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성경의 올바른 사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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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칼빈

2010. 7. 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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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의 올바른 사용

(딤후 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검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마귀는 우리를 속이고 죄악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계략을 꾸미면서 끊임없이 도전해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복종해야 할만큼 말씀에서 얻는 유익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씀을 존중하고 복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런 반박을 받지 않고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부인하므로 수치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씀을 의심케 하려는 몽상가들이 모든 세대에 걸쳐 항상 있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악한 모든 것은 그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모독하고 하나님께 대한 험담을 합니다.

 

우리가 율법과 예언서와 복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와 복음 속에서 당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이 변명하지 못하도록 사도 바울은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우리가 율법과 예언서 안에 내포되어 있는 내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영속성과 불멸성을 지닌 성경

또한 그는 누구도 작 마음대로 좋아하는 것만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부분적으로만 복종하지 않도록 모든 성경 말씀에는 존엄성이 있다는 사실과 그 모두가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우리의 기분에 맞추어 성경 말씀을 고르거나 발췌해서는 안 되고 전체를 예외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여기서 한 말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성경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 때 쓰고 있던 말씀이나 다른 사도나 전도자들이 쓴 말씀을 의미하지 않고 구약 성경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과 예언서가 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설교되어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히 보존되고 남아야 할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제쳐놓고서 그것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무시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회당이나 주막에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이나 예언서가 필요 없다”라는 평범한 속담을 만들었습니다. 이 말은 터키 사람들에게서처럼 그들 가운데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들에게 제동을 가하면서 만약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복종심을 증명하려면 율법과 예언서가 우리의 생활을 다스려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는 우리의 생활이 그것들에 의해서 규제되어야만 한다는 것과, 그 말씀은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없고 또한 변화시킬 수 없는 영속적이고 불멸의 진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얼마 동안만 유용하도록 일시적 교리로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진리는 오늘날에도 권위가 있습니다. 만약 그 권위가 약해질 우려에 부딪친다면 차라리 이 세상의 멸망하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한 말의 뜻은 우리가 자신을 성경에 의하여 다스리도록 힘을 써야 하고 지혜를 성경 이외의 다른 곳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좋아할 것인가를 선택할 재량을 주시지 않으시며 우리로 하여금 성경 말씀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것을 인정하여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주는 절대적 유익

자! 여기에 제시된 두 가지 점을 주의해서 살펴봅시다. 그는 먼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라고 했으며 그리고 “유익하다”라는 말을 첨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매우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할 때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통제하려고 감히 망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움을 벌이고 성경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겠습니까? 어떤 이유로 성경이 만들어졌습니까? 성경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며 그 안에 세상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반항자가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굴복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두 번째로 이렇게 첨가했습니다. 더욱이 경의를 표함으로써 하나님께 돌릴 경외심 이외에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실 때에 우리의 유익과 구원을 주신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무익한 일로 우리를 분주하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면 성경의 내용 중에서 선하지 않거나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고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그렇게 거저 주시는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권능이 성경 속에 나타난다는 것을 알려 줌으로써 성경을 찬양합니다. 그러한 후에 우리로 하여금 성경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창출하시고 목표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깨달아 거기에서 유익을 얻겠다는 열정과 욕망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라는 것을 우리가 시인하지 않는 한 성경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합시다. 우리가 모세나 어떤 선지자에 관한 기록을 읽을 때 그것이 유한한 한 인간의 족적일 뿐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우리를 불태우는 하나님의 영이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려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비로소 성경에는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그가 말하는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가면과 덮개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은 처음부터 속임을 당하고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처음부터 속임을 당하고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된 교리의 독이 금제 컵에 담기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라는 이 귀한 슬로건 밑에 숨겨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에 만족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견고히 보증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사단의 환상이나 사람들이 꾸며낸 동화가 아니라는 사실과 성경에 담겨 있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는 점과 하나님께서 그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선하심에 경의를 표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진리를 집어넣고 밀봉하시며 우리가 그 은혜를 깨닫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를 무지한 상태로 그냥 두시므로 그들은 어차피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한 말들을 취합해 보면 하나님의 교회 그 자체에 어떤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만이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어떤 교리를 인정하려면 그 교리는 인간의 권위나 인간의 지혜에서 따온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눈여겨볼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를 검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법률과 규례를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정말로 우리의 왕이십니다.

 

말을 시키신 분은 하나님

우리의 영혼이 우연히 인도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형식적인 가장을 잘 할지라도 그것은 위장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성경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모세가 탁월한 사람이었다거나 이사야가 대단히 웅변적이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인간적인 명성을 높여 줄 만한 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기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말을 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으로 즉 그들에게 맡긴 재물을 감독하는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것들이 잘 지켜졌다면 인간은 지금 천주교도들이 처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혼란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은 모두 인간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에는 위선 이외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들이 만든 의식을 지킵니다.
그러하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성경에만 의지하라고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도 바울은 모든 인간의 권위를 배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위에 우뚝 솟은 탁월성을 소유하고 계시므로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목회의 길을 택할 때는 우리를 보내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기쁜 소식을 가졌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말씀하십시오. 다시 말하면 그가 무모하게 나서거나 자기가 만든 이론으로 꿰맞춘다는 식의 인상을 주지 말고 순수한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인하여 존귀히 여김을 받도록 하나님의 교훈이 사람들을 교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유익과 구원을 싫다하는 자 있는가

사람이 만든 교리가 여기 이렇게 땅바닥에 버려졌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러한 일이 다시는 허용되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그것을 추방합시다. 복음의 단순성을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유념합시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자비로우셔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통해서 주님의 뜻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것은 꽉 붙잡고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양심을 묶어서 그들 멋대로 신앙의 신조를 만들지 못하게 합시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모든 성경은 유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성경이 유익하다면 그것을 공부하는 데 전념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서 유익과 구원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의 행복만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화가 있을 찌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의 의견과 좋아하는 감정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교리 즉 성경의 전 내용에 기꺼이 복종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다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경을 설명할 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교훈에 의해서 유익이 되고 그것이 주는 그르침을 받아들이도록 제 주위를 항상 성경 말씀으로 에워싸야 합니다. 만약 제게 이런 애정이 없어서 저의 설명을 듣는 사람에게 감화를 주지 못하면 저는 신성 모독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는 결과가 됩니다.
또한 어리석은 공론을 구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 사람이나 기분전환을 하기 위하여 설교를 들으려고 오는 사람은 복음을 더럽히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본래의 용도에서 어긋나게 사용하여 성경을 통해서 유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 속에서 문제점만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과 구원만을 구하신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가장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성경을 오염시켜 성경이 우리의 환상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진리에 의한 교육만이 확실성 알게 해

성경이 우리에게 유익하게 되도록 만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깨달아 우리는 가르침을 받으려 와야 합니다. 이제 이 유익이라는 무엇인가를 검토하고 알아보는 일이 우리들 각자에게 남아 있습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이 말 한 마디만 선언하였다면 그 의미는 다소 막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매우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한 말의 뜻을 오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이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성경의 용도를 한 가지로만 표현하거나 사용치 않게 하기 위하여 교훈에 대해서 말할 때에 책망하기 바르게 하기 그리고 교육하기라는 말을 첨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여 주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도 냉담하여 그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최대한의 열성을 내도록 격려하셔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과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경 안에는 죽은 교훈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께 나오도록 분발시키는 책망과 바르게 함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악한 자를 교화하는 말씀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교훈에 유익하다”고 말한 후에 책망하기, 바르게 하기, 등을 첨가했습니다. 왜 교훈을 먼저 썼을까요? 그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면 권면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우리는 우리에게 가르쳐진 것은 선하고 참되고 옳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훈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진리 안에서 교육되어야 하며 전적으로 진리 안에서 결심을 해야 하고 진리로 교훈을 받아 진리의 확실성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교훈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어서 진지하고 의롭게 하나님을 닮아 가는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하늘나라의 생활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약한 감정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닮아야 합니다.

복음의 교리를 몇 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전적으로 믿는 것이며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분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교훈 통해 과거의 참상을 보게 해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찾아가야겠다는 담대함이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언자로 임명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는 죄와 악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멋대로 행동하지 않는 법과 순결한 마음과 영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내포되어 있는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이 책망하기라고 말했을 때의 그 뜻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 뜻은 이런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싶으면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설명될 때에 믿는 자가 교화될 뿐만 아니라 만약 믿지 않는 자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교훈을 듣게 되면 그는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비록 그 불신자가 어둠에 휩싸여 있기 자기의 무지에 만족해 왔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충분히 감화시켜서 그가 살아 왔던 과거의 참상과 죄악을 보게 만드십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한심스러운 그의 처지를 보게 될 때 그에게 실제로 하늘 문이 열려 있으며 사람은 이 지구상의 삶뿐만 아닐 더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지기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불신자들은 책망을 받습니다.


그것을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비밀한 말씀이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자기 자신을 주의하지 않게 되고 우리의 마음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되고 우리 영혼의 구원을 잊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마음 소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우리의 전 생활을 돌아보고 우리의 부정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준비된 선고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들 자신의 재판관이 됩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책망이라는 단어를 써서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앞에 놓인 하나님의 축복을 보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그것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리들 자신을 엄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석 앞으로 출두하라고 소환하시는 것처럼 하나님 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가 한 악한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천국의 공기를 들여 마실 때 우리는 옳은 길에서 벗겨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복종하는 법을 깨닫게 하는 성격

그렇게 책망 받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므로 바르게 함이 똑같은 방법으로 첨가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개혁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씻겨져 있어야하며 우리의 죄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죄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 분리시키기 위해 우리는 강력히 다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그러한 생각을 가질 때 비로소 정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은 느낌을 갖게 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강제로 그러한 경지에 끌리어 와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맛있는 음식으로 취해 있고 또 우리가 어리석은 생각이나 공상에 빠져 있어 그것에 속고 있다면 바르게 하는 일을 즉각적이고 엄격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개조하시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해 달라고 의탁하기 위함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행동이 마땅치 않고 옳지 않은 것을 볼 때 그냥 “왜 그렇게 했니?”라고 묻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여 “한심한 녀석아! 네가 나에게 이렇게 보답하라고 너를 기르고 양육했겠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가 너를 그렇게 점잖게 대해 주었는데 나에게 이런 명예롭지 못한 짓을 하는 것이 너에게 어울리니? 너는 마땅히 교수형 집행자의 손에 넘겨져야 한다”라는 말을 들어도 우리에게는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불효자들이 그들의 아비들에게 반항했던 것보다 하나님께 더 반항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를 내실 만한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속에는 다루기 힘든 어떤 열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열정을 우리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쓰셨다는 사실입니다.

 

필요하면 뜨겁게 책망하라

자! 이제 어떤 사람이 성경을 설명할 때에 성경이 단순한 역사에 불과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성경에 관해서 한 말은 아무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파할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말씀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선하고 충성스러운 목자의 임무는 성경을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힘과 권능을 나타내도록 열성과 날카로움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곳에서 교회의 목자는 성가실 정도로 열성적이어야 하며 무엇이 선한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고 그들을 책망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겸손하고 온유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책망함에는 아무튼 바르게 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누구라도 “이것은 감당하기 어려우니 이러한 종류의 것은 취급하지 말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책망을 견디지 못하는 자는 차라리 하나님 의외의 다른 주인을 찾도록 내버려두십시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들을 기꺼이 받을 것입니다.

바르게 하려고 위협을 가하면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들은 온화함으로 그들의 마음이 사로잡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악마의 학교에 보냅시다. 악마는 아첨을 할 것입니다. 네! 그리고 그들을 멸망시켜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성도들은 그 교훈을 받아들인 후에 겸손해져야 하며 책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구도 실수를 할 때면 훈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모든 죄악에서 깨끗해지기 위해서 그들이 저지른 죄와 악에 대해서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교훈으로 가르침 받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제도가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함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첨가했습니다.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이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할 때 그는 모든 인간적인 것을 배제하였으며 우리가 사람이 도입한 제도를 지키는 것으로는 의롭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천주교도들이 같은 인간이 그들에게 과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킴으로써 그들이 한 모든 노력이 어떻게 허사가 되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의로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가 그렇게 명령했다는 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 있는 내용 이외에는 종교도 교리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네 그렇습니다. 성경 안에만 의로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주교도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따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에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의 삶이 매우 은혜롭기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인간의 일에 뿌리를 두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과해 주신 것만 따릅시다.
만약 우리의 삶을 성경에 있는 가르침에 따라 규제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의롭다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람의 교훈은 실패하며 하나님께서 증오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의로 교육하기”라고 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둡시다.


다시 그는 훌륭한 성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인식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하는 법과 말을 잘하고 민감하게 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만약 인간이 복음을 통해서 유익을 얻는지 못 얻는지를 알아보고 싶다면 그의 생활을 주목해 봅시다. 사람들은 제법 그럴 듯하게 말할 줄도 알고 나름대로 경건한 생활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유익을 얻는 법’도 배워야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고문으로 모셔서 말씀에 의해 떳떳이 행하고 또 우리의 삶을 이루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같이 할 때 하나님의 사람은 온전케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의로움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인간의 창안물들은 모두 사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증오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의향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것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허용하시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규례 안에서 억제하지 못하는 그런 모호한 용기가 있음을 보고 그 병폐를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있으면 우리의 생활은 올바르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덕과 거룩함이 있다고 마음껏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에 계시는 재판관 앞에 나오게 되면 모든 것이 겨와 같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제도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제도와 섞어버리면 모든 것을 해치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것은 무엇이나 아무 값어치가 없고 썩어빠진 것뿐이라고 결론을 내려도 됩니다.

천주교도들은 어떠한 성자를 위해 저녁에 금식하는 것,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사순절을 지키는 것, 성자에게 시중드는 것, 이 제단 저 제단을 찾아다니는 것. 이 교회 저 교회를 방문하는 것, 이사에 참석하는 것, 순례 여행을 하는 것 등을 선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법률과 규정을 만들었으나 그것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대 재판관 앞에 출두하여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한 명세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유익을 얻으면 모든 선한 일을 한 데 넉넉히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천주교도들이 만들어낸 전통과 제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파묻히는 것 같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만든 전통의 백분의 일만큼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온전함을 측정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의도적으로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더 첨가한 것은 무엇이나 배격하며 그것을 인정하시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이 제정한 법규를 아무 쓸모 없이 만듭니다. 그것은 그들의 죄를 배가시켜 줄뿐입니다.

 

괴물이 아닌 자 라면 진리를 확신한다.

“율법과 예언서에는 그렇게도 많은 공정함이 있는데 복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음에 대해서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율법이나 예언서에 대해 일점일획도 가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복음이 전에 가르쳐 준 것을 더 분명하게 해 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살았던 선조들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은혜를 내리셨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문제를 더 분명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율법과 예언서에 바르게 함과 온전한 의로움이 있다고 말할 때 그 말은 복음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성경 말씀 즉 신약과 구약에는 이와 같은 일치함이 있습니다. 율법에 내포되어 있는 교훈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사도들에 의해서 친근하게 가르쳐졌기 때문에 이것을 해야 한다, 저것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태초부터 명령된 것에 국한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아주 분명한 말로 알려 주셨고 우리가 그것을 믿어야 할 여러 가지 이유를 말씀 하셨기 때문에 사악한 괴물이 아닌 이상 우리는 그 진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유익을 얻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상에 따라 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 경건하게 생활하는 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생활을 규정지을 확실한 규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이 성경 말씀을 향하게 합시다. 그러면 하늘에 계시는 재판관이 우리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더 많은 관심을 모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접근하셔서 당신의 뜻을 쉬운 방법으로 제시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지 아니하면 자신을 조금이라고 변명하지 못할 것입니다.span>

(딤후 3:16)“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17)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신령한 검이라고 불리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무장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이 세상에서 마귀는 우리를 속이고 죄악 속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온갖 계략을 꾸미면서 끊임없이 도전해 오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가 아무런 반박도 하지 않고 복종해야 할만큼 말씀에서 얻는 유익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그것이 우리가 말씀을 존중하고 복종하는 마음으로 받아들여야 하는 또 하나의 이유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은 아무런 반박을 받지 않고 받아들여져야 한다는 당연한 사실을 부인하므로 수치를 당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말씀을 의심케 하려는 몽상가들이 모든 세대에 걸쳐 항상 있어 왔던 것이 사실입니다. 이 세상의 악한 모든 것은 그 앞에 고개를 숙여야 한다는 사실을 솔직하게 고백하면서도 끊임없이 하나님의 모독하고 하나님께 대한 험담을 합니다.

우리가 율법과 예언서와 복음 속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찾지 못한다면 그것을 어디서 찾을 수 있습니까? 하나님께서는 율법과 예언서와 복음 속에서 당신의 생각을 우리에게 보여 주십니다. 그러하기에 사람들이 변명하지 못하도록 사도 바울은 만약 우리가 하나님을 공경하고 하나님께 복종하는 삶을 살려고 하면 우리가 율법과 예언서 안에 내포되어 있는 내용을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분명히 밝혔습니다.

 

영속성과 불멸성을 지닌 성경

또한 그는 누구도 작 마음대로 좋아하는 것만을 선택하여 하나님께 부분적으로만 복종하지 않도록 모든 성경 말씀에는 존엄성이 있다는 사실과 그 모두가 유익하다고 말했습니다. 간단히 말해 사도 바울은 우리가 우리의 기분에 맞추어 성경 말씀을 고르거나 발췌해서는 안 되고 전체를 예외 없이 받아들여야 한다는 사실을 우리에게 알려 주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여기서 한 말의 뜻을 알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가 성경에 대해서 말할 때에는 그 때 쓰고 있던 말씀이나 다른 사도나 전도자들이 쓴 말씀을 의미하지 않고 구약 성경을 의미했기 때문입니다. 이와 같이 율법과 예언서가 늘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설교되어야 한다는 그의 가르침을 우리는 깨달을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히 보존되고 남아야 할 교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율법을 제쳐놓고서 그것에 대해서 전혀 이야기하지 않는 사람은 무시되어야 합니다. 그들은 그들의 회당이나 주막에서 “우리는 더 이상 율법이나 예언서가 필요 없다”라는 평범한 속담을 만들었습니다. 이 말은 터키 사람들에게서처럼 그들 가운데에서도 흔히 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기독교인들에게 제동을 가하면서 만약 하나님을 향한 우리의 믿음과 복종심을 증명하려면 율법과 예언서가 우리의 생활을 다스려야 한다고 강변했습니다. 그리고 사도는 우리의 생활이 그것들에 의해서 규제되어야만 한다는 것과, 그 말씀은 이랬다 저랬다 할 수 없고 또한 변화시킬 수 없는 영속적이고 불멸의 진리라는 것을 우리가 알아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왜냐하면 이것은 하나님께서 얼마 동안만 유용하도록 일시적 교리로 주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러하기에 하나님의 진리는 오늘날에도 권위가 있습니다. 만약 그 권위가 약해질 우려에 부딪친다면 차라리 이 세상의 멸망하고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한 말의 뜻은 우리가 자신을 성경에 의하여 다스리도록 힘을 써야 하고 지혜를 성경 이외의 다른 곳에서 찾지 말아야 한다는 것임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무엇을 좋아할 것인가를 선택할 재량을 주시지 않으시며 우리로 하여금 성경 말씀에 내포되어 있는 모든 것을 인정하여 모든 면에서 하나님께 순종하도록 하심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이 주는 절대적 유익

자! 여기에 제시된 두 가지 점을 주의해서 살펴봅시다. 그는 먼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라고 했으며 그리고 “유익하다”라는 말을 첨가했습니다.
사도 바울은 우리로 하여금 성경을 사랑하고 성경을 매우 겸허한 마음으로 받아들이는 것은 가치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그가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고 말할 때 죽을 운명을 갖고 태어난 인간이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을 통제하려고 감히 망발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 그 목적입니다.

보잘것없는 인간이 하나님께 대항하여 싸움을 벌이고 성경을 받아들이기를 거절하겠습니까? 어떤 이유로 성경이 만들어졌습니까? 성경은 인간이 만든 것이 아니며 그 안에 세상적인 것은 아무 것도 없다고 했습니다.
자신이 하나님께 대항하는 반항자가 아니라는 것과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는다는 것을 보여주려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성경에 굴복해야만 합니다. 사도 바울은 두 번째로 이렇게 첨가했습니다. 더욱이 경의를 표함으로써 하나님께 돌릴 경외심 이외에 우리는 하나님이 성경을 통해서 즐거운 마음으로 우리를 가르쳐 주실 때에 우리의 유익과 구원을 주신다는 것을 고백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나님은 무익한 일로 우리를 분주하게 만들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가 성경을 부지런히 읽으면 성경의 내용 중에서 선하지 않거나 우리에게 적합하지 않고 유익을 얻지 못할 것은 아무 것도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

 

말씀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만약 우리가 하나님이 그렇게 거저 주시는 축복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면 우리는 얼마나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겠습니까!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권능이 성경 속에 나타난다는 것을 알려 줌으로써 성경을 찬양합니다. 그러한 후에 우리로 하여금 성경이야말로 하나님께서 창출하시고 목표로 세우셨다는 사실을 깨달아 거기에서 유익을 얻겠다는 열정과 욕망을 가지고 성경에 접근하도록 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성경의 저자라는 것을 우리가 시인하지 않는 한 성경은 우리에게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항상 명심합시다. 우리가 모세나 어떤 선지자에 관한 기록을 읽을 때 그것이 유한한 한 인간의 족적일 뿐이라고 여긴다면 우리는 우리를 불태우는 하나님의 영이 살아 계심을 느낄 수 있습니까? 아닙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그것과는 전혀 거리가 멉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속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며 성경을 통해 하나님께서 당신의 뜻을 인간에게 알려주신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비로소 성경에는 생명이 있고 능력이 있게 됩니다. 왜냐하면 사도 바울이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되었다”라고 말하기 때문입니다.

교황은 그가 말하는 것이 다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것이라고 자랑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이름이라는 가면과 덮개를 사용했기 때문에 이 세상 사람들은 처음부터 속임을 당하고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 사람들은 처음부터 속임을 당하고도 알지 못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거짓된 교리의 독이 금제 컵에 담기어 “하나님이 사람에게 그렇게 말씀하셨다”라는 이 귀한 슬로건 밑에 숨겨졌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뜻에 의해서 다스려지는 것에 만족한다면 우리의 믿음은 견고히 보증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경이 사단의 환상이나 사람들이 꾸며낸 동화가 아니라는 사실과 성경에 담겨 있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것이라는 점과 하나님께서 그 저자라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한없는 선하심에 경의를 표합시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속에 진리를 집어넣고 밀봉하시며 우리가 그 은혜를 깨닫는 것을 기뻐하십니다.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불신자를 무지한 상태로 그냥 두시므로 그들은 어차피 성경의 권위를 무시하게 됩니다.


사도 바울이 한 말들을 취합해 보면 하나님의 교회 그 자체에 어떤 권위가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것만이 권위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만약 우리가 어떤 교리를 인정하려면 그 교리는 인간의 권위나 인간의 지혜에서 따온 것이어서는 안됩니다. 이것이 눈여겨볼 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으로 우리가 하나님의 백성인지 아닌지를 검증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법률과 규례를 우리에게 주시기 때문에 하나님은 정말로 우리의 왕이십니다.

 

말을 시키신 분은 하나님

우리의 영혼이 우연히 인도된 것도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시고 우리는 하나님께서 주시는 멍에를 메도록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사실이 그렇지 않다면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를 다스리신다는 것을 나타내지 않게 됩니다. 우리가 아무리 형식적인 가장을 잘 할지라도 그것은 위장에 불과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을 성경이 의심의 여지가 없는 진리라는 것을 증명하기 위해서 모세가 탁월한 사람이었다거나 이사야가 대단히 웅변적이었다고 말하지 않았습니다. 그는 그들의 인간적인 명성을 높여 줄 만한 것에 대해서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들은 단지 하나님의 손에 붙들린 도구였다고 말씀합니다. 그들의 혀는 성령의 인도를 받아 자기의 말은 한 마디도 하지 않습니다. 그들에게 말을 시키신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나 우리는 그들을 평범한 사람으로 생각해서는 안되고 살아 계신 하나님의 종으로 즉 그들에게 맡긴 재물을 감독하는 충성스러운 청지기로 생각해야 합니다.


만약 이런 것들이 잘 지켜졌다면 인간은 지금 천주교도들이 처하고 있는 것과 같은 그런 혼란에 빠지지 않았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의 신앙은 모두 인간에 그 기초를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하는 일에는 위선 이외는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이름을 선포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그렇게 하면서도 자기들이 만든 의식을 지킵니다.
그러하기에 사도 바울은 우리에게 성경에만 의지하라고 요구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시지 사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해서 사도 바울은 모든 인간의 권위를 배제합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 위에 우뚝 솟은 탁월성을 소유하고 계시므로 피조물들은 하나님의 주권을 침해하려고 해서는 안되며 하나님께 전적으로 복종해야 합니다. 우리가 목회의 길을 택할 때는 우리를 보내는 이는 하나님이시라는 것과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맡기신 기쁜 소식을 가졌음을 확신해야 합니다.

말하는 자는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 말씀하십시오. 다시 말하면 그가 무모하게 나서거나 자기가 만든 이론으로 꿰맞춘다는 식의 인상을 주지 말고 순수한 그대로의 하나님의 말씀을 전한다는 사실을 보여 주십시오! 하나님께서 그것으로 인하여 존귀히 여김을 받도록 하나님의 교훈이 사람들을 교화하도록 만들어야 합니다.

 

유익과 구원을 싫다하는 자 있는가

사람이 만든 교리가 여기 이렇게 땅바닥에 버려졌다는 것을 인식한다면 그러한 일이 다시는 허용되지 않도록 그리스도의 교회에서 그것을 추방합시다. 복음의 단순성을 확고하게 유지하기 위하여 유념합시다. 왜냐하면 우리 주님은 자비로우셔서 율법이나 선지자를 통해서 주님의 뜻을 나타내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받은 것은 꽉 붙잡고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의 양심을 묶어서 그들 멋대로 신앙의 신조를 만들지 못하게 합시다.
사도 바울은 본문 말씀에서 “모든 성경은 유익하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므로 만약 성경이 유익하다면 그것을 공부하는 데 전념하지 않는다면 우리를 전혀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우리들 가운데서 유익과 구원을 구하지 않는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자기의 행복만을 추구하면서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지 못하는 우리에게는 화가 있을 찌어다! 한 걸음 더 나아가 우리는 자신의 의견과 좋아하는 감정을 확인하기 위함이 아니라 그 속에 담겨 있는 교리 즉 성경의 전 내용에 기꺼이 복종하기 위하여 성경을 읽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성경은 다 유익하기 때문입니다.

 

제가 성경을 설명할 때 듣는 사람들로 하여금 성경에 제시되어 있는 교훈에 의해서 유익이 되고 그것이 주는 그르침을 받아들이도록 제 주위를 항상 성경 말씀으로 에워싸야 합니다. 만약 제게 이런 애정이 없어서 저의 설명을 듣는 사람에게 감화를 주지 못하면 저는 신성 모독죄를 범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더럽히는 결과가 됩니다.
또한 어리석은 공론을 구하기 위해서 성경을 읽는 사람이나 기분전환을 하기 위하여 설교를 들으려고 오는 사람은 복음을 더럽히는 죄를 짓는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성경을 본래의 용도에서 어긋나게 사용하여 성경을 통해서 유익을 얻으려고 노력하는 대신 그 속에서 문제점만 찾으려고 한다면 우리는 성경을 오염시키는 것이 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유익과 구원만을 구하신다는 것을 느낄 때마다 우리는 가장 불타는 열정을 가지고 하나님께로 나와야 한다는 사실을 사도 바울이 우리에게 가르칩니다. 그는 또한 우리에게 성경을 오염시켜 성경이 우리의 환상에 이용되어서는 안 된다고 했습니다.

 

진리에 의한 교육만이 확실성 알게 해

성경이 우리에게 유익하게 되도록 만든 것이 하나님의 뜻이었음을 깨달아 우리는 가르침을 받으려 와야 합니다. 이제 이 유익이라는 무엇인가를 검토하고 알아보는 일이 우리들 각자에게 남아 있습니다. 만약 사도 바울이 이 말 한 마디만 선언하였다면 그 의미는 다소 막연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는 그것을 매우 분명하게 말했기 때문에 우리는 사도 바울이 한 말의 뜻을 오해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이렇게 말했기 때문입니다.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이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사도 바울은 성경의 용도를 한 가지로만 표현하거나 사용치 않게 하기 위하여 교훈에 대해서 말할 때에 책망하기 바르게 하기 그리고 교육하기라는 말을 첨가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선한 것을 보여 주시는 것만으로 만족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너무도 냉담하여 그것을 거의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최대한의 열성을 내도록 격려하셔야만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말씀하신다는 사실과 우리는 순종해야 한다는 사실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성경 안에는 죽은 교훈이 아닌 우리가 하나님께 나오도록 분발시키는 책망과 바르게 함이 있다는 사실을 우리는 알게 됩니다.

 

악한 자를 교화하는 말씀

사도 바울은 “모든 성경은 교훈에 유익하다”고 말한 후에 책망하기, 바르게 하기, 등을 첨가했습니다. 왜 교훈을 먼저 썼을까요? 그것이 자연스러운 순서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말씀으로 가르침을 받지 아니하면 권면도 아무 쓸모가 없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제일 먼저 우리는 우리에게 가르쳐진 것은 선하고 참되고 옳다는 사실을 느낄 수 있어야 합니다. 이와 같이 교훈이라는 단어는 우리가 진리 안에서 교육되어야 하며 전적으로 진리 안에서 결심을 해야 하고 진리로 교훈을 받아 진리의 확실성을 의심하지 말아야 한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도 바울은 이 교훈이 예수 그리스도를 알고 그리스도를 전적으로 믿어서 진지하고 의롭게 하나님을 닮아 가는 생활을 하게 하는 것이라고 가르쳐 주었습니다. 우리가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을 찾을 때 우리는 먼저 하나님을 믿어야 하며 하나님께서 불러 주신 하늘나라의 생활을 믿어야 합니다. 우리는 우리의 모든 약한 감정을 억제하고 하나님의 의로우심을 닮아야 합니다.

복음의 교리를 몇 마디로 말하면 이렇습니다. 하나님을 알고 전적으로 믿는 것이며 그리고 어떤 방법으로 그 분이 우리의 구세주가 되셨는가를 아는 것입니다. 즉 우리의 죄를 속죄하기 위하여 돌아가신 독생자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구세주이심을 아는 것입니다.

 

교훈 통해 과거의 참상을 보게 해

이것이 우리가 하나님과 화해하고 모든 죄에서 깨끗하게 되는 방법입니다 여기에서 하나님을 찾아가야겠다는 담대함이 나옵니다. 그리고 우리의 대언자로 임명되신 예수님의 이름으로 나오면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버리시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 있습니다.
우리가 우리 안에는 죄와 악밖에 없다고 생각한다면 우리는 멋대로 행동하지 않는 법과 순결한 마음과 영성으로 하나님을 섬기는 법을 배워야 합니다. 이것이 성경에 내포되어 있는 교훈입니다.

사도 바울이 책망하기라고 말했을 때의 그 뜻을 우리는 이해해야 합니다. 그 뜻은 이런 것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학교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싶으면 우리는 우리가 죄인이라는 것을 고백해야 합니다. 우리는 가슴속까지 파고드는 찔림을 받아야 합니다. 또한 우리가 지은 죄에 대해서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올바로 설명될 때에 믿는 자가 교화될 뿐만 아니라 만약 믿지 않는 자가 교회에 와서 하나님의 교훈을 듣게 되면 그는 책망을 받고 심판을 받게 됩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비록 그 불신자가 어둠에 휩싸여 있기 자기의 무지에 만족해 왔더라도 하나님이 그를 충분히 감화시켜서 그가 살아 왔던 과거의 참상과 죄악을 보게 만드십니다. 또 하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고 있는 동안 한심스러운 그의 처지를 보게 될 때 그에게 실제로 하늘 문이 열려 있으며 사람은 이 지구상의 삶뿐만 아닐 더 높은 곳으로 들어 올려지기 위해서 창조되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불신자들은 책망을 받습니다.


그것을 더 분명하게 하기 위하여 사도 바울은 마음속에 담아 두었던 비밀한 말씀이 묻혀 있는 동안에는 아무도 자기 자신을 주의하지 않게 되고 우리의 마음은 어둠 속에 묻혀 있다는 사실을 알고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활용하도록 노력해야 하며 잠에서 깨어나야 합니다. 우리는 더 이상 하나님을 잊어서는 안되고 우리 영혼의 구원을 잊어서도 안됩니다. 우리는 마음 소 깊은 곳까지 들어가서 우리의 전 생활을 돌아보고 우리의 부정을 부끄러워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손에 준비된 선고를 피하기 위해서 우리들 자신의 재판관이 됩시다. 이렇게 해서 우리는 사도 바울이 책망이라는 단어를 써서 무엇을 나타내려고 했는지 알게 되었습니다.

 

사람들이 우리 앞에 놓인 하나님의 축복을 보면서 “이것이 하나님의 뜻이다”라고 말하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습니다. 우리는 태어나서 그것에 대해서 아주 진지하게 생각하고 우리들 자신을 엄밀히 살펴보아야 합니다. 마치 하나님이 우리를 심판석 앞으로 출두하라고 소환하시는 것처럼 하나님 곁으로 접근해야 합니다.
우리는 모든 것을 밝혀야 합니다. 그래야만 우리는 우리가 한 악한 행동을 부끄러워하게 됩니다. 그리고 이 천국의 공기를 들여 마실 때 우리는 옳은 길에서 벗겨 나가지 않도록 주의해야 합니다.

 

복종하는 법을 깨닫게 하는 성격

그렇게 책망 받는 것으로는 충분치 않으므로 바르게 함이 똑같은 방법으로 첨가되어야 합니다. 다시 말해 우리가 개혁되기 위해서는 하나님의 말씀으로 깨끗이 씻겨져 있어야하며 우리의 죄를 떨쳐버려야 합니다.
죄를 뿌리째 뽑아 버리고 분리시키기 위해 우리는 강력히 다루어져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에 대해 그러한 생각을 가질 때 비로소 정죄감을 느끼게 됩니다. 그렇게 됨으로써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저주받은 느낌을 갖게 되며 하나님과 사람 앞에 죄인이 되는 것입니다.

더욱이 우리는 강제로 그러한 경지에 끌리어 와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맛있는 음식으로 취해 있고 또 우리가 어리석은 생각이나 공상에 빠져 있어 그것에 속고 있다면 바르게 하는 일을 즉각적이고 엄격하게 해야 합니다. 이것은 우리로 하나님께 영광을 드리고 하나님으로 하여금 우리를 개조하시어 하나님의 뜻에 복종하게 해 달라고 의탁하기 위함입니다.

 

아버지가 자기 아들의 행동이 마땅치 않고 옳지 않은 것을 볼 때 그냥 “왜 그렇게 했니?”라고 묻는 것만으로는 충분치 않다고 생각하여 “한심한 녀석아! 네가 나에게 이렇게 보답하라고 너를 기르고 양육했겠니?”라고 말할 것입니다. “내가 너를 그렇게 점잖게 대해 주었는데 나에게 이런 명예롭지 못한 짓을 하는 것이 너에게 어울리니? 너는 마땅히 교수형 집행자의 손에 넘겨져야 한다”라는 말을 들어도 우리에게는 할 말이 없습니다.
우리가 이 불효자들이 그들의 아비들에게 반항했던 것보다 하나님께 더 반항하고 있다는 것을 하나님께서 보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화를 내실 만한 이유가 있지 않습니까? 하나님 속에는 다루기 힘든 어떤 열정이 있다는 것을 강조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열정을 우리로 하나님께 복종하는 법을 배우게 하기 위하여 쓰셨다는 사실입니다.

 

필요하면 뜨겁게 책망하라

자! 이제 어떤 사람이 성경을 설명할 때에 성경이 단순한 역사에 불과한 것처럼 말하는 것이 타당한지 아닌지를 살펴보아야 합니다. 만약 사실이 그렇다면 사도 바울이 성경에 관해서 한 말은 아무 유익이 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가 복음을 전파할 때 우리는 오직 “하나님께서 그와 같이 말씀하셨다”라고 말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입니다. 선하고 충성스러운 목자의 임무는 성경을 설명하는 것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에 힘과 권능을 나타내도록 열성과 날카로움을 사용해야 합니다.

사도 바울은 다른 곳에서 교회의 목자는 성가실 정도로 열성적이어야 하며 무엇이 선한가를 사람들에게 가르쳐 주어야 하고 그들을 책망해 주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러나 그것이 겸손하고 온유하게 이루어져야 한다고 사도 바울은 말했습니다. 책망함에는 아무튼 바르게 함이 있어야 합니다. 그 누구라도 “이것은 감당하기 어려우니 이러한 종류의 것은 취급하지 말라”고 해서는 안됩니다. 책망을 견디지 못하는 자는 차라리 하나님 의외의 다른 주인을 찾도록 내버려두십시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가치가 없기 때문입니다. 세상은 그들을 기꺼이 받을 것입니다.

바르게 하려고 위협을 가하면 버럭 화를 내는 사람들을 많이 봅니다. 그들은 온화함으로 그들의 마음이 사로잡히기를 바란다고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을 악마의 학교에 보냅시다. 악마는 아첨을 할 것입니다. 네! 그리고 그들을 멸망시켜 버릴 것입니다.


그러나 신실한 성도들은 그 교훈을 받아들인 후에 겸손해져야 하며 책망을 기꺼이 받아들이지 않으면 안됩니다. 누구도 실수를 할 때면 훈계를 받아야 합니다. 그들이 모든 죄악에서 깨끗해지기 위해서 그들이 저지른 죄와 악에 대해서 책망을 받아야 합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의 교훈으로 가르침 받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이런 방법으로 행동해야 합니다.

사람이 만든 제도가 사람을 의롭게 하지 못함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첨가했습니다. “성경은...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케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하려 함이니라” 성경이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다고 말할 때 그는 모든 인간적인 것을 배제하였으며 우리가 사람이 도입한 제도를 지키는 것으로는 의롭게 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보여 주었습니다.
우리는 천주교도들이 같은 인간이 그들에게 과한 것은 무엇이든지 지킴으로써 그들이 한 모든 노력이 어떻게 허사가 되었는지를 보았습니다. 그들이 말하는 의로움은 어디에 있습니까? 어디에 기초하고 있습니까? 그것은 교회가 그렇게 명령했다는 데 근거하고 있습니다.

사도 바울은 성경에 있는 내용 이외에는 종교도 교리도 없다는 사실을 보여 줍니다. 네 그렇습니다. 성경 안에만 의로움이 있습니다. 그렇다면 천주교도들은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것을 따릅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그것에 완전히 반대되는 방향으로 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우리의 삶이 매우 은혜롭기 되기를 바란다면 우리는 인간의 일에 뿌리를 두지 말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명령하시고 과해 주신 것만 따릅시다.
만약 우리의 삶을 성경에 있는 가르침에 따라 규제한다면 우리는 그것으로 의롭다함을 받게 될 것입니다. 그러하기에 사람의 교훈은 실패하며 하나님께서 증오하십니다. 그러므로 사도 바울이 “의로 교육하기”라고 말한 데는 그만한 이유가 있다는 사실을 기억해 둡시다.


다시 그는 훌륭한 성직자가 되려는 사람은 누구나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에게 인식시켰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우리에게 말하는 법과 말을 잘하고 민감하게 되는 법을 가르치기 위해서 주어진 것이 아니라 우리의 생활을 변화시켜 세상 사람들로 하여금 우리가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알게 하기 위해서 주어졌습니다.

만약 인간이 복음을 통해서 유익을 얻는지 못 얻는지를 알아보고 싶다면 그의 생활을 주목해 봅시다. 사람들은 제법 그럴 듯하게 말할 줄도 알고 나름대로 경건한 생활을 할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들의 생활이 주어진 하나님의 말씀과 일치하지 않습니다.

 

‘성경에서 유익을 얻는 법’도 배워야

사도 바울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우리의 고문으로 모셔서 말씀에 의해 떳떳이 행하고 또 우리의 삶을 이루어야 한다고 알려주었습니다. 이같이 할 때 하나님의 사람은 온전케 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하기에 온전케 됩니다.
이러한 방법으로 우리는 의로움으로 교육을 받아야 하며 인간의 창안물들은 모두 사절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것들을 증오하시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자기들 의향에 따라 하나님을 섬기고 싶어합니다. 그래서 자신이 만든 것들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것들을 허용하시지 않습니다.

사도 바울은 인간에게는 하나님께서 제정해주신 규례 안에서 억제하지 못하는 그런 모호한 용기가 있음을 보고 그 병폐를 지적해 주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치유될 수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우리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을 품고 있으면 우리의 생활은 올바르게 되고 모든 선한 일을 행하게 됩니다.
사람들은 그들의 행위에 덕과 거룩함이 있다고 마음껏 자랑을 합니다. 그러나 그들이 하늘에 계시는 재판관 앞에 나오게 되면 모든 것이 겨와 같아질 것입니다. 우리가 만든 제도를 하나님께서 명령하신 제도와 섞어버리면 모든 것을 해치는 결과가 됩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만든 것은 무엇이나 아무 값어치가 없고 썩어빠진 것뿐이라고 결론을 내려도 됩니다.

 

천주교도들은 어떠한 성자를 위해 저녁에 금식하는 것, 금요일에 고기를 먹지 않는 것, 사순절을 지키는 것, 성자에게 시중드는 것, 이 제단 저 제단을 찾아다니는 것. 이 교회 저 교회를 방문하는 것, 이사에 참석하는 것, 순례 여행을 하는 것 등을 선한 일이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많은 법률과 규정을 만들었으나 그것들을 이해하는 사람들은 하나도 없습니다. 그러나 결국은 대 재판관 앞에 출두하여 우리가 행한 일에 대한 명세서를 제출해야 합니다.
여기서 만약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유익을 얻으면 모든 선한 일을 한 데 넉넉히 지원을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천주교도들이 만들어낸 전통과 제도가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파묻히는 것 같습니까?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사람들이 만든 전통의 백분의 일만큼도 중요시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온전함을 측정해 보겠다는 생각으로 의도적으로 우리 자신을 속이지 맙시다. 하나님께서는 성경 말씀에 더 첨가한 것은 무엇이나 배격하며 그것을 인정하시지도 받아들이지도 않을 것임을 보여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이 제정한 법규를 아무 쓸모 없이 만듭니다. 그것은 그들의 죄를 배가시켜 줄뿐입니다.

 

괴물이 아닌 자 라면 진리를 확신한다.

“율법과 예언서에는 그렇게도 많은 공정함이 있는데 복음이 무슨 소용이 있겠습니까?”라고 묻는 사람이 있을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러한 물음에 대해서 쉽게 대답할 수 있습니다. 복음은 율법이나 예언서에 대해 일점일획도 가해진 것을 발견하지 못할 것입니다.
다만 복음이 전에 가르쳐 준 것을 더 분명하게 해 줄 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시기 전에 살았던 선조들보다 우리에게 더 많은 은혜를 내리셨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비록 가한 것이 아무 것도 없지만 문제를 더 분명하게 밝혀 주셨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이 율법과 예언서에 바르게 함과 온전한 의로움이 있다고 말할 때 그 말은 복음의 중요성을 감소시키는 것은 아닙니다.
전 성경 말씀 즉 신약과 구약에는 이와 같은 일치함이 있습니다. 율법에 내포되어 있는 교훈이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신 후에 사도들에 의해서 친근하게 가르쳐졌기 때문에 이것을 해야 한다, 저것을 해야 한다라고 말하지 않고 태초부터 명령된 것에 국한시켰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의 뜻을 아주 분명한 말로 알려 주셨고 우리가 그것을 믿어야 할 여러 가지 이유를 말씀 하셨기 때문에 사악한 괴물이 아닌 이상 우리는 그 진리를 확신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성경 말씀으로 유익을 얻으려고 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공상에 따라 섬겨지지 않는다는 사실을 알고서 경건하게 생활하는 법을 공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우리 생활을 규정지을 확실한 규례를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마음과 생각과 뜻이 성경 말씀을 향하게 합시다. 그러면 하늘에 계시는 재판관이 우리를 받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이런 일에 더 많은 관심을 모아야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의 좋으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주 가까이 접근하셔서 당신의 뜻을 쉬운 방법으로 제시하시기 때문입니다.
만약 우리가 하나님께 전적으로 헌신하지 아니하면 자신을 조금이라고 변명하지 못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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