를 자기들의 20세기의 개혁주의의 기본 흐름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20세기 후반의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로 연결되는 이것이 개혁주의라고 생각하는 것이다. 저분들의 개혁주의는 개혁주의의 넓은 흐름가운데 극단적으로 보수적인 한 가지를 얘기하는 것이다. 칼빈을 이어 받은 개혁주의는 개혁주인데 극단적인 이상한 한 가지를 저 양반들이 개혁주의라고 이야기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한국 안에서는 이것이 해결이 안되어 있다. 한국의 보수적인 학자들을 보면, 약력을 한 번 보면, 거의 대다수가 웨스트민스터 혹은 페이스 두 학교를 반드시 거친 것을 볼 수 있다. 장로교 학자들의 절반정도가 두 학교 출신이다. 전투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근본주의는 관용심이 결여되어 있다는 것이 신학적 약점이고, 성경의 권위를 주장하고 싶어했던 것 자체는 문제가 없지만, 축자영감주의를 주장하는 것이 큰 오류이다. 세 번째로는 사회적 관심이 없다. 소위 하나님 나라에 관한 문제가 신학에서 가장 중요한 문제인데, 하나님 나라에 대한 인식이 없다. 그래서, 사회적 문제에 대처할 수 있는 신학적 기둥이 전혀 없는 신학이다. 네 번째로, 타계적 신앙을 가르치는 신학이다. 신학적 이원론이 깊이 들어있다. 천당 가는데 주로 집중하는.


근본주의가 영향력을 상실하고 인기가 떨어지면서 미국의 많은 보수적인 사람들이 자신들의 신학적 정체성을 상실하게된다. 근본주의가 비웃음의 대상이되면서 그것을 그대로 밀고 나가면서 자신을 동일시 하기가 어렵게되면서 미국의 보수주의자들의 상당수는 자신들의 신학적 정체성을 신정통주의에서 찾게되었다. 미국 북장로교회의 일반적인 흐름이라고 볼 수 잇는데, 그러나, 신정통주의에서 자신의 신학적 정통성을 찾기가 어려웠던 사람들도 있었다. 그렇다고 근본주의를 그대로 고수할 수 없었던 상당수의 사람들이, 이런 공백상태를 뚫고 새로 만들어 진 것이 신복음주의다.

 

신복음주의는 1947년 풀러신학교가 만들어지면서 그 설립자 (Ockenga, Henry, Harrison, Ramm) 가 자신들의 신학적 입장을 신복음주의라고 천명을 한다. Christianity Today 라는 유명한 잡지를 만들어낸다. 이 잡지는 신복음주의 정신을 전세계에 알리는데 아주 공헌을 한 잡지다. 지금 이 운동은 복음주의라는 이름을 가지고 있다. '신'자를 안붙인다. 70년대말 80년대 초 합동측 신학교가 분리되면서 여러 교파들이 생겼는데, 핵심적 신학적 논쟁이 신복음주의라는 것이었다. 신복음주의자들이 합동측 신학교에서 쫓겨 나게된 것이다.

 

현재 신복음주의는 규모가 굉장히 커지게 되었다. 빌리그래함목사가 여기에 가담이 되었고, 독일에서는 프랑크푸르트 성명이 발표되었고, 1974년에는 로잔복음화대회가 열렸다. 그런데, 신정통주의에 가담을 못했던 많은 보수적인 사람들이 이 복음주의에 가담을 하게되었다. 보수신학이 크게 두 갈래로 나누어졌다고 할 수 있는데 신정통주의적인 흐름과 복음주의적인 흐름 둘로 나누어지게되었다.


신복음주의는 크게보면 근본주의보다는 조금 진보적인 특징이 있다. 조금 더 개방적이고, 근본주의를 비판하면서 만들어진 신학운동이다. 반면에 신복음주의는 신정통주의 만큼 그렇게 진보적이지는 않다. 신정통주의보다는 보수적인 특징을 가지고 있다. 현재 전세계적으로 볼 때는 신정통주의까지는 WCC에 가담을 하고 있다. WCC에는 자유주의적인 흐름과 신정통주의적인 흐름이 공존하고 있다. WCC안에서 가장 보수적인 사람은 신정통주의자다. 신정통주의보다 더 보수적인 사람들은 WCC에 잘 들어오지 않는다. 세계에서 가장 큰 기독교 기구가 WCC다. WCC 운동은 크게 목소리가 두 개가 있다. 자유주의적이고 라디칼한 목소리가 있으며, 대단히 보수적인 목소리가 있다. 보수적인 목소리는 신정통주의자들이 내는 것이다.


한국의 신학교를 분석해보면, 감리교는 자유주의와 많이 가깝다. 종교다원주의자들 감신대에 제일 많다. 총신은 물론 자기들 스스로 개혁주의라고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학교를 한국에 옮겨놓은 것 같은 근본주의 성향의 개혁주의다. 양평의 아시아 연합 신학대학은 크게 보면 복음주의 특징을 가지고 있다. 한국에서 복음주의를 확산시키는 온상이 ACTS라고 할만큼 복음주의 성향이 강한 학교다. 합동신학교는 복음주의 학자와 근본주의 성향의 학자들이 섞여 있다. 합신의 대표적인 김명협 교수는 복음주의자로 보는 것이 가장 맞지 않을까 생각한다. 기장은 신학적으로 보면 자유주의와 신정통주의가 혼재한다. 김재준 목사님은 신정통주의자였는데, 밑으로 내려오면서 복잡해졌다.

 

크게 역사 책임적 신학을 이어받아 민중신학을 발전 시키는 그룹은 김재준 목사님의 역사책임적 정신은 이어받았는데 신학적으로는 신정통주의를 이어받지 않고 자유주의를 이어받은 느낌이다. 박봉남 박사나 전경연 박사와 같은 분들은 신학적으로는 신정통주의를 철저하게 이어받는다. 그러나, 사회참여는 소극적이다. 기장에는 우리와 비슷한 사람이 절반쯤 있고 우리와 다른 사람들이 절반쯤 된다. 우리학교는 뭘까? 우리학교를 정의하기가 복잡하다. 정의를 안하는 것이 더 좋을지도 모른다. 신학적으로는 복음주의와 신정통주의가 혼재한다. 우리 학교의 보수적인 분들은 복음주의의 성향을 제일 많이 띄고 있다. 근본주의를 우리학교에서 찾을 수 없다고 본다. 어떤 면에서 근본주의를 나타내는 분들이 있기는 하다. 한두가지 항목이 그런 것이고, 전체적인 경향에서 보면 신정통주의적인 성향과 복음주의적인 성향이 혼재하는 것 같다. 우리 학교에 자유주의자는 없는 것 같다.


이종성 박사가 학장으로 있을 때 총회에서 심문을 여러 차례 받았다. 당신의 신학을 정의해서 이야기 해봐라! 이 분이 마침내 정의하시기를 "나는 성서적 복음주의자다."라고 대답했다. 그것으로 끝났다. 아무도 공격을 할 수가 없었다. 명답은 명답인데, 정치적인 명답이다. 신학적으로는 그런 흐름은 사실상 없는 것이다.

신복음주의는 구체적으로 어떤 특징이 있는가?


첫째는 근본주의를 비판한다. 이유는 비신학적이고 비학문적이다. 문화와 사회와의 관련성이 결여되어 있으며, 역사성이 결여되어 잇다. 복음주의는 세상과 문화를 변혁시키는 것이 좋다는 생각을 한다. 근본주의와 다른 점이다. 그래서, 기독교 문화관, 특별히 문화적 영역에서 노력이 많이 나타난다. 정치적인 영역에서 개혁적인 관심이 있는 것 같지 않다. 복음주의자들이 뭘 바꾼다고 할 때 정치, 경제, 인권 이런데 초점이 잇는 것 같지는 않다. 주로, 그분들의 관심의 영역은 문화적인 것이다. 기독교적인 음악을 보급하려고 하고, 세속 노래속에 있는 마귀적인 특징을 찾아내려고 하고 뭔가 바꾸려고하는 특징의 운동이 많이 잇다.


두 번째로 성경 무오에 대한 신앙이 있다. 바로 이점 때문에 복음주의가 신정통주의와 구별되는 장소이다. 신정통주의자들은 성경에 오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신복음주의자들은 성경무오를 파수하려고 한다. 근본주의와 일치한다. 따라서, 성경의 고등비평학을 일반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 이분들은 근본주의를 비판하면서 근본주의 정신의 핵을 그대로 계승하고 있는 것이다. 신학적으로 보면 신정통주의보다는 근본주의에 더 가깝다. 사회적인 또는 다른 교파나 교회정치적인 문제에 있어서 경향성을 보면 신정통주의에 상당히 근접해 오는 모습을 나타내는 데, 외형은 신정통주의와 비슷하나, 알맹이, 신학적 핵은 근본주의에 더 가까운 측면이 있다. 그런데, 도대체 어떻게 성경무오를 주장할 수 있는가? 성경무오를 주장하다가 다 망했는데.... 여기에 신복음주의자들의 독특한 성경해석방법으로 세 번째 특징이다.


세 번째 과학과 성경을 조화시키려는 특징이 있다. 과학적으로 분석해서 성경의 오류가 드러났는데 성경을 다르게 해석해서 과학과 일치시키려는 방법을 사용하고 있다. 근본주의자들이 상상도 못한 방법을 과감하게 개발했다. 예를 들자면, 창세기1장부터 문제가 있다. 천지를 하나님께서 육일만에 창조하셨다. 지구의 역사만 과학자들은 45억-50억의 역사가 있다고 본다. 우주의 역사는 훨씬 더 길게 본다. 6일과 45억년을 어떻게 조화시키는가? 근본주의자들은 이런 경우 '너는 말씀을 믿는가? 인간의 이성을 믿느냐?'라고 묻는다. 단연코 인간의 이성을 정죄했다. 과학적 탐구가 틀렸다는 것이다. 아무리 자연과학적인 증거가 나왔다고 하더라도 그 증거를 믿지 않는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믿기 때문이다. 복음주의자들은 6일 창조설을 6시대 창조설로 바꾸어버린 것이다. 날이 24시간 하루를 의미할까? 생각해보라. 24시간의 개념은 해와 달이 만들어지고 난 뒤에 가능한 것인데 해와 날이 만들어지기 전부터 날의 개념이 나온다. 그러므로, 이 날의 개념은 24시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시간으로서의 하루를 의미한다. 천년이 하루같고 천년이 하루같은 그 하루다. 이 하루는 천년일 수도 10억년 일 수도 있는 것이다.

 

그리고 난 뒤 과학과 창조의 순서를 비교해 보면 거의 조화가 된다는 것이다. 성경도 버리지 아니하고 과학도 버리지 아니하고 양쪽을 다 가질 수 있는 너무도 좋은 방법이었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해석을 좋아하게되었다. 많은 보수적인 사람들이 이것을 따르게되었고 이 신복음주의가 많은 영향력을 행사하면서 널리 퍼져가게된 것이다. 근본주의자들이 보기에는 말도 안되는 것이다. 신복음주의자들을 과학에 아첨하는 자들이며, 하나님의 말씀을 과학에 팔아먹는 자들이라고 비판을 했다. 반면 복음주의자들은 근본주의자들이 생각이 꽉 막힌 사람들이라고 비난한다.... 복음주의자와 근본주의자들 사이가 좋지 않다. 세월이 흐르면서 복음주의 해석이 많은 사람들에게 설득력이 있는 것 같다.


성서비평학적인 시각에서 보면 어떨까? 창세기1장을 일반적으로 P 문서라고 하는데, 바벨론에서 포로기에 기록된 것으로 보고 있다. 근데 문제는, 바벨론의 창조신화가 있다. 길가메쉬 서사시를 읽어보면 바벨론 창세기가 나오는데, 거기에는 마르둑이란 신이 나오는데, 마르둑이 천지를 창조한다. 6일만에 창조한다. 첫째날부터 여섯째날까지 창조의 내용이 성경과 일치한다. 순서와 날짜와 내용이 같고, 마지막으로 인간을 창조한 것까지 같다.

 

그래서, 복잡하다. 어떻게 마르둑의 창조와 창세기 1장이 닮을 수가 있는가? 창세기 1장 정도가 아니라 노아 홍수 이야기도 똑 같다. 그래서, 구약성서 연구가 당시의 문헌들을 연구하지 아니하고 해석하게되면 아전인수격 해석이 나올 가능성이 많다. 갖다 놓고 같이 보면서 연구를 안하면 안된다. 결론은 어떻게 나든지 비교연구를 해야한다. 왜냐하면 세계의 제대로 된 신학교에서는 전부 그렇게 하고 있다. 그래서, 자유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쉽지 않다. 자유주의를 반대한다고 말하기는 쉬운데 학문적으로 자유주의를 극복하기는 쉽지 않다. 엄청난 과제다.

 

공부를 안하면 극복하기 쉬운데, 할수록 쉽지가 않다. 자유주의적인 성향을 가진 분은 서로 주거니 받거니 했다고 생각한다. 성경만 독특하다는 것은 거짓말이라고 생각한다.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면서 서로 발전한 것이 거의 확실한데, 다른 종교의 문헌은 땅에서 인간이 만든것이고 성경은 위에서 떨어졌다. 이것이 그분들에게는 납득이 안된다. 율법들 십계명까지 비슷한 것이 너무 많아 정신이 없다. 창세기 1장도 결국 영향을 받은 것이다.

 

어떻게 이렇게 닮았을까? 여기에 대한 해결가능성은 크게 세가지가 있다. 첫째 가능성은 그냥 무조건 우연히 닮은 것이다. 두 번째는 길가메쉬 서사시에 나오는 마르둑 창조 이야기가 성경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닐까? 세 번째 가능성은 말하기가 너무나도 곤란하지만, 이렇게 말하는 것 자체가 불경 그 자체일수도 있는데, 혹시, 성경이 마르둑 창조 이야기의 영향을 받아서 기록된 것이 아닐까? 어쨋든 이 세가지가 가능한 경우이며, 어느 것이 맞을 것인가를 연구해야 하는데, 첫 번째 가능성은 이론적으로만 가능하다. 현실적으로 그렇다고 믿기가 어려운 점이 있다.

 

그래도, 무대보적인 신앙으로 그러하다고 생각하는 분들도 계신다. 그런데, 많은 분들에 의해서 그 가능성은 납득가능한 것으로 받아들여지지 않고 있다. 문제는 둘째 아니면 셋째일 가능성이 많은데... 가장 핵심적인 잣대는 두 개 이야기 가운데 어느 것이 더 오래되었는가? 하는 것이 중요하다. 질문이 여기까지 가면 불경한 짓을 해야한다.

 

이 두 개의 문헌은 비교가 안될 정도로 바벨론의 창세기가 오래된 글이다. 결국 가능성은 성경이 바벨론 창세기의 영향을 받았다 그 가능성 밖에 안남아 있는 것이다. 그래서, 종교사학파에 속해 있는 학자들은 영향을 받았다고 생각하고 그 영향권 아래서 기록된 것이 명백하다. 바벨론 창세기 뿐만 아니라 애굽의 창조설화까지 영향을 끼쳤으나 바벨론의 것의 영향이 압도적이다. 이 정도 되면, 성경의 계시적인 측면이 없어진다. 유럽의 신학자들의 가운데 다수는 여전히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생각하는 바르트적인 정신을 계승하고 있다.

 

그러므로, 그렇게 완벽하게 답을 내고 있는 것은 아니다. 어떻게 계시의 책으로 생각할 수 있는가? 소위 구약학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는 폰나트를 비롯한 구원사학파에 속한 일반적인 학자들은 바벨론 창세기의 영향을 받았는 것은 인정한다. 그것은 틀림없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창세기를 자세히 연구하고, 마르룩 창조설화와 자세히 비교해 보면, 그 근본적인 정신에 혁명적인 어마어마한 차이가 있다는 것이다. 우선 외형적으로 나타나는 것은 마르둑이란 단어를 빼버리고 하나님이란 이름을 넣었다. 여기서 첫 번째 등장하는 메시지는 이 우주 세상을 창조하신 분은 마르이 아니라고 하나님이란 것을 천명하고 있는 것이다. 근데, 이것은 역사적 컨텍스트에서 보면 엄청난 일이다. 포로로 잡혀 있는 한복판에서 마르둑을 빼버리고 하나님이 창조했다고 하는 것은 대단한 일이다.

 

 옛날의 종교세계의 일반적인 원칙은 한나라가 지고 한나라가 이기게되면 이긴 국가의 신이 참신이 되고 진국가의 신은 가짜 신이 되는 것이다. 유대인들이 전쟁에서 져서 포로로 잡힌 상황에서 누가봐도 마르둑이 진짜 신인 것이다. 애국가의 글자를 빼서 다른 것을 집어 넣는 것과 비슷한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하나님으로 이름을 바꾼 것이다.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 하나님이란 것을 천명했다는 것은 독특한 것이다. 한걸음더 나아가서 이 역사를 주관하는 주관자가 하나님이란 것을 선언하는 것과 같은 것이다.


두 번째 중요한 것은 소위 엣날에 종교세계에서 일반적으로 신으로 추앙받고 있던 해, 달, 별, 바다의 큰 괴물을 전부다 피조물로 격하시키고 있는 것이 독특한 것이다. 애굽에서도 태양은 태양신이었다. 그런데, 소위 신적인 특징을 가지고 잇는 것들이 한결 같이 다 피조물로 기록되어 잇다. 이것은 하나님외에 다른 신이 없다는 것과 깊이 결부되어 있다. 다른 신적인 존재가 하나님외에 없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인간창조에서 굉장한 차이를 나타내는 데, 마르둑 창세기에서 인간은 마르둑의 종으로 창조된다. 마르둑 창세기는 일종의 정치적인 배경이 있다고 생각한다. 많은 학자들이 엣날에 종교의 창조 신화는 거의 다 정치적인 배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한다. 정치적인 배경이란 사람이 마르둑의 종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바벨론의 왕은 바벨론의 신의 아들이다. 바벨론의 신을 섬기는 것은 그 신의 아들인 왕을 섬기는 것과 일치한다. 사람을 종교적으로 묶어 버리면 엄청난 정신적인 힘을 가지고 있다. 영원토록 그 왕을 섬겨야 하는 반란이나 저항의 가능성이 없어지는 것이다.

 

고대의 신화들은 정치적인 배경을 일반적으로 가지고 있다. 집권자의 권력을 강화하고 영속화시키려는 의도가 종교의 신화속에 다 투영되어 있다. 그런데, 인간 창조 부분에 와서 굉장히 많이 바뀌는데, 창세기는 인간을 마르둑의 종으로 묘사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이라고 되어있다. 하나님의 형상이란 것은 하나님을 닮았다는 것과 하나님을 대신하는 대리자라는 의미를 가지고 있다.

 

인간은 이땅위에 하나님의 대리자로 창조되었다. 이것은 엄청난 말이다. 인간은 종이 아니고 신의 대리자라는 것은 신학자들이 인간 해방의 복음, 인간의 존엄성, 인간의 위엄이 이미 창세기 1장에서 선포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인간 자체를 신적인 어떤 존재로 규명하고 있는 특징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래서, 창세기 1장은 길가메쉬 서사시의 마르둑 서사시와 외형적으로 닮은 점이 있지만 그 정신 자체는 전혀다르다는 것이다.

 

얼른 볼 때 닮았다는 느낌을 주는 것 뿐이지 전혀 다른 정신에 의해서 기술이 되고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로 이 다른 정신 자체가 계시적인 측면을 지니고 있다고 생각한다. 폰나트 이후에 구약에서 강조되었던 것은 구약성경에서 메시지를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구약 본문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무엇인지 정확하게 찾아내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예컨데, 창세기 1장에서 육일이란 틀, 창조의 순서, 여기에 묶이게 되면 바벨론의 종교로 돌아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그 틀은 바벨론의 종교에서 가져온 것이기 때문이다.


창세기 1,2장의 틀이 틀려도 문제가 안되는 것은 틀 자체가 원시종교, 바벨론의 종교에서 왔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선포하고 있는 메시지 자체, 하나님께서 우주를 창조하신 창조주시며, 그분이 우주를 지배하고 있는 진정한 신이시며, 해든 달이든 다 피조물에 불과한 것이다. 참 신은 한분 밖에 존재하지 않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은 종이 아니라 신의 형상으로 창조받은 신의 대리자요 하나님 앞에서 이 우주 만물을 책임지고 있는 그런 존재로 창조된 것이다. 대개 구원사학파의 학자들이나 신정통주의적인 성향을 이어받은 분들은 성경안의 창조와 관계된 메시지를 연구할 때 그 당시의 종교의 틀이라든지 세계관 거기에 너무 많이 묶이면 안된다고 생각한다. 성경은 과학적인 정보를 주려는데 초점이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의 근본적인 정신은 우리의 구원에 관련된 메시지 자체를 전달하려는데 그 초점이 있다.


구약성경에서 하나님께서 땅의 기초를 세우실 때에 이런 표현은 과거 사람들의 세계관을 보여준다고 생각한다. 세상은 평평하고, 바다로 나가면 낭떠러지가 있고, 대지 위에 밑에 기둥을 세워 놓고 세상을 창조하셨다고.... 기둥인데 개역성경에는 기초라고 애매하게 번역되어 잇다. 이런 것을 원시적인 세계관이라고 생각한다.

 

그런 원시적인 세계관에도 불구하고 근본적인 정신은 하나님께서 창조하셨다는 것이다. 그런 세계관 위에 그렇게 표현된 것 뿐이다. 이것을 그대로 가져오면 원시인들의 세계관과 과학을 가져오는 것이고, 여기서 그 정신을 가져온다면 이 세상 모든 것을 하나님이 그 능력으로 만드셨다는 것이며, 여기에 성경의 근본적인 정신이 있는 것이다. 성경비평적인 시각을 가지고 있는 분들은 자유주의자든 신정통주의자든 6일만에 창조된 개념은 빌어온 개념이고 성경의 메시지가 거기에 있는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이렇게 성경을 해석하는 방식에 많은 차이가 있다. 복음주의적, 근본주의적, 자유주의적, 구원사학파적, 신정통주의적 시각에서 해석하는 방법이 다 다르다.
신복음주의는 이런 비평학적 방법을 사용하는 것이 아니다. 과학과 성경을 조화시키기 위해서 날이란 개념에 새로운 뭔가를 불어넣어서 어쨋던 과학과 조화를 시켜보려고 한다.


버나드 램이 노아 홍수에 대해서 쓴 글을 보면 재미있다. 방주안에 모든 생물들이 암수 한쌍씩 들어갔다. 램이 방주의 크기를 계산해 보았는데 아무리 해도 안되겠다는 것이다. 코끼리, 코뿔소가 몇마리 들어가서 움직일 공간을 생각하면 아무리 생각해도 합리적으로 안되는 것이다. 이분이 고민을 많이했다. 북극곰도 들어가야 할텐데 북극에서부터 그 먼길을 여행을 해서 들어왔을까? 남극에 사는 펭귄은 어떻게 됐을까?

 

도저히 과학적으로 안맞아 들어가는 것이다. 홍수가 내려서 온 지면을 덮었다고 할 때 온을 에베레스트 산 꼭대기까지 덮었다는 것은 아무래도 무리다. 그래서, 지역 홍수설로 바꾼다. 메소포타미아 지역 전체를 덮었다는 개념으로 바꾸었다. 하여간 이런 식으로 과학과 성경을 조화시키려고 했는데, 어떤 것은 억지가 많이 들어간다. 기본적인 의도는 분명하다. 성경도 하나님의 계시고, 자연을 통해서 나타난 것도 하나님의 계시인데 엇갈릴 리가 없다. 어떤 방식으로든 일치하게되어 있다는 것이 대전제이다. 설명하는 방법이 중간이 좀 잘못될 수 있지만, 어떤 형태로든 조화를 이룰 것이라는 것이다. 사람들을 자기들의 방법으로 설득했다.


네 번째로 정치적 문제에 대해서는 중립을 취하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사회복음을 좋아하지 않는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회변화가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사회변화를 개인을 전도해서 변화된 개인이 사회를 변화시키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기본적인 방향이다. 구조가 회개를 하느냐? 구조를 회개를 못하는 것이다. 개인이 회개를 하는 것이며, 변화된 개인이 사회를 바꾸는 것이다.


다섯 번째로, 협력적 전도와 선교에 우선권을 둔다. 이분들은 선교에 굉장한 중요성을 두었던 사람들이다. 근본주의자들과 다른 점이고 어떤 면에서 근본주의자들보다 나은 점이다. 근본주의자들은 교리의 순수성에 관심이 많았던 사람들이다. 그런데, 복음주의자들은 교리의 순수성보다는 전도에 관심이 많았다. 그래서, 복음전하는데 도움이 되면 어지간하면 협력을 하려는 특징을 가지고 있다.

 

교리가 서로 조금 달라도, 복음 전하기 위해서 협력을 하는데 이것이 협력적 전도라는 말이다. 이것은 대단히 성경적인 것이다. 사람이 서로 다를 수 있다. 주장이나 이해는 다양할 수 있다. 복음전하기 위해서 우리가 다 한 형제니까 힘들 합치자는 것이 복음주의자들을 휩쓸고 있는 정신이다. 정신자체는 훌륭한 정신이다. 순복음교회 - 하나님의 성회 사람들과도 연대를 한다. 근본주의자들 교회에서는 오순절 주의자들이 다 쫓겨난다. 오순절 교단이 생긴 것도 근본주의 교회에서 성령 체험이 있는 사람들을 이런 저런 방법으로 다 쫓아 내어버려서 갈데가 없어서 자기들끼리 모인 것이 오늘의 오순절 교파를 만들게 된 것이다. 하나님의 성회에서 대거 복음주의에 흡수되었고, 이로 인해서 복음주의가 범세계적인 운동으로 확장되는 동인이 되었다.


무엇보다도 전도해야 한다고 생각하는, 전도를 먼저하고 다른 것을 해야한다고 생각하는, 이런 정신이 복음주의 정신이다. 복음주의가 가진 전도에 대한 뜨거운 정신, 협력적으로 전도하려는 정신은 긍정적인 것이다. 그러나, 협력도 어느정도 한계는 있는데, 복음주의자들이 자유주의자들과는 협력이 불가하다. 어느정도 보수적인 성향이 있는 사람들끼리 협력하는 정도이다.

제5강
II. 칼바르트의 생애와 주요사건들
1886.5.10 스위스 바젤 출생, 독일 사람이 아니고 스위스 사람. 아버지는 프리츠 바르트, 베른 대학의 교회사와 신약학을 가르친 신학교교수였다.
1904-11 신학공부를 하고, 제네바에서 전도사 생활을 하던 시절. 스위스 베른에서 공부를 시작했는데 이내 베를린으로 가서 공부를 하게되었다. 당시 베를린에 유명한 학자가 많았다. 칼 홀, 궁켈, 하르낙 밑에서 직접 공부. 베를린에서 한참 공부를 하다가 튀빙겐에서 계속 공부. 아버지가 베를린이 너무 자유스러운 학풍을 가지고 있으므로, 보수적인 곳에서 공부하라. 튀빙겐에는 유명한 신약학자 슐라트 A. Schlatter 가 있었다. 그러나, 한 학기를 공부하고 너무 답답해서 견디지 못하여, 아버지의 권유에도 불구하고 튀빙겐을 떠나 마북 Marburg 으로 간다. 그곳에서는 자유주의학자로 유명한 헤르만 밑에서 공부하면서 그의 자유주의 신학에 심취하게되고, 굉장히 감격하게된다. 새로운 세계가 동터오르는 것 같은 놀라움 감격을 느꼈다고 한다. 헤르만 아래서 신학공부를 마친다. 철저한 자유주의정신을 가지고 졸업한다.
독일에서는 대개 여러 학교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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