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사에 대한 맹종은 성경적이지도 교리적이지도 않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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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신 나갔어!

2014. 7. 16.

 

목사에 대한 맹종은 성경적이지도 교리적이지도 않다.

 

- 요즘 목사들이 여러 가지 비리를 저지른 사실이 드러나면서 그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그런데 특히 장로들이 감리교회의 기획위원회나 장로교회의 당회에서 교회의 제반 문제를 목사와 협의하기 때문에 교회의 재정, 인사문제 등을 장로들의 협조 없이 목사 단독으로 결정할 수 없다. 따라서 어느 교회의 목사가 재정을 유용했다든지, 비정상적인 인사를 했다면 장로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가짜박사, 음행 등은 장로들의 동의를 얻을 일이 아니지만, 그러한 비행을 저지른 목사를 무조건 비호하는 장로들과 교인들에게는 교회의 부패에 대한 책임을 물을 수 있다. 교인들의 순종을 강요하는 목사들 그러나 교인들은 성경에는 목사의 언행을 비방하지 말라고, 목사를 도와주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면서 그들의 묵인이나 협조에 대한 그들의 책임을 벗어나려 한다. 그들은 다윗이 사울을 해하지 않은 경우,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했다가 저주를 받은 사건, 아론과 훌이 모세의 팔을 잡아준 것 등을 그들이 목사의 비행을 묵인하고 목사에게 협조하는 데 대한 성경적 근거로 제시한다.

 

목사들은, 특별히 부흥강사들은 목사를 비난하거나 목사에게 해로운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말해 왔다. 다윗이 그를 박해하는 사울을 죽일 수 있는 기회가 두 번이나 있었는데도 사울을 죽이지 않은 사무엘상 24장과 26장의 기록을 그 근거로 댄다. 그때 다윗은 하나님의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을 죽이는 것은 하나님이 금하신 일이고 죄이니 그를 치는 일은 그에게 기름을 부으신 하나님께 맡기자고 말한다.

 

부흥강사들은 다윗이 그를 죽이려는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처럼 기름부음을 받은 목사를 해치는 일을 해서는 안 된다고, 목사를 치는 일은 하나님께 맡겨야 한다고 말한다. 그 말대로 신실한 교인들은 목사가 비행을 저질러도 하나님이 치실 때까지 묵묵히 기다린다. 그런데 그들이 기다리는 동안 그 목사는 무사히 은퇴를 맞이한다. 한 걸음 더 나아가서 목사들은 주의 종을 비판하면 벌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들은 그 근거를 모세를 비난한 미리암을 하나님이 저주하신 데서 찾는다. 민수기 12장에서 모세가 유대 여인이 아닌 구스 여인을 아내로 취하였기 때문에 모세의 누이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를 비방하자 하나님은 미리암에게 나병의 벌을 내렸다.

 

설교자들은 중직자든 일반 교인이든 목회자를 비난하면 이렇게 벌을 받는다고 말한다. 그리고 목사의 위임식에서는 빠지지 않고 아론과 훌이 모세의 두 팔을 붙들어 줌으로써 아말렉과의 전쟁에서 이겼다는 출애굽기 17장의 예를 들면서 목사가 성공적인 목회를 할 수 있도록 모든 교인들이 목사를 도와주어야 한다고 당부한다.

 

그래서 교인들은 목사에게 협조하고 순종하는 외에 결코 목사가 부당한 일을 하더라도 비판해서는 안 된다는, 비판하면 벌을 받는다는 믿음(?)이 교인들 마음속에 깊이 뿌리를 내리고 있다. 목사들은 이렇게 세뇌당한 교인들 위에 제왕처럼 군림하면서 재정적 비리, 음행, 세습, 가짜 박사 취득 등 세상 사람들의 지탄을 받을 만한 일들을 아무 거리낌 없이 자행한다.

 

세상 법정에서 실형을 받거나 교회 단체에서 징계를 받더라도 교인들이 비행을 저지른 목사를 감싸는 것은 목사에 대한 순종이 몸에 배어 있고 목사를 비방하면 벌을 받는다고 믿기 때문이며, 그 목사를 벌하는 것은 인간이 할 일이 아니고 하나님께 맡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인들이 가지고 있는 이러한 고정관념은 올바른 것인가? 특별히 목사와 더불어 교회를 치리하는 장로들은 목사를 도와야 하지만 목사가 옆길로 가려고 할 때는 그를 바로잡아주어야 할 책임이 그들에게 있는 것 아닌가?

 

이렇게 목사에게 맹종하도록 교인들을 교육함으로써 목사들은 그들이 빗나가지 않도록 조언해줄 수 있는 조력자들을 잃었을 뿐 아니라 맹종하는 교인들에 둘러싸여서 하늘 높은 줄 모르는 권위의식과 자만심에 사로잡히게 되었다. 천사를 타락시킨 것은 이러한 자만심이다. 젊을 때 아주 겸손하고 헌신적이던 목사들도 그들을 떠받들고 신격화하는 교인들에 둘러싸여 살면서 점차 권위적인 태도를 취하게 되고 결국 안하무인 상태에 이르러서 비행을 저지르고도 교인들 앞에서 사과할 줄 모르게 된다.

 

더 심각한 일은 그들의 눈에는 하나님도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래서 그들은 회개할 줄도 모른다. 목사들이 이렇게 되는 데에는 신도들로 하여금 맹종하게 만든 목사에게 일차적인 책임이 있지만, 분별력 없이 목사에게 맹종하는 교인들도 책임을 면할 수 없다. 따라서 목사를 천국에 보내고 싶으면 그들이 비리를 저지를 때마다 교인들이 그들을 깨우쳐 주어야 한다. 목사에 대한 맹종은 성경적이지도 교리적이지도 않다.

 

우리는 선지자들이 죄를 범하는 백성들을 바로잡으려고 그들을 책망하는 것을 구약에서 많이 읽지만, 특히 나단 선지자가 기름 부음 받은 하나님의 종을 바로 세우려고 다윗의 비행을 책망하는 것을 본다. 사무엘하 12장에 보면 다윗이 밧세바와 동침하고 그의 남편 우리아를 위험한 전장에 내보내서 죽게 한 후 밧세바를 아내로 취한다.

 

나단 선지자가 다윗에게 이 사실의 부당성을 지적하자 다윗은 자기의 죄를 인정한다. 다윗이 성군이 된 것은 그의 곁에 그의 비행을 지적하는 이러한 선지자가 있었기 때문이며 그가 그의 잘못을 비판하는 사람의 말을 겸손하게 받아들였기 때문이다. 나단 선지자가 백성의 생사권을 지닌 왕 다윗에게 나아가서 자신의 목숨을 걸고 왕의 죄를 지적한 것처럼, 중직자들은 담임목사를 바로 세우기 위해서 직언해야 한다.

 

특히 중직자가 목사의 부정을 방관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자기에게 맡겨진 책임을 외면하는 일이다. 중직자들뿐 아니라 하나님의 나라를 이 땅에 세우는 사명을 부여받은 교인들은 먼저 내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도록 몸과 마음과 정성을 다 해야 한다. 목사의 비행을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결코 성경적이지 않다. 모세를 비판한 미리암의 경우와 사울을 죽이지 않은 다윗의 경우를 목사와 교인의 관계에 그대로 적용하는 데에는 무리가 있다. 모세가 이방 여인을 아내로 취한 것을 미리암과 아론이 비방했을 때 그들의 비방이 잘못된 것은 아니었다.

 

이스라엘 민족의 지도자가 이스라엘 여인과 결혼하는 것이 지도자로서 바람직한 일이다. 그래서 모세를 가장 사랑하는 모세의 누이와 동생이 모세의 잘못을 지적했다. 그런데 이 정당한 비판으로 인해서 미리암이 하나님의 저주를 받은 것은 모세가 일반 선지자들과 다른 특별한 하나님의 종이었기 때문이다.

 

민수기 12장에서 하나님은 미리암과 아론에게 환상이나 꿈을 통해서 하나님의 뜻을 전하는 선지자들과 달리 모세는 하나님의 형상을 보며 직접 대화하는 하나님의 특별한 종이라는 점을 강조하셨다. 민수기의 문맥에서 우리는 만일 미리암과 아론이 모세가 아닌 다른 선지자들의 잘못을 지적했더라면 미리암에게 벌이 주어지지 않았을 것이라는 것을 읽을 수 있다. 모세에게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라는 특별한 사명을 주신 하나님은 미리암을 벌함으로써 어느 누구도 그의 권위에 도전하거나 언행을 비방하지 못하도록 조치하셨다.

 

모세를 비방하는 것은 그에게 사명을 주신 하나님을 비방하는 것과 같은 것으로 받아들이도록 하신 것이다. 따라서 미리암이 모세를 비방하다가 벌을 받은 것은 일반적인 경우가 아니고 특별할 경우이다. 이 특별한 경우를 일반화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모세와 목사의 위치를 일치시켜서 목사의 비행을 지적하면 저주 받는다고 가르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오히려 목사들이 죄를 범할 때, 나단 선지자처럼, 그들의 죄를 지적하고 그들을 바로 세우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한 일이다. 므리바 물 사건에서 보면, 모세가 백성 앞에서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나타내지 않았을 때, 하나님은 가나안에 들어가지 못하도록 모세에게 벌을 내리셨다.

 

오늘날 목사들의 비행은 교회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다시 말해서 예수님의 몸인 교회를 더럽히고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훼손하는 일이다. 목사들이 다윗이 기름 부음을 받은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을 예로 들면서 목사들의 비행을 눈감아주라고 가르치는 것도 온당하지 않다. 다윗이 사울을 죽이지 않은 것은 사울이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 민족의 최초의 왕이었기 때문에 그를 왕으로 세우신 하나님의 거룩한 뜻을 존중해야 한다는 생각을 백성들에게 심어주기 위한 것이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다윗이 사울 왕을 해하지 않았다는 것을 강조한 것은 다윗이 성군이었다는 것을 드러내기 위한 기록자의 의도에서 나온 것이라고 볼 수도 있고, 왕의 권위를 절대화하려는 왕권신수설의 사고에 기반을 둔 것이기도 하다. 그런데 왕을 신성시하는 그런 태도는 임기제의 국가 지도자를 국민이 선출하는 민주적 정치체제와 맞지 않는 시대착오적인 것이다. 더구나 전제국가에서 백성이 왕을 대하던 태도를 지금 교인들이 목사를 대하는 태도에 적용하는 것은 너무도 엉뚱하다고 보지 않을 수 없다.

 

개신교의 원리에 의하면, 신약의 시대는 제사장이 하나님과 백성들 사이에서 중재하는 시대가 아니고 모든 교인이 제사장인 만인 제사장의 시대이다. 목사들의 영적 권위를 높이려는 시도는 제사장의 시대로 되돌아가려는 잘못된 행태이다. 이제 평신도들은 신인도가 땅에 떨어진 한국교회의 혁신을 위해서 나단 선지자의 정신을 되살려야 한다. 다윗과 마찬가지로 목사도 인간이기 때문에 유혹에 빠지거나 실수할 수 있다.

 

그럴 때에는 그 사실을 지적해서 그를 올바른 길로 돌이켜 세울 책임이 교인들에게 있다. 교회 안에서 활동하는 정치꾼들 실상 장로들은 오랫동안 목사들의 비리를 눈감아주거나 동조해 왔다. 그동안 목사들과 장로들이 실망스러운 일들을 너무도 많이 해 왔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이 콩으로 메주를 쑨다고 해도 믿지 않게 되었다. 참으로 안타까운 일이다. 정치장로들은 목사들에게 빌붙어 기생하면서 목사의 비리를 부추기고 교회를 통해서 이권을 챙긴다.

 

금전적 이권을 챙기는 경우도 있고, 그렇지 않다 하더라도 목사의 비위를 맞춤으로써 실권 있는 장로로 행세해 왔다. 이러한 장로들은 목사의 도움을 받아 연회나 노회의 임원으로 활동하고 각종 선거에 관여한다. 특히 감독선거 같은 때에는 선거권자들을 매수하기 위해서 돈을 나르는 등 부정선거를 주도해 왔다. 미꾸라지 몇 마리가 연못을 흐려놓는다는 말처럼 교단 안의 단체들이나 주요 행사들을 주관하는 정치장로들이 교회를 부패의 늪에 빠뜨린다. 정치목사들은 교단을 위해서 헌신하겠다는 미사여구를 나열하지만, 실상 자신의 명예를 추구하는 사람들이 대부분이다.

 

그들의 아름다운 말에 속아서는 안 된다. 우리 사회에서 실시되는 선거에서 그런 예를 우리는 너무도 많이 보아왔다. 선거철에는 모두 애국자이지만 국회에 들어가면 당리당략이나 개인적인 잇속 챙기기에 혈안이 된다. 정치목사들도 다른 정치꾼들과 다르지 않다. 까매기 모이는 곳에 백로는 가지 않는다는 말이 있듯이 신실한 주의 종들은 정치꾼들의 놀음에 휩쓸리지 않는다. 우리 목사님이 감독회장이니 총회장이니 하고 자랑하는 교인들이 많은데, 오히려 명예를 탐하는 정치목사를 부끄럽게 여겨야 영적으로 성숙한 교인이다.

 

사회단체가 아닌 종교단체에서 명예를 탐한다는 것은 영적 타락의 표시이기 때문이다. 우리가 직시해야 할 것은 교인들의 묵인이나 협조 없이는 이러한 정치목사가 나올 수 없다는 점이다. 중직자들은 담임목사를 도와서 교회를 치리하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이루어지는 프로그램이나 행사에 관해서 항상 의견을 제시할 수 있고 부당한 목사의 제안에 대해서는 제동을 걸 수도 있다. 다시 말하지만, 부당하거나 비합법적인 목사의 제안을 묵인하거나 목사에게 맹종하는 것은 중직자로서의 책임을 저버리는 일이다.

 

그리고 일반 교인들에게도 감리교회의 위원회나 당회, 장로교회의 제직회나 공동의회에서 문제점을 지적해서 교회가 빗나가지 않도록 바로잡아 줄 기회가 있다. 그런 기회에 교회가 빗나가는 것을 방관한다면 방관한 사람에게도 책임이 있다. 따라서 교회의 부패에 대한 책임이 교인들에게는 전혀 없고 전적으로 목사에게만 있는 것처럼 말해서는 안 된다. 그렇게 말한다면, 그것은 상대에게 책임을 돌리고 나는 빠져나오려는 ‘네 탓이오’의 발상에서 나온 것이다. 지금은 평신도들이 깨어나야 할 때 한국을 대표하는 교회들이 목사들의 비리로 인해서 거의 예외 없이 지탄의 대상이 되어 있는 지금 한국교회의 갱신은 평신도들에게 기대할 수밖에 없게 되었다.

 

지금 우리는 국민의 여론에 따라 대통령의 국정방향이 바뀌고 역량이 부족하거나 하자가 있는 총리 혹은 장관 후보자들이 낙마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이러한 사회에서 발휘되는 국민의 힘은 교회에서 평신도들의 힘으로 나타나야 한다. 민주국가가 국민에 의한, 국민을 위한, 국민의 국가인 것처럼, 교회는 교인에 의한, 교인을 위한, 교인의 만인 제사장 교회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교회에서 목회자의 비행은 교인들에 의해 차단될 수 있어야 하고, 역량이 부족하거나 하자가 있는 지도자들은 퇴출되어야 한다.

 

이러한 교회 혁신을 위해서는 평신도들의 수동적인 태도가 능동적으로 바뀌어야 한다. 평신도들이 목회자들의 비행을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것은 성경적이지도 교리적이지도 않을 뿐 아니라 하나님의 뜻도 아니라는 것을 인지하고 하나님의 의를 실현하기 위해서 선지자적 목소리를 발해야 한다. 국가개조를 부르짖는 지금 우리는 교회의 혁신도 절실히 필요하다는 것을 실감하고 있다.

 

그러나 제사장적인 권위주의로 회귀하려는 목사들의 세뇌작업으로 인해서 교인들은 아직도 맹종의 올무에 사로잡혀 있다. 목사들은 전횡하고 교인들은 그들의 비행을 눈감아준다면, 목사들과 평신도들이 합작해서 교회를 부패의 늪에 점 점 더 깊이 빠뜨린다면, 한국교회의 앞날이 어떻게 될까? 하나님은 영적으로 잠든 유대인들에게 선지자 이사야를 통해서 깨어나라고 말씀하셨다. “시온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네 힘을 낼지어다....

 

너는 티끌을 털어 버릴지어다 예루살렘이여 일어나 앉을지어다 사로잡힌 딸 시온이여 네 목의 줄을 스스로 풀지어다”(사 52;1-2) 이 하나님의 말씀은 부패한 한국교회의 지도자들 그리고 지도자들의 비행을 묵인하거나 동조하는 한국의 교인들을 위한 말씀이기도 하다. 우리가 맹종의 목줄을 스스로 풀지 않으면 한국교회는 더욱 깊은 수렁에 빠져들 것이다. 한국교회의 부패는 목사들과 평신도들 모두의 책임이라는 것을 자각해야 한다.

 

교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선생으로서의 목사의 권위를 인정해야 하고, 목사는 교인들을 돌보고 그들을 위해서 봉사하는 일에 충실해야 한다. 영어의 ‘minister’의 명사적 의미는 ‘목사’이지만, 동사적 의미는 ‘봉사하다’이다. 교인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목사는 그들의 신앙적 성장을 돕는 사람이지 그들 위에 군림하는 사람이거나 신성한 존재가 아니다. 교회가 목사들을 위해서 있지 않고 교인들을 위해서 있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군사부일체라는 말이 이야기해주듯이 우리는 전통적으로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존경과 순종을 미덕으로 생각해 왔다.

 

스승을 존경한 우리 선배들은 스승의 그림자도 밟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스승을 존경하는 것은 좋은 전통이지만, 군주에 대한 맹종이 사라진 오늘날 가르치는 사람에 대한 무조건적인 존경은 자취를 감추었다. 이러한 때에 목사들이 평신도들에게 무조건적인 순종을 요구하거나 교인들이 그 요구에 따라 맹종하는 것은 전근대적인 일이다. 어느 교회에서 담임목사가 신임장로들에게 목사는 교인들의 영적 아버지라고 세뇌시키고 있다고 하는데, 이러한 목사의 권위적인 태도 그리고 아전인수격인 성경해석이 그 목사 한 사람에 국한되어 있지 않다는 것이 문제이다.

 

종교단체의 특성상 교회에서는 지도자에 대한 존경, 순종, 협조가 중요하지만, 그렇다고 분별력 없이 목사의 비행까지도 눈감아주고 동조하는 것은 하나님이 기뻐하실 일이 결코 아니다. 존경하는 마음은 강요에 의해 일어나지 않고 상대의 고결한 인품에 의해 저절로 생긴다. 상대의 인격에 감동하여 존경하게 될 때 순종은 자연스럽게 뒤따른다. 따라서 목사들은 모름지기 존경받을 만한 신앙적 모범을 보여야 한다.

 

하나님은 당신이 거룩하시니 우리도 거룩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 무엇보다 먼저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는 교회를 만들기 위해서 목사와 교인들이 마음을 합하여 기도하고 노력해야 한다. 교회가 세상 사람들의 비난의 대상이 된다면, 달리 말해서 교회 안에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어떻게 “뜻이 하늘에서 이루어진 것같이 땅에서도 이루어지이다”라는 우리의 기도가 응답될 수 있겠는가? http://www.dangdangnews.com/news/articleView.html?idxno=2317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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