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바빙크-교의학 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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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헤르만 바빙크

2007. 9. 20.

 

교황의 무오성이 성경과 전통의 무오성을 따돌리고 있다. 경쟁은 전자가 후자를 점점 더 궁지에 몰거나 혹은 후자를 천천히 이름만 남기게 하는 것으로 끝나고 있다. 교황이 계시의 내용이 무엇인가를 설명할 뿐만 아니라, 역시 어떤 것이 계시의 내용임을 결정한다.

 

예수가 참되게 하나님이 아니라면, 그리고 성령으로 잉태되지 않고 부활하여 승천하지 않았다면, 동시에 그 근원적 복음에 내포하지 않았다면, 어떤 교회도 그것을 신적인 진리로 선포하고 인간의 양심에게 추천할 만한 자격이나 권리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그(성령)는 그리스도의 충만한 것, 역시 그의 진리의 지혜의 충만한 것이 교회 안에 거하도록 하고 하나님의 충만에 이르기까지 쉬지 않으신다.

 

기독교는 인간적인 탐구와 성찰의 열매가 아니었고, 계시의 열매였다. 그 때문에 처음에 신앙이 요구되었다. 사람들은 구두와 기록으로 주어진 사도들의 교훈들을 가능한 한 수용하고 묘사하고자 하였다.

 

영지주의자들은 기독교의 긍정적이고 절대적인 내용이 결여되어 있어서 교회를 통하여 거절되었지만, 변증가들은 그것들이 보존되어 있었기 때문에 교회에서 인정되었다. 전자(영지주의자들)는 다양한 철학들을 기독교에서도 받아들이는 어떤 종교적인 과정으로 생각하였고, 후자(변증가들)는 그것들을 인식하고 수용하였던 그리스도적인 종교가 옛부터 내려온 모든 진리들의 요소들을 자체 안에서 합병한 최고의 진리요 철학임을 보여주고자 하였다.

 

하나님은 옛부터 로고스(말씀)를 통하여 자신을 계시하였고 이방인에게도 진리의 지식을 전하였으나, 그러나 특별히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에게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 안에 계시하셨다. 그 안에서 모든 옛 진리가 확증되었고 완성되었다.

 

양태론적 단일신론은 신성 자신이 그리스도 안에서 육체가 되셨다고 가르쳤다. 따라서 그들은 그리스도의 신성을 인정하였으나 성부와 성자를 동일시하였으며, 역시 성부고난주의에 이르렀다. … (이 견해와 주장은) 히폴리투스, 터툴리안, 알렉산드리아 디오니시우스, 유세비우스 등에 의해서 강하게 논박되었다.

 

313년 관용칙령(고대 로마 황제였던 콘스탄티누스의 밀라노 칙령)이 교회에 평화와 안식을 선물하자, 곧 바로 신망과 명예가 뒤따랐다. … 그러나 외부로부터 오는 대적들이 극복되었을 때, 안으로부터 대적자들이 발생하였다. … 4세기부터 8세기까지의 기간은 거의 전부 기독론적인 싸움으로 이어졌다.

 

하나님은 완전한 진리요 존재와 선과 미 자체이시기 때문에 그 분 안에서만이 인간과 그의 사유와 의지에 대한 안식이 있다. … 하나님은 영혼들의 태양이시다. 우리는 그의 빛 안에서와 그 빛을 통하지 않고는 어떤 진리도 볼 수 없고 인지할 수 없다.

 

교의들이 단순하고 명제적인 형식으로 제시되는 실증신학과는 구별되게 스콜라 신학은 교의적인 자료가 어떤 과학적이고 학교에서 사용할 수 있는 방법에 따라 발전된 것을 의미한다. … 스콜라 신학은 그것의 원리로서의 이 교의들로부터 출발하고, 그로부터 출발하여 추론을 통하여 교의들의 연합을 찾고자 하며, 더 깊이 계시된 진리에로 파고 들어가 모든 반론으로부터 그것들을 변호하고 있어서 매우 부진한 상태에 있었다. … 믿음이 스콜라주의의 출발점이었다. 사람들은 교의적 자료를 성경과 전통에서 찾았고, 아무런 비판없이 받아들였다. 그것에 있어서 종종 많은 것이 정당하게 성경으로부터 기원하지 않았다.

 

칸트가 순수이성에 대한 그의 날카로운 비판을 통하여 교의학의 합리적 기초를 전적으로 깎아내린 첫 사람이었다. … 순수이성을 통하여 잃어버렸던 것을 실천이성을 통하여 회복하려고 하였다. 무조건적 명령, 도덕적 의식이 우리에게 하나님의 존재, 자유, 불멸성을 가정할 수 있는 근거를 주었다. 교의학은 도덕에 기초하게 되었고, 종교는 덕을 위한 수단이 되었으며, 하나님은 인간을 위한 비상수단이 되었다.

 

슐라이어마허의 신학에서 종교는 감정이다. … 하나님은 그에게 세계의 통일성이지, 사고의 대상이 아니다. 왜냐하면, 사고는 항상 모순대당(矛盾對當, 한쪽이 참이면 다른 쪽은 반드시 거짓이고, 한쪽이 거짓일 때 다른 쪽은 반드시 참인 관계) 속에 움직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다만 감정 안에서 향유할 수 있다. 그리고, 감정 안에서 하나님에 대해서 향유하는 것이 종교다.

 

개혁주의 그리스도인은 신론적으로 생각하고, 반면 루터주의 그리스도인은 인간론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개혁주의자는 역사 안에 서서 머물지 아니하고 이념 즉 영원한 하나님의 결정에까지 끌어 올라간다는 것이요, 루터주의자는 그 입장들을 구원사의 중심에서 취하고 더 깊이 하나님의 성정에까지 꿰뚫고 들어감을 필요로 하지 않았다. 그 때문에 개혁주의자들의 경우 선택이 교회의 핵심이고, 루터주의자들의 경우 칭의가 교회의 항존적이고 항상 출발하는 조항이다. 전자의 경우 첫째 되고 가장 중요한 질문은 어떻게 하나님께서 자신의 영광에 이르시느냐에 있고, 그와 대조적으로 후자의 경우 어떻게 인간이 축복에 이르느냐에 있다.

 

개혁주의자는 그가 모든 것을 하나님의 결정에 되돌리고 물(物)의 원인을 추적하여 앞으로 모든 것을 하나님의 영광에 유익되게 하기 전에는 쉬지 않는 반면에, 루터주의자는 현상에 만족하고 그가 신앙을 통하여 부여받은 축복에 안락하는 자들이다.

 

개혁주의 교의학의 역사는 루터주의 교의학 역사보다 묘사하기가 아주 어렵다. 개혁주의 교회는 어느 한 지역 한 민족에 제한되지 않고, 다양한 땅에서 다양한 민족들 아래 퍼져왔기 때문이다. 개혁주의 형(形)은 하나의 신앙고백 안에 기록된 것이 아니라, 수많은 신앙고백들에서 표현되었다.

 

칼빈은 모든 철학적이고 인문주의적인 이념들을 청산하고 가능한 한 엄밀하게 성경과 결합시켰다. 무엇보다도 그가 기꺼이 주장한 것은 그리스도적인 종교의 객관성, 하나님의 언약,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역, 성경, 교회와 성례에 관한 객관성을 주장하였고, 따라서 강하게 재세례파에 반대하는 입장에 있었다. … 그의 사상에 통일성과 체계를 이룩하였는데, 루터나 쯔빙글리가 할 수 없는 것이었다.

 

칼빈과 불링거의 신학 사이에는 단 하나도 사실적인 차이는 없고, 다만 형식적이고 방법론적인 차이가 있다. 그것은 타락전 선택설과 타락후 선택설 사이의 차이요, 엄밀한 신학적 출발과 언약론적인 출발 사이의 차이이다.

 

미국에서도 개혁주의 교회와 신학은 진지한 위기에 들어선 것이다. 성경의 무오성, 삼위일체, 인간의 타락과 무능력, 제한된 구속, 선택과 유기, 영원한 형벌에 관한 교의들은 은밀히 부정되거나 역시 공공연히 거절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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