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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철원-부활체의 영원 바른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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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서철원

2009.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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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부활체의 영원 바른이해

 

우리는 언제 부활이 이루어지느냐? 그리스도께서 지상에 재림하실 때에 모든 자들에게 이루어질 것이다. 그리고 종말이 오기 때문에 죽은 자가 그냥 살아나는 것이 아니고 심판주께서 혹은 구속주께서 신적인 권능으로 사람들을 부활케 할 것이다.

 

우리가 부활한다는 것은 우리가 스스로 때가 되면 자동적으로 자연스럽게 부활이 이를 것처럼 생각하나 그러나 구속주께서 심판주로 오시면서 그의 신적인 권세로 다 부활에 이르도록 하실 것이다.  신자 뿐만 아니라 모든 불신자들, 아담부터 재림 직전까지 죽은 모든 아담의 후손들이 부활에 이를 것이다. 한 사람도 예외 없이 다 부활에 이르고 그리고 그래서 종말세계가 이루어지도록 될 것이다.

 

몸과 인격의 동일성으로 부활에 이를 것이다. 그러니까 없던 사람들이 부활하는 것이 아니고 죽었던 자들이 부활할 것이기 때문에 이 역사 내에 살았던 사람들이 부활에 이르므로 보통 우리가 다 알 수 있는 사람들을 만나게 되는 것이다. 그런데 원칙적으로는 모든 인류가 부활에 이르지만 성경에서는 신자들의 부활을 주로 이야기하고 있다.

 

그러니까 합당하게 부활에 이를 자들은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원받고 그리고 그의 영에 의해서 그리스도에 연합된 자들이 부활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영광에로의 부활이기 때문에 신자들에게 합당하게 부활을 말할 수 있다.


그러면 신자들이 영광에로의 부활이기 때문에 합당하게 부활에 이르는데 우리가 부활을 보증받을 수 있는 길이 무엇인가? 첫째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새 인류의 머리로, 혹은 교회의 머리로서 부활하셨기 때문에 그의 부활이 우리의 부활의 확실한 증표고 보증이라고 할 수 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부활했을 때 그 부활이 바로 우리들의 부활의 보증이라고 할 것이다. 그래서 추수하는 농군의 눈에 이미 첫 이삭을 베는 것이 나머지 자기의 모든 농토에서 익은 곡식을 추수해 들이는 것이 당연한 귀결인 것처럼 그가 첫 이삭을 베므로 모든 추수가 다 완전해지는 것이 의심할 여지가 없는 것처럼 부활의 보증, 예수 그리스도께서 첫열매로 부활하셨기 때문에 모든 인류가 다 부활에 이르되 특별히 그를 머리로 하고 그의 몸으로 결합된 모든 그리스도인들이 부활에 이를 것이 보증되었다.

 

세상적으로는 우리의 죽음 이후에 부활에 확실하게 이를 것이라고 하는 것을 보장해 주는 것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성령을 우리 마음에 보내심으로 그 성령이 부활자의 영이므로 그 부활자의 영이 우리 안에 와 계신 한에는 우리가 분명하고 확실하게 부활에 이를 것임을 보증해 주셨다. 

 

우리 안에 성령이 계신 한은 우리가 부활에 이를 것이라고 하는 것이 분명하고 확실한 진리이다. 뿐만 아니라 성경 말씀이 부활의 사실을 증명해 주지만 그러나 그것을 믿게 해주는 것은 바로 우리 안에 계신 성령께서 늘 우리 영에 증거하시고 또 부활의 표로, 부활의 시작으로 영혼을 새롭게 하셨다.

 

이것이 마지막 부활의 시작이다. 그러니까 궁극적으로 우리의 영과 육이 다 부활에 이를 터인데 그 부활을 완전하게 하실 표로 우리 영혼을 중생시키셨다. 이것이 첫째번 부활이라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우리를 영광에의 상급으로 영생에 이르도록 부활시키실 것이다.


부활체 몸과 인격의 동일성으로 우리가 부활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죽으셨던 그 몸으로 다시 살아나셨고 그리고 그 안에 계신 영을 우리 안에 보내심으로 우리가 몸이 부활할 것을 말했다.


그러면 몸의 동일이라고 할 때에 지금 우리가 몸을 구성하고 있는 동일한 원소들로 구성하고 있는 것으로 되느냐? 그렇게는 말할 수는 없다.  보통 7년이면 우리 몸의 모든 원소들이 세포까지 완전히 바뀌기 때문에 우리가 지금 현재 우리 몸을 구성하고 있는 동일한 지금 그 분자들, 그 원소들이 아니라도 우리의 몸이 동일하게 이루어질 것이 확실하다. 우리의 몸이 부활에 이르지 않으면 그것은 영혼의 부활이기 때문에 그것은 완전한 부활이라고 할 수가 없다.


모든 종교들 속에 기독교만이 육체의 부활을 확답하고 바르게 가르치고 가장 분명한 진리로 가르치고 있다. 모든 종교들이 다 내세를 말해도 그들에게는 몸으 부활이 없다. 제일 먼저 불교적인 영향이 어느정도 있어서 희랍 사람들에게 윤회사상과 신들의 세계로 가는 이야기가 있다.

 

그것은 이 몸에서의 탈출이다. 그래서 희랍 사람들에게는 구원이 확실하지 않다. 특히  지성을 강조하는 희랍인들에게 몸은 바로 합리적인 영혼에게 있어서 모든 것을 지양하는 무덤이다. 탈출하는 것, 해탈, 육체를 벗어나는 것, 해탈 그것이 모든 생의 과정의 목표다.

 

 몸에서 벗어나는 것, 그것이 모든 이교가 추구하는 것이고 그래 영혼의 존재는 인정하는것이다. 왜 영혼이 존재할 수 있느냐? 그게 단순하기 때문이다. 단순하기 때문에 분해되지 않는다. 플라톤의 「대화편」에 보면 맨 마지막 부분에 소크라테스가 독배를 들기 직전에 제자들이 찾아와서 탈출도 권고하고 그러면서 정말 선생님, 죽으면 영혼이 영구히 산다는 것을 보장할 수 있느냐 하는 것에 대해서 제자들을 설득하고 위로하는데, 영혼이 영구히 살수 있는 기본 요건 중의 하나가 영혼은 단순하기 때문에 해체되고 분해되지 않아서 영구히 존재할 수 있다고 주장을 합니다.

 

그리고 합리적인 영혼은 그 이데아에 동참하기 때문이다. 지식을 가짐으로 이데아가 영원하기 때문에 그 이데아에 동참하는 영혼도 영원하다. 세상의 모든 사물들은 다 가변적이고 다 소산되지만 이데아는 영원하고 소산되지 않는다. 그래 영구히 존재한다.

 

그리고 힌두교에서는 세계혼인 브라만에게 개별 영혼이 다 흡수되어서 원상으로 되돌아간다. 그리고 불교는 열반으로 되돌아간다. 그게 입적이다. 입적은 무로 돌아가는 것. 사실 본래 불교는 영혼이 있는 것이 아니고 의식의 흐름만이 있는데 이게 의식의 흐름이 해탈하면 이게 더 이상 윤회를 하지 않고 멈춰서고소산되는 것이다.

 

그것이 바로 열반의 상태로 들어간 것이다. 그것이 이제 한국에서는 원효대사가 토착 민속 종교하고 합쳐가지고 저 극락 세계에 가서 영구히 사는 걸로 말했지만 본래 불교는 그런 것이 없다.


그러나 우리 몸이 구성하고 있는 동일한 세포와 그 세포를 구성하고 있는 철, 지금 여기에 들어있는 A라고 하는 철, B라고 하는 여러가지 인, 화학적인 요소들, 철분들, 이런  동일한 몸이 되도록 하나님께서 부활시키실 것이다.


그 다음 인격의 동일성으로 우리가 부활을 한다.  이것은 영과 육이 합치는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우리의 육체와 합칠 것이다. 그러면 육체가 주님이 오실 때는 다 소상되어 버릴 터인데 어떻게 다시 육체가 영혼에 합칠 수 있느냐? 이런 문제가 제기될 수 있다. 이것은 창조주 권능으로 재개되어질 수 있는 거니까 신적인 권능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니까 우리가 더 말할 것은 없다.

 

그러기 때문에 이런 것들은 설명을 하기 위한 인간적인 사고에 의한 것이고 창조주께서 우리의 동일한 몸에로, 동일한 인격에로 부활되게 하실 것이다. 그래서 우리가 다 그때에 서로 다시 부활자리에 만났을 때에 다 쉽게 약속하고 이야기할 수 있을 것이고 또 우리의 믿음의 조상들도 소개없이 그렇게 만날 수 있을 것이다.

 

그런데 육체는 영체가 된다. 영체가 되어서 더 이상 죽음에 종속되지 아니할 영체, 그리스도의 부활체와 같은 몸으로 변화될 것이다. 로마서 8:28에서 말한 대로  종속되지 아니할 영체로 우리를 부활시키실 것이다.


뿐만 아니라 우리의 영혼도 하늘의 영광 앞에 살 수 있는 아주 고등한 수준으로 우리의 영혼도 변화될 것이다. 지금 현재 수준보다도 월등하게 높아질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분명히 해야 할 것은 두번째 항목으로 정했던 동일한 몸과 동일한 인격이 되게 하므로 처음 창조의 회복이 되게 하는 것이지 전혀 새로운 창조가 아니다.

 

그러면 부활한 자들은 그리스도의 몸으로 영화로운 몸과 영혼의 수준에까지 도달할 것이다. 그래서 그때는 자유롭게 운동을 하고 자유롭게 운동할 수 있어서 공간의 제약을 대폭 벗어날 수 있는 그와 같은 몸이 될 것이다.

오리게네스가 불행하게 3세기 교부로서 이단으로 정죄되긴 했지만 종말 상태에 대해서  자신의 독창적인 것은 아니고 플라톤에게서 나온 것이지만 그때는 별들의 세계를 자유로이 운행하며 별들의 존재와 신비를 탐구하게 될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지금의 과학적인 기계로 벗어날 수 있는 수준이 달나라까지 갔다. 인간이 타고서 갈 수 있는 것은 달나라까지 였고 무인 우주선, 인공위성 같은 것을 띄워서 지금 목성, 해왕성, 그런 곳까지 지금 탐색을 하고 있지만 그러나 사람의 몸이 그런데 까지 나가는 것은 제한되어 있다.

 

땅에 붙어만 살도록, 우리는 땅에 부착해서 사는 존재들이다. 우리가 항상 땅에 부착되어 살도록 해 놓으셨기 때문에! 그런데 그때는 공간의 제약을 대폭 건너뛰는 형편이 될 것이다. 우리의 영혼이 그리스도의 아주 영화로운 변화된 영화까지 갈 것이므로 우리의 지식이 말할 수 없이 넓어져서 그때는 거의 직관적인 형태로 모든 사물들의 비밀들을 본질들을 다 파악하고 깨달을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을 대하여 갖는 지식에 지금과는 아주 상상할 수 없을 만큼 높은 수준으로 상승되어서 우리의 지식이 완성에 이를 뿐만 아니라 우리가 갖는 하나님의 지식이 완성에 도달할 것이다.


부활의 목적, 왜 부활할 것이냐? 첫째로, 우리가 분명히 해야될 것은 구원을 완성하시고 창조를 회복하시기 위하여 부활을 이루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셨기 때문에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약속하셨다. 영생을! 우리에게, 예수 믿는 자들에게 다 영생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이 영생을 주신, 구원을 완성하시고 그리고 창조를 완성하시는 것이다.

 

완성하기 위하여 부활에 이르게 하신다. 하나님께서 영원한 나라를 이루시리라고 우리 백성들을 영생할 수 있는 존재들로 부활에 이르게 하신다. 그러니까 이제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통치는 하나님이 영원하시니까 영원하지만 그러나 시간과 함께 통치를 받는 백성들은 다 소산되었는데 하나님께서 영원한 신령한 나라를 이루시려고 하시기 때문에 우리를 부활에 이르게 하시는 것이다.


 영화로운 부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자들, 하나님의 택한 백성들, 이들이 진짜 구원에 이른다고 합당하게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부활을 약속하셨기 때문에 그들은 상급에 이르고 영생에 이른다.  그런 의미로 그리스도인들이, 신자들이, 의인들의 부활을 합당한 부활이라 할 수 있다.


그 다음 불신자들의 부활, 악인들의 부활은 그들도 영체로 부활하고 영육이 변화되지만 그러나 형벌에 이르러 영벌로, 그리고 저주로 부활한 것이다. 때문에 그들의 부활은 부끄러운 부활이다.


부활의 시기에 대해서는 시간적인 것은 아니겠지만 논리적으로 말한다면 주님 재림 하실 때에 죽은 성도들이 먼저 부활에 이르고 그들이 주님을 맞으로 가기 때문에 불신자들의 부활은 그 다음에 따른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 사이에 천년의 간격에 들어간다는 의미로 아니다.


부활이 이루어졌으면 심판이 그 다음 차례다.  이런 영광스로운 부활을 우리가 바라고 있다.  단지 세대론자들만 주님 재림만 강조한다. 이런 종말의 세계가 도입되기 때문에 그렇다기 보다는 또 한번 재미있는 세상이 천년동안 재개되기 때문에 그런것이다.

 

지상적인 삶이 또한번 천년동안 재개될 수 있는 그런 상황이니까 열심히 주님 재림을 강조는 해도 실질적으로 그들도 주님의 재림과 부활을 기다리고 있는지는 모르겠다. 초대 성도들은 사도들과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내일 아침에는 반드시 오시리라. 그것이 가상적으로 그렇게 믿고 추상적으로 기다린 것이 아니고 그것이 현실적으로 그럴 것으로 기다렸다는 것이다.


자부활에 이르면 심판이 이루어지는데  신천신지가 언제 되느냐를 설명할 때에 헤르만 바빙크는 심판이 끝나고서 창조가 새롭게 될 것이라 설명을 하고 전통적으로 다 그렇게 이해를 하고 있다.
왜 심판을 하나님 앞에 해야 하느냐? 선과 악을 행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심판을 받아야 하느냐? 그러면 부활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심판을 받아야 하느냐 아니면 종말 세계가 도입되기 때문에 심판을 해야 하느냐? 그 심판의 근거는  하나님께서 처음 인류와 언약을 맺으시고 하나님을 섬기며 살게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전부 다 세상에 보낼 때에 그냥 밥 먹고 살다가 죽으라고 세상에 내보내신 것이 아니고, 하나님을 섬기게 하고 그 사명을 감당하도록 하는 언약을 체결하셨다. 하나님 앞에서 역사가 마쳐지면 바로 이 심판으로 역사가 마쳐지는 것인데 하나님 앞에 자기가 살았던 생의 보고서를 분명히 해야 할 것이다.

 

언약체결로 주어진 하나님 앞에서의 책임을 다해야 하는 것  때문에 그 보고서를 하나님 앞에 내는 것이 바르다고 할 것이다. 바로 이 심판할 수 있는 근거는 하나님이 인간하고  맺으시고 그의 생을 어떻게 살 것을 분명히 하셨기 때문에 그 보고를 하나님 앞에서 해야한다. 모든 인류가 갖는 근본 확신 중에 하나는 역사가 마쳐지면 하나님 앞에서, 창조주 앞에서 심판의 보고서를 내야 할 것이다. 그 깊은 확신 중에 하나라고 본다.

 

그것은 언약체결 때문에 그렇다. 그것이 비록 아담 한 사람과 하와와 맺은 언약이지만 그것이 인류 공통의 것이기 때문에 모든 인류의 가슴 속에 다 그와 같은 확신이 있다고 해야 할 것이다. 언약을 맺으셨기 때문에  우리가 다 하나님 앞에 우리 인생의 보고서를 내는 의미로는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 다 선다. 신자, 불신자 할 것 없이 다 우리 인생의 보고서를 내는 것이다. 


하나님이 이 세상을 인륜의 세계로서 다스리고 지배하시기 때문에 지금도 심판을 집행하신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현 역사상에서는 어거스틴이 신국론에서 말했듯이 심판을 다 집행하시지 않으신다. 왜 다 집행하시기 않느냐? 다 여기서 집행하면 심판날에 집행할 것이 없다는 것이다.    


심판주는 예수 그리스도, 즉 구속의 중보자가, 그가 세상을 구원해 내는 일을 하셨다. 그 구원을 완결하시기 위하여 인류 역사를 심판하는 일을 하실 것이다. 그가 인자됨을 인하여 내게 심판의 권세가 주어졌다고 분명히 말씀하셨는데 그가 구속 중보자로서 속죄 사역을 성취하므로 역사를 본래 하나님께서 의도, 목표하신 대로 도달하게 하셨다. 그러니까 구속주가 심판의 권세를 갖는다.

 

결국 역사의 목표는 하나님의 나라다. 하나님께서 만유 안에 만유가 되시고 그의 백성들을 다스리시고 그 백성들 안에 와서 거하시는 것이 처음 창조의 목표였다. 그 일을 예수 그리스도께서 하셨다. 그러기 때문에 그 일을 완성하신 이가, 그 일을 이루신 이가 그 구원을 완성하신 이가 바로 하나님 나라를 이루게 하신 것이기 때문에 심판을 맡으셨다고 그렇게 합당하게 신학적으로 말할 수 있다.


그리고 이제 천사들이 그리스도의 심판을 일면에서 볼 것이다.  심판은 결국 구원의 완성으로, 역사의 종결로 봐야 맞을 것이다. 구원에 이르지 못하는 자들이 형벌을 받는다. 그러나 단지 형벌을 받는 뜻으로만 심판을 생각하면 바르지 못하고 심판은 형벌 받을 자와 축복 받을 자로 나누고 그리고 상급을 정하는 것이다.

 

이미 범죄자들은 형벌을 받기로 작정되어 있기 때문에 형벌에 이르는 것이 당연하고 이미 영광에 이를 자들이 영광을, 상급을 정해 받아서 부활에 이르고 또 형벌 받을 자들이 형벌에 이르게 하기 위하여 이미 등급을 다 정해서 부활한다고 해야 맞을 것이다.

 

그리고 심판은 신자와 불신자에게 이루어지는데 신자들은 이미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서 중생해서 의롭다고 하는 칭의를 받을 때에 이미 의롭다는 칭의를 받았으니까 이제 새롭게 칭의를 받는 것은 아니지만 그들에게 의를 공적으로 선언하므로 그 의에 합당한 영생이 주어지는 것이다. 그러니까 우리가 예수 믿을 때에 중생으로 칭의에 이른 것은 이미 종말에서 받을 칭의, 의롭다 함을 선서하던 것이었으므로 그것이 바로 최후의 칭의선언이 되는 것이요. 이를 종말론적 칭의라 그렇게 말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인하여 이 최후의 칭의가 선언되므로 영생이 선사된다.  의의 선언이 종말론적으로, 궁극적으로 이루어지므로 그때에 구원에 이르는 자들이 영생에 이르게 되는 것이다. 그러니까 이 전에 우리의 행위가 다 보고되고 그리고 우리의 죄악도 다 공표되지만 또 다 용서되고 그리고 의롭다고 하는 선언이 주어지므로 우리가 영생에 이를 것이다.

 

그리고 악을 행하는 자들은 최후에 악의 선언의 이루어지므로 그들이 그 악에 합당하게 벌을 받을것이다. 그러므로 악인들은 영원한 형벌에 들어가는 것이 맞다. 그 다음에 우리 그리스도인들 뿐만 아니라 영들도 천사들까지, 타락하지 않는 천사들까지  모든 영들도 다 심판을 받아서 그들의 악에 합당하게 형벌을 받을 것이다.

 

그 형벌이 영원할 것이다고 하는 것이 전통적인 성경과 신학의 가르침이다.  거기에 대해서 정말로 우리의 인생에 있어서 길은 짧고 죄악도 미미한데 우리가 그 죄악 때문에 인류의 일부가 영원한 형벌에 이를 것이냐? 그런 것에 대해서 상당히 많이 반감이 있어서 신학 역사상에 많은 반론이 제기되었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칼빈도 말하기를 우리 개인의 운명에 대해서 과거에만 집착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훼손하는 것에 대해서는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 결코 바르지 못하다 해서 하나님의 영광과 엄위를 훼손함이 영원한 형벌에 타당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근세에 와서는 하나님께서 모든 인류를, 바르트가 만인구원을 가르친 이후에 바르트의 후계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이 만인을 구원하고자 작정하셨으니까 지옥에 가있는 자들도 다 구원에 이르고 그래서 그들도 지옥에서 고통을 받아 그들의 죄에 합당하게 형벌을 받았으므로 종말에 가서는 그 지옥이 본래의 의무를 다했으므로 소실된다고 그렇게 주장을 한다.

 

그래 이 주장을 20세기에 와서 처음으로 주장한 것이 아니고 오리게네스가 벌써 그렇게 주장했다. 3세기에 하나님께서 모든 만유를 회복하실 때에 그때 사탄까지도 정화되어서 본래 천사의 위치로 되돌아간다. 그러니까 지옥이 있을 필요가 없는 거다. 그러면 이것이 인류역사가 일정하게 드라마로 끝나고 만다. 그래서 맨 마지막에 어떻게 살았든지 다 원상회복 되니까 죄짓고 살아도 무방한 거다.하나님의 영광과 엄위를 훼방하고 그의 사랑을 배척하고 악을 행했으므로 영벌에 이른다고 해야 합당하다.


다음에 부활의 시기와 기간에 있어서 보통 전 인류와 전 역사가 심판받기 때문에 세상의 종말에 함께, 부활 직후에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런에 개인만 심판 받는 것이 아니라 종족별로도 심판을 받는다. 요계시록에 보면 그 왕들이, 그 민족들이 그 영화를 가지고 그 성으로 들어온다고 한 것을 보면 민족적인 단위로 역사에서 행한 모든 공적들이 함께 심판을 받을 것이다. 개인만의 심판이 아니라 종족들로도 심판을 받고 그리고 구분된 두 인류,  한쪽에는 영원한 의가, 한쪽에는 영원한 악이 선언되어서 심판에 이르고 영생과 영벌에 이를 것이다.


그런데 이 심판의 시기가 천년기론자, 세대론자들의 가르침에 의하면 상당히 길 것으로 이야기 한다. 심판이 끝나면, 심판은 재림 직후이고 심판이 끝나면 바로 신천신지가 도입될 것이기 때문에 그심판을 위해서 오래도록 시일을 경과한다는 것은 합당하지 않고 부활할 때에 다 그들의 영생과 영벌에로 다 정해져서 부활하기 때문에 장구한 심판이 이루어지지 않을 것이다.


심판의 표준은 하나님의 계시된 뜻, 특히 복음이다. 보통 우리는 아직도 세대론적인 생각이 편만해 있어서 이방인들에게는 양심의 법으로, 처음 인류에게 있어서는 도덕법으로, 그리고 유대인들에게는 율법으로, 또 복음선포 이후의 사람들에게는 복음으로 이렇게 표준한다고 하는데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도가 모든 사람들의 심판받을 표시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그 이전의 사람들도 마찬가지고 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도로 심판받을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디모데전서 3:16에  아주 중요한 바울 이전의 찬양송이다.

 

여기 보면 그리스도의 선재가 전제되어 있고,  16절, 경건의 비밀이 크다고 고백되어 있다. 그는 육체 안에 나타나시고, ‘육체 안에’가 이미 그리스도의 선재를 전제하고 있다. 영으로 의롭다고 하시고, 영들에게 보이시고,  옥에 갇혀 있는 악령들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구원이 선포된다.

 

그들에게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부활이 알려졌다. 이미 옥에 갇혀 있는 영혼에게 까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선포되고 이 구속 사건이 선포되어서 알려졌기 때문에 세상에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이 어느 일부에만 국한되지 않고 모든 인류에게 다, 모든 피조물들에게 다 알려졌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에 의해서 심판이 이루어질 것이다.


그 다음 최후의 상태, 심판까지 끝났으면 그 다음 어찌 되느냐?  의인들은 영생에로 부활했고 심판받았으며, 영생에 이르기 위해서 의롭다고 선언되었고 악인들은 영벌에 이르기 위하여 부활에 이르고 그리고 악에 의해서 악한 자들로 선포되었다. 그들이 하나님의 법을 어겼기 대문에 악한 자들로 선포되고, 악은 하나님 앞에 살 수 있는 권리를 박탈당하는 것이다. 낙원에서 선악과로 하나님께서 인류와 언약을 맺으시고 이 인류로 하여금 이 선악과를 먹지못하게 하셨다.

 

그래서 통상 우리는 이 선악과 과일을 먹음으로 먹음 자체로 선과 악을 아는 것으로 생각하고 그리고 이 선악과에 선악을 알게하는 그런 지식의 요소가 있는 걸로 알지만  선은 그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고 하나님의 말씀에 머물러 있는 것이 선이고, 그 안에 머물러 있을 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법으로 알고 전적으로 순종하고 있을 때에 그 선이어서 살 수 있다. 그것이 바로 의를 이루는 것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말씀의 법을 넘어서서, 하나님의 말씀을 넘어뜨림이 악이어서 생존권을 박탈당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거부하는것이  벌써 이미 낙원에서 영생과 영벌이 결정된 것이다.


악인들은 영벌에로 심판받았기 때문에 그들은 지옥에 가는 것이 합당하다. 그곳은 분명히 불로, 불못으로 또 불구덩이로 그렇게 표현했다. 분명히 장소적인 용어들로 분명하고 확실하게 지목을 했다. 그들의 형벌의 장소는 지옥이다. 그러면 그 지옥도 영의 세계이기 때문에 지금 그것이 어디 있느냐? 그렇게 말할 수 없다. 지금 천국이 하나님이 계신 곳이 어디냐? 지금 영들이 가 있는 곳이 어디냐고 확증지을 수 없는 것처럼 지금 지옥이 어디 있느냐고 확실하게 말할 수는 없다. 


지금 지구상에 있느냐, 영의 세계니까 확실하게 어디라고 지목할 수 없지만 하나님께서 그 악령들로 하여금 영원한 고난을 받도록 작정하셨기 때문에 그와 같은 고난의 처소가 있을 것이다. 어거스틴의 신국론을 보면 거기에 지옥을 많이 설명하면서 우리가 정말 불 속에 들어가서도 벌을 받고 영구히 존재할 수 있느냐 하는 예로 불에 사는 벌레를, 어거스틴 당시에 불에 사는 벌레가 있었던 것 같다.

 

 거기는 구더기도 죽지 않고 하는 주님의 말씀대로, 그 지역이 불에 의해서 고난 받는 곳이다. 그러니까 지옥에서 불로 고난받는 것은 의식이 다 있다.  동일한 인격에로, 그리고 영혼으로 이 부활에 이르렀기 때문에 의식을 분명히 다 갖고 있다. 그런데 불에 사는 벌레들이 있다. 그래 불이면 다 타버려야 할텐데 타질않고 사는 벌레들이 있다는 예를 들어서 설명을 하는것은 영체들이 되어 있으니까 불에 타지 않고 고통은 영구히 있을 것이다.

 

이 악인들이 이렇게 지옥에 가서 영원히 벌을 받는다면 우리가 괴로와하는 마음을 가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의 부모들 중에 안믿고 죽으신 분들도 있고, 우리의 할아버지, 할머니, 우리의 친척들 중에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그들이 있는데 더구나 한번도 복음을 듣지도 못하고 죽은 그들이 영원한 형벌의 지옥에서 영원한 형벌을 받도록 하는 것이 합당하냐?

 

 그때는 물론 육신적으로는 부모들을 형제들을 상실했기 때문에 그 상실감을 느낄 것으로 생각하지만 그때는 그 상실감은 완전히 사라진다. 그리고 그때는 그 혈육, 본래 부정모육으로 이어진 이 혈육이 다 끝나게 되고 예수 그리스도에 의한 피에 의해서 연결된 사람들로형제 자매들이 되었기 때문에 그 이상의 부모들로 연결되는, 혈육으로 연결되는 것은 다 끝나게 된다. 그리고 그 상실감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형제 자매를 이룬 그것으로 보충받음으로 상실감이 완전히 잊어지게 될 것이다.

 

그러나 우리가 다 기억을 갖고 있고 저 세계를 다 기억하는것도 더 이상  필요 할 수 없도록 될 것이다. 왜냐하면 이제는 완전히 그런 세계에 대한 연관을 가질 수 있는 것이 끊어져 버린다. 부모라고 하는 그런 혈육에 대한 연관이 완전히 끝나서 거기서 상실한 것을 회상하고 슬퍼하는 것이 전혀 없어지는 것이다.

 

지금은 우리가 육으로 완전히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그러하지만 부활되어 가지고는 이제 피에 의한 연결이 완전히 끝난다. 영체가 되고 영화로운 영혼으로 변화되었기 때문에 이 핏줄로 연결되는, 육체로 연결되는 이것이 완전히 끝나고 예수 그리스도의 피에 의해서 구속된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피로 한 인류를 이룬 사람들이 거기서 다 형제 자매들로 만나는 것이다.

 
그 다음에 악인은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는다. 그러면 지옥이라는 말이 희랍어로 게헨나인데 지금 글자 그대로는 힌놈의 땅 거기는 아주 바알과 아세라 신들을 많이 섬길 때에 예루살렘 밑에  있는 계곡에다가 거기다가 단을 쌓고 자녀들을 불에 살라서 제사를 드렸다. 그런데 요시야 왕이 그것을 완전히 훼파한 후에는 거기다가  노폐물들,  예루살렘 시에서 나오는 노폐물들을 계속 태우는 불의 곳이다. 그것을 희랍어 형으로 고친 것이 게헨나  곧  지옥이다.

 

하나님의 말씀이 분명히 지옥을 말하고 영원한 형벌을 받으리라 했다. 하나님의 낯을 비추심이 전적으로 배제되고 하나님의 호의가 하나님의 은혜가 전적으로 철수된다. 지금은 악인들도 이 세상에 살면서 쾌락을 많이 누리고 범죄를 많이 해도 살 수 있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래도 아직 낯을 비추시고 은혜를 베푸시기 때문에 그렇다.

 

그런데 거기에는 하나님의 은혜의 낯을, 호의의 낯을 전적으로 거둔다. 하나님이 함께 하심, 하나님의 은혜를 베푸심이 전적으로 배제되니까 고통 뿐이다. 하나님의 면전으로부터 완전히 단절되고 배제되기 때문에 참 생명이 없고 기쁨이 없을 뿐만 아니라 적극적으로 고통과 번민과 그리고 탄식과 후회가 넘치게 될 것이다. 한탄과 저주가 계속되면서 분명히 의식을 가지고서 고통을 받으며 산다.

 

지옥에 간 자들은 그들도 다 등급에 의해서 형벌을 받을 터인데 그 은혜의 빛을, 하나님의 은혜를 거부하고 악을 행한 것에 배례해서 그들이 그와 같이 벌을 받을 것이다. 이 고통의 기간이 어느 순간만이 아니라 영구히 계속된다. 형벌의 기간이 얼마일 것인가? 그것이 영원한 형벌이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영생을 허락하셨기 때문에 그를 믿고 그를 사랑하는 자들, 그를 섬긴 자들에게 영생을 허락하시고 그를 배반하고 거부한 자들을 하나님이 벌 주시기로 작정하셨고 그의 낯을 철수하심이 완전하고 궁극적이기 때문에 형벌이 영원하다고 해야 맞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상 주시고 은혜를 베푸심이 영원하면 지옥에 간 자들이 벌을 받는 것이 영원하다고 할 것이다. 특별히 하나님의 영광과 엄위를 훼방한 것이 영원하고 절대적인 성격을 갖기 때문에 영원한 형벌을 받는다고 해야 맞다. 


 이와 같이 영원한 형벌에이르기 때문에 우리가 하나님의 복음의 도를 전하는 일을 열심히 해야 할 것이다. 아무리 예수 안 믿는 사람들도 인간은 죽을 때까지는 육체를 입기 때문에 가능성이 있다. 그것이 천사하고 인간하고 다른 점입니다. 아무리 극악한 악을 행했어도 아직도 육체를 입고 있는 한은 가능성이 있다. 
마지막까지 죽는 순간까지는 아직도 예수 믿을 수 있는 가능성이 많이 있다. 열심히 복음을 전해야 할 것이다.


그 다음 의는 하나님께서 창조를 완전히 새롭게 변화시켜서 새 인류가 살기에 합당한 거소로 만들 것이다. 완전한 새 창조인 것처럼 이미 있는 창조를 가지고 그 형태와 질을 완전히 변화시키므로 새로운 새 창조인 것처럼 완전한 새 인류가 살기에 합당한 거소로 만들 것이다. 그래서 성경에는 불로 정화한다고 했는데  이 창조 전체를 완전히 변형시켜서 그 재료를 가지고 새롭게 만드시되 새 인류의 거소, 영적인 인류가 살 수 있는 그와 같은 새로운 영광의 세계로 만드실 것이다.


그런데 우리의 영혼까지, 육체까지도 불로 정화해서 더 이상 우리 안에 악의 요소가 전혀 있지 않도록 하고 그리고 지옥에 있는 악령들과 사탄과 악력이 다시 새 창조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없도록 완전하게 악을 소제하시고 새롭게 만드실 것이다. 더 이상 우리 안에 악이 없어지므로 악을 행하고 싶어도 못하도록 하시는 것이다.

 

그러기 때문에 그때는 죄를 지을래야 지을 수 없는 상태가 된다. 더 이상 타락은 불가능한 우리의 존재로 완전히 변화된다. 우리의 육체와 영혼이 완전히 새롭게 될 뿐만 아니라 완전히 악이 소제되고 정화되어서 어떠한 형태로든지 악이 영향력을 미칠 수 없게 하므로 우리가 다시 타락할 수 있는 데서 벗어난다.

 

타락하려고 해도 타락할 수 없을 만큼 완전하게, 신천신지, 이 창조를 새롭게 함이지 이 창조의 일부를 없애 버리고 다른 곳에 새 인류가 사는 거소를 새롭게 만드는 것이 아니다. 이 창조를 완전히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래서 창조의 회복이고 완성이 되게 한다. 더 이상 창조가 변화되고 진보할 영역이 없는 완전한 상태로 도달한다.

 

이 창조의 회복, 그러나 처음 창조의 표준에 부착하여 그것을, 이 창조가 완전히 새롭게 되기 때문에 전혀 완전히 새롭게 지은 것 같아도 이것이 창조의 회복이고 완성이기 때문에 처음 창조의 표준에 처음 창조의 낙원에 부착한다. 처음 창조가 변형된 형태로 존속한다. 그런 것이지 전혀 새롭게 이것을 없애 버리고 이게 악의 처소니까 없애 버리고 딴 곳으로 옮아가는 것이 아니다. 이 창조 관념이 완전히 변화되되 옛 창조의 변화이고 완성이다.


이 지구와 태양계의  다른 우주도 다 변화될 것이다.그때에 우리의 몸도 변화해서 완전하게 잘 살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동물들도 영광의 세계에 동참할 것이다. 그때는 우리가 완전히 영화된 상태에 이르기 때문에 더 이상 변화와 변동이 없다.


그 다음 그때는 시간이 영원에 통합될 것이다. 그래서 시간의 흐름이 더 이상 계속되지 않는다. 우리는 이제까지 시간과 함께 살았고 시간을 빼놓고는 우리의 존재를 도무지 생각할 수 없기 때문에 하이네가 말한대로 시간이 바로 우리의 존재 방식이다. 이 시간이 없어져 버릴 때 우리가 어떨 것이냐? 의식이 있다는 것부터가 시간이 있다는 것인데 확실하게 말하기는 어려워도 영원에 시간이 통합될 것이다.


그리고 이 신천신지는 처음 인류의 시작이 낙원이었지만 요한계시록에 말하는 것을 보면 에덴 동산에서 도달할 목표의 점이 새 예루살렘 성이다. 그러니까 도시, 여기에는 인류의 역사가 다 무시되어 버리고 처음 낙원의 상태로 되돌아가는 회복이지만 인간이 이룩한 문화의 업적들이 편입되는 세계이다. 그러니까 불로 정화하셔서 새롭게 만드시는데 인류의 업적이 그 나라에 소실되지 않고 편입될 것이다.(פרופסור  שְׂצְליוּ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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