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빈-필연과 강제의 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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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칼빈

2010. 2. 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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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연과 강제의 구분

 

(존 칼빈의 '기독교 강요' 중에서)

 

인간의 의지는 죄의 굴레에 완전히 묶어 있기 때문에 선을 향하여 움직일 수도 없고, 꾸준하게 선을 추구한다는 것은 더더욱 불가능하다. 왜냐하면 그런 움직임은 바로 하나님께로 향하는 회심의 시초인데, 성경은 그것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에 달려 있다고 말씀하기 때문이다. 그리하여 예레미야는 자기를 돌이키는 것이 하나님의 뜻일진대 자신을 돌이켜 달라고 기도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또한 같은 장에서, 신자들의 영적 수공을 묘사하면서, 여호와께서 “그들보다 강한 자의 손에서 구속하였다”고 말씀한다. 이는 분명 여호와께 버림을 받아 마귀의 멍에 아래서 행하는 동안 죄인이 얼마나 단단한 족쇄에 묶어 있는가를 시사해 주는 것이다. 그러나 여전히 의지는 그대로 남아 있어서, 죄를 향하여 강력한 애착을 갖고 그 쪽으로 향하는 것이다. 그러니 사람이 이런 처지에 있다고 해서 의지를 빼앗기는 것은 아니고, 다만 의지의 건전성을 빼앗기는 것이다.

 

자, 자유를 빼앗긴 의지는 필연적으로 악으로 이끌릴 수밖에 없다는 내 말을 납득하기 어려운 것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참 의아스러운 일이다. 그 말이 사람들에게 거슬리는 것은, 그들이 필연과 강제를 서로 구분하는 것을 모르기 때문인 것이다. 가령 누군가가 그들에게 하나님은 필연적으로 선하지 않으신가? 마귀는 필연적을 악하지 않은가? 라고 묻는다면 무어라 대답하겠는가? 하나님의 선하심이 그의 신성과 너무나도 밀착되어 있어서, 그가 하나님이신 것이나 그가 선하신 것이나 똑같이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다. 마귀 역시 타락으로 말미암아 선에 참여 하는 것에서 완전히 끊어져 버렸으므로, 그는 악 이외에는 할 수 있는 일이 없는 것이다.


그러나 가령, 어떤 사람이 하나님을 모욕하려고, 하나님께서는 강제로라도 자신의 선하심을 보존하지 않으실 수 없으니 그가 선하다는 것에 대해서 굳이 칭찬을 받으실 이유가 없다는 식으로 빈정거린다고 하자. 그럴 경우에는 곧바로 답변할 수가 있다. 곧 하나님께서 악을 행하지 못하시는 것은 그렇게 못하시도록 어떤 강제적인 압력을 받기 때문이 아니라, 그가 한량없이 선하시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마땅히 선을 행하실 수밖에 없다 할지라도 그것 때문에 선을 행하는 하나님의 자유 의지가 전혀 방해를 받지 않는다면, 또한 마귀가 오직 악 이외에는 아무것도 행하지 못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자기의 의지로 악을 행하는 것이라면, 사람이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 아래 있다고 해서, 그 사람이 의지와는 별 상관없이 죄를 짓는 것이라고 말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아우구스티누스는 여러 곳에서 이런 필연성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코엘레스티우스(Coeletius)가 이에 대해 트집을 잡으며 그를 비난했지만, 그는 주저하지 않고 이렇게 단언하였다. “자유를 통해서 사람이 죄 가운데 있게 되었지만, 그에 대한 형벌로 나타난 부패성이 자유를 필연으로 바꾸어 놓은 것이다.” 그는 이 문제에 대해서 언급할 때마다, 주저하지 않고 이를 필연적인 죄의 속박으로 말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구분에서 가장 중요한 사실은, 사람이 타락에 의하여 부패하였을 때에 강제에 의해서 억지로 죄를 지은 것이 아니라 자신의 의지로 죄를 지은 것이며, 강압에 의해서가 아니라 자기 마음의 강력한 이끌림에 의해서 죄를 지은 것이라는 것이다. 그의 본성이 너무나 부패해 있어서 그는 오직 악을 향해서만 움직일 수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사실이라면, 이는 사람이 분명 죄를 지을 수밖에 없는 필연성에 매여 있다는 것이 분명히 드러나는 것이다.

 

베르나르도 아우구스티누스의 견해에 동의하여 이렇게 쓰고 있다. “모든 생물들 가운데 오직 사람만이 자유롭다. 그런데 죄가 개입함으로 인하여 사람 역시 일종의 폭력을 당하는 처지가 되었는데, 이것으로 그의 본성이 아니라 그의 의지가 해를 입은 것이다. 그럼에도 그가 본래 부여받은 자유는 빼앗기지 않고 그대로 있는 것이다.” 그리고 조금 뒤에 가서는 이렇게 쓰고 잇다. “무언가 비열하고도 이상한 방식으로 그 의자 자체가 죄로 말미암아 더 악하게 변하여 그 자체가 필연이 되어 버린다. 그렇기 때문에, 필연이 ? 그것이 의지에 속하면서도 ? 의지에게 변명할 기회를 주지도 않고, 반대로 의지도 ? 그것이 이끌림을 받아 그릇된 상태로 나아가지만 ? 필연을 배제할 기회를 갖지 못하는 것이다. 이 필연이 말하자면 자의적인 것이 때문이다.

 

그리고 더 뒤에 가서는, 우리를 압박하는 멍에는 다른 것이 아니라 일종의 자의적인 종노릇의 멍에이며, 따라서 의지가 자유로울 때에 스스로 죄의 종이 되었으니 종노릇의 상태를 보면 비참하기 이를 데 없고, 의지를 보면 변명의 여지가 없는 것이라고 말한다. 그러면서 그는 다음과 같은 결론을 짓는다. “이렇듯 영혼은, 무언가 이상스럽고도 악한 방식으로 자의적이면서도 그릇 자유로운 필연성 아래에 있어서 종노릇하면서도 동시에 자유로운 것이다. 그리고 더 이상스럽고 한심스러운 일은 영혼이 자유롭기 때문에 죄책이 있으며, 죄책이 있기 때문에 종노릇의 상태에 있는 것이요, 결국 자유롭기 때문에 종노릇하는 상태에 있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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