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거스틴 -참회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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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어거스틴

2009. 1. 23.

 

 

                                                 어거스틴 참회록 |

 
 
1.젊은시절.

 

1)젊은 시절의 사악성을 뉘우치다.

어거스틴은 사춘기를 지나 16세에 이르러 학업보다 정욕에 이끌려 쾌락을 추구하며 나쁜 친구들과 어울린다. 그는 자신의 죄악으로 가득찬 과거를 돌이켜 보며 세상 정욕으로 부패했던 자신의 영혼을 이야기 한다. 그는 젊음에 불을 질러 천박한 것에 만족을 구하고 비열하고 음침한 정욕에 휩쓸리며 거칠어 갔다 고백한다.그는 방황의 심한 폭풍우 속에서 사랑과 정욕을 혼동하였고 불안정한 젊음은 부정한 쾌락의 낭떠러지로 곤두박질쳐 마침내 파렴치한 죄악의 심연속으로 빠져버리고 말았다.

 

어거스틴 어머니는 행여 자식이 음행을 범할까 누구의 아내와 죄를 저지를까 하여 가슴 태우며 염려하면서 기도한다. 그러나 아들은 불량한 친구들과 어울리며 자신이 저지를 악을 자랑스럽게 서로 떠벌려댔다. 도둑질을 한것은 먹을것이 없어서가 아니라 절제하지 못한 불의의 욕망과 감정 때문이었다. 도둑질을 통해 묘한 쾌감을 느꼈고 도둑질을 비롯한 여러가지 죄악을 행하는 것이 즐거웠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이 모든 행동이 잘못을 잘못인줄 모르고 저지른 단지 죄악 그 자체를 즐기려 저지른 일로 자신을 불쌍히 여겨주시길 하나님께 간구한다. 참으로 추한 것에서 생각하기도 싫고 쳐다보기도 싫은 인생의 매듭으로부터 해방시켜주실 분이 누구신가? 어거스틴은 그분은 정의롭고 죄 없으신 분인 주님이 바로 그분이심을 고백한다.

"나의 하나님! 젊은 시절 나는 주님을 떠나 제멋대로 방황하였습니다. 주님의 품을 떠나 길을 잃고 헤메였으며 나의 영혼은 황무지가 되었습니다."

 

2)마니교 오류에 빠지다.

그의 영혼은 점점 병이 들어 곪아 갔음에도 불구하고 육체의 쾌락은 더욱 즐거워져만 갔다. 근본적으로 타락하고 변태적인 불량배들과 휩쓸렸다. 수사학을 수업 받던중 키케로의 책이 어거스틴의 생활과 감정을 변화시켰으며 주님께 기도하게 하였다. 세상을 향한 것들이 무가치하게 느껴지고 영원히 타오르는 지혜를 사모하게 되었다. 그의 나이 19살이었다. 그러나 단지 깊은 진리의 말씀을 깨닫지 못하고 단지 키케로의 저서를 통하여 철학의 추구로 인한 즐거움을 맛보려 했다.  

 

당시 그에게 성경은 키케로의 저서에 비해 별로 가치가 없는 것으로 여겨졌다. 성경은 사실 교만한 자에게는 쉽게 깨우쳐지지 않는 책이었다. 그리하여 정신적으로 교만한 자들,육적인 쾌락을 즐기는 자들, 쓸데없는 말하기를 좋아하는 무리들과 어울리기 시작했다. 그러나 그들이 줄기차게 외친 구호는 "진리"였으나 결국 "진리"는 그속에 없음을 알게 되었다.

 

어거스틴 어머니는 주교를 찾아뵙고 아들을 만나 오류를 논박하고 나쁜것을 고치고 좋은것을 가르쳐 달라 청했다. 그러나 주교는 슬기롭게 이를 거절한다. 사실 이미 이단 사설로 교만해 있으며 논쟁에 익숙하지 않은, 선량한 교인들을 미혹하는 질문으로 신앙심을 흔들어 놓기 일쑤인 그를 가르쳐야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러나 주교는 어머니를 이렇게 위로한다. "얼마동안 아들을 그대로 내버려 두십시오.

 

그리고 당신은 그를 위해 오직 주님께 기도 드리십시오. 그가 이단 사설을 공부하노라면 스스로 그것이 잘못된 것임을 깨닫게 될 것이며 얼마나 크게 하나님께 범죄한 것인가 뉘우치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주교 자신도 한때 마니교에 심취했던 자로 결국 마니교 교리가 미혹된 이단 사설임을 깨닫고 마니교를 떠났음을 알려주었다.그래도어머니 모니카가 눈물로 매달려 간청하자 이렇게 말했다."! 이제 가시오. 하나님은 당신을 축복하실것입니다. 이렇게 흘린 눈물의 아들은 결코 망하는 법이 없습니다."

어머니는 이말을 곧잘 어거스틴에게 들려주었고 그녀는 주교의 말을 하늘에서 들려준 음성으로 여기며 살았다.

 

3)9년의 불행한 시절19세부터 28세까지 그의 삶은 유혹을 받고 속임을 당하며 또한 남을 속이는 여러가지 정욕의 범죄에 빠져든 생활이었다. 그의 사회 생활은 인문과학 교사로 정의와 중용에 관한 책들을 저술하고 아리스토텔레스의 범주론에 관한 책과 인문 예술 분야의 작품을 저술했다. 친구의 죽음을 통해 더욱 마니교에 심취한다. 그러나 그는 자신이 종교의 탈을 쓴 위선자였을뿐이라 고백한다. 교만했고 미신적이었으며 그의 견해는 공허한 허구였다.
한편으론 허무한 대중 인기를 얻는데 전념했다. 관객들의 박수를 갈구하였고, 시짓기 대회, 화관공예 경연대회,공허한 연극,무한정한 육욕의 자극등을 추구했다. 그러면서도 온갖 더러움으로부터 순수해지길 열망했다. 당시 "아름다움의 조화"란 책을 저술하여 히에리우스에게 헌정한다. 이것은 그와 같은 명성을 원하고 그것을 얻으려는 노력이였다. 그러나 그 책을 저술하면서 물질적인 심상에 눈멀어 하나님의 영적인 속성을 이해하지 못했음을 깨닫는다.

 

그가 가진 인간성에 대한 이해와 관념적 사물에 대한 생각이 진리를 보는 눈을 막았고 진리의 힘이 그의 눈에 비쳐도 언제나 외형적인 용모와 색체에 관하여 신경을 썼다. 사람의 영혼이 부패할 때 악한 행동이 나타나고, 또한 거기에 폭력이 생겨나며, 영혼이 썩어 부패했기 때문에 육욕이 솟아나서 온갖 순간적 환락에 빠져 잘못을 범함을 깨닫는다.

 

어거스틴 나이 20세쯤 이미 아리스토텔레스 '십범주'라는 책을 누구의 도움도 받지 않고 스스로 깨닭았는데 스스로 과연 이것이 어떤 유익을 주었는가 반문한다. 당시 지성인의 필독서인 그 책은 모래알 같이 많은 어휘와 비유를 일일이 해결해 주는, 스승의 지도를 받고도 이해하기 어려운 책이었으나 홀로 그 책을 읽고 깨달아 다른 사람들에게 이야기 해 주었다. 그책엔 인간 본질과 실체, 그리고 거기서 부수되는 속성에 대하여 분명한 정의를 내려주고 있다. 사람의 형상은 어떻고, 그 기질은 어떻고, 크기는 얼마이며 키와 가족 관계와 지위와 ,공간적 관계로는 어디에 위치하고 있으며,시간적 관계로는 언제 태어났고, 그 몸의 상황으로 그가 앉아 있는지 혹은 일어섰는지 또는 구두를 신었는지 무기를 지녔는지, 그가 정상적으로 활동하고 있는지 혹은 병들어 고통 가운데 있는지 등 사물의 범주를 9가지로 나누어 설명하는 책이다.

 

어거스틴은 모든 사물의 실존 형태가 십범주에 들어 있다고 믿었고 따라서 절대자인 하나님도 가변적 십범주에 들어 있다고 믿었다. 그러나 그는 십범주가 자신에게 준 유익이 무엇이며 오히려 거침돌이 되었다 고백한다. 세속의 양태로 하나님의 속성을 파악한 것은 허구이며 진리가 아니라 결론내린다. 그는 모든 책을 다 읽고 이해했다 해도 사악이 가득찬 자신에겐 아무 유익이 없으며 작은 지식을 얻는데 즐거워한 자신은 근본에 관하여는 알지 못한 자이며 이는 빛을 등지고 돌아선 자가 사물은 확인할 수 있지만 사물을 볼 수 있도록 비춰준 그 빛은 잊고 있었던 것이라 말한다.

 

2.회심.29세때 어거스틴은 마니교의 오류를 발견한 후 로마와 밀라노에서 수사학 교수가 되었다. 그는 거기서 암브로시우스 설교를 듣고 그를 가까이 하기 시작했다.

학문과 진리에 대한 열정으로 가득찼던 어거스틴은 마니교의 가장 박식한 주교인 파우스투스에게 찬사를 보냈다. 그러나 나중 어거스틴은 그를 유창한 웅변과 연설로 많은 사람을 유혹하는 마귀의 올무라 말한다.

 

마니교 교리는 다양한 통찰력에서 출발함으로 "이성으로 온 우주를 판단할 수 있다" 주장하나 결국 스스로의 올무에 걸려 주님을 발견하지 못한 것이었다. 이 세상과 우주에 관한 어떤 지식도 참행복을 줄 수 없으나 오직 하나님을 아는 지식만이 행복을 줌를 깨닭았다. 거짓 교리를 가르치면서도 성령이 임한 것처럼 당당히 사칭하는 마니교들을 확인한 그는 마니교를 떠나며 현저하게 하나님의 도움을 받기 시작한다. 그러나 아직 그는 구세주의 기원과 죄에 관하여 여전히 잘못된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수사학을 가르치기 위해 밀라노로 파송된후 암브로시우스를 만나는데 그는 어거스틴을 완전히 사로 잡았고 마니교 교주 파우스투스와 반대로 이 사람은 건전한 방법으로 구원을 가르쳤다.

당시 어거스틴의 어머니는 산을 넘고 바다를 건너 수없이 많은 고생을 겪으면서 아들을 찾아 밀라노에 온다. 아들이 이제 더이상 마니교도도 그리스도인도 아니라고 말했을 때 별로 기뻐하지 않았다. 어머니는 그의 변화를 위해 주님께 울며 기도했다. 인성 과부가 독자가 죽었을때 어미를 불쌍히 여기신 주께서 죽은 청년을 향해 "청년아 내가 네게 말하노니 일어나라" 하심으로 죽은자를 살리신것 처럼 간절히 매달려 자식의 영혼을 살리려 했다.

 

어머니의 기도는 이미 응답을 받는 중이었다. 왜냐면 자식은 이미 거짓된 진리를 떠났기 때문이다.

암브로시우스 주교 설교를 통해 항상 강조하는 원리는 "의문으로 하지 아니하고 오직 영으로 함이니 의문은 죽는 것이요 영은 살리는 것이니" 이었다. 어거스틴은 이러한 설교를 듣고 매우 기뻐 했다.

31  하나님의 속성과 죄와 기원에 관한 이해가 점점 더 확실해 지며 성경 말씀을 좀 더 정확하게 알게 되었으만 아직 예수 그리스도는 올바르게 이해하지 못하는 시기였다. 그는 예수를 하나님이 인간의 몸을 입고 오신 분으로 파악하지 못했고 우주 전체에 충만한 육체의 본체를 지닌 자로 이해했다.

주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버리시고 육신으로 이 세상에 오신 겸손의 사실을 알려 주시기 위해 플라톤 주의자들의 책을 읽게 하셨고 이는 요한복음 초반부 말씀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을 주었다. 이제 그에게 신적인 섭리가 더욱 분명해 진다. 피조물은 변하나 하나님만은 변하시지 아니한다. 창조물이 창조자에게 경배드리는 일은 당연한 것이다. 존재하는 것은 하나님으로 말미암는다. 중보자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 구원의 유일한 길이다. 마침내 어거스틴은 플라톤 사상에서 발견할 수 없었던 진리를 성경에서 발견한다.

 

32세 어거스틴은 심플리키아누스에게 많은 사람들의 회심과 삶의 태도에 관하여 교훈을 받았으며 처절한 내적 갈등과 투쟁을 거친 후 그의 온 마음이 변화를 받아 하나님께로 회심한다.

그가 만난 심플리키아누스는 암브로시우스의 대부였고 암브로시우스가 아버지처럼 사랑한 자였다. 그는 선한 목자였고 그가 오랫동안 주님을 열심히 섬기며 살면서 얻은 풍부한 경험과 깊은 학문은 어거스틴을 감동시켰다. 어거스틴은 그에게 자신이 갇고 있었던 고민을 이야기 했고 그의 풍부한 경험과 깊은 학문을 통한 조언이 주님을 따를 수 있는 확실한 수단과 길을 알려 주었다.

 

이제 어거스틴은 32년 동안 방탕한 생활을 하며 진리를 발견하지 못한 사실을 후회한다. 그는 자신도 모르게 무화과 나무아래 엎드렸고 통곡한다. 그의 눈에선 눈물이 폭포처럼 흘렀으며 그것은 "하나님이 기쁘게 받으실 신령한 제사"가 되었다. 그는 죄악 때문에 괴로움과 고통중에 부르짖었다.

 

"주님! 언제까지 내일 내일할 것입니까? 왜 지금은 안됩니까? 왜 나의 더러운 생활을 이 순간에 끝내지 못합니까?"

그때 한 음성이 들려왔다."집어들고 읽어라, 집어들고 읽어라" 그는 이것이 분명 하나님의 음성임을 들었다. 그는 이를 하나님의 명령으로 집으로 가서 성경책을 펴들고 처음에 눈에 띄는 곳을 읽으라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해석했다.

"낮에와 같이 단정히 행하고 방탕과 술 취하지 말며 음란과 호색하지 말며 쟁투와 시기하지 말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로 옷입고 정욕을 위하여 육신의 일을 도모하지 말라"(13:13,14)

더 읽지 않았다. 더 읽을 필요가 없었다. 광명한 확신의 빛으로 마음을 비추며 모든 의심과 어두움을 물리쳐 주었기 때문이다. 이 모든 일들을 어머니가 듣고 한 없는 승리와 기쁨에 도취하셨다."우리가 구하는 것이나 생각하는 모든 것 위에 항상 더욱 넘치도록 풍성하게 이뤄주시는 분이 바로 당신입니다"(3:20) 수년전 주님께서 어머니에게 환상을 통하여 보여주신 것과 같이 이제 어거스틴은 믿음의 길로 걸어가게 되었다. "주께서는 내 어머니의 슬픔이 변하여 춤이 되게 하셨으며 어머니의 베옷을 벗기고 기쁨으로 띠 띠워 주셨습니다.(30:11)

 

3.변화.

이제 어거스틴은 33세에 세례를 받으며 그의 어머니 모니카의 사랑을 회상하며 죽음을 애도한다.

그의 어머니는 믿는 가정에 태어났고 신앙의 교육을 받으며 자라셨다. 그녀는 결혼후 남편을 주인으로 잘 섬기셨다. 남편을 변화시키면 모든 일이 잘 될줄 확신했다. 어머니에겐 싸움과 불화를 평화로 바꾸는 능력이 있으셨다. 어머니는 많은 사람들과의 대화 가운데도 항상 하나님을 찬양하고 영광을 돌렸으며 주님을 사랑했다.

 

어머니의 죽음 앞에 육체적 제한성을 가진 인간임을 고백한다. 마지막 나팔 소리에 순식간에 홀연히 다 변화될 주님 오시는 그날을 사모하며 기쁨으로 맞이한다. 그러나 허전한 마음은 끝내 슬픔의 홍수로 흔들렸고 흐르는 눈물을 감추지 못한다. 그의 눈물의 샘물이 마르도록 계속 흘러 내렸다. 마지막 숨을 거두는 순간 대성통곡하기 시작 했다. 그러나 슬픔과 탄식으로 장례식을 마친다면 어머니를 위한 존엄성이 깨지고야 말것 이라는 생각이 들었고 울음을 멈추었다. 어머니는 그의 생명의 지주였고 크나큰 위로였다.

 

이제 자신의 과거 모습뿐 아니라 현재의 모습속에서 주님께 고백하기를 원한다. 이렇게 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열매는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고백할 뿐만 아니라 주님을 사랑하는 자녀와 친구들에게 기쁨과 인격을 함께 나눌 수 있다.

전에는 죄악 가운데서 방황하던 사람들이 이제는 죄에서 해방되었다는 소식은 많은 선한 사람들에게 기쁨을 안겨 준다. 흥미로운 죄 때문에 기뻐하는 것이 아니라 어제의 죄인이 이제는 변하여 죄를 짓지 않는다는 사실이 그들에게 기쁨을 안겨주는 것이다. 그가 죄악된 과거를 고백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죄악으로부터 떠나게 되기를 원해서이며, 변화된 나의 현실을 고백하는 것은 능력의 주님을 간증하기 위함이다.

 

모든 피조물 위에 뛰어난 속성인 하나님의 사랑은 감각적 지식과 이성의 활용을 통하여 인지할 수 있다. 우리의 속에는 영과 육이 함께 살고 있는데 하나는 안에 살고 하나는 밖에 살고 있다. 하나님을 찾기 위해 이 둘 중 무엇을 동원시켜야 하는가? 육신의 눈을 동원해 하늘과 땅과 바다를 살펴보며 하나님을 찾아보았다. 그런데 천지만물이 대답했다. "우리는 하나님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면 육신은 이 보고를 종합하여 영혼에게 알려준다. 겉사람의 보고를 받고 속사람은 이를 종합한다. 속사람 영혼은 겉사람 육신의 도움을 받아 사물과 진리를 깨닫게 된다.

 

이제 끝으로 어거스틴은 자신이 오랜 세월 하나님 없이 방황 했음을 고통스러워한다.

"이렇게 늦게서야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항상 새롭고 아름다우신 주여, 이렇게 늦게서야 나는 주님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주님은 내 안에 계셨지만 나는 주님을 떠나 있었습니다.

내 안에서 나를 사랑하시는 주님을 찾기위해 나는 더러운 세상을 방황하고 다녔습니다. 주님은 나를 부르셨고 크게 외치셔서 들을 수 없었던 나의 귀를 열어주셨습니다. 주의 영을 맛본후 나는 한층 주의 말씀에 주렸고 목이 말랐습니다. 주께서 나를 만지셨고 나는 당신의 평안으로 불타올랐습니다. 나의 전인격이 당신과 연합할 때 내게는 수고와 슬픔이 없습니다. 내 생명은 온전히 살아나 당신으로 충만할 것입니다."

 

하나님은 분명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떠나 절제하며 살기를 원하신다. 육을 입고 있는 한 육신의 정욕의 유혹은 끊이지 않는다. 눈이 열려있는한 안목의 정욕은 조금도 휴식이 없다. 호기심도 사실 알고보면 무서운 안목의 정욕으로 이끄는 유혹이다.알고자 하는 지식욕까지도.

 

교만은 하나님이 아닌 인간을 기쁘게 한다. 교만함으로 얻는 존경과 사랑은 일시적인 것이고 칭찬의 올무는 진리안에 머무르지 못한다. 우리는 존경받고 사랑받되 주님을 대신하여 받는 것이 아니라 주님으로 말미암아 사랑 받아야 한다. 사탄은 우리로 하여금 하나님의 자리까지 오르게 하나 그 목적은 형벌받은 죄인의 관계로 이간하려는 것이다. 우리는 매일 유혹을 받는다. 결국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는 세상의 세가지 욕심중 하나나 둘 혹은 세가지 모두를 차지하기 위해 애쓰는 것이다.

 

이 유혹을 이길 수 있는 지를 알아보려면 정욕을 위해 추구했던 그 부와 재물을 과감히 포기해 보는 것이다. 어거스틴은 죄의 질병을 세가지 형태의 정욕이라는 관점에서 보았고 주님께 호소하여 도와주심을 간구한다.

이 주님은 그의 영원한 진리이며 유일한 구원이 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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