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 참회의 눈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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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어거스틴

2009. 1. 21.

 

 

어거스틴의 참회의 눈물

 

 

 

어거스틴(354∼430)은 참으로 풍부한 정서를 소유한 인물이었음을 그의 ‘참회록’
을 통해 알 수 있다.특히 그의 참회 장면은 풍부한 감성을 소유한 눈물의 사람이었
음을 확인하게 한다.북부 아프리카의 작은 항구도시 히포의 감독으로 76년의 일생
을 살았던 어거스틴은 30세에 밀라노의 감독 암브로시우스(339∼397)를 만나 하나님
의 사랑을 깨닫기까지 방황했던 평범한 사람이었다.

 

그는 17∼19세에 카르타고에서 대학을 다니면서 쾌락과 정욕의 노예가 됐고,급기야
는 잘못된 진리 추구에 사로잡혀 혼합종교인 마니교에 빠져들어 20대의 청춘을 보내
게 된다.이러한 그의 모습은 어머니 모니카의 기도와는 다른 엉뚱한 결과였다.

성직자가 된 그는 훗날 당시의 모습을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는 생명수가 내게
필요했음에도 불구하고 나의 발걸음은 세상으로 빨랐고,나의 영혼이 공허하면 할수
록 세상은 내게 가까워졌습니다”(3권)라고 술회했다. 

 

그러던 그가 30세가 됐을 때 그리스도 안에서 뜨거운 눈물을 흘리게 된다.그 전환
은 암부로시우스를 만나 이뤄지는데,어거스틴은 이러한 순간에 먼저 어머니의 눈물
을 잊지 않는다. 

 

특히 우리는 그 명언,“자,이제는 떠나시오.하나님이 당신을 복주시기를! 눈물의
아들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3권)를 듣게 되는데,이는 얼마나 어머니의 눈
물의 기도가 간절했는지를 잘 보여준다.그 결과 어머니의 눈물은 어거스틴 본인의
눈물로 극적으로 바뀌게 된다. 

 

자신을 탕자로 비유하면서 쏟아지는 참회의 눈물을 감당하지 못하는 어거스틴의 모
습은 우리의 심금을 울린다.“탕자를 눈물로 기다리던 아버지가 아들에게 달려가
목을 안고 입을 맞추며 ‘이 내 아들은 죽었다가 다시 살아났으며 내가 잃었다가 다
시 얻었노라’는 이야기를 들을 때마다 흐르는 눈물을 감당할 길이 없었습니다”(8
권) 

 

이러한 눈물은 32세 때 그 강도가 더해가는데,“내 영혼 깊숙이 숨겨져 있는 내 인
생의 비참함이 그대로 내 눈 앞에 드러났고,강한 폭풍이 내 영혼을 흔들더니 눈물
이 폭우처럼 쏟아지기 시작했습니다. 

 

나는 홀로 조용히 통곡하고 싶었습니다.알지도 못하는 사이에 무화과나무 아래 엎
드렸고 내 눈에서는 눈물이 폭포처럼 흘렀으니 그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
령한 제사’(베드로전서 2:5)가 됐습니다”(8권) 

 

이렇게 해서 어거스틴은 33세 때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뜻의 이름을 가진 16세
의 아들 아데오다투스와 함께 부활절 아침 밀라노에서 암부로시우스로부터 세례를
받게 된다.이날은 기독교 역사에 있어서 참으로 행복한 아침이었다.

 

“이때 아들도 우리와 함께 밀라노로 와서 우리 죄를 완전히 씻어내고 새로운 은혜
를 받는 세례를 받았습니다.과거의 내 죄를 생각하고 당신이 세우신 교회의 찬양
을 들을 때 내게 베풀어주신 그 은혜가 너무나 감사해 그저 울기만 했습니다.

거룩한 음성이 고요히 내게 들리고 당신의 진리가 내 마음을 사로잡았을 때,내 영
혼 깊은 곳에서 끓어오르는 당신을 향한 경건한 감정은 이내 흐르는 눈물이 되었지
만 나는 그 속에서 무한한 행복을 느꼈습니다”(9권)

총명했던 아들 아데오다투스는 아쉽게도 얼마 후 어거스틴의 곁을 떠나 하나님께로
갔다.

/주도홍교수 (기독신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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