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휫필드- 설교 연구

댓글 0

예수 신앙 연구가들/죠지 훳필드

2008. 8. 17.

 

 

휫필드의 설교 연구  

 

송삼용/전주 서부중앙교회 담임목사

 

35.휫필드의 설교 연구

 

1)휫필드의 설교에 대한 소명한 세기를 말씀의 불꽃으로 활활 태웠던 휫필드의 설교사역을 통해서 입증된 바와 같이. 그는 분명 평범한 설교자는 아니었던 것 같다. 존라일(J.C.Ryle)이 휫필드를 가리켜서 설교에 관한 한 18세기의 인물들 가운데 가장 위대한 사람으로 평가했던 것처럼, 그는 세기적인 탁월한 설교자였음에 틀림없다. 그렇다면 무엇이 휫필드로 하여금 그렇게 탁월한 설교자로 만들었을까? 어떤 사람은 휫필드의 설교의 탁월성을 말할 때 그의 뛰어난 웅변력을 포함한 천부적인 자질에 대해서 강조하기도 한다. 물론 휫필드가 설교자로서 최상의 재능들을 골고루 갖추었다는 것은 부인할 수없는 사실이다. 그는 일찍이 누구도 따를 수 없는 좋은 음성과 효과적인 의사 전달 능력, 설교의 태도와 동작. 그리고 어휘의 구사력 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었기 때문이다. 20세기 개혁 신학의 가장 위대한 설교가라고 평가되어 온 '로이드 존스'가 정의한 바에 의하면, 설교란 '성령의 영감을 받아서 하나님의 말씀과 영광스런 복음을 전달하는 연설이다." 그렇다면 휫필드가 아무리 뛰어난 웅변력과 설교자로서의 자질을 잘 갖추고 있었더라도 그러한 탁월한 연설의 능력만으로 한 세기의 설교의 정상을 차지했다고 말할 수 없을 것이다. 휫필드는 성령의 능력과 기름부음을 느끼지 못하고 설교한 적이 거의 없을 정도였으니, 그의 탁월한 설교는 성령의 능력과 뛰어난 웅변력, 그리고 천부적인 설교자의 자질 등이 어우러져서 만들어진 하나님의 작품이었다. 이것을 염두에 두면서 필자는 휫필드의 설교를 다루기에 앞서 먼저 휫필드의 설교에 대한 소명과 관점들을 생각해보려고 한다.

 

휫필드의 초기 생애 가운데서 발견 할 수 있는 ‘설교에 대한 소명과 확신'은 휫필드가 일생동안 설교를 위해서 자신의 몸을 불사르는데 원동력이 되기에 충분했다. 그는 죽는 한 이 있어도 설교하는 일을 포기하지 않았고. 마지막 죽기 전날 밤늦게까지 설교를 마치고 하나님의 부름을 받을 정도로 설교에 대한 열정이 뜨거운 사람이었다. 그는 실로 설교를 위해 살다가 설교 하다가 죽은 사람이었다. 그는 수만 명이 모이는 대규모의 집회로 부터 소규모의 권면 설교에 이르기까지 34년동안 4만여 번의 설교를 강행했으니, 그야말로 '설교 인생'을 산사람이었다. 휫필드가 그와 같이 설교에 대한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소위 '설교 인생'을 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초기에 가졌던 설교에 대한 불타는 소명과 확신이 가져다준 열매였다. 필자는 휫필드의 설교에 대한 소명과 확신이야말로 그의 설교를 그처럼 활활 불태울 수 있었던 장작과 같은 역할을 했으리라 확신한다. 설교에 대한 휫필드의 소명과 확신은세 가지 측면에서 생각할 수 있다.

 

첫째, 휫필드는 하나님께서 자신을 설교자로 부르셨다는 것을 확신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목회자가 되기로 결단하고 종종 목사 흉내를 내기도 했다. 이러한 휫필드의 결단은 그의 초기 생애에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래서 그는 어렸을 때부터 생애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기로 작정했다. 하지만 휫필드의 설교자로서의 소명에 대한 확신은 그러한 헌신의 결단에 의해서만이 주어진 것이 아니었다. 그것은 휫필드 자신이 나중에 지난날을 회고하면서 밝힌 바이지만, 자신은 설교자로서기 전에 하나님의 부름을 확신하기 위하여 땀을 비오듯 쏟으며 수천 번을 기도했다고 고백한 말 속에서 , 그의 불타는 소명을 확인할 수 있다. 오늘 우리 시대에 얼마나 많은 사역자들이 그 길을 가기 위해서 하나님께 수천 번을 부르짖으면서 자신의 소명을 확인할까! 휫필드는 설교자로서 그의 인생을 출발하기 전에 뼈를 깍고 살을 베는 아픔을 감수하면서 수천 번을 눈물로 기도하며 , 하나님께서 자신을 부르셨는지를 확인함으로서 그렇게 열정적인 설교 인생을 사는데 견고한 기초를 세웠다.

 

둘째, 휫필드는 설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확신했다. 그는 최초의 설교를 마치고 자신은 말씀의 권위를 가지고 설교했다는 것을 확신했다고 증언한 바있다. 휫필드는 처음 설교를 준비할 때부터 하나님의 성령의 권위에 의해서 붙들린 바 되었고, 자신의 영혼에 성령의 능력이 강하게 임한 것을 체험한 후 그 확신 가운데서 설교하기 시작했다. 따라서 휫필드는 설교를 통해서 한 말이 자신의 말이 아니라 성령이 하신 말씀이라는 확신 가운데 설교함으로서 영적인 권위에 사로잡힌 설교자가 되었던 것이다. 물론 거기에는 하나님을 향한 불타는 열망으로 가득 찰 은밀한 기도가 있었다는 것은 두말할 나위도 없다. 그는 한 주간에 40-60여 시간씩 수천. 수만 명의 군중들에게 설교하고 난 후에도 저녁에는 휴식을 취하는 것이 아니라 영적인 능력과 권세를 공급받기 위해서 기도로 씨름하면서 보낼 정도였다.

 

휫필드는 자신의 설교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로 무장할 때 죽어가는 영혼들을 건져낼 수 있다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에 그와 같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다. 결과적으로 휫필드는 자신이 설교할 때마다 청중들 위에 복음의 권세가 가득하며 , 성령의 불길이 활활 타오르는 것을 느끼면서 설교할 수 있었다. 휫필드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대해서 더욱 강한 확신을 갖게 된 것은 설교자로서의 영적인 책임감 때문이었다. 하나님의 말씀의 권세 외에 어떠한 교훈과 연설도 영적으로 죽어가는 사람을 살릴 수 없다는 것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는 죽어가는 영혼을 살릴 수 있는 길은 설교자가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를 가져야 한다는 것을 확신했다.

 

더구나 그는 여러 차례 말씀의 권세 앞에 거꾸러졌던 체험이 있었다. 따라서 말씀의 권세에 사로잡힌 바 된 휫필드는 일생 동안 그 말씀의 권세를 확신하며 설교함으로서 당시에 죄에 대해서 감각을 잃어버린 채 방황하고 있던 수많은 영혼들을 그리스도께로 인도할 수 있었던 것이다.

 

셋째, 휫필드는 설교자의 위대성을 확신했다. 휫필드에게 있어서 설교는 하나님의 부름에 의해서 세움을 받은 거룩한 사역이었다. 그는 설교의 사역이 어떤 사람으로 하여금 분명한 하나님의 소명을 깨달을 수 있도록 해주는 거룩한 노동(hoIy labour)이라는 것을 알았다. 여기에서 그는 설교자의 위대성을 발견했다. 휫필드에게 있어서 거룩한 노동을 수행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천군 천사도 부러워할 위대한 일꾼들이었다. 휫필드는 최종적으로 설교자의 길을 결단하기까지 그렇게 많은 날들을 기도와 번민으로 보냈다.

 

그 이유는 그토록 위대하게 생각했던 설교자의 길에 대한 두려움 때문이었다. 그러한 두려움과 번민 가운데서 휫필드는 설교자의 길을 가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했다. 동시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자신의 설교 사역을 지켜주시리라는 것을 믿으면서 자신의 영혼과 몸을 하나님께 기꺼이 드렸다. 휫필드는 설교자의 길을 가기로 결단하면서 "자신의 몸과 마음과 피와 모든 것"을 그리스도를 위해 포기하고 설교사역을 위해 자신을 헌신했다. 그는 설교자의 위대성을 확신하고 있었기 때문에 그처럼 자신의 모든 것을 포기할 수 있었던 것이다.

 

2)휫필드의 설교 준비18세기 중엽 영국 전역과 미국에서 설교에 있어서 휫필드 만큼 많은 영향을 끼친 설교자는 없었다. 많은 사람들이 휫필드를 가리켜 영어권 설교 역사 가운데 최대의 설교자라고 찬사를 아끼지 아니한 이유가 바로그것이다. 그처럼 위대한 설교자 휫필드는 설교를 어떻게 준비했을까? 휫필드의 설교준비는 네 가지로 구분해 볼 수 있다.

 

첫째, 휫필드는 광범위한 독서를 중단하지 않았다. 휫필드의 설교관은 철저히 하나님 중심적이고 긴박한 메시지의 선포라는 확신을 갖고 있었지만. 준비 없이 선포하는 즉흥 설교는 아니었다. 대체로 휫필드는 탁월한 웅변력에 의존하면서 준비 없이 행한 즉흥 설교자라고 인식되어 왔다. 뿐만 아니라 휫필드의 뛰어난 웅변술 때문에 흔히 그의 설교 준비에 관한 부분들은 쉽게 지나쳐왔다. 하지만 휫필드는 옥스포드에서 석사과정을 공부하는 가운데 무려 150편의 설교를 준비하려 했던 시도나 현재 출판되어 보존된 70여 편의 설교내용을 볼 때 그가 설교준비에 소홀히 했다거나 준비 없이 행한 즉흥설교자였다는 주장은 근거가 희박하다. 심지어 초기에 그는 철저히 설교를 준비해서 다른 사람에게 조언을 들을 정도로 설교 준비에 철저한사람이었다.

 

휫필드의 설교 준비에 있어서 손꼽을 수 있는 것은 광범위한 독서를 중단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의 광범위한 독서는 다양한 주제와 소제로 읽어가며 자유롭게 설교할 수 있는 기초가 되었다. 실로 휫필드의 지식의 창고에는 항상 풍성한 메시지의 재료가 가득 차 있었다. 결국 그의 불같은 메시지는 이미 광범위한 독서를 통해서 축적된 다양한 지식들로부터 나온 것들이었다. 휫필드가 사람들에게 독서를 통해서 자기 자신을 개발할 것을 권면하면서 추천했거나 언급한 책들은 약350여 권이나 될 정도였으니 . 그가 어느 정도 독서에 충실했는지 알 수 있다. 이것은 휫필드의 사상과 설교의 배경이 광범위한 독서에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둘째, 휫필드는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에 집중했다. 그가 광범위한 독서를 중시했지만 그 중에서 가장 집중했던 책은 역시 '성경' 이었다는 것을 결코 간과해서는 안된다.

 

그는 일생을 통하여 성경을 읽고 묵상하는 일을 기쁨으로 행하였다. 그는 주로 헬라어 성경을 사용하면서 본문의 깊은 뜻을 찾으려고 했고, 설교에서도 종종 그것을 언급했다. 그의 기본적인 생각은 다른 사람들이 번역해 놓은 원문번역보다는 자신이 직접 그 구절이나 본문을 해석한다는 것이었다. 경우에 따라서는 그의 편지에서조차도 헬라어를 인용했던 것을 보면 그가 헬라어에 능통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휫필드는 또한 라틴어도 능통했기 때문에 라틴어로 기록된 신학서적을 종종 읽었다.

 

당시 순회 설교자들이 보통 설교자들보다 성경을 읽고 연구할 수 있는 시간을 갖는다는 것은 극히 어려운 일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휫필드는 매일 새벽 4시면 일어나서 한 시간을 기도로 보내고 나서 5시부터는 매튜 헨리 주석 (Matthew Henry's Commentary)을 보면서 성경 본문을 지속적으로 연구했다. 그는 성경 속에서 늘 기쁨을 얻었고, 성경을 통해서 위로부터 오는 능력과 새 생명을 매일 공급받았던 것이다. 여기에서 우리는 휫필드의 능력 있는 설교의 비결은 '기도‘ 와 깊이 있는 ’말씀연구'로 지속된 경건 생활에 있었다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그렇기 때문에 휫필드의 위대성은 그의 웅변력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의 경건에 있다는 평은 조금도 지나치지 않는다.

 

셋째, 휫필드는 말씀 한 절, 한 절을 놓고 기도로 준비했다. 이것은 휫필드가 가졌던 독특한 설교 준비 방식인데, 그는 영어와 헬라어의 각 단어와 행까지도 기도하면서 준비했다. 그래서 그 단어나 절 혹은 행의 기본적인 의미가 확인될 때까지 연구했고, 마음에 기쁨과 확신이 올 때까지 그것들을 위해서 기도를 그치지 않았다. 그는 이미 사역의 길에 들어서면서 결단하기를 '어느 때 보다도 절제 있는 삶으로 자신을 기도와 말씀 연구에 전력하기로' 결단한 바 있었다. 휫필드는 장차 자신의 시적이 기도에 의해서 준비되어져야 한다는 것을 확신하고 있었다. 그래서 그는 설교준비에 있어서 말씀 한 절, 한 절을 위해서 기도로 준비했던 것이다. 그는 기도할 때마다 늘 그리스도의 임재와 성령의 동행하심, 그리고 마음의 평화를 확신하게 되었는데. 그것은 곧 능력 있는 설교의 밑거름이 되었다.

 

넷째, 휫필드는 설교 준비에 있어서 버키트(Burkitt)의 주석이나 매튜헨리 주석(Matthew Hen교's Commentary)을 주로 참고했는데. 특히 후자를 집중적으로 인용하거나 의존했다. 지금까지 휫필드의 전기 작가들은 그가 매튜헨리 주석을 가까이 하고 종종 인용했다는 사실을 언급해왔지만, 구체적으로 어느 정도 인용하고 의존했는지에 대해서는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휫필드의 설교를 연구한 데이빗 크럼프(David Crump)는 휫필드와 메튜 헨리의 설교 윤곽의 비교 분석을 통해서 휫필드가 어느 정도 매튜 헨리를 의존했는지 다음과 같이 밝힌 바 있다.

 

이와 같은 예에서 보듯이 휫필드는 이 두 설교에 관한 한 매튜 헨리의 설교를 집중적으로 의존하고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여기에서 제시한 윤곽 뿐만 아니라 설교의 전체적인 내용을 관찰하면 다음과 같은 특징이 드러난다. 첫째, 전체적인 설교 윤곽이 유사하다. 둘째, 상당수의 증거 본문(Proof-text)들이 공통적이다. 셋째, 핵심 구절을 사용하는 것이 일치한다. 넷째, 일반적인 교훈이 일치한다. 다섯째, 사상의 전개가 일치한다. 이와 같이 휫필드는 그의 설교에서 매튜 헨리를 집중적으로 의존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휫필드가 매튜 헨리의 주석을 보면서 성경 본문을 한 구절 한 구절 집중적으로 분석해서 연구하여 설교를 준비했다는 사실은 그가 설교준비 없이 일방적이고도 집중적으로매튜 헨리 주석을 의존했으리라고 단정하는 것은 너무 성급한 결론인 듯하다. 오히려 휫필드가 매튜 헨리를 그렇게 집중적으로 의존한 이유는 그가 청교도 사상과 탁월한 통찰력을 가진 경건한 주석가였기 때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3)휫필드의 설교 원고휫필드는 교회 내의 설교보다는 야외 설교에서 그 기량을 더욱 발휘하면서 수만 명이 운집된 회중들에게 날마다 설교했다. 그러면 휫필드가 매일 한 두시간, 5-9회씩이나 되는 많은 설교원고를 어떻게 기록했으며 ,어떤 식으로 전달했느냐 하는 것은 관심의 대상이 아닐 수 없다.

 

필자는 앞서 휫필드가 설교할 때 준비 없이 행한 '즉흥설교자 라는 그동안의 인식을 비판하면서 그는 설교 준비에 철저한 목회자였다는 것을 밝힌 바 있다. 위의 질문과 관련해서 달리모아(Arnold A. Dallimore)는 휫필드가 설교를 시작한 후 약일 년 반 무렵까지는 준비된 설교원고를 읽는 식으로 설교했다고 말했다. 초기 몇 달 동안 행했던 휫필드의 설교 아흡 편의 원고가 그대로 책으로 출판된 것을 보면 이러한 견해는 그 타당성을 갖는다. 뿐만 아니라 휫필드가 같은 설교를 몇 군데서 다시 반복해서 했다는 것도 충분한 근거가 될 수 있다. 그는 그때마다 똑같은 설교원고를 읽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그가 성직 안수를 받은 후 최초로 했던 전도서 4장 9-12절의 '공동체의 본질과필요성'(The Nature and Necessity of Society)이라는 설교는 나중에 런던과 브리스톨에서 몇 번이나 반복되었다.

 

달리모아(Arnold A. Dallimore)는 휫필드가 조지아 항해 이후부터 즉석 기도와 강론을 실행하면서 지금까지 해왔던 설교 방식을 수정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에 의하면 휫필드는 조지아 항해 이후에 원고를 읽어나가는 지금까지의 설교 습관을 깨뜨렸다. 필자가 보기에 그 이유는 자신이 초기 일 년 이상동안 수많은 회중들 앞에서 설교한 경험을 쌓았기 때문에 이제 그의 눈을 더 이상 설교원고에 고정시켜 둘 수 없었기 때문이었으리라 생각한다. 더욱이 그가 매일 새벽 4시에 일어나서 기도와 말씀 연구를 했다고 할지라도 종종 새벽 다섯 시부터 시작하여 밤늦도록 설교하면서 한주에 5-6편의 설교원고를 모두 기록한다는 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었을 것이다.

 

아마 휫필드는 그러한 이유 때문에 설교원고를 기록하는 습관이나 설교스타일을 바꾸었는지도 모른다. 아무튼 휫필드는 그때부터 이미 준비된 설교 원고를 의존하되 깊은 사상과 자유로운 언어에 기초해서 원고에 매이지 않고 설교하기 시작한 것이다.

 

데이빗 크럼프(David Crump)역시 그의 설교 원고와 전달방식의 변화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첫째, 휫필드는 그의 초기 설교에서 설교의 모든 원고를 완전히 써서 그것들을 강단에서 그대로 읽었다‥‥둘째, 휫필드는 초기 야외 설교를 시작할 때도 전과 같이 설교원고를 계속해서 썼다. 하지만 그때는 그것을 읽어나가는 것보다 즉흥적으로 전달할 목적으로 그 원고를 이용했을 뿐이다. 그의 설교 스타일이 즉흥적인 탁월함으로 개발되기 시작한 것은 바로 이 기간이었다‥‥셋째, 휫필드는 종종 설교를 즉흥적으로 했지만 그때는 나중에 원고를 다시 쓰기도 했다. 그 원고의 사본은 후에 친구들에게 전해준 것으로 알려졌다‥‥넷째, 휫필드가 원고를 전혀 기록하지 않았던 때도 있었는데, 그것들 가운데 몇 편만 청중의 한사람에 의해서 기록되었다. 가장 좋은 예는 1741년 스코틀랜드의 캠버슬랑(Cambuslang)에서 했던 그의 설교들이다.""

 

크럼프(David Crump)의 견해는 상당히 구체적이고 설득력이 있으나 전혀 원고 없이 설교했다는 네 번째 부분에 있어서는 받아들이기 힘든 면이라고 보여 진다. 왜냐하면 그는 이 부분에 대한 명백한 근거를 제시하지 않고 있을 뿐만 아니라 휫필드가 전적으로 원고가 없이 설교했다는 것은 설교 사역에 임하는 그의 태도와도 일치하지 않는 듯 하기 때문이다.

 

오히려 필자의 견해로는 휫필드가 모든 설교 원고내용을 기록하지 않았다 할지라도 어떤 형태로든지 철저히 준비된 원고는 소유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 이유는 초기 설교원고에 의해 출판된 설교 내용들과 원고 없이 행해졌다는 후기의 출판된 설교의 내용들의 흐름, 조직, 사상, 분량 등을 면밀히 검토해보면 그 차이를 거의 발견할 수 없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그렇게 철저히 시간과 자신을 관리해왔던 그의 성품으로 보건데 아무리 자신이 능수능란한 설교자였다 할지라도 그 탁월함을 자랑하듯 아무런 준비 없이 강단에 서서 설교했다는 것은 상상할 수 없는 일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휫필드는 그동안 쌓아온 자신의 독특한 성경 연구스타일, 곧 성경의 절과 구절의 원문을 세밀하게 연구한 독특한 스타일과 광범위한 독서의 량을 기초해서 자유자재로 표현하며, 능수능란하게 설교했을지라도 그는 분명 사전에 준비된 원고에 의해서 설교했다는 것은 결코 무리한 추측이 아닐 것이다.

 

로이드 존스(D.M.Lloyd Jones)가 휫필드를 가리켜 '즉흥설교자‘라고 한 것은 휫필드가 아무런 준비도, 원고도 없이 설교했다는 것이 아니고 천부적인 설교의 능력과 기량을 소유한 그가 원고에 의존함이 없이 자유롭게 설교했다는 의미인 듯하다.


click