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브라함 카이퍼-사상과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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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신앙 연구가들/아브라함 카이퍼

2011. 4.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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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혁신학 총론


정성구,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과 삶󰡕 (경기: 킹덤북스, 2010)에서 발췌한 내용입니다.

 

 

1. 네덜란드의 ‘칼빈’ 아브라함 카이퍼

신학을 공부하는 사람이라면 아브라함 카이퍼(Abraham Kuyper, 1837-1920)를 모를 수 없고, 특히 칼빈주의(개혁주의) 신학을 공부한 사람이라면 카이퍼의 신학적 영향을 받지 않을 수 없다. 그만큼 그는 칼빈주의 신학에 있어서 핵심적인 인물이다. 카이퍼는 네덜란드 사람이지만 그의 영향력은 네덜란드를 뛰어넘어 전 세계 교회와 신학계에 끼쳐졌다.

 

비단 목사나 신학자만 그의 영향을 받은 것이 아니다. 오늘날 목사가 아니라도 ‘기독교 세계관’(Christian world-view)에 관심을 갖고 있는 사람이라면 카이퍼를 모를 수 없다. 왜냐하면 정성구 박사님의 󰡔아브라함 카이퍼의 신학과 사상󰡕에서도 핵심적인 사상으로 소개하고 있는 ‘영역주권’(領域主權, Souvereiniteit in eigen Kring(화), Sphere Sovereignty(영))사상은 사실상 기독교 세계관의 뿌리요 출발점이기 때문이다. 이처럼 카이퍼가 기독교와 세상에 끼친 영향은 실로 막대하다.

 

아브라함 카이퍼는 벤자민 워필드(B. B. Warfield, 1851-1921), 헤르만 바빙크(Herman Bavinck, 1854-1921)와 함께 세계 3대 칼빈주의 신학자 중 하나로 꼽힌다. 그는 신앙적으로 19세기 화란이 낳은 하나님의 위대한 종이었으며, 신학적으로 칼빈주의의 세계화를 위해서 전 생애를 불태웠던 사람이었다. 특히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주권을 위해서 불꽃같은 삶을 살았던 사람이다. 그가 죽었을 때 전 세계 120여개의 일간지와 주간지에서 그의 죽음을 애도했고, 칼빈주의 신학자와 정치가, 그리고 언론인으로서 대서특필하였다. 특히 미국의 󰡔그랜드 레피즈 프레스󰡕(Grand Rapids Press)지는 그를 ‘제2의 칼빈’이라고 그를 호칭하며 애도했다.

 

그는 목사요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하원의원, 상원의원, 그리고 내무장관과 수상까지 지낸 정치인이었다. 또한 대설교가이면서 작은 시골교회와 큰 도시교회를 담임목사로 일했던 사람이요, 칼빈주의에 충실한 ‘자유대학교’를 설립하여 교수와 총장을 지낸 교육자이기도 하다. 아마도 이러한 그의 다양한 경력이 그가 ‘영역주권’ 사상을 외치게 된 배경 중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2. 영역주권 사상

‘영역주권’(領域主權, Souvereiniteit in eigen Kring)사상은 아브라함 카이퍼의 사상의 핵심이다. 영역주권사상이란, 인간이 살고 있는 모든 영역에서 하나님이 주인이심을 선포하는 것이다. 즉 영역주권사상은 국가, 교회, 정치, 경제, 문화, 예술, 교육, 학문 등의 모든 영역(領域)에 대한 모든 권리를 하나님께서 갖고 계시며, 그 모든 영역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머리이심을 인정하고, 그가 모든 영역을 주장하시도록 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리고 각 영역은 다른 영역의 권리나 자유를 간섭 또는 침해하지 아니하고 자주적으로 존재해야 한다는 것이다. 왜냐하면 각 영역의 주권의 근원은 국가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기 때문이다.

 

카이퍼의 영역주권사상에서 핵심은 각 영역에 대한 한계를 인정한 점이다. 하나님은 만왕의 왕이시고, 만유의 주가 되시고, 그가 모든 것을 통치하신다. 그런데 이러한 주권 곧 통치권이 이 땅 위에 행사될 때 분산되어 각 영역에 주권을 나누어주었다고 주장한다. 모든 영역이 상호작용을 하는데, 한 영역이 다른 영역을 침범할 수 없다는 것이다. 특히 국가도 주권과 권력의 한계를 정해야 하는데, 다른 영역을 과도히 간섭해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즉 국가가 모든 전권(全權)을 가진 것처럼 통치하는 것을 잘못이라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모든 주권은 국가와 상관없이 하나님으로부터 온 것이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학문적 분야를 예로 들어보자. 만약 국가가 권력을 갖고 그 국가 이데올로기를 끌고 가려면 순수한 학문에 치명타를 입히게 되고, 바른 교육 특히 칼빈주의적 세계관을 가진 교육은 유물론적 교육관과 투쟁해야만 한다.

결국 절대 주권자이신 하나님께서 사회 내의 각각의 영역에서 제각기 법을 주었으며, 각각의 영역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진 제 각기의 법에 의해서 존속되도록 하신 것이다. 이러한 각 영역주권의 근원은 실상 국가가 아닌 하나님 자신이다. 그러므로 각각의 영역은 국가에 대해서 책임을 지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내적인 성격과 특성적인 자체 내의 법 체계에 따라 자신의 정체성과 주권을 가진다. 만약 영역주권이 없다면 국가는 무한한 절대 권력을 가질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카이퍼가 영역주권사상을 처음 선포한 것은 1880년 자유대학교를 개교하면서이다. 개교일에 카이퍼는 총장 취임연설에서 영역주권사상을 선포하였다. 카이퍼는 하나님이 주권자이고 국가도 교회도 하나님의 도구이며 모든 삶의 영역에는 하나님이 주권을 가지신다고 주장하였다. 비단 영적인 문제뿐만 아니라 인간생활의 구체적인 생활까지도 하나님의 주권이 미쳐지지 않는 곳은 단 하나도 없다는 것이다.

 

그런데 이러한 영역주권사상은 카이퍼의 단독적인 것이다. 이미 그의 정신적 스승인 ‘흐룬 반 프린스터’(G. Groen Van Prinsterer)가 주장한 내용이요, 더 멀리는 칼빈의 하나님 주권 사상에 그 뿌리를 두고 있다. 단지 카이퍼는 칼빈의 하나님의 주권사상을 더 세분하게 발전시키고 구체화시켰을 뿐이다. 카이퍼 이후로는 도예베르트(Herman Dooyeweerd) 박사에 의해 영역주권사상이 더욱 구체적으로 발전하게 되었다. 카이퍼는 이러한 영역주권이 개혁교회의 원리가 될 뿐만 아니라 모든 다른 개신교 교회의 원리로 채용되길 원했다. 자유대학교의 신조뿐 아니라 개혁교회의 신조로 허락받기를 원했다. 또한 칼빈주의가 근본인 영역주권 사상이 비단 신학뿐만 아니라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예술, 과학, 가정 등에 미치기를 간절히 갈망했다.

 

3. 기독교세계관의 아버지, 아브라함 카이퍼

세계관이란, 개인이 사물(존재하는 모든 현상)들을 바라보는 일관적이고 체계화된 관점을 말한다. 따라서 기독교세계관(Christian world-view)이란 그리스도인이 세상을 바라보는 관점이다. 더 정확히 말해서 기독교인이 세상을 바라볼 때 가져야만 하는 성경적 관점을 말한다. 모든 사물과 현상을 성경적인 관점에서 보고 판단하는 것이다. 따라서 기독교세계관은 중생자의 세계관이요 성경적 세계관이요 신국적 세계관(하나님 나라 관점의 세계관)이다.

 

이러한 기독교세계관에 대한 이론적이고 실천적인 기초를 세운 사람이 바로 아브라함 카이퍼이다. 카이퍼에 의하면 기독교세계관은 칼빈주의이다. 카이퍼는 칼빈주의를 기독교세계관과 나란히 사용하고 있다. 또한 카이퍼에 의하면 칼빈주의 세계관(기독교세계관)은 유물사관과 반대되는 세계관이요, 인본주의 세계관과 충돌되는 세계관이다. 다른 표현으로 개혁주의 신학과 신앙이 명료하게 표현된 세계관이요 하나님 중심의 세계관이요 성경중심의 세계관이요 중생자의 세계관이다.

 

이러한 카이퍼의 기독교 세계관이 한편의 웅장한 그림으로 나타난 것은 1898년에 있었던 그 유명한 ‘스톤강좌’(Stone Lecture)에서 ‘칼빈주의’란 강의를 통해서였다. 프린스턴 신학교에서 열린 이 강좌는 총 6장(章)으로 되어 있다. 1장은 세계관으로서의 칼빈주의에 대해서, 2장에서는 참 종교와 거짓 종교(종교다원주의)에 대해서, 3장에서는 칼빈주의와 정치에 대해서, 4장에서는 칼빈주의와 학문에 대해서, 5장에서는 칼빈주의와 예술에 대해서, 그리고 6장에서는 세계교회와 인류의 살 길에 대해서 강의를 했다.

 

스톤강좌는 강의는 결국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교육, 학문, 예술 등 모든 삶의 전 영역에서 하나님의 주권이 인정되고, 비중생자가 만들어낸 문화를 중생자가 성경적 문화로 바꿀 것을 요구하는 것이다. 즉 개혁주의 신학과 사상을 삶의 전 영역으로 확대하는 것이며, 하나님의 주권을 교회당 울타리 안에만 적용하는 것이 아니라 삶의 전 영역에 확산하는 것이다.

 

4. 하나님 중심의 사람, 아브라함 카이퍼

칼빈주의에 충실한 아브라함의 카이퍼의 신학을 좀 더 구체적으로 살펴보자. 카이퍼 당시 화란교회 안에는 상징주의(Symbolism)가 들어와 있었다. 이에 카이퍼는 16세기 종교개혁 사건을 예로 들었다. 카이퍼는 종교개혁이란 상징주의를 배제하고 의식에 흐르는 종교에 대한 강력한 항의였다고 평가했다. 즉 개혁교회는 로마가톨릭이 상징을 통해서 무한하신 하나님을 유한한 인간들과 연결시키려는 것을 공격했다고 평가했다. 이처럼 카이퍼의 신학은 상징주의나 범신론적인 감정주의를 배격하고 하나님의 계시인 성경중심이었다.

 

그는 또한 성경의 권위를 부정하거나, 오늘날도 특별계시가 지속한다고 주장하거나, 성경을 인본주의적인 종교현상으로 가르치는 오류 등에 대해서 강력하게 비판했으며, ‘하나님의 자기 계시’인 성경을 기독교 신학의 유일한 원리요 원천으로 제시하였다. 무엇보다도 카이퍼는 정통신학과 현대주의의 구분을 성경의 권위와 영감을 믿는가의 여부로 판단하였다. 그가 자유대학교에서 강의할 때, “만약 하나님께서 직접 오셔서 성경을 쓰셨더라도 그것은 지금의 성경과 다르지 않을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는 카이퍼가 갖고 있는 성경관이 어떠한가를 단적으로 보여주는 사건이다.

 

범신론(汎神論)과 진화론을 배격하고, 성령이 성경의 원저자임을 강력히 주장하며, 성경은 그 스스로가 참됨을 증명한다는 ‘성경의 자증(自證)성’을 말하는 카이퍼의 신학은 칼빈의 신학과 일치한다. 이렇게 카이퍼가 성경계시에 대해서 올바른 신학과 사상을 가질 수 있었던 것은 그의 중심에 하나님이 계셨기 때문이다. 즉 카이퍼의 신학이 ‘하나님 중심의 신학’ 있었기 때문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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