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밖으로 나가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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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들 정신 나갔어!

2014. 10. 7.

 

교회 밖으로 나가라

 

예수님은 "자기 목숨을 구원하고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를 위하여 자기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은 '받으라'고 말하고 예수님은 '주라'고 말씀하신다. 세상의 판단기준으로 보면 예수님은 완전히 미쳤고, 어느 정도 미치지 않고도 그분을 따를 수 있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십자가 아래가 아니라 환상 속에서 발버둥치고 있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다."는 바울의 말은 믿음의 고백이다. 결국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예수님의 광기가 세상의 냉혹한 제정신보다 더 온전하다는 믿음 말이다." 하지만 한국의 상황은 뷰크너가 말하는 것과 상황이 많이 다릅니다. 오늘날 한국의 그리스도인들에게 예수님은 온유하시고 사랑이 많으신 도덕군자이십니다. 그래서 그분은 언제나 좋은 것만을 생각하고, 좋은 것만을 말하고 절대로 부정적인 것을 생각하지 않고 특히 다른 이들의 잘못을 지적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늘 정부를 축복하고 공산주의를 증오하십니다. 가난하고 힘없는 자를 사랑하시긴 하지만 그런 가난을 만들어내는 사회구조에 대해서는 늘 침묵으로 일관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은 크고 화려한 성전을 좋아하시고,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 교회를 더 많이 사랑하십니다. 노골적으로 드러내놓고 말하긴 좀 뭐하지만 돈을 밝히시고 편안하고 안락한 삶을 투자한 만큼 공정하게 그 대가로 주시는 분이십니다.

 

특히 약속을 엄격히 지키시는 분이시기 때문에 한 번 구원하시면 절대로 번복하시는 법이 없습니다. 그래서 믿을만한 분이십니다. 사람들은 수시로 배반을 일삼지만 그분은 결코 배반하지 않으시는 분이시기에 평생을 의탁해도 손해날 것이 없는 분이십니다. 특히 죽은 후에는 더 크고 아름다운 것들로 넘치는 천국을 준비해놓으셨기 때문에 세상에서는 조금 미비한 부분이 있어도 그냥 감사하며 살 수 있게 해주시는 영원하신 주님이십니다.

 

이런 분을 미쳤다고 말하는 것은 정말 미치지 않고는 할 수 없는 일입니다. 한국 기독교의 비극은 아무도 예수님이 미쳤다고 말하지 않게 되었다는 사실입니다. 그것은 예수님의 말씀 속에 담겨 있는 모든 혁명적이고 급진적인 요구들을 말살하고 현실의 요구에 부응하는 기복적인 전혀 다른 종교를 만들어냈다는 의미입니다.

 

아무도 오늘날의 그리스도인들을 보고 그리스도 때문에 어리석은 사람이 되었다고 말하지 않습니다. 아무도 그리스도를 위하여 생명을 잃는 사람이 없는데도 구원은 따 놓은 당상이 되었습니다. 그런 오늘날의 현실을 지적하면 듣는 그리스도인들의 마음이 불편해지고, 은혜가 되지 않는 기독교가 되었습니다.

 

두 마음 그러한 현상의 원인을 야고보 사도는 간단하지만 명료하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두 마음'입니다.(약1:8, 4:8) 두 마음을 가지면 더 완벽할 것이라고 오늘도 사단은 우리에게 속삭입니다. 그것이 인간들을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지게 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이고, 일단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진 인간은 사단의 노리개로 전락하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결코 하나님을 대적하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그저 좋은 게 좋은 거니까 하나님과 세상, 하나님과 돈을 겸하여 택하라고 우리를 유혹합니다. 세파의 거친 모습에 겁을 먹은 인간들을 그렇게 속이고 유혹하면서 하나님과 인간을 이간질하는 것입니다. 

 

두 마음을 가진 자들은 세상에서 큰 자가 되는 것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말합니다. 부자 되고 출세하여 떵떵거리고 사는 것이 은혜라고 주장합니다. 부자도 못 되고 출세도 못한 경우도 긍정적으로 생각하고 자아를 부풀리며 사는 것이 하나님의 자녀다운 삶이라고 주장합니다. 큰 자가 되어야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고, 큰 자가 되어야 인생을 행복하게 살 수 있다고 주장합니다. 그래서 두 마음을 가진 자들은 누구나 큰 자가 되기를 꿈꾸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어리석음이 사람의 지혜보다 더 지혜롭고 예수님의 광기가 세상의 냉혹한 제 정신보다 더 온전합니다. 이방인의 소위 집권자들이 저희를 임으로 주관하고 그 대인들이 저희에게 권세를 부리는 줄을 너희가 알거니와 너희 중에는 그렇지 아니하니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모든 사람의 종이 되어야 하리라.(마가복음10:42-44) 오늘날 정부의 관료들과 공무원들을 '종복(從僕)'이라고 합니다. 영어로는 'Public Servent'입니다. 국민을 위한 종이라는 의미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선거를 위한 유행어일 뿐 실제로 그들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집권자들이며 대인들로서 민중을 임으로 주관하고 권세를 부립니다. 그들은 말로는 섬긴다고 하면서 실제로는 다스립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제자들은 그렇지 않아야 합니다. 말로만이 아니라 실제로 섬기는 자가 되고 종이 되어야 합니다. 누구나 이 사실을 다 아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조금만 주의 깊게 살펴보아도 오늘날 한국 교회 지도자들이 세상의 집권자들과 대인들과 똑같거나 그들보다도 더 권위적이라는 것을 발견하기란 어렵지 않습니다.

 

그러나 두 마음을 가진 자들은 자신이 하나님 나라의 종이 아니라 세상의 집권자들과 같음을 결코 인정하지 않습니다. 그 반대로 큰 영향력을 가진 것 자체가 성령의 역사요 하나님의 은혜라고 주장합니다. 이스라엘 역시 산당과 성전으로 나뉜 그들의 두 마음을 보지 못하거나 인정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스라엘 가운데 산당이 완전히 제거된 적은 없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의 왕을 세웠고 결과적으로 애굽의 병거와 말(힘) 그리고 인원수(대중)에 의존하는 세상의 길을 걸을 수밖에 없었고 그들의 나뉜 그 두 마음은 결국 이스라엘의 멸망이라는 파국에 이르게 하였습니다.

 

그것은 오늘날의 한국 교회 지도자들 역시 파국에 이를 때까지 자신들의 두 마음을 볼 수 없고 인정하지도 않을 것이라는 것을 시사해줍니다. 교회 밖으로 나가라 "프란치스코 교황이 천주교회에 말하는 내용은 '교회 밖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하라'는 말로 요약된다. "교회가 닫혀 있으면 병이 난다. 교회는 문을 열고 밖으로 나가라."는 교황 프란치스코의 말은 천주교 밖에서도 유명하다.

 

교회가 내부의 일에 몰두하다 보면 자칫 교회 밖에 어두울 수 있다. 그러나 교회 밖에 관심을 갖다 보면 교회 내부의 일에서 중요성과 순서를 식별하는 눈이 생기게 된다. 그리스도교는 나보다 남을 먼저 보라고 가르치는 종교다. 남을 보면서 동시에 자기 자신을 해석하는 것이다." 사실 한국교회(개신교)가 귀 기울여 들어야 할 귀중한 조언입니다. 그동안 한국교회는 거의 모든 교회가 내부 일에만 올인했습니다. 빈틈 없이 닫혀 있었습니다.

 

그래서 자기 교회 교인이 아닌 그리스도인들을 보면 경계심을 보이는 것이 일반적인 모습이 되었습니다. 자기 교회가 가장 좋은 교회이고 심지어는 자기 교회 안에만 구원이 있는 것처럼 행동 하기도 합니다.(안타깝게도 그것이 이단들의 입지 역시 단단하게 다져줄 수 있습니다.) 특히 자기 교회 목사들과 교류가 없는 다른 교회 목사들을 만날 때에는 적대감에 가까운 거리감을 둡니다.(교회가 가인이 지은 '에녹성'이 되었습니다.) 일정 규모 이상의 크기를 갖춘 교회 교인들은 작은 교회에 출석하는 이들을 마치 일류대학에 다니는 학생들이 삼류대학에 다니는 학생 대하듯 합니다.

 

교회 간의 경쟁심과 자부심이 상상을 초월하는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그러다 보니 교회가 아무리 쏟아부어도 채울 수 없는 밑 빠진 독처럼 되어 하나님 나라의 암 세포들이 되고 말았습니다. 병도 보통 병이 아닌 죽을 병에 걸린 것입니다. 교회 밖으로 관심을 옮겨야 할 때입니다. 그래야 교회 내부의 일에서 중요성과 순서를 식별하는 눈이 생길 것입니다. 초기 교회에는 아무도 자기 자신을 위해 사는 이들이 없었습니다.

 

예수님이 그러셨던 것처럼 그들은 '나' 없는 '나'를 살았습니다. 교회 역시 마찬가지였습니다. 극도로 가난했지만 마게도니아 교회는 기근에 처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기 위해 금식을 해가면서까지 '연보'를 모아 드렸습니다. 그들이 복음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렇게 그들의 시선이 언제나 밖으로 향했기 대문입니다. '교회 밖으로 나가서 가난한 사람들에게 집중하라.'는 교황의 말은 복음의 회복을 위한 결정적인 터닝포인트가 될 것입니다.

 

"예수를 모르면 하느님을 알 수 없다고 그리스도교는 말한다. 성서를 모르면 예수를 알 수 없다는 깨달음이 전통으로 굳어졌다. 새로운 가르침이 우리 시대에 덧붙여졌다. ‘가난한 사람을 모르면 예수를 알 수 없다’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을 통하지 않고는 예수에게 다가설 수 없다. 가난한 사람들에게 예수의 복음을 전하는 것이 아니라 가난한 사람에 의해서 복음을 듣는 것이다. 가난한 사람들이 생활하는 1차적 장소는 교회가 아니라 사회다.

 

교회 밖으로 나가라는 교황의 말은 무슨 뜻일까. 경제적 가난, 정치적 억압, 사회적 소외에 시달리는 사람을 가까이 하라는 뜻이다.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살피라는 당부다." 돈의 위력이 그 어떤 것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막강해진 신자유주의 시대에 복음은 더더욱 희망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복음이 복음이 되기 위해 가장 필요한 조치는 가난한 사람들의 삶을 자세히 살피는 것입니다. 그러나 사실 가난한 이들의 삶을 살피는 일은 사람들이 극도로 회피하는 가장 싫어하는 일입니다. 가난한 이들의 삶을 보고 아무런 느낌도 없을 수는 없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필요와 그들의 아픔과 고통을 보고 나몰라라 하는 것보다는 차라리 처음부터 그들을 외면하는 편이 낫기 때문입니다. 특히 교회는 절대로 밖으로 나가지 않습니다. 그랬다가는 아까운 헌금이 자신들의 의도와 다른 곳에 낭비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물론 아주 예외적으로 안 그런 교회도 있지만 생색용 내지는 선전용 기부를 넘어서는 기부나 상대의 필요에 따른 예산의 사용은 내부의 일에 몰두하는 교회로서는 아예 처음부터 불가능한 일일 뿐입니다.

 

그러나 그렇기 때문에 오늘날 교회들은 복음이 함의하고 있는 더 넓은 의미와 세상에 저항하는 존재로서의 교회의 의미 나아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도 이루어지기를 바라는 기도와 노력이 완전히 실종되고 말았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가난한 사람을 만나기 위해서 교회는 교회를 벗어나 갈등의 현장으로 나가야 한다. 교회가 우선 있어야 할 곳은 교회가 아니라 사회다. 교회에게 가장 중요한 사람은 신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이다.

 

"교회의 존재 목적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것이다"라고 교황은 한국 주교들 앞에서 분명히 말하였다. 그리스도교의 핵심은 성직자가 아니라 가난한 사람들이다." "교회는 어떻게 자기개혁을 해야 하는가. 우선 가난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돈은 교회가 믿는 교리에 속하지 않는다. 교회는 돈을 가지고 무엇을 하겠다고 출발한 단체가 아니다. 교회의 재산, 수입, 지출을 모두 크게 줄여야 한다.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가 되어야 한다.

 

우선 성직자들이 부자와 권력자들과 개인적 접촉을 크게 줄여야 한다. 부자 신자들과 주로 교제하는 성직자가 가난한 사람을 위한 교회를 찬성하겠는가." 무소불위의 권력을 휘두르고, 헌금을 유용하고, 성범죄를 저지르고, 표절과 거짓을 일삼는 몇몇 목사들을 제거하고 그들이 저지른 잘못들을 바로 잡는 것만으로는 결코 복음이 회복될 수 없고, 교회가 바르게 개혁될 수 없습니다. 설사 그 일에 성공한다 해도 그 일을 이룬 사람들은 또 다시 그 같은 성과를 올린 자신들의 노력에 매료되어 그것을 자랑으로 내세우며 또 다른 성공과 번영을 향하여 치닫게 될 것입니다. 가난은 복음이라는 핵폭탄에 불을 붙이는 도화선임을 깨닫고 교회 밖으로 나가서 가난한 이들에게 집중하는 그리스도인들이 많아지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이 가을 서정주 시인이 바라보았던 '노오란 국화꽃'을 바라봅니다. 최태선 목사 / 어지니 교회 출처: http://www.newsm.com/news/articleView.html?idxno=43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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