헤르만 바빙크- 개혁주의 종말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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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헤르만 바빙크

2007. 9. 17.

 

 

개혁주의 종말론 

 

머리글 (Preface)  

 이 마지막 일들 ( The Last Things )의 번역과 편집을 위해 화란 개혁주의 번역 협회 (The Dutch Reformed Translation Society)에서 재정을 지원하였다. 이 협회 (The DRTS)는 1994년에 다섯 개의 각기 다른 개혁 주의 교단을 대표하는 일단의 기업가, 전문직 종사자, 목사, 신학 교수들에 의해 결성되어, 화란어 원전의 고전 개혁 신학 서적 및 기독교 문헌을 영어로 번역, 출판하는 것을 지원하고 활성화하는 일을 목표로 한다. 본 협회는 비영리 단체로서 미시간 주에 법인 등록이 되어 있으며 이사회에 의해서 운용된다.  

 

협회 회원들은 화란의 개혁신학 전통이 가지고 있는 많은 값진 문헌들이 화란어권 독자층에게 국한될 것이 아니라 보다 널리 읽혀지는 것이 마땅하다는 믿음을 가지고 이 개혁 신앙을 전파하고 돈독히 하는 일을 추구해 나가고 있다. 그 첫 번 기획사업이 바로 헤르만 바빙크 (Herman Bavinck)의 저서 개혁주의 교의학 Gereformeerde Dogmatiek (Reformed Dogmatics) 전 4권의 완간본을 완역하는 것이다. 종말론에 관한 이 책이 바로 그 프로젝트의 제1회분이다. 본 협회에서는 이 개혁신앙을 전파하는 일에 헌신과 비젼을 함께 나누실 분들께서 보다 자세한 정보를 신청하시도록 초청을 드리는 바이다.  

 

 

캄펜과 라이덴 신학교 (Kampem and Leiden)  

 

바빙크의 독특한 멋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우선 간단한 역사적 고찰이 필요하다. 헤르만 바빙크는 1854년12월 13일에 태어났다. 그의 부친은 화란 기독교 개혁 교회 (The Dutch Christian Reformed Church/ Christelijke Gereformeerde Kerk )의 영향력 있는 목사였는데, 당시 이 교회는 이미 20년 전에, 네덜란드 국립 개혁 교회 (National Reformed Church in the Netherlands)로부터 분리해 나왔다.

 

1834년에 일어난 이 분리는 첫째로는 화란 개혁교회 (Dutch Reformed Church)에 대한 국가의 지배에 저항하였다. 또한 정치적인 것뿐만 아니라 교회적으로 이견을 갖는 교의, 성찬, 영성 등의 문제에 있어서 오래고 풍부한 전통으로 가는 길을 제창하였다.

 

여기서 특별히 언급할 것은 영국의 청교도주의와 대등한 네덜란드의 소위 제2개혁 (Second Reformation/ Nadere Reformatie ) 으로서, 이는 17세기부터 18세기 초까지 체험적 개혁 신앙과 영성 에 대해서 뿐 아니라 19세기 초 Reveil 이라고 알려진 국제적, 귀족적, 복음적 부흥운동에도 영향을 주었다. 바빙크의 교회와 그의 가족, 또 바빙크 자신의 영성도 결정적으로 매우 경건한 이 개혁주의 영성의 강한 모범을 따라 형성되었다.

 

 또 한 가지 주목할 점은 화란 경건파가 초기 단계에서는 정통파의 개혁 신학을 지지하며 자신들의 교회론에 있어서는 비분리적인 입장이었으나, 19세기 중반에 이르러서는 이 분리파 그룹이 그 견해에 있어서 의미심장하게 분리주의자로 변화했던 것이다.  

 

바빙크 사상에 두 번째로 중요한 영향을 준 것은 라이덴 (Leiden) 대학에서 받은 신학 교육 기간을 들 수 있다. 기독교 개혁 교회 (Christian Reformed Church)에는 교단 신학교로서 1854년에 세운 캄펜 신학교 (Kampen Theologische School )가 있었다. 바빙크는 일 년간 (1873-74) 여기서 공부한 뒤, 신학에 대한 과학적 접근 으로 인해 공격적인 현대주의자로 명성이 있었던 라이덴 대학 (University of Leiden)의 신학부에서 공부할 뜻을 밝혔다.

 

부모님을 비롯하여 그의 교회 공동체에서는 바빙크가 현대 신학을 직접 경험하고, 현재의 신학교에서 제공해줄 수 있는 것보다 더 많은 과학적 훈련을 받기 위한 열망에서 이런 결정을 내렸다는 설명을 듣고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라이덴에서의 경험은 바빙크에게 정통 신학과 영성에 대한 자신의 헌신과, 세계관과 문화를 포함하여 현대세계에 관해 할 수 있는 것들을 이해하고 감상하려는 열망 사이에서 사는 긴장감을 불러 일으켰다. 라이덴에서 공부를 시작하던 시기에 그의 개인 일기에 적힌 신랄한 기록에서 바빙크는 같은 해 3월에 Zwolle의 기독교 개혁교회에서 공개적으로 고백했던 자신의 신앙에 충실할 수 있을 것인가에 대한 염려를 이렇게 나타내고 있다:

 

내가 (이 신앙을) 계속 견지할 수 있을까? 하나님께서 이루어 주시기를. 1880년 바빙크는 라이덴에서 박사학위 과정을 마치면서 영적 황폐함을 대가로 치렀음을 다음과 같이 솔직히 인정하였다: 라이덴은 나에게 여러 면으로 유익이 있었다. 그 점은 언제나 감사하게 인정하게 되기를 바란다. 그러나 라이덴은 또한 나를 몹시도 황폐하게 만들어서, 내게 안정감을, 즉 나를 기쁘게 해줄 뿐만 아니라, 설교할 때에, 그리고 요즘에 특히 깨닫게 된 것이지만, 내 자신의 영적인 생활에도 절대적으로 필요한 바로 그 안정감을 빼앗아 가 버렸다.  

 

이런 점에서 바빙크를 두개의 세계 사이에 끼인 사람으로 특정지우는 것은 불공평한 일이 아니다. 그와 동시대 사람 중 하나는 그를 가리켜 분리파 설교가면서 현대 문화의 대표자라고 묘사하면서 다음과 같이 결론지었다: 그것은 놀라운 특성이다. 바빙크의 특별한 점은 그의 이중성 (duality)에서 볼 수 있다. 그 이중성은 또한 그의 삶에서의 긴장 때로는 위기의 반영이다. 여러 면에서 분리파 교회의 설교자가 되는 것은 간단한 일이며, 어떤 면에서는 현대적인 사람이 된다는 것 또한 어려운 일은 아니다. 그러나 이것이면서 동시에 저것이 되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그러나 이런 점을 단지 다른 사람들의 증언에 의지할 필요는 없다. 바빙크는 19세기의 위대한 자유주의 프로테스탄트 신학자인 리츌 (Albrecht Ritschl)에 관한 소고에서 자신의 생각 속에 있는 이런 긴장감을 명백히 요약하였다:  

 

그러므로, 그리스도 안에 있는 구원이 이전에는 인간을 죄와 세상으로부터 근원적으로 분리시키고, 천국의 복을 받도록 준비시키며, 거기서 하나님과 평안한 교제를 누리게 하는 수단으로 여겨졌는데 반해서, 리츌은 정반대의 관계를 설정한다. 즉 구원의 목적은 정확하게 말해서 사람으로 하여금 일단 죄의 속박감에서 자유케 되고 나서 하나님의 자녀가 된 것을 깨닫고 사는 것을 가능하게 하고, 또 세상에 속한 직업을 갖고 살면서 이 세상에서의 도덕적 목적을 성취시킬 수 있게 해주는 것이다.

 

그 대조는 매우 예리하다. 한편으로는, 기독교인의 삶이 금세와 내세의 높은 목표를 하나님에 대해 묵상하고 그 분과 교제하는 것이라 여겨 (늘 세상적인 삶의 부요함에 대해서는 다소 경원시 함으로써) 수도원 생활과 금욕주의, 또는 경건주의와 신비주의에 빠지는 위험성이 있는데 반해, 리츌 편에서는 기독교인의 삶은 그 최상의 목표가 하나님의 나라, 다시 말해서 인류의 도덕적 의무에 있는 것으로 간주하여, 그런 이유에서 (물러가 하나님과 따로 조용히 만나는 교제에 관해서는 언제나 다소 역행함으로) 냉소적인 펠라기우스파 (Pelagianism)나 무감각한 도덕주의 (moralism)로 퇴락하는 위험에 처하게 된다. 개인적으로 나는 아직 이 두 가지 견해를 결합시키는 어떠한 방법도 찾지 못했으나 내가 분명히 알기로는 그 양자 모두에 뛰어난 점이 많이 있으며 부인할 수 없는 진리가 포함되어 있다는 것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바빙크가 자신의 신학적 성숙을 표현한 개혁주의 교의학 (the Reformed Dogmatics)에서 비록 일방적으로 치우쳤다고 보긴 하지만 여전히 리츌의 강조점을 인정하고 있다는 점이다. 이 종말론 책의 제7장에 나오는 새 창조에 관해서 바빙크는 리츌과 그의 추종자들을 편파적으로 (이 말을 강조하여) 현재 세상 중심적인 사람들이라 부르면서도 리츌의 이 세상적인 것이 그리이스 정교회와 로마 카톨릭의 추상적인 초자연론 (그리고 결과적으로 금욕주의)에 맞서 중요한 진리를 나타낸다고 주장한다.  

 

 

은혜와 자연 (Grace and Nature)  

 

그렇더라도 바빙크를 그의 영혼 안에서 서로 상응할 수 없는 뚜렷한 두 갈래의 잡아당김, 즉 이 세상에 속한 현대주의와 저 편 세상에 속한 경건주의 사이에 붙잡혀 있는 사람이라고 간단히 특정 지을 수는 없다. 그의 마음과 정신은 칼빈으로부터 유래한 개혁주의 전통의 신학적, 신앙고백적 풍부함을 무엇보다도 존중하는 한편, 경건주의와 현대주의 양자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선하고도 진실한 것과 일체화되는 기독교와 문화, 즉 기독교적 세계관의 통합을 추구하였다. 중세의 대통합이 와해되었던 사실과 그런 와해를 당대의 기독교인들이 묵묵히 따랐던 필요성에 대해 논평한 후에, 바빙크는 자신의 새롭고 보다 나은 통합에 대한 희망을 이렇게 표현하였다: 현재 아무리 기독교와 문화가 서로 대립하고 있다 해도, 이 상황에서 그 둘의 통합이 가능하다는 희망이 못 찾아지는 것은 아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진실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오시며, 이 시대에도 보존자와 통치자로서 계시다면, 그러한 통합은 가능한 일일 뿐 아니라 참으로 그 정해진 때에 성취될 것이다. 바빙크는 화란의 신칼빈주의 (neo-Calvinism)의 삼위일체론적 세계관 안에서 이러한 통합을 시도하는 매체를 발견하여 신칼빈주의의 환상적인 선구자인 아브라함 카이퍼 (Abraham Kuyper) 와 더불어 신칼빈주의 최고의 신학자이자 가장 중요하고 존경받는 대변자가 되었다.  

 

바빙크와는 달리 아브라함 카이퍼는 네덜란드 국립 개혁교회 (the National Reformed Church of the Netherlands)에 부응하는 적당한 현대주의 환경에서 성장했다. 카이퍼 역시 라이덴 (Leiden)에서 학생시절을 보내며 그의 현대주의적인 방향을 확립했는데, 그러다가 일련의 체험, 특히 교구 목사 기간 동안의 경험을 통해 개혁 칼빈주의 정통교리로 극적인 전향을 하였다. 그 때로부터 카이퍼는 교회안과 사회의 현대주의 정신 그가 프랑스 혁명의 경보음이라고 규정했던 하나님도 없고 통치자도 없다 ( Ni Dieu! Ni maitre! ) 라고 하는 것에 대해 그 자신이 칼빈주의의 삶의 체계 (life-system)라고 불렀던 다른 세계관을 가지고 모든 수단을 다 강구하여 대항한 단호한 반대자가 되었다:  

 

그러므로 나는 처음부터 항상 자신에게 말해왔다. 만일 명예와 승리에 대한 소망을 가지고 이 전투를 해야 한다면 원리에는 원리로 포진해야 한다. 그러면 틀림없이 현대주의의 삶의 체계를 총망라하는 거대한 힘이 우리를 습격해오는 것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그렇게 되면, 우리도 우리의 위치를 동등하게 포괄적이면서도 널리 영향을 미치는 삶의 체계에다가 세워야 한다는 것을 반드시 명심해야 한다. 이렇게 할 때, 나는 칼빈주의가 이런 기독교 원칙을 우리에게 주었다는 것을 발견하였고, 또 고백했으며, 지금도 여전히 확신하는 바이다. 나는 칼빈주의에서 마음의 안식을 찾았다. 나는 칼빈주의로부터 이렇게 큰 원칙의 싸움이 치열한 중에서도 나의 입장을 견고하고 단호히 할 영감을 얻어냈다.  

 

 

 

카이퍼의 과감하고 현세적인 칼빈주의적 모형은 삼위일체론적 신학의 통찰력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그는 칼빈주의의 지배적인 원칙은 구원론적으로 (soteriologically) 믿음으로 의롭다 인정받는 것이 아니라 가장 넓게 우주론적으로 모든 천체와 왕국들, 보이는 것들과 보이지 않는 것들에 대해 전 우주를 통치하시는 삼위 하나님의 주권 이라고 말하였다.  

 

카이퍼의 하나님의 주권에 대한 이 근본적인 원리는 네 개의 서로 관련된 중요한 교리 (혹은 원리)인 일반은총, 대비, 우주적 주권, 그리고 제도 (institute)로서의 교회와 유기체 (organism)로서의 교회의 구분으로 파생되었다. 일반 은총 교리 는 구원에의 신령한 은혜의 특별한 주권과는 어느 정도 독립되고 우선하는 확신에 기초를 두었고 있다. 즉 창조와 섭리에는 보편적 신성의 주권이 있어서 죄의 영향을 제한하고 모든 사람에게 일반적인 은사를 주어 구속받지 못한 사람들 사이에서조차도 인류 사회 문화가 가능하게 한다는 것이다. 문화적 삶은 창조와 일반 은총에 그 뿌리를 두기 때문에 교회와는 다른 그 자체의 삶을 가지고 있다.  

 

이와 같은 통찰이 보다 직접적인 개념으로서 우주적 주권 (sphere sovereignty)에 표현되고 있다. 카이퍼는 모든 재침례론자와 세상 도피적 금욕주의에 반대하였으며 중세 로마 카톨릭에서 말하는 문화와 교회의 통합에도 똑같이 반대하였다. 인간 활동의 다양한 영역가정, 교육, 사업, 과학, 예술 등은 그 존재 이유와 모습이 구원이나 교회로부터가 아닌 창조주 하나님의 법으로부터 기원을 갖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들은 국가의 간섭으로부터도 비교적 자율적이며 하나님께 직접적으로 책임을 갖는다. 이런 점에서 카이퍼는 교회에 대한 명백히 다른 두 가지 이해말씀과 성찬을 중심으로 모이는 제도 (institute)로서의 교회와 삶의 다양한 직업을 통해 여러 갈래로 퍼져나가는 유기체로서의 교회에 구별을 두었다. 성도가 자신들의 세상적인 직업을 갖고 살아가는 삶은 분명히 제도적 교회의 구성원으로서가 아니라, (학교, 정당, 노동 조합, 구제기관 같은) 기독교 공동체 활동 을 통해 유기적으로 이루어진 그리스도의 몸 된 구성원으로서 이루는 것이다. 비록 과격하게 세상적이긴 했어도, 카이퍼는 국가적 사회 문화의 정체성과 신권정치적 교회의 이상을 합병하는 경향이 있던 volkskerk 전통에는 공인된 분명한 반대자였다.  

 

달리 말해서, 카이퍼가 일반은총에 대해 강조한 것은 경건한 정통 화란 개혁기독교회가 기독교적인 사회, 정치, 문화 활동을 분발하도록 논증적으로 뒷받침하였던 것으로서, 그가 영적 대비 에 관해서도 동일하게 강조한 사실과 동떨어진 것으로 보아서는 결코 안 된다. 성령의 새사람 되게 하는 사역은 인간성을 둘로 나누고 창조하는데, 카이퍼에 의하면 갱생한 의식과 그렇지 않은 두 종류의 의식으로, 이 둘은 같지 않다.는 것이다. 더 나아가 이 두 종류의 사람은 두 종류의 과학을 발전시킬 것이라고 한다. 과학적 모험정신에서의 갈등은 과학과 신앙사이의 충돌이 아니라 각기 다른 신앙을 가진...두 과학적 체계 사이에서 일어나는 마찰이다.  

 

이렇게 삼위일체를 믿고, 세상을 긍정하며, 그러면서도 칼빈주의와는 결연히 대조적인 바로 여기에서 바빙크는 자신의 생각에 어떤 통일성을 가져다 줄 원천을 발견하였다. 그는 지적하기를 "이 사려 깊은 사람은 자연과 인간의 완전한 삶의 가장 중심에다가 삼위일체의 교리를 둔다.

 

기독교인의 마음은 모든 존재 형태가 삼위 하나님께 돌려지고 삼위일체의 고백이 우리 생활과 생각의 모든 면에서 탁월한 자리를 차지하기 전까지는 만족을 얻지 못한다. "고 하였다. 바빙크은 그의 저술에서 기독교의 본질은 삼위일체와 창조를 긍정하는 방식에 있다고 반복하여 규정하였다. 전형적인 공식은 이렇다: 기독교의 본질은 성부 하나님의 창조가 죄로 인해 유린되었고 성자 하나님의 죽으심으로 인해 회복되며, 성령 하나님에 의해서 하나님 나라로 재창조된다는 것으로 구성된다. 보다 간단히 말하면, 바빙크의 전체 신학을 형성하는 근본적인 주제는 은혜로 자연을 회복하시는 삼위일체 사상이다.  

 

은혜가 자연을 회복한다는 바빙크 신학의 근본적인 정의와 주제 형성의 증거를 찾는 것은 별로 어렵지 않다. 1988년에 캄펜 신학교에서 행한 일반은총에 관한 중요한 연설에서 바빙크는 거기 모인 기독교 개혁신앙을 따르는 청중들에게 그들의 사회문화적 활동의 중요성을 강하게 심어주려 애썼다. 그는 창조의 교리에 호소하여 다양성이 구속으로 말미암아 제거되는 것이 아니라 정화된다고 주장했다.

 

은혜는 자연 밖에나 위에, 또는 그 곁에 머물러 있는 것이 아니고 오히려 그것에 침투하여 그 전체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그리함으로써 자연은 은혜로 거듭나 그 계시의 최고점에까지 이르게 될 것이다. 이러한 상황은 우리가 강요나 두려움이 없이 단순히 사랑함으로 말미암아 우리의 진정한 자연과 조화를 이루어 자유롭고 기쁘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도록 되돌아오게 될 것이다. 바로 이것이 진정한 religio naturalis 이다. 다시 말해서 기독교는 본질적으로 외부적인 다른 요소는 단 하나라도 하나님의 창조에 도입하지 않는다. 어떤 새로운 우주를 만드는 것이 아니라 다만 이 우주를 새롭게 하는 것이다. 이는 죄로 말미암아 타락한 것을 회복하는 것이다. 죄인들을 속하여 주고 병든 것을 치유하는 것이며 상한 자를 고치는 것이다.  

 

마지막 일들 (The Last Things)  

 

이 책은 개혁주의 교의학 의 종말론 부분인데, 바빙크의 이런 생각들을 분명히 보여주고 있다. 근본적인 주제는 은혜가 자연을 멸하는 것이 아니라 회복하고 고친다는 것으로서 책의 여러 곳에서 암시되고 있으며 마지막 장 전체는 새 창조에 대해 다루고 있다. 동시에 바빙크는 성경적 유보라는 그의 사상의 또 하나의 핵심적 특징을 들어 이 주제에서 암시하는 바, 보편주의 쪽으로 흐를 수 있는 잠정적인 경향에 대해 단호히 거부하고 있다.

 

 죄에 복종하는 삶과 주님을 섬기는 삶 사이의 영적인 대비는 확고하게 보존되어 있다. 이러므로 여기에는 명백하게 혹은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승리주의 (triumphalism)가 없다. 바빙크는 성경에 주신 바와 자신의 문화적 감수성을 바탕으로 서구에서의 기독교에 대한 사실적인 변절 가능성과 일반 대중의 증가하는 적대감에 초점을 맞추었다. 바빙크는 세상적인면과 생활면을 긍정하여 그리스도인의 소망에 관한 육신적 성격에 대한 주장을 강하게 하는 한편, 이 땅에 속한 소망 하나로는 불충분하다고 주장함으로 그의 경건주의 뿌리에 대해서도 진실함을 가졌다. 최종 목표는 하나님과의 영원한 교제이다.

 

바빙크는 매 번 성경적 변론을 사용하여 조심스럽고 분별력 있게 로마 카톨릭과 천년주의자의 사고에도 관여하였다. 실제로 바빙크는 제 4장에서 성경적 예언 문제에 관해 구속사적 접근을 하고있는데 이는 오늘날까지 개혁주의 성경해석학의 모델로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 그가 다룬 말세의 징조들은 세 번째 새 천년을 몇 년 앞둔 이 시점에서 종말론적 상황에 두루 관련성을 지니고 있다. 이스라엘과 새 천년과 같은 주제에 관해서 당대의 지배적인 전천년자들의 주장에 대해 이보다 더 확고히 개혁신앙에 입각한 성경적 비평을 제공하는 근거자료는 찾기 힘들다. 또한 가설적 보편 속죄설 (hypothetical universalism)와 조건적 영혼불멸 (conditional immortality)에 관한 바빙크의 신중한 성경적 결론은 양쪽 견해를 너무 가볍게 다루는 현 시대의 복음주의자들이 주의 깊게 고찰해 볼 필요가 있다.  

 

이리하여 바빙크의 저서가 단순히 옛 개혁 교리 체계를 재 정화 (repristination)시킨 것만이 아니라는 사실이 이 책을 통해 분명해진다. 제4장에서 다룬 엔트로피와 진화 (entropy and evolution)에 관한 논의에서 볼 수 있듯이, 그는 현대 신학적, 철학적 학문 뿐 아니라 현대 과학의 진취적 정신에도 보다 폭 넓게 관여하여 총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현대 세계에서의 선이란 무엇인가에 대해 바빙크가 갖고있던 사려 깊은 이해는 범죄자와 정신병자에 대한 보다 인간적인 대우에 관한 그의 논평에서 찾아볼 수 있다. (pp. 147f.) 또한 그는 여기에서 자신의 성경적이며 신앙고백적으로 형성된 균형을 드러내 보이고 있다. 그는 널리 말해지는 격언을 관찰하여, 성경적 관점에서 이탈된 인간에 대한 지극한 인도주의가 잠재적으로 이전의 잔인성보다 나을 것 없는 악한 것이라 보았다.

 

즉 이전에는 정신병자들이 범죄자로 취급된 데 반해, 지금은 범죄자들이 정신병자로 간주된다는 것이다. 그리고 계속해서 이 예리한 통찰력으로 치료적 문화 (therapeutic culture)에서의 규범적인 도덕체계의 붕괴를 다음과 같이 표현한다. 그 전에는 모든 비정상적인 것이 죄와 범죄행위로 여겨졌으나, 지금은 범죄, 범법행위, 책임, 책망들을 잘못 등등과 같은 모든 생각 (idea)들에 그 실체성을 빼앗겼다. (148) 그는 덧붙여서 이러한 일은 옳음과 그릇됨, 정의와 부정의 모든 개념들을 더 이상 하나님과 그 분의 법에서가 아닌, 흔들리는 인간적 견해로부터 찾은 결과로, 확실성과 안전성이 상실되고 정의가 권력에게 희생되었음을 의미한다고 말한다.

 

이 얼마나 오늘날 우리의 거대한 무법 도시 상태를 예언적으로 잘 묘사한 것인가! 또한 그 누가 바빙크보다 더 선견지명이 있는 식견으로 20세기의 대중 공포에 관해 기술해놓은 사람이 있을까? 그가 관찰한 바는 종종 하나님의 음성 ( vox dei )처럼 잘못 전환된 사람의 소리 ( vox populi )가 조금도 두려움 없이 되돌아 온다는 것이다. (148)  

 

또 한가지 주목되어야 할 것은 바빙크가 여러 기독교 전통들뿐만 아니라 기독교가 아닌 세계의 다른 종교와 거기서 말하는 종말론들에 대해서도 충분한 인식력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이다. 무엇보다도 그의 저서는 목회적 속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늘 유용하다. 마지막 심판 (제6장) 뿐 아니라 생전에 전혀 복음을 듣지 못했던 자들과 유아로 죽은 자들의 운명 (제7장)에 대한 바빙크의 논의는 그의 목회자로서의 마음을 명료하게 보여준다. 그는 믿는 자들에게 주시는 위로에 대한 소망과 신자들이 현대 세계에서 예수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기 위해 분투하는 것에 매우 깊은 관심을 가졌다. 바빙크 자신의 이 땅에서의 순례 길은 그가 이 책의 여러 페이지에서 그토록 웅변적으로 요약했던 소망의 위로 가운데, 1921년 6월 12일에 마감되었다.  

 

요컨대 개혁주의 교의학 ( Reformed Dogmatics )은, 성경적이며, 충실하게 고백적이고, 목회자적 감수성에 민감하고, 도전을 주며, 또한 적절한 저서로 이 책이 하나의 진정한 모범이라 할 수 있다. 바빙크의 삶과 사상은 경건하고 정통적이면서도 면밀하게 시대적이기 위한 진지한 노력을 반영한다. 한편으로는 현대 세상에 대해 두려움을 갖는 경건주의자에게, 다른 한편으로는 이와 계속적인 관련성을 가지는 것에 회의적인 정통주의적 비평가들에 대해 바빙크의 예는 하나님의 세계 안에서 기독교인의 제자됨에 대한 삼위일체론적 비젼 이라는 하나의 모델 답안을 제시한다. 

 

끝으로, 개혁주의 교의학 (Gereformeerde Dognatiek)의 두 번째 중보판을 기초로 한 이 책의 편집상의 결정에 대해 몇 마디 부언하려고 한다. 바빙크가 개혁주의 교의학의 종말론 부분을 세 장의 대지로 나눈 것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각 대지마다 부제를 첨부하여 모두 일곱 장으로 번역하였다. 각 장의 분류, 제목, 부제, 개관은 원본에는 없는 것으로 편집자에 의해 마련된 것이다. 바빙크가 제시한 본래의 각주는 그대로 기록하되 현재의 저서목록 제시 방식에 따랐다. 편집자가 덧붙인 각주는 따로 명백히 표시하였다.

 

 19세기부터 현재에 이르는 모든 저서들은 각 장에서 첫 번 인용될 때에 완전한 문헌 목록으로 제시하였고 그 다음부터는 약어를 사용하여 표기하였다. 19세기 이전에 출판된 고전 문헌들, 예를 들어, 교부들, 아퀴나스의 Summa, 칼빈의 기독교강요, 후기 개혁주의 프로테스탄트와 카톨릭 저서들은 종종 그 책의 작가, 제목, 각 부분의 표준화된 기록방식으로서만 언급되어 인용되었다.

 

그 책들의 보다 완전한 참고 자료는 이 책 끝 부분에 첨부된 부록을 통해 구해볼 수 있도록 하였다. 외국어 제목의 영어 번역판이 있는 경우에는 그 원본보다는 영역판을 참고하였다. 특정한 번역상의 참조 표시가 직접 제시되지 않은 경우, 라틴어, 헬라어, 독일어, 불어 등의 자료는 바빙크의 원본에서 직접 번역한 것들이다. 참조표시가 붙어있는 자료가 미완성된 것이거나 확인할 수 없는 것일 때는 별표 (*)를 하여 제시하였다. 개혁주의 교의학 (Gereformeerde Dogmatiek)의 다른 책 (volumes)에 관한 내부의 페이지 참조는 1928년도의 제4판에서 찾으면 된다.  

 

편집자는 M. Eugene Osterhaven 박사와 이 책의 초본을 주의 깊게 읽으시고 여러 가지로 번역을 도와 주셨고 문체상의 조언과 비평적인 수정을 해 주신 Holland, Michigan에 있는 Western Theological Seminary의 조직신학교수 (Professor of Systematic Theology)이신 Albertus, C Van Raalte 명예교수께 그 귀중한 공헌에 대해 감사를 표한다.  

 

존 볼트 (John Bolt)  

 


제 1 부 ┃ 중간상태

 

 

 


제1장 영혼불멸의 문제  

(The Question of Immortality)  

 

죽음 이후에 우리에게는 어떤 일이 일어날까 하는 문제에 대해 알고자 하는 것은 보편적인 인간의 욕구이다. 세계 종교들은 죽음이라는 종국을 극복하려는 갈망을 증거하고 있다. 고전 철학은 인간 영혼의 불멸성에 관한 고도로 세련된 논증들 (비록 칸트 (Kant) 이후 물질주의적인 현대 철학에서는 그것들을 버렸지만)을 발전시켰다. 기독교 신학에서는 영혼불멸성에 관한 전통적 논증이 어떤 면에서는 유익하다고 보는 데 반해, 성경자체로는 이 문제에 대해 보다 제한적이다. 죽음 앞에서 영혼 불멸이 진정한 위로가 되지는 못한다. 죽음이 끝은 아니며 스올의 아련한 내세 (afterlife)는 하나의 움츠러진 존재처럼 보여진다. 성경은 죽음은 죄에 대한 형벌이며 하나님의 선물인 생명은 은총이라고 단언하며 경축한다. 그리스도께서 죄와 사망을 이기시고 승리하신 것은 믿는 자들이 지금 그리스도의 왕 되신 통치의 첫 열매를 누리며, 죽음 직후에 하늘에서 그리스도와 함께 잠정적인 기쁨을 누리는 반면, 믿지 않는 자들은 고통에 처하게 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 기원과 본질이 그러하듯 만물의 종국은 우리에게 알려져 있지 않다. 과학은 만물의 기원에 대해서와 마찬가지로 그 숙명에 관한 질문에도 만족스러운 대답을 주지 못한다. 개인과 인류, 그리고 세계의 운명이 어떤 것인가에 대해 알아야 할 절박한 요구를 갖는 것은 역시 종교이다. 따라서, 세상의 모든 민족들은 이에 대해 어느 정도의 생각을 다 가지고 있으며 모든 종교에는 어떤 유형이건 종말론이 포함되어 있다. 물론 아직도, 몇몇 학자들은 영혼불멸에 관한 믿음이 원래 모든 민족에게 전형적인 것만은 아니며, 예를 들어 실론 (Sri anka)의 웨다스 부족과 인도의 씨롱스 부족, 또 그 외의 곳에서는 오늘날까지도 그런 믿음이 결여되어 있다고 말한다.  

 

사실 그렇다. 진화론적 관점에서 보면, 하나님께 대한 믿음, 영혼의 독립적 존재성, 그리고 그 영혼의 불멸성은 기원적으로 인간 본성의 한 부분이었을 리가 없다. 오히려, 틀림없이 환경의 다양한 결과로써 생겨나서 점진적이고 우연적으로 진화했다는 것이다. 영혼불멸의 믿음은 조상 숭배, 이미 죽은 친족에 대한 애정, 생명에 대한 애착과 계속 이어가려는 열망, 무덤 저 편의 다른 세상에서는 보다 나은 삶을 살고 싶은 소원, 형벌에 대한 두려움 및 보상에 대한 소망 등이 요소가 되어 점진적으로 진화되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가장 신뢰할만한 종교 역사가들은 이러한 견해에 반대하여 말하기를 이 영혼불멸의 믿음은 모든 민족들 가운데서 발생하며 심지어 가장 원시적인 종교들에 있어서도 하나의 중요한 구성요소가 된다고 한다. 이 믿음은 도처에서, 인간 발달의 모든 단계에서 그것이 아직 철학적 회의에 의해 침식되었거나 다른 원인들에 의해서 뒷전으로 밀려나지 않은 곳이면 어디서든지 발견되며, 모든 경우에 그 영혼불멸의 믿음은 종교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심지어 이 믿음은 원래 아주 자연스러운 것이었다고 말할 수 있겠다.

 

틸레 (Tiele)의 말처럼 창세기에 나오는 에덴동산 이야기의 기록자처럼 모든 민족들은 인간이 천성적으로 영혼불멸의 존재라는 사실을 당연한 것으로 받아들이며, 설명이 필요한 것은 영혼불멸이 아니라 바로 죽음이라는 것이다. 죽음이라는 현상이야말로 자연법칙에 반 (反)하는 것처럼 보여진다. 이토록 불합리한 것이 이 세상 속으로 들어오게 된 데에는 틀림없이 무슨 일인가 일어났었기 때문이다. 서로 다른 민족들이 가지고 있는 많은 전설에 보면 기원과 전개는 달라도 똑같은 생각 (idea)이 표현되어 있는 것을 볼 수 있는데, 즉 언젠가 이 세상에는 병도 죽음도 알지 못했던 때가 있었다는 것이다. 자연 상태에서 원시 인간들은 직접 그들의 눈으로 보면서도 죽음에 대해 믿지 않았다. 그들은 이것을 잠 (sleep), 즉 영혼이 몸에서 떠나갔지만 여전히 돌아올지도 모르는 무의식의 상태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들은 영혼이 돌아올 것인지 보려고 여러 날을 기다린다. 그리고 만일 그 죽은 자의 영혼이 돌아오지 않으면, 그 때에는 다만 그는 다른 몸으로 들어가거나 세상 밖의 영혼들과 합류하기 위해 사라진 것이다.  

 

내세에서의 영혼의 모습은 매우 다양하며 종종 여러 가지 혼합된 모습으로 제시된다. 때때로 영혼들은 죽은 후에 자신들의 무덤 근처에서 산다고 여겨졌다. 따라서 그들이 계속 존속하기 위해서는 혈족들의 지속적인 보살핌이 필요하며, 그렇지 못하면 음울한 그림자 같은 음부 (Hades)에 이끌려 가서 신들과 살아있는 인간들로부터는 아주 멀리 떨어지게 된다고 생각했다. 그런가 하면 또 영혼은 인간의 몸에 깃들어 살기 이전에 몇 차례 일련의 변태 (metamorphoses)의 순환을 거쳐왔었는데, 정화되고 완벽해져서 신의 경지나 열반에 들어가기 위해서는 인간의 몸을 떠난 뒤에도 짐승이나 사람의 다른 육체에 들어가서 일정 기간을 보내야 한다고도 믿었다. 또 영혼들은 죽음 직후 신의 심판에 들어 가는 것이라고 말하는 교리도 있었는데, 만일 착한 일을 했으면 그들은 위험한 죽은 자들이 건너는 다리를 건너가서 신들과 함께 사는 축복의 땅으로 들어갈 것이고, 나쁜 일을 했으면 영원한 어두움과 고통의 장소로 내던져 질 것이라고 한다.  

 


철학 (Philosophy)  

개인적 영혼불멸에 대한 이런 가르침은 종교에서 철학으로 전수되었다. 피타고라스 (Pythagoras), 헤라클리투스 (Heraclitus) 및 엠페도클레스 (Empedocles)의 모범을 따라 특히 플라톤 (Plato)은 (그의 Phaedo 에서) 영혼불멸에 대한 자신의 종교적 신념을 철학적 변론을 통해 뒷받침하려 하였다. 본질적으로 그의 증거들은, 영혼은 기억으로부터 관념의 지식을 이끌어 오는데, 인간의 몸 안에 거하기 전에 이미 존재했고, 따라서 몸을 떠난 후에도 계속 존재할 것이라는 견해로 귀착된다. 더 나아가, 영원한 이데아 (ideas)에 대해 묵상하는 점에서 영혼은 신성 (divine being)과 유사하며, 하나의 독립적이고 단순한 실체로서 육신과 욕망을 제어하는 점에서는 육체의 수준 보다 월등히 우위에 있다. 무엇보다도, 플라톤은 영혼은 생기의 본질이며 따라서 생명 그 자체와 동일하므로 비생명체이거나 덧없는 것이라고는 생각할 수 없다는 주장이다.

 

이 영혼불멸 이론에다가 플라톤은 영혼의 선재 (preexistence), 영혼의 윤회 (metapsychosis), 타락, 육신과의 결합, 심판, 영혼의 환생 등, 대부분 신화적 특성을 지닌, 순수한 과학적 이해로 볼 때 분명히 플라톤 자신조차도 의도한 바가 아니었을, 다양한 개념들을 결합시켰다. 데모크리투스 (Democritus), 에피쿠루스 (Epicurus)나 루크레티우스 (Lucretius)처럼 영혼불멸설 교리에 반대하는 다른 학자들도 있었고, 혹은 아리스토텔레스 (Aristotle) 같이 그들의 주장에 확신을 갖지 못하는 사람도 있긴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플라톤의 신조는 신학과 철학 양자 모두에게 지속적으로 큰 영향을 미쳤다. 영혼 선재설이나 영혼 윤회설과 같은 신화적인 요소들은 종종 분리파 집단에서 받아들였다. 그리고 플라톤의 영향 하에서  

 

신학은 성경에서 보이는 것보다 훨씬 더 많이 영혼의 불멸성에 대해 주의를 기울였다. 자연적 영혼불멸의 교리는 하나의 articulus mixtus 가 되어 계시보다는 이성에 기초하여 그 진실성에 대한 논의가 일어났다.  

여전히 그 둘 사이에 차이점이 있다는 데 대한 약간의 인식은 지속되었다. 사람들은 성경에서도 여전히 삶과 죽음에 대해 물리적 (physical) 의미 외에도 종교윤리적 (religeous-ethical) 의미를 끊임없이 부여한다고 어느 정도는 깨닫고 있었다. 성경에서는 삶 (live)이 결코 단순히 계속 존재하는 것이 아니며, 죽음도 절대로 소멸해 없어지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생명은 하나님과 친교를 갖는 것을 포함하며 죽음은 그 분의 은혜와 복을 잃는 것을 의미하는 것이다.

 

교부들은 계속해서 그리스도께서 우리에게 영생 ( athanasia )을 주러 오셨다고 말하고 있는데, 바로 그런 이유에서 때로는 그들이 영혼의 자연적 불멸성을 부인하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또한 교부들은, 하나님 한 분만이 스스로 영원불멸하시다는 것과 사람의 영혼은 오직 그 분의 뜻에 의해서만 불멸하다는 것을 근거 삼아 영혼이 창조되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플라톤의 영혼선재론 (preexistence)에 대해 반대할 수밖에 없었으며, 그 이유에서 때로는 영혼은 본성적으로 불멸한 존재라고 부르기를 거부하였다. 이것은 혹시 교부들 중에서도 조건적 영혼불멸을 옹호하는 이들이 있었는가 하는 문제를 연구함에 있어 염두에 두어야 할 사항이다. 왜냐하면 비록 아르노비우스 (Armobius)같은 좀 색다른 신학자가 악한 영혼들의 영혼소멸 (annihilation)을 가르치고 타티안 (Tatian)은 죽게 되면 영혼도 몸과 함께 마지막 날에 다시 일어나기 위해 죽는다고 믿기도 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영혼은 그 안에 하나님의 주신 속성으로 인해 불멸하다고 믿는 일반적인 신앙이 있었다.  

 

철학에서도 플라톤의 영혼불멸신조는 중요한 위치를 유지했다. 데카르트 (Descartes)는 정신과 물질, 영혼과 육체를 각기 별개의 실체로 보고 그 각각은 자체의 속성, 의도, 범위를 가지며 스스로 존재할 수 있고, 따라서 연합은 기계적으로만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스피노자 (Spinoza)는 두 가지 속성을 똑 같이 채택하긴 했지만 그것들을 하나의 영원하고 무한한 실체의 표현, 즉 같은 대상의 양면으로 보았는데, 이들은 분리되어서는 존재할 수 없고 언제나 주체 (subject)와 객체 (object), 상 (image)과 반상 (contrasting image), 관념 (idea)과 사물 (thing)로 결합되어 있다고 하였다. 그의 체계 안에서는 영혼불멸이 설 자리가 없었으며 그럴 필요도 없었는데, 그 이유는, 비록 우리가 우리의 정신이 영원하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하더라도 우리는 여전히 경건과 신앙을 가장 중요한 것으로 여기고 있으며 제4의 영역 (the Fourth Part)에 있는 것은 우리가 전적으로 정신의 힘과 관대함에 관련된 것임을 보여왔다 는 것이다.

 

그러나 18세기 철학은 별로 스피노자 쪽의 경향을 띠지 않았다. 이 철학은 이신론적 (deistic) 특성을 지녔고 하나님, 덕성, 영혼불멸의 삼부설 (triology)에 만족하면서 그 중에서 세 번째 것을 가장 중요하게 여겼다. 라이프니츠 (Leibniz), 울프 (Wolf), 멘델손 (Mendelson)과 다른 이들의 뒤를 따라, 그 진실성은 형이상학적, 신학적, 우주적, 도덕적, 및 역사적 증거들의 광범위한 분류에 의거한 논쟁의 대상이 되었고, 독자들에게 대해서는 감상적 관찰을 통해 무덤의 저편에서 일어나는 기쁨에 찬 인식과 영혼의 재결합을 본다고 주장했다. 스트라우스 (Strauss)에 의하면, 시편 73:25의

["땅 위에서는 주밖에 나의 사모할 자 없나이다 (there is nothing on earth that I desire other than you)"]

라고 한 시인의 말은 감상적으로 바꾸어 표현하면, "내가 내 자신에 대해 확신하는 한, 하나님과 세상은 내게 중요하지 않다 (as long as I am sure of myself, God and the world are not important to me.)"로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칸트 (Kant)는 그러나, 영혼불멸에 대한 앞서 있는 모든 증거가 불완전함을 보여줌으로써 이러한 자신에 대한 확실성 사상에 종지부를 찍었고, 이 이론을 오직 실천적 이성의 선결조건 정도로서만 받아들일 수 있는 것으로 간주했다. 이성주의가 갖는 자아 중심적인 소원에 반대하여 슐라이어마허 (Schleiermacher)는 "누구든지 자기 자신보다 그 이상이 되기를 배운 자는 스스로를 잃으면 더는 잃는 것이 없다는 것을 안다 (whosoever has learned to be more than himself knows thathe loses little when he loses himself)"고 말하면서, 유한성의 가운데에서 무한자 (the Infinite)와 함께 하는 자가 되려는 것과 모든 순간마다 종교의 영혼 불멸성 안에서 영원해지려 하는 것을 가장 높은 영혼 불멸성으로 알았다.  

 

이와 유사하게, 피히테 (Fichte), 쉘링 (Schelling)과 헤겔 (Hegel)의 관념론 철학에서는, 비록 이 문제에 관한 솔직한 신념을 표현하는 것을 주저하긴 하였지만, 영혼불멸에 관해서는 추호도 논의의 여지를 남겨두지 않았다. 그렇지만 리히터 (Richter)의 마지막 일들에 대한 교리에 관한 책은 헤겔의 체계가 암시하는 바를 드러내었으며, 많은 비평에도 불구하고 물질주의로 가는 길을 열었던 것이다. 이 물질주의는 이미 포이에르바하 (Feuerbach)에 의해 크게 옹호되고 있었으며 나중에는 자연과학에서 유래한 것이라는 논의와 함께 보그트 (Vogt), 몰레쇼트 (Moleschott), 뷔히너 (Buhner), 헥켈 (Haeckel), 기타 다른 사람들로부터 지지를 받았다.

 

이런 논증들이 많은 사람들에게 너무도 강력한 인상을 심어준 결과 사람들은 영혼의 불멸성을 완전히 저버렸으며 기껏해야 그 가능성을 언급하거나 단순히 영혼불멸에 대한 희망을 말하는 정도가 되었다. 신학자들 역시도 종종 영혼의 불멸성에 대한 증거에 별로 가치를 두지 않았다. 그러나 그들과는 대조적으로 여전히 많은 명성있는 사람들은 모든 증거들이, 아니 몇 가지이거나 다만 한 두 가지뿐일지라도 자신들에게는 영혼불멸에 대한 굳건한 신앙을 세울 기초로는 충분하다고 여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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