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목사님은 박사학위에 미쳤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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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신 나갔어!

2013. 1. 11.

 

우리 목사님은 박사학위에 미쳤어요 얼마 전 친구 목사가 박사학위를 받은 기념으로 드리는 소위 ‘박사학위 취득 감사예배’에 ‘어쩔 수 없이’ 참석했다. 가난한 동네의 상가 건물에서 월세를 내며 예배 드리고 있는 그 교회 성도들의 얼굴은 어두워 보였는데, 이미 박사학위를 받은 동료들의 축하 인사를 받는 친구의 얼굴은 빛나고 있었다. 박사학위 제목도, 그 동료가 입은 학위복과 모자도 그 자리에 함께한 성도들의 삶과는 거리가 있어 보였다.

 

결정적으로 나는 하나님께서 그 예배를 받으실지, 아니 참석은 하셨는지 의문스러웠다. 석사로 구약을 밟다가 도저히 언어와 성경에 자신이 없어서 박사 과정은 선교학을 밟았다고 했다. 그 친구는 단기선교 한번 나간 적이 없고 후원하는 선교사 한 명 없이 그저 책상에 앉아서 선교지를 연구하고 선교전략을 정리해서, 아니 더 정확하게 말하면 자신이 원하는 많은 자료들을 짜깁기해서 결국 박사학위를 따냈다.

 

논문 마감 기간이 다 되어서 교수님들께 약간의 봉투까지 드렸다는 이야기는 확인하지 못했으나 충분한 실력으로 넉넉하게 통과된 결과물은 분명히 아니었다. 나는 누구를 비난하거나 정죄할 마음도 자격도 없다. 다만 목사의 한 사람으로서 나의 동료 목사들이 추구하는 삶의 방향에 대해 함께 고민해 보았으면 한다. 나는 물론 박사학위가 없다.

 

목사안수에 필요한 최소한의 교육 과정을 이수했을 뿐이다. 하지만 솔직히 지난 20년간 목회를 하면서 학위가 필요하다는 생각을 한 적은 단 한 번도 없다. 나는 박사학위를 밟는 친구, 선배, 그리고 후배들에게 지난 몇 년간 다음과 같은 동일한 질문을 여러번 던졌다. ‘왜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하는가?’ 그들의 대답은 거의 두 가지 중 하나였다.

 

하나는 더 공부를 하고 싶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더 깊게 연구하고 사람을 더 깊게 이해하며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더 잘 수행하기 위해서 자신의 무지를 넘어서는 더 깊은 공부가 필요하다고 했다. 또 하나는 가르치고 싶기 때문이라고 했다. 자신은 천성적으로 남을 가르치는 일에 은사가 있는데 그 일을 하려면 더 많이 알아야 하고 학위도 필요하다고 했다. 그럼 하나씩 점검을 해보자, 먼저 더 공부를 하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 꼭 박사학위를 밟아야만 더 공부를 많이 하는가? 솔직히 학위를 밟는 분들의 대다수가 실제로 읽은 책의 내용이나 강의는 매우 제한적이다. 모든 학문이 그러하듯이 상급학교로 진학할수록 공부의 범위는 매우 좁아지고 논문 한편에 집약되는 매우 집중적인 내용에 초점을 맞추게 된다. 실제로 언어적 능력만 충분하다면, 외국서적이나 논문을 포함한 수많은 책을 서재에서도 다 구입해서 혹은 빌려서 읽을 수 있고, 훌륭한 교수진의 강의와 세미나도 넘쳐난다.

 

꼭 학위를 밟아야만 공부를 할 수 있다는 말은 솔직히 크게 설득력이 없다. 다음으로 가르치려고 학위를 밟는다고 한다. 이 문제도 마찬가지다. 학위가 있어야만 가르칠 수 있는가? 나는 학위가 없어도 매일 성도들에게 성경과 원어, 영어와 역사를 가르친다. 아울러 실제로 한국 신학교나 신학대학원은 정교수가 이미 다 있어 교수직을 얻는 일은 매우 어렵다(시간 강사들 중에는 학위가 없는 사람도 많다).

 

한국만큼 교수되기 어렵고 교수로서 그 자리를 유지하기 힘든 나라도 없다. 그런데 왜 기필코 대학교수가 되려고 하는가? 정말 가르치고 싶다면 얼마든지 자리가 있지 않은가? 그렇다면 결론은 다르게 흘러간다. 수많은 목사들이 박사학위를 받으려는 이유는 대다수 명예 때문이다. 요한일서에서 사도 요한은 사람의 죄를 세 가지 언급한다. 안목의 정욕, 육신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이다(요일 2:16). 이 죄는 다 동일한 죄의 무게를 가진 죽음에 이르는 죄다.

 

그런데 유독 세 번째 죄는 목회자들에게 상당히 관용적인 것이 현실이다. 목사라는 직분도 상당히 귀한 직분이 아닌가? 그런데 목사가 너무 많아서 그런지 꼭 자기 이름 뒤에 박사를 넣고 싶어 한다. 박사를 받아야만 하나님을 더 사랑하는 것도 아니고, 성경을 더 잘 연구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목회를 더 잘하는 것도 아닌데, 기필코 박사학위를 받으려고 한다.

 

부모가 요구하고, 교회가 요구하고, 한국교회가 요구하고 있다. 어쩌면 하나님께서 기뻐하지 않으시는 이 범죄를 말이다. 낮은 곳으로 가라고 그렇게 말씀하셨는데 우리는 여전히 바벨탑의 중턱을 힘겹게 오른다. 나는 지금 박사학위를 밟는 모든 사람들을 비난하는 것이 아니다. 박사학위를 밟는 그 근본적인 이유에 대해 스스로 점검해 보라는 것이다. 혹자는 “내가 박사학위 밟는데 당신이 무슨 상관이냐”고 따질지도 모르겠다.

 

그런데 상관이 있다. 기독교라는 복음의 그릇이 천박해지기 때문이다. 복음과 목사라는 성직은 하늘의 기준으로 사는 신비인데, 세상의 기준에 따라 평가받는 저급한 가치로 추락하기 때문이다. 정말 하나님께서 대학교수나 전문적인 학문 영역의 부르심이 있어서 학위를 밟아야 하는 분을 제외하고 우리 나라 목사들은 너무 많이 박사학위를 따려하고, 따고 있다. 매우 실제적으로 말해보자. 박사학위까지 가는 시간, 돈, 에너지는 누가 충당하고 있는가?

 

그것들이 내 돈, 내 시간인가? 아니면 교회와 하나님의 것인가? 내가 아는 한 친구는 시골에서 목회를 하는데, 자신은 수요예배 전 한 시간, 주일 예배 전 한 시간, 이렇게 두 시간만 설교준비를 하고 나머지 모든 시간은 박사학위 과정에 집중 한다고 자랑스럽게 말했다. 그 교회를 나오는데 한 성도가 한 말은 나의 가슴을 찔렀다.

 

“우리 목사님은 박사학위에 미쳤어요. 자기 박사학위 밟는다고 지난 5년간 설교다운 설교를 들어본 적이 없고 심방도 단 한 번도 안오셨지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고 우리 성도들과 교회를 위한다고 매 주일 강단에서 말씀하시는데, 저는 이제 그 말이 믿어지지 않아요.” 내가 너무 극단적으로 말했다면 용서해 주길 바란다. 하지만 현실은 내가 언급한 내용보다 더 심각할지도 모른다. 나는 반지성적인 목사가 되라거나, 많은 신학대학원에서 하는 교육 과정을 무시하려는 것이 아니다. 목회자는 끊임없이 배우고 공부해야 하며, 가르치고 전해야 한다.

 

하지만 그 길을 학위라는 일방통행으로 만들어서는 안된다는 것이다. 목회자의 진짜 자격은 학위 그 이상이다. 우리 목회자의 중심에 정말 무엇이 있는가, 같이 반성해 보았으면 좋겠다. 아마도 더 넓게 보면, 이런 현실은 한국교회의 문제이기도 할 것이다. 언제부터인가 한국 목회자들은 십자가를 버리고 편하고 유명한 권력자의 자리에 오르고자 혈안이 되어 버렸다. 봄이면 교회는 청빙 바람이 분다. 개척은 힘들고 남이 수고한 교회로 가는 것은 기쁘다.

 

그런데 청빙을 받으려니 학위가 필요하다. 또 가을이면 목사들은 자신이 섬기는 교회 안에서 벗어나 더 유명해지고 싶어 한다. 유명해 지려니 학위가 또 필요하다. 평범한 목사로 살기보다는 교수라는 타이틀을 얻어서 안락한 삶을 살고 싶다. 그렇게 하려니 다시 학위가 필요한 것이다. 내가 방금 언급한 말에 찔림이 없다면 나에게 돌을 던져도 좋다.

 

그러나 찔림이 있다면 나는 당신에게 돌을 던지지 않을테니 스스로 주님께 기도하고 주님의 길로 갔으면, 진짜 주의 종의 길로 갔으면 좋겠다. 다시 말하지만 나는 비난하려고 글을 쓴 것이 전혀 아니다. 박사과정으로의 부르심이 있는 분들께는 이 글에 전혀 개의치 않아 할 것이다. 더불어 목회의 자리에서 진실하게 목회하고 있거나 시간과 돈을 쪼개어 치열한 배움의 현장에 있는 선후배 동료 목회자들의 수고를 알고 있기에 그들의 헌신과 노력을 존경한다.

 

나는 다만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이 정말 주님이 원하시는 길인지, 제대로 된 방법인지, 올바른 방향인지 돌아보고, 그렇지 않다면 같이 울자고 글을 썼다. 최근 사랑의 교회 문제까지 불거지면서 나는 사랑의교회와 오정현 목사를 위해 기도했다. 기도 중에 나는 이 문제가 단순히 표면적인 한 목사의 진실성의 문제가 아니라, 일부 한국교회와 목회자 안에 있는 명예에 관한 욕망이라는 더 큰 내면적, 정신적 질병의 문제가 아닌가 하고 돌아보게 되었다.

 

한국교회는 도대체 어디를 향해 가고 있고, 한국의 목사들은 누구를 위해 살고 있는가. 다시 한번 말씀드린다. 하나님께서 이 시대의 교회와 목회자들에게 진정으로 원하시는 것이 무엇인지 무릎을 꿇고 기도하며 같이 울었으면 좋겠다. 말만 초대교회로 돌아가고, 복음으로 돌아가고, 본질로 돌아가자고 해서는 안 된다. 복음이라는 생명의 가치를 진정으로 선택하고자 한다면, 동시에 그 가치를 흐리게 만드는 무엇인가를 내려놓고 포기할 수 있어야 한다고 본다.

 

그저 명예만을 위한 것이라면, 박사학위를 위해 투자하는 그 엄청난 돈을 작은 교회의 도서비로 후원하면 어떻겠는가? 박사학위에 들어가는 시간에 더 기도하고 세상을 섬기면 더 놀라운 일이 일어나지 않겠는가? 이제는 이런 이야기들이 기독교 언론에 났으면 좋겠다. 어째서 한국교회와 목사들은 그렇게도 박사학위를 따려고 하는가? 하나님을 위한 것인가? 자신을 위한 것인가? 교회를 향해서인가? 세상을 향해서인가? 주님을 기쁘시게 하려 하는가?

 

사람을 기쁘게 하려 하는가? 학위 하나 없어도 수많은 영혼을 살렸고 아무도 읽지 않는 논문이 아니라. 간절한 심장으로 쓴 작은 편지들이 성경이 되었으며 결국 주님이 가신 십자가의 길 그 끝에서 목을 내어 놓은 바울의 얼굴이 이 글을 쓰는 내내 생각나 자꾸만 눈물이 떨어진다. “이제 내가 사람들에게 좋게 하랴? 하나님께 좋게 하랴? 사람들에게 기쁨을 구하랴? 내가 지금까지 사람의 기쁨을 구하는 것이었다면 그리스도의 종이 아니니라.” (갈 1: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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