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철원-아브라함의 구속사 이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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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서철원

2009. 3. 23.

                                      아브라함의 구속사이해

 

 

 

초대 그리스도인들은  모든 삶이 종말, 주님의 재림으로 부터 모든 것을 계획하고 생각을 했다. 그래서 주님의 재림이 자기들의 지상의 생존기간 동안에 이루어질 걸로 믿고 또 그들이 매일 매일 삶을 살 때에 주님이 오셨을 때에 그 앞에 나타나는데 아무런 부족함이 없도록 그렇게 준비하는 거룩한 생을 살았다.

 

 

 

 그리고 하루를 마치고 저녁에 잠을 자면 내일 아침에는 틀림없이 주님이 오시겠지 하는 그와 같은 막연한 기대와 소망이 가장 구체적이고 현실적인 기대와 소망으로 잠자리에 들었다. “오늘 저녁 자고나면 분명히 내일 주님이 오실 것이다” 그와 같은 확신 속에 살았기 때문에 그들의 삶이 그리스도인들로서 거룩한 삶을 살고 뿐만 아니라 그리스도의 복음이 전파되어서 그리스도의 교회가 세워지고 그리스도인들이 있는 곳에는 다 사회가 변화되고 또 새로워지는 역사를 이룰 수 있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현실적인 정말로 그냥 생각으로만 아니고 자고만 일어나면 주님이 꼭 오실 것으로 믿는 그와 같은 확신 속에 살므로 죄악을 버리고 사회를 개선하며 언제든지 주님 앞에 점도 없이 흠도 없이 설 수 있는 그와 같은 마음가짐과 자세로 살았고 그리고 주님을 맞기에 참 아무런 부족함이 없이 맞을 수 있도록 최선을 다했다.

 

그런데 그동안 주님의 재림을 자기가 그렇게 열심히 기다려 왔어도 주님의 재림이 초대교회의 신약의 그리스도인들이 생존해 있는 동안 이루어지지 아니했고 지금 이천 년이 다 되어가도 주님의 재림이 오지 않고 있다.

 

 

 

주님의 재림은 그러나 언제든지 올 수 있을 것이고 또 언제든지 종말이 가능한 때에 우리가 살 수 있다고 할 수 있다. 그것은 바울에 의하면 하나님께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세상 구속을 다 이루시므로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종말의 새 생명을 불어넣어 주셨다. 우리가 종말에 하나님 앞에서 받을 영원한 생명을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이미 받게 됐고 그리고 성령을 받아 가지므로 그 생명이 우리의 확실한 소유이고 우리의 것임을 분명히 확인시켜 주었다.

 

 

 

*지금 우리가 받은 생명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이후에 받은 생명은 종말에서 하나님 앞에서 받을 생명인데 우리가 지금 받아 가지고 있기 때문에 그 종말의 생명이 현 세계에 들어와 있고 하나님의 통치가 현 세계에 들어와 있으므로 실질적으로 종말의 세계가 도입되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우리가 받아 가지고 있는 생명이 종말에서 살 영원한 생명이고 그렇게 살 보증으로 우리가 종말에 가면 다 영으로 살터인데 그 영을 우리가 받아 가지고 있으므로 종말의 새 생명과 하나님의 통치가 현실세계에 이미 실제가 되었고 들어와 있기 때문에 지금 우리에게 종말이 가장 현실적이고 지금 우리가 종말세대에 산다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바울에 의하면 이미 죄로, 사망으로 지배되어 있는 세상에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이 도입되었고 하나님께서 다스리시기 시작하셨으므로 실제로 종말의 세계가 우리에게 도입된 것으로 우리에게 말했다. 그런데 지금 이 종말의 세대는 옛 세대가 다 지나가고 완전히 새로워진 새 세계가 아니라, 옛 세대가 계속되고 새 세계가 도입되었다. 옛 세대는 옛 세대로 있으면서 사망의 권세를 깨뜨리고 부활의 새 생명이 지배하는 종말의 세계가 도입되었기 때문에 지금 우리가 사는 세대는 옛 세대와 새 세대가 겹치는 교차시대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영역이 죄로 인해서 죄와 사망이 지배하는 세대가 지금까지 계속 되었다면, 종말의 세대에는 죄와 하나님의 저주가 다 벗어지고 사망이 완전히 제거되어서 하나님의 생명으로 충만케 되는 그런 세상인데 그런 세상이 이미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우리가 사는 이 옛세대에 도입되었다.

 

그런데 옛세대에 도입됐어도 엣세대를 다 대치하고 도입된 것이 아니라, 현 세대에 있는 대로 두고 하나님의 새 생명이 지배하는 새로운 종말의 세대가 도입이 되었다. 그런데 이 양 세대가 겹치는 교차시대에 우리가 지금 살고 있다. 이 교차시대에 우리가 살 뿐만 아니라 특히 여기에 제일 중요한 점은 죄와 사망이 지배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죄와 사망이 무너지는 그와 같은 세대에 우리가 살고 있다. 그 생명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의 생명이고 죄를 무너뜨림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권세로 이루어졌다.

 

 

 

이것들이 완전히 청산되고 없어질 때는 종말의 때여서 그때는 죄와 사망이 완전히 제거되고 하나님의 충만한 생명이 온 인류에게 넘쳐나고 하나님의 지배가 완전해져서 정말 하나님의 나라가 될터인데 그것이 지금 이 세대에 도입되었기 때문에 지금 이미 우리가 종말 세대에 살고 있다고 해야 맞다. 주님이 재림을 약속하고 가실 때에 자기들의 생존 당시에 주님이 다시 오실 걸로 기다린 초대교회 그리스도인들이나 2천년 후에 사는 우리들이나 주님의 종말이 곧 있을 것으로 기대하는 것은 전적으로 이 도식에 의해 합당하고 바른 이해라고 해야 맞다.  언제든지 종말은 지금 우리 세대에 들어와 있기 때문에 언제든지 주님의 재림은 사건으로 그냥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면 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로 성령을 부어 주심으로 그것이 종말시대를 도입하게 되었느냐? 그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속경륜에서 살펴봄으로 우리가 조금 더 쉽게 이해할 수 있다.  처음 하나님께서 모든 세상을 지으시고 아담과 하와를 자기 형상으로 만드시므로, 하나님께서 그를 통하여 그의 후손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자기의 나라를 이루심으로 그의 백성들이 하나님을 섬길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으로서 하나님의 법에 절대적으로 의지해서 사는 그와 같은 백성이 되게 하실려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시고 그리고 언약을 체결하셨다.

 

 

 

그래서 언약 체결로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계명을 생명과 사망의 법으로 알고 사는 그와 같은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며 그 섬김에서 또 그렇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섬김으로 영생을 선물로 받도록 하는 그와 같은 작정을 하나님께서 첫사람 아담과 언약을 맺으시므로 그와 같은 일을 진행하시고 경영하셨다.

 

 하나님께서 처음부터서 인류역사의 시작 부터서 창조를 이루시므로 가지신 경륜은 자기 나라를 이루실려고 하는 그와 같은 경륜이었다. 그런데 아담과 하와가 악한 자의 유혹에 빠져서 하나님을 섬기는 데서 떠나 하나님으로 섬기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삶에서 벗어나서 자기가 하나님의 백성으로 섬기는 자리에서 자기가 법을 정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계명을 죽고 사는 생명의 법으로 하는 자리에 자기가 선악을 결정해서 자기가 모든 것을 결정하는 그와 같은 반역을 행하게 되었다.

 


그러므로 하나님과의 처음에 했던 언약이 파괴되어서 하나님께서 그들의 하나님이 되시기 어렵고 또 언약을 맺은 백성들이 하나님의 백성으로 사는 것이 어렵게 되었다. 하나님의 말씀이 생명과 사망을 결정하는 법이므로 그 말씀대로 살면 생명이려니와 그 말씀을 어기면 사망이 되는데 그들이 하나님의 계명을 넘어섰기 때문에 그 처음 하나님의 계명에 하신 말씀대로 그들의 사망을 선고하셨다.  하나님의 말씀에 매여 있으면 선이어서 생명에 이르지만 하나님의 명령을 어그러뜨리면 그것이 하나님의 명령을 넘어갔기 때문에 악이 되어 사망에 이르는 길 외에 다른 길이 없음을 분명하게 하셨다.

 


그러니까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사는 길은 하나님의 명령을 하나님의 계명을 죽고 사는 절대적인 법으로 하고 쓰는데 있었다. 그런데 이 일을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섬기고 또 하나님의 계명에 의해서 하나님을 바로 섬기도록 하는 이 순종하는 일을 자발적으로 하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언약을 맺으시므로 자원적으로 순종을 하게 하셨다. 그런데 이 약정을 어기고 하나님의 계명을 생명과 사망의 법으로 하는 데서 자기가 선악을 결정하는 데로 나아가고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게 되었다.

 

 

 

하나님께서 단지 그냥 인간에게만 언약을 맺으시므로 책임 사항을 지우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도 이렇게 일방적으로 언약을 체결하셔서 명령으로 하셨어도 일단 인간은 언약의 당사자로 삼으시고 자기도 인간에 대해서 언약의 당사자가 되셨기 때문에 그 언약의 약정들은 쌍방의 구속하는 그와 같은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인간을 얽어매시는 그 약정 속에 자기도 얽어 매셨다. 그렇게 해서 인간에게 요구된 그 순종과 하나님을 섬기는 일을 이루는 일이 하나님의 백성 되는 일이 하나님에게도 책임이 있게 하셨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처음 언약을 맺으실 때에 그 언약의 약정, 법적인 제약들 속에 자기도 묶으셨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이 언약이 다시 회복되고 성취되도록 역사 하셨다. 그런데 인간이 일단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고 하나님의 저주와 사망의 선언 아래 있게 되었기 때문에 인간으로는 도저히 이와 같은 언약을 회복하는 일이 불가능해졌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다시 이 언약을 회복하기 위해서 일을 시작하셨다. 그것은 처음 언약에서 약정하신 인간에게 부여한 요구 조건들을 하나님 자신이 이루시기로 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순종을 요구하시고 하나님의 법대로 살게 하셨는데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그 순종의 요구를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자리에 오셔서 인간을 위해서 이루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그래서 보통 첫언약을 처음 하나님께서 아담을 인류의 대표로 인류의 조상으로 해서 맺은 언약을 통상 행위언약이라고 하는데 하나님께서 이 행위언약을 다시 회복시키기로 하셨다. 그 회복이 하나님께서 인간이 해야 할 순종을 하나님 자신이 인간의 자리에 오셔서 인간을 위하여 인간으로서 순종의 조건들을 이루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그것이 은혜언약이라고 한다.  더 이상 인간이 순종의 요구를 이루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인간이 이루어야 할 순종의 요구를 이루시고 그 순종의 요구를 이루신 다음에 그 순종의 의의를 하나님께서 인간에게 선사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해서 사는 것 그것이 바로 하나님 앞에서 살 수 있는 권리를 허락 받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의 계명을 어기었기 때문에 하나님 앞에 설 수 있는 권리를 박탈 당하였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다시 인간에게 하나님의 백성으로 하나님을 다시 섬기며 하나님의 계명을 지키며 살도록 하는 일을 이루셔서 인간에게 선물 하셨기 때문에 그것이 바로 義이고 하나님 자신이 이루신 의지이다. 아담이 순종해서 이루어진 의가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이루신 義이기 때문에 바울이 로마서 1장에 바로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났다고 하는 것이 바로 그 점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인간의 자리에서 인간을 위하여 하나님의 계명을 순종하여 하나님 앞에서 살도록 하는 그 요구를 이루시기로 하셨다. 그렇게 하시므로 그 의를 인간에게 선사하시므로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회복하시고 그의 나라를 이루실려고 하는 그의 경륜을 성취하시므로 사탄의 궤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 처음 가지신 창조의 경륜을 이룰려고 하신 것이다.

 

바로 이 일을 이루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사람이 되어 오시기로 작정하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인간을 위하여 인간의 자리에서 순종을 이루셔야 했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사람을 입어 오셔야 만이 되게 되었다. 그런데 이 일은 죽음에 까지 이르는 순종을 요구하므로 결국 그리스도께서 죄 값으로 십자가에 죽게 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경륜을 이루시기 위하여 한 사람을 선택하시고 부르셨다. 그것이 창세기 12장에 나타나는 아브라함의 소명이다. 왜 아브라함의 소명이 하나님의 큰 구속 사건을 이루시는데 도구로, 봉사자로 선택 되었는지는 우리가 전혀 말할 수 없고 그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이고 하나님의 주권적인 역사라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이 구체적인 구원의 계획을  계시하신 이가 계시 받은 자가 아브라함이다. 창세기 3장의 타락 때도 아담과 하와에게 저들을 구속하실 구속주가 오실 것임을 약속하셨다. 그렇기 때문에 첫 조상 아담과 하와는 하나님의 이 약속이 자기들 당대에 실현될 것으로 소망과 기대 속에 살았다. 그 증거가  하와가 이제 첫아들 가인을 얻고서  하와가 외치기를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했다. 

 

 

그런데 이것이 요드( י)가 들었으니까

수동태인 것을 알 수 있다. 자기가 얻은 것이 아니라, 얻음을 받은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3장 15절에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이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그의 발꿈치를 물리라”고 하신 이 약속이 첫아들을 얻으므로 하와는 벌서 여기서 여호와의 약속이 성취되는 줄로 믿었다.

 

 그래서 자기에게서 낳은 첫아들이 자기를 구원할 구세주로 믿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고 말한 것이다. “가인”의 뜻도 “얻음”이란 뜻이다. 여호와로 말미암아 아들을 얻었다. 그 말은 결국 우리를 구원할 구속주를 얻었다는 뜻이다. 이 약속은 계속된 인류의 역사에서 늘 소망거리였고 그리고 자기들 당대에 이루어지는 줄 믿었다.

 

 

 


그 후에 가인이 타락하고 하나님 앞에 바로 서지 못했을 때 아벨이 났다. 아벨이 아담과 하와의 가르침을 좇아 하나님을 성실하게 정말 진실되이 섬길 때에 이 아벨을 통해서 하나님께서 구원의 역사를 펴실 줄을 아담과 하와는 기대했다. 그런데 가인이 아벨을 쳐죽이고 말았다. 그후 셋을 낳았다. 그래서 창세기의 저자가 아담이 자기 형상을 좇아 아들의 이름을 “셋”이라고 했다고 했다. 그러니까 자기의 형상을 좇아 난 아들이므로 셋이 자기들을 구원할 창세기 3장 15절에서 약속해준 구속주인줄 그들은 기대했다.

 


이 약속은 계속해서 진행되어서 므두셀라가 노아를 낳았을 때에도 이 약속이 자기들에게서 이루어지기를 믿었다.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들에게 여호와께서 이 아들로 우리를 안위하려 하심이라고 므두셀라가 말하므로 노아가 자기들을 구원할 하나님의 구세주로 그렇게 믿었다. 그 부모들의 그 신앙과 그 기대는 노아에게 일면 성취되어서 노아가 제 2의 인류의 조상이 되고 인류를 다시 계승하는 그와 같은 큰일을 하게 되었다.

 


그러나 갈수록 죄악이 심해지게 되었다. 창세기 6장을 보면 여기에 바벨탑을 쌓는 역사가 나타나는데 바벨탑의 역사로 인해서 우리의 타락이 아주 급격하게 진행되었다. 더 이상 하나님께서 이 보편 인류 특히 그 중에서 셋의 후손을 통해서 세상을 구원할려고 하는 경륜의 진행이 어렵게 되자 하나님께서 셋의 후손에게서 한 사람을 선택하고 부르셨다.

 

바로 그 이유가 아브라함을 부르기 전에 그가 아브라함의 셋의 족보 데라의 족보를 길게 말한 이유다. 성경의 저자가 아브라함을 부르기 전에 길게 아브라함의 족보를 지금 말하고 있다. 셋의 후손에게서 바로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실려고 하는 분명한 역사를 위하여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소명하기 전에 아브라함의 조상들의 족보를 길게 설명하고 있다.

 


창세기 11장에 데라의 역사를 일부 말하면서 아브라함을 부르신 역사를 말하고 12장에 이제 아브라함을 구체적으로 부르셔서 가나안으로 옮긴 역사가 나타난다. 그래서 보통 3장에서 11장 까지를 “인류의 보편 역사”라고 말한다. 거기에는 정말 보편역사인 것이 인류의 시작의 기원이 어떠했는지 어떻게 해서 인류 사회에 죄가 들어오고 이렇게 저주가 생기고 고통이 생기며 그리고 사망이 들어오고 자연이 이렇게 황폐하게 되고 저주를 받게 되고 전쟁이 있게 되며 그리고 이렇게 심판이 왜 있게 되었는지를 구체적으로 분명하게 말한 것이기 때문에 정말 3장 부터 11장 까지가 인류 역사를 가장 보편적으로 잘 다룬 역사라고 말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인류 역사 전체로써 자기의 구원경륜을 진행하셔서 이 백성들을 자기에게로 다시 되돌리신 일이 어렵게 될 때 하나님께서 한사람을 선택하시고 부르셔서 그에게 하나님의 구원의 경륜을 가장 구체적으로 제시하셨다. 하나님의 구속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가장 구체적으로 계시 받은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이다.

 

그 이전의 역사에 있어서 그 어떤 사람도 아브라함 만큼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구원경륜을 계시 받은 사람이 없다.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이 그러므로 인류 역사상 가장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아브라함에게서 부터 시작했다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어떤 경륜을 가지시고 세상을 구속하실려고 하는 경륜을 가지시고 진행하실 줄을 하나님께서 분명히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아브라함을 복의 조상이라고 하는 이유가 바로 거기에 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 구원의 경륜을 아브라함에게 알리시기 위하여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옮기신 후에 참 많은 신앙의 훈련을 거치게 하셨다. 그러니까 데라의 아들들 중에 나홀과 아브라함과 하란이 있는데 나홀은 그냥 하란에서 살았고 그리고 하란은 데라와 함께 아브라함과 함께 지금의 하란 지역으로 왔는데 하란은 일찌기 롯을 낳고 죽었지만 아브라함은 무자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가나안으로 옮기시면서 하신 약속이 “네 친척 본토와 네 아비집을 떠나 내가 지시할 땅으로 가라. 그리하면 내가 네게 복을 내려서 네 후손으로 바닷가의 모래처럼 그리고 하늘의 별처럼 많게하며 그리고 네가 갈 그 땅을 네 후손에게 영구한 소유로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그때 아브라함 나이가 가나안으로 들어갈 때 75세인데 옛날이니까 아직 건장할 때이지마는 그래도 75세가 되어도 아직 아들이 없었다. 그 이전의 족보들을 보면 한 30세이나 25,6세가 되면 벌써 다 결혼해서 자녀들을 가졌는데 아브라함은 75세가 되도록 자녀를 낳지 못했으니까 상당히 오래도록 자녀가 없이 살았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사는 동안 아브라함과 사라가 깨달은 것은 자기 아내 사라, 또 본인 자신도 자기가 불임인줄 분명히 깨달았다.

 

그러니까 이런 부부에게서 자녀가 나올 수 없는 것이 확실하고 믿어지지 않는 약속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이 가나안에 들어가서 10년을 살았을 때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약속하셨다. “네 몸에서 아들이 낳으리라” 그런데 아브라함과 사라가 분명히 알고 있는 사실은 사라가 불임이라.

 

그러니까 하나님의 약속이 와도 정상적인 법적인 부부인 자기들에게서 아들이 이루어 나올 수 없는 줄을 둘 다 알고 있는건데  하나님께서 처음부터서 이스마엘이 낳기 전에 “아니라. 사라에게서 나올 씨가 네 아들이라 하리라”고 사라를 통해서 아들을 낳게 해 주시겠다고 약속을 하셨다.

 

 

 

사라는 자기의 여종 하갈을 자기 남편에게 첩으로 주므로 아들을 낳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86세에 이스마엘을 하갈을 통해서 낳았다. 그리고 13년이 지난후 이제 이스마엘이 얼만큼 커서 이제 아브라함의 이름과 재산을 상속할 수 있을 만큼 되니까 하나님께서 또 간섭하셨다. “내가 네게 아들을 낳게 해 주겠다”  “그 아들 말고 사라를 통해서 나온 그 아들이 네 아들이라 하리라”

 

그러나 이제 나이가 99세가 되고 사라의 나이가 90세가 되었으니까 이제는 자기는 남자로서 모든 기력이 다 끝나고 정말 사라도 본래 불임인데다가 여자로서 할 수 있는 모든 생리적인 기능을 할 수 있는 것이 모두 끝이 났는데 아들을 낳아주리라 하니까 이게 보통 시험과 시련이 아니라. 아니 주 앞에서 이스마엘이나 살기를 원하나이다.

 

 

 

사라에게서 날 아들이 네 아들이라고 하신다. “내가 이러한 때에 사라에게서 날 네 아들과 네 씨와 언약을 맺으리라” 이렇게 하나님께서 약속하셨다. 그리고 99세가 되었을 때에 사라가 90세가 되었을 때에 아들을 낳는다.

 

 

 

그러니까 전적으로 인간의 가능성이 끝났을 때 하나님이 개입하셨다. 도저히 아들을 얻는 것이 인간으로서는 안될 때에 하나님은 개입하셔서 아들을 약속하신 것이다. 그러니까 이 아들은 하나님이 은혜로 주신 아들이지 자기들의 정상적인 육체의 힘으로 낳을 수 없는 아들이라는 것을 분명히 아는 것이다. 그런데 바로 이 아들의 약속에서 세상의 구속주를 함께 약속하시는 것이다. 그러므로 인간의 모든 가능성이 끝난 후에 하나님께서 아들을 약속하시고 그 아들에다가 세상 구속주를 함께 묶으셨다.

 

 

 

 이 아들의 약속을 받고서 아브라함과 사라가 깨달은 것은 자기들의 육체의 힘으로 낳은 아들이 아니고 우리가 아들과 딸을 낳는 방식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낳은 아들이기 때문에 이 아들은 자기들의 몸으로 부터 왔으니까 자기들의 아들이 분명하지만 또 이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왔기 때문에 자기들의 아들이 아니라 하나님의 아들인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을 구속하실 구속주가 인간의 방법으로 오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오는 것임을 아브라함으로 알게 하신 것이다. 그런데 아브라함에게 출생한 이 아들이 바로 자기들의 이름과 재산과 종들을 이어 받을 그와 같은 상속자 만이 아니라 세상을 구속하실 구속자를 낳게 할 아들임을 아브라함이 이삭의 약속에서 분명히 안 것이다.  이 아들은 세상 구속주를 출생하기 위해 은혜로 주신 아들이라. 그것이 이 아브라함이 이 하나님의 약속에서 깨달은 것이다. 그러니까 세상을 구원하는 역사가 인간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 역사임을 분명하게 하신 것이다.

 


하나님의 구속의 경륜이  아브라함이 이삭의 출생에서 자기들의 육체적인 생명을 계승할 그와 같은 계승자이고 그리고 자기들의 이름을 이어갈 그런 계승자일 뿐만 아니라 그가 본 그 아들의 출생에서 세상을 구속한 구속주의 출생을 본 것이다. 그래서 요한복음에, 그리스도께서 아브라함이 내 때를 바라보고 즐거워 하였노라고 했는데 그것이 언제 이루어졌냐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출생했을 때 그 출생을 보고 깨달았다.

 

그러니까 아브라함은 자기 아들 이삭의 출생에서 자기 아들로 뿐만 아니라 자기를 구원할 구속주의 출생을 넘어다 본 것이다. 그리고 그 출생 에서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이 이삭에게서 하늘의 별처럼 땅의 모래처럼 많은 자손을 허락하겠다고 하시고 그리고 아브라함에게 그 땅을 아브라함의 후손, 이삭의 후손들에게 주시기로 약속을 하셨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많은 재산을 맡기심으로(318명의 군사 x 5명<딸린가족>) 수천 명의 사람들이 아브라함에게 봉사하게 함으로 아브라함의 생명을 보호하게 하신 것이다. 사람들이 적으면 쉽게 아브라함의 생명을 해할 수 있어도 많은 사람들이 아브라함을 위해 일하고 그걸 지키기 때문에 아무나 쉽게 아브라함에게 접근하지 못한 것이다.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생명을 지키기 위한 수단으로서 많은 재산을 허락하신 것이다.

 

 

 

창세기 22장에 보며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불러서 “네 독자 사랑하는 아들을 내가 지시하는 산으로 가서 번제로 드리라” 

 


그런데 우리는 아브라함이 이제 그 동안 신앙으로 많이 자랐기 때문에 좀 성경에 보면 아브라함이 이삭을 제사 드릴 때에 아무런 고통과 어려움 없이 제사를 드리는 걸로 우리가 이해하고 그렇게 읽어가지만 탈무드에 보면 아브라함의 고통이 얼마나 컸는지를 말해주고 있다. 탈무드에 보면 이삭을 제사지내고 산을 내려올 때에는 고통이 너무 심해서 눈이 멀었다고 한다. 

 


하나님께서 그 일로 무엇을 계시하셨냐 하며는 “바로 네 아들이지만 네 아들이 아니고 내 아들” 하나님께서 바로 이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실 것이라고 하는 것을 그에게 알리신 것이다. 세상의 구속의 법이 속죄의 제사가 희생의 제물이 되는 방식으로 이루어질 것임을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가장 구체적으로 확실하게 하나님이 세상을 구원하실 길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지를 아브라함에게 계시하신 것이다.

 


이제 아브라함은 본래 하나님이 소명할 때에 그 경륜이 어디에 있는줄을 알게 됐으므로 참 하나님의 구원경륜에 봉사해 드리는 것을 그의 일생에 전부로 알고 살았다. 그러니까 역시 우리 한국교회에서 이 아브라함에 대한 이해는 상당히 많이 성경이 본래 말하고 가르치는 것 하고 이탈되었다. 귀한 아들인데 번제로 바치게 함으로 하나님의 세상을 구원하실려고 하는 하나님의 그 구속의 사역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분명히 하셨다.

 

 

 

하나님께서 이제 아브라함의 후손중에서 나올 구속주를 바로 아브라함이 번제드린 그 방식으로 죽게 함으로 세상을 구원하실 것임을 분명하고 확실하게 하셨다. 아브라함은 모리아산에서 이 제사를 드리므로 하나님의 구속경륜을 확실하게 알게 되었다. 아브라함이 제사장으로서 자기 아들을 제물로 바쳤는데 바로 그 순간 제물이 된 이삭의 자리에 하나님이 마련하신 양이 대신했다.

 

조금전까지는 아버지는 제사장이고 아들은 제물이었는데 이제 둘이 제사장이 되어 하나님이 마련하신 제물로 하나님께 번제를 드렸다. 그러니까 바로 이삭으로 대변 되면서도 이삭과 구분되는 하나님이 마련하신 어린양으로 세상이 구원될 것임을 하나님이 모리아산에서 아브라함에게 분명하고 확실하게 계시하셨다.

 


 모리아산에서 번제가 되신 그 방식으로 세상이 구속될 것임을 하나님이 분명히 하셨기 때문에 이제 그 분명하고 확실한 구속경륜을 계시 받고 가르침 받은 아브라함이 할일은 그 바로 이삭으로 장가들어 이제 아브라함에게 후손이 이어지게 함으로 구속주가 오시는 것을 에비하는 것이었다.

 


이제 이삭은 아브라함하고 야곱을 연결하는 중간 다리, 고리 역활을 하기 때문에 그렇게 그저 평화로운 사람으로 하고 별로 많은 기사가 없어요. 그러나 야곱에 와서는 자손을 번창하게 하는 일을 약속을 이루시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가정의 불화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이 개입하셔서 12자녀를 얻게 하셨다.

 


그러니까 처음부터  전부 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도 이스라엘을 구원하시고 택한 백성을 만드시게 한 역사이이다.   기적으로, 큰 권능으로 구출해 내시고 홍해를 건너게 하시고 시내산에서 언약을 체결하게 하심으로 이제 하나님께서 언약을 체결하시므로 율법을 허락하시고 속죄 제사를 허락하셨다.

 


이제 이스라엘이 구원 얻는 길은 하나님의 율법을 지키는 것이고, 그 율법을 범하므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길은 속죄제사를 통해서이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는 길과 구원 얻는 길은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순종하는 것임과 동시에 이 죄과 문제를 해결하는 제사 문제를 통해서이다.

 

 이 둘이 하나님이 인류를 구원하신 길이다. 바로 하나님이 이 율법을 통해서 처음 아담에게 요구된 순종과 하나님의 법대로 사는 백성의 자리로 돌아오게 하시고 그리고, 속죄제사를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시행하게 하므로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 해결, 속죄 문제의 해결, 죄과 문제의 해결을 하나님께서 이 속죄제사를 통해서 분명히 알게 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렇게 하시므로 하나님께서 지금 이스라엘에게 교육하고 계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어떤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실 것임을 지금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교육하시고 교훈하셨다. 이스라엘이 율법을 지켜야 하나님 앞에 의를 얻어서 살 수 있는데 율법을 지키기가 어렵다. 역사가 진행될수록 이스라엘이 깨닫는 바는 우리의 힘으로 하나님의 율법을 이 엄위로운 율법을 결코 지킬 수 없다는 것을 깨닫는 것이다. 왜냐하면 역사가 진행될수록 갈수록 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넘어지기 쉽다.

 


 짐승으로 드리는 속죄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하나님께로 가지만은 이 속죄제사가 이스라엘의 죄과문제를 다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가르치고 있는 것이다. 역사가 진행될수록 악이 더 심하고 아주 심하게 진행되었다. 그것들을 위하여 속죄제사가 열심히 진행되었지만  이스라엘이 그 속죄제사로 이 죄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이다.

 

 분명히 하나님의 법이 가르친 바는 이 속죄제사를 통해서 하나님과 인간의 관계가 회복되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 그 길로만이 죄과가 해결되는데 속죄제사로도 이스라엘의 죄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니 결국에는 이스라엘이 속죄제사에도 불구하고 망한 것이다.

 


그러니까 이스라엘의 역사를 통해서 하나님께서 경륜하시고 분명히 하신 것은 하나님께서 인간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신 것이다. 인간으로는 도저히 지킬 수 없다. 그러니까. 이 율법을 완전히 지키실 완성자를 고대하고 바라게 하는 역할을 하게 하신 것이다. 율법을 지키라고 계속 재촉하므로 우리는 도저히 율법을 지킬 수 없다고 하는데 도달한 것이다.

 


 속죄제사가 계속되는데 이 길로만이 분명히 하나님과 화해되고 백성으로 바로 서게 한다는 것을 분명히 가르치셨는데도 속죄제사가 그렇게 많이 진행되도 이스라엘의 운명을 해결하지 못했다.  이스라엘이 드리는 속죄제사는 아브라함이 드렸던 제사가 표현하는 완전한 제사를 바라게 하는 것이다. 자기들의 모든 죄과와 인류의 모든 죄과를 해결할 속죄제사가 오도록 하는 것, 재촉하게 하는 것이다.  구원의 길은 이 율법의 순종과 속죄제사를 통해서 이루어지는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로 하여금 이 진리를 알게 하셨다.

 


그러니 완전한 속죄제사를 바라는 것 밖에는 다른 길이 없다는 것이다. 마지막에 끝에 가면 갈수록 이스라엘 역사에서 짐승의 제사로 사람의 죄과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는 것에 도달한다.

 


바로 이 법은 아브라함에게 계시되었던 구원의 경륜이었다. 아브라함에게 계시되었던 그 구원의 경륜이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반복되고 실현되고 실행되므로 하나님의 구원의 길이 어떻게 가능하며 또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분명히 알게 하셨다. 하나님께서 율법의 완전한 순종, 지킴과 그리고 죄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구세주를 보내시기로 약속하신 것이다.  하나님께서 이 방식으로 세상을 구원하실 것임을 이스라엘 자신과 세계 만방에 알게 하신 것이다.

 

 
그리고 마침내 바벨론의 포로되어서 586년 B.C에 이스라엘이 완전히 망했을 때에도 이들이 중동지역에 흩어지면서 이 구속경륜을 전파하고 알린 것이다. 바로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으로 하여금 제사장 백성이 되게 하므로 하나님의 구속경륜이 어떻게 이루어질 것인가를 이스라엘 백성과 함께 중동의 고대 문명 지역에 사는 모든 민족들에게 알게 하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은 바로 이 방식으로 하나님께서 구원하실 구세주를 보내시기 위한 그저 모태, 어머니, 어머니의 태반, 이걸 다한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이 하나님의 택한 백성으로 일을 해 왔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가 구세주로 출생하시고 십자가에 죽으신 이후에는 더이상 특별한 보호를 받는 특권 민족으로 존재하는 것이 아니다. 그들도 이방인과 동일하게 예수 그리스도에 의하여 구속받아야 할 구속의 대상으로 있는 것이지 특별한 호의의 대상이 아닌 것이다.

 

그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십자가의 구속으로 그들의 존재 의의를 존재 목적을 사명을 다 성취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이스라엘을 조성하시고 만드신 것은 세상을 구원하시기 위한 하나님의 경륜 때문이지 이스라엘을 세계 만방에 높여서 이스라엘의 육체적인 이해대로 세계의 왕이 되고 메시야가 오시면 전세계를 통치하는 세상적인 다윗의 왕국을 재현하는 것을 결코 약속하신 것이 아니다.

 

 이스라엘의 존재 목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십자가의 구속사건으로 다 이루어졌다.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70년에 디도장군을 통해서 로마에서 예루살렘 성을 헐었다. 그때 죽은 사람이 110만 이다.  하나님께서 완전히 이스라엘을 이스라엘의 제사제도가 끝나게 하시고 그들을 고토에서 내 쫓으셨다.

 


디도장군이 예루살렘 성을 포위하고 있을 때에 요세푸스의 기록에 의하면 실질적으로 로마 사람의 손에 의해 죽은 사람 보다 자기들끼리 죽인 것이 더 많았다고 한다. 포위하고 있기 때문에 이들은 선민으로서 하나님의 기적적인 간섭이 있을 것으로 다 기대했다. 그러니까 전혀 외적의 침입에 대해서 대비를 안하고 있었던 것이다. 하나님께서 기적적으로 개입하시므로 자기를 구해내시고 로마군대를 다 물리칠 줄로 기대했다. 그러나 그러지 안했다. 그러니까 식량을 비축하는 일이라든지, 뭐 전혀 대응책을 마련하지 않았다.

 


패를 조직해 가지고 자기 패에 가담하지 않은 사람들은 막 죽였다. 말할 수 없이 많이 죽였다. 그리고 도망간 사람들을 디도 장군의 병사들이 잡아가지고 십자가에다 못을 다 박았다. 도망간 사람들이 많아 십자가의 수가 감당할수가 없었다. 나중에는 예루살렘에 포위망이 이제 방어망이 뚫렸다. 디도 장군이 가서 불을 놓았다.

 

 여러 사람이 예루살렘 성이 다 금으로 입혀 놓았는데 불을 놓으니까 금이 녹아 내려 병사들이 그 금을 줍기 위해서 돌을 밀어뜨리고 금이 녹아서 돌 사이로 들어가니까 돌 하나 위에 돌이 하나라도 남지 않게 다 밀어뜨린 것이다. 예수님 말씀 하심과 같이. 그것이 A.D 70년 이다.

 


예수 그리스도 구속의 사건이 성취된 후에 하나님께서 완전히 제사가 더이상 계속되지 못하게 할려고 예루살렘 성을 헐어 버리셨다. 완전하게! 그리고 135년 바 코크바 전쟁이라고 이 마지막에 유대인들의 로마에 대한 항쟁이 일어났다. 그때 로마의 황제가 더이상에 유대인들을 팔레스타인에 살지 못하게 했다. 완전히 다 내어 쫓았다.

 

유대인들을! 그래서 세계 각처로 흩어지게 하셨다. 그때 부터서 가나안 땅이 팔레스타인, 불레셋의 땅이 된 것이다. 팔레스타인이라는 이름이 불레셋에서 왔다.  그 필리스타인의 땅 임자 불레셋의 땅이 된 것이다.

 

 

 

1948년 나라를 세우기 전까지는 완전히 여기가 이스라엘이 살지 못하는 땅이 되게 하셨다. 그리고 근 1900년 기간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가는 곳마다 핍박과 그리고 추방, 어려움 당했다. 그래도 그 모진 인류 역사에도 불구하고 이스라엘이 유대인으로 흔적을 남아 가지고 있다. 지금 약 1200만이 전세계에 산다.

 

 이제 팔레스타인에 약 300만, 러시아에 약 300만, 미국에 약 600만 그래서 약 1200만 해서 그 중에 600만이 2차대전 때 히틀러의 손에 죽었다.  2차대전 당시에는 유대인 약 1800만 정도의 인구가 살았다고 할 수 있다. 이스라엘은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의 사건을 이루므로 예수 그리스도의 출생과 구속의 사건으로 그 사명과 본분을 다 했다.

 


성취 후에도 하나님의 섭리 때문에 이스라엘이 존속되어 왔다고 할 수 있다. 그 섭리는 하나님께서 1500년의 긴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역사를 통해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과 완전한 순종을 위하여 여건을 마련하셨다고 볼수 있다. 그 후속으로 하나님이 인류의 죄과를 도말하시고 화해하시며 성령을 부으시므로 하나님이 처음에 계획하셨던 하나님의 백성을 다시 회복하셨다.

 

하나님의 백성을 회복하시고 그리고 하나님께서 그의 통치를 인류 역사에 직접적으로 시행하시고 개입하셨다. 성령을 부으심으로 지금 우리가 받아가진 생명이 종말의 새 생명이다. 지금 우리가 종말의 시대에 살고있고 초대 그리스도인들도 마찬가지로 종말의 시대에 산다고 할 것이다.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 이후에는 모든 인류의 역사가 다 종말의 역사이고 종말의 때이다.(

פרופסור  

שְׂצְליוּן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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